Archive for 2006

제임스 김의 명복을 빌며

Wednesday, December 6th, 2006

실종된 지 열 하루만에 제임스 김은 결국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틀 전에 차 안에 남아 있던 아내와 젓먹이 딸, 네 살된 딸이 모두 건강하게 구조되었지만, 정작 구조를 요청하려 나섰던 남편 제임스는 수색 구조팀에 온갖 단서와 흔적을 남기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차 기름이 다 떨어지자 타이어를 태우며 추위를 견뎠고, 음식물이 떨어지자 아이들을 젖먹이며 견뎠다는 가족의 분투가 눈물겨웠는데… 이제 그 아내와 어린 두 딸, 그리고 가족과 친지에게 깊은 하느님의 위로와 보호가 있기를 빈다. 그리고 온갖 지혜와 용기로 가족을 지켜냈던 제임스 김이 하느님의 따뜻한 품 안에서 평화롭게 쉬기를 기도한다.

관련보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뉴욕 타임즈
AP 영상 보도

교회 분열에 대한 우스개 소리 하나

Monday, December 4th, 2006

어느 날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다리 난간을 넘어 뛰어 내리려는 참이었다. 나는 황급히 뛰어가서 그를 말렸다.

“잠깐만요. 그러지 마세요.”
“이러지 말 이유가 있소?” 하고 그가 묻자, 나는,
“그럼요, 살아야 할 이유야 많죠?” 하고 대답했다.
“그게 뭔데요?”
“종교가 있나요?” 내가 묻자,
“예,” 그가 대답했다.
“나도 그래요. 그럼 그리스도교 신자요, 아니면 불교 신자요?” 하고 물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도 그래요. 그럼 가톨릭이요, 개신교요?” 하고 다시 묻자, 그는
“개신교인데요.”
“나도 그래요. 그럼 성공회 신자요, 침례교 신자요?” 하고 묻자,
“침례교 신자요.”
“와, 나도 그래요. 교단이 하나님의 침례교요, 주님의 침례교요?” 하고 묻자,
“하나님의 침례교요.”
“나도 그래요. 그럼 원조 하나님의 침례교요, 아니면 개혁 하나님의 침례교요?” 하고 묻자,
“개혁 하나님의 침례교요” 하고 대답했다.
“나도 그래요. 그럼 1879년 개혁파요? 아니면 1915년 개혁파요?” 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는 “1915년 개혁파인데요” 하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래 죽어라 이 쓰레기 이단아!” 하고 말하면서 그를 떠밀어 버렸다.

초대 교회는 조화롭고 통일된 하나의 교회였다는 믿음은 신화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양이 처지에 따라 다양했기에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 분열과 다툼은 어디에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해결하는 양상이었다. 갈등은 초반 몇 세기에 대단한 신학적-교리적 논쟁을 겪으면서 정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황제의 권력에 의한 일시적인 봉합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학적 교리적 논쟁이 그런 분열을 치유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다름에 분명한 경계를 긋고, 그것을 틀린 것을 정죄하면서 더욱 곪아가는 양상을 보였다. 이 사이에서 어느 교회 전통도 그 본래 의미의 “가톨릭”이 아니다.

이런 논쟁과 분열의 양상은 대체로 정통과 이단이라는 이분법을 주무기로 하여, 정죄와 파문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고, 실제 그 집행 과정은 지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십자군 – 그게 이슬람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의 탈환이었지만, 실제로는 정교회 신자들을 도륙했다 – 으로부터, 종교개혁과 연관된 끊임없는 종교 전쟁을 낳았다. 오죽하면 이러한 종교에 의한 살육의 전쟁이 끝나서 각각의 독립성을 인정하기 시작한 계기인 “베스트팔리아 평화 조약”(1648년)에 이르러야 진정이 되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의 힘은 이를 계기로 국가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역사가들은 이를 서구 근대의 출발로 보는데 입을 모은다. 종교 권력이 끝나는데 근대의 시작이 있다면, 다시 패권적 종교 권력을 구사하려는 힘들이 부흥하는 것은 근대 이전의 회귀가 되는 것일까?

시시껄렁한 우스개 소리 하나 소개하려다가 참 거창한 이야기가 나와버렸다. 여전히 손쉬운 이분법과 편 가르기, 그리고 정죄와 파문이 사그라들지 않는 종교계 (대체로 그리스도교계)는 여전이 “근대” 이전에 있는 듯하다. 교회의 분열 상에 대한 이 농담은 한국의 교회 분열을 그대로 비춘다. 분열은 대체로 커다란 공통점보다는 작은 상이점에 초점을 맞춘다. 그 상이점들은 서로를 정죄하기 위해서 극대화되고 폭력적이 된다. 이런 극렬함은 대체로 경전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에 근거를 두어 자기 해석 이외의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근본주의이다. 근본주의는 정치, 종교, 주의를 막론하고 또다른 하나의 종교이다. 그리고 한기총이라는 다른 종교가 있다. 나는 “부시의 기독교”와 “오사마 빈 라덴의 이슬람교”를 같은 종교로 본다.

캔터베리 대주교, 성찬례와 선교의 비전

Thursday, November 16th, 2006

아래에서 소개한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인터뷰는 이런 저런 논란거리로만 언급되고 말 것이 아니다. 그는 여러 질문들 사이에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를 아우르는 영성 신학자로서의 면모를 성찬례의 신학과 실천이라는 주제로 드러내곤 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성공회 신학자다운 위험한 균형 잡기에서 신앙의 길을 찾고자 한다. 그 길은 성찬례에 대한 이해에서, 그리고 교회 선교 사명에 대한 연대와 실천에서 비로소 드러난다고 한다. 몇 가지 내용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1. 성찬례

Q. 한때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면서 무시무시한 심판자의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면서 그저 그런 도덕 선생을 드러내는 신학이 있었다면, 오늘날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와 관계를 맺어야 하겠는가?

로완 윌리암스(Rowan Williams) 대주교는 성찬례를 통해 드러나는 “신비한 몸”을 통한 예수의 이해를 강조한다.

R.W. “예수의 신성은 신비한 몸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연합하게 되면 삶의 목적으로서 예수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성찬레를 통해서 드러난다. 오늘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점이다. 우리가 예수에 대한 신심에 대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여전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점은 바로 성사적 그리스도(the sacramental Christ)에 대한 감각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은 성령을 통해 흘러나오는 생명이다. 성령은 이 생명으로 우리를 연합시키고 묶어 주시며, 우리가 제대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할 수 있게 하신다. 그리고 이 성령은 성찬례 안에서 우리가 예수의 기도에 참여하게 하며, 이로써 예수의 생명을 받게 하신다. 이것이 모든 개인적인 기도, 공적인 기도의 근간이요, 모든 것이다. 내 신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그레고리 딕스(Gregory Dix)나 랑베르 보뒤엥(Lambert Beauduin)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전례 운동의 신학이다.”

Q. 미국 가톨릭 작가인 Flannery O’Conner는 성찬례가 단순한 “상징”이 아니며, “내 인생의 핵심이고, 그 밖의 것들은 모두 소진되고 말 것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 동의하는가?

R.W. 동의하지만, 세심하게 말할 필요가 있겠다. 성찬례는 상징이다. 오코너가 상징에 대해서 그렇게 말한 것은 상징이 어떤 실재에서 떨어져 나와 그저 생각 속에서만 이해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상징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성찬례는 어떤 시각적 보조 장치가 아니며, 우리 기억을 잠깐 흔들어 되새겨 주는 것이 아니다. 성찬례가 이 세계를 뒤흔드는 어떤 사건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나는 일이 되지 않는다면, 그저 쓰레기일 뿐이다. 그런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에 대해 반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찬례에 대한 내 생각의 핵심이다.

Q. 그나저나 성공회는 화체설과 가까운가?

R.W. 영국 성공회의 39개 신앙 조항이 화체설에 매우 부정적으로 그린 탓에, 성공회는 특별히 그런 방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다만 무언가 일어났다는 식의 특정한 이론에서 사로잡혀 있어서 문제가 생겨난다고 본다. 내가 말하고픈 것은 떡과 잔이라는 성사가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예수의 힘을 담지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의 몸과 피가 그분의 힘과 정체를 온전히 담지했던 것과 같다.

2. 교회의 선교 사명

Q. 왜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를 등지는가?

R.W. 그리스도교 자체에 대한 반발이라기 보다는, 여러 교회들의 물질주의적, 실용주의적인 태도로 세속 사회와 결합하면서 그리스도교의 도덕적 책무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러시아 혁명기에 유럽으로 이민 온 여성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볼세비키 혁명을 반대했지만 사회의 정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의 여러 공장주들을 찾아가 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해서 많이 호소했다. 공장주들이 “그들은 동물이나 다름 없는데 왜 그리 신경쓰느냐”고 묻자, 그는 “그들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그게 내가 그들과 상관하는 이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게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하는 비전과 상상력이다.

Q. 곧 교황을 만날 터인데, 그간 양 교회 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열은 명백하다. 가시적 일치가 요원해 보이는데, 도대체 양 교회 사이에 도대체 뭐가 남은건가?

R.W. 아직 많은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왜 여성 성직이 문제가 되는가 이야기해야 하고, 교회 일치의 가능성을 볼 수나 있는가 물어야 한다. 반면에 현재의 교황제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고, 어떨게 될지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이런 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더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양 교회는 지금 시장에서 경쟁하는 처지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세속 사회 한가운데, 도대체 편안한 마음을 갖기 어려운 세계에 함께 서 있다.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주제는 기구적인 일치를 넘어서 좀 다양해져야 한다. 즉 구체적인 협력의 도구를 만들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우리가 함께 할 일이 있고, 이미 수단에서는 양 교회가 함께 협력하고 있다. 이미 우리 사이에서는 많은 교리적 대화를 나누었다. 아직 기구적 일치까지 가기는 넘어야 할 산이 많기 하지만, 이와 더불어 우리가 함께 아프리카의 교육과 화해를 위해 일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