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 연재] 신앙의 시작과 끝 – 니콜라스 페라
Sunday, November 11th, 2018
신앙의 시작과 끝 – 니콜라스 페라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기도서 2004>의 교회력은 새로운 기념일 제정에 사려 깊었지만, 성공회 전통을 우뚝 세운 성인들이 제대로 드러내지는 못했다. 성공회 신학의 기틀을 세운 리차드 후커(11월 3일)나 성공회의 문학적 신앙 방법을 아름답게 드러낸 조오지 허버트(2월 27일)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또 한 명의 이름이 잊혔으니, 니콜라스 페라(Nicholas Ferrar, 1592-1637, 12월 4일)이다.
니콜라스 페라는 17세기 잉글랜드에 수도원 운동을 재건한 인물이다. 16세기 중반 헨리 8세는 잉글랜드에 있는 모든 수도원을 철폐했다. 수도원이 엄청난 재산을 가진 데다, 이를 로마 교회에 헌납하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부유함은 수도원의 이상과 맞지 않았고, 부패의 싹이 되었다. 그러나 수도원 자체의 철폐는 공동체로 기도하는 오랜 신앙 전통을 상실하는 표시이기도 했다. 페라는 폐허 위에 수도원 운동의 씨를 뿌렸다.
페라는 재산과 권력을 경계했다. 그는 중세 교회의 재산이 찬란했던 수도회를 세우려 하지 않았다. 그는 부제 성직을 받았지만, 결코 사제가 되려 하지 않았다.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시골로 내려간 그는 친척과 친구들을 모아 수도회 전통의 회칙에 따른 삶을 시작했다. 버려진 교회를 고쳐서 수도원으로 사용하는 한편, 지역에 있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가난한 이웃의 건강과 복지를 살피는 사목을 펼쳤다. 그들은 금식과 기도 생활에 충실했다. 글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 성서 이야기와 삶의 교훈을 담은 그림책을 편찬하기도 했다.
당시 잉글랜드에서는 수도회에 대한 호감은 거의 사라졌다.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면서 금식과 절제 생활도 꺼리는 현상이 많았다. 그 탓인지 페라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수도원은 곧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이 수도원 생활은 초대 교회의 수도원을 되살리는 사례가 되었다. 그 씨앗은 2백 년 후인 19세기에 이르러 잉글랜드와 세계 성공회 전역에서 다시 수도회가 부흥하는 영적인 자산이 되었다.
현대 영미 문학계 최고 시인으로 손꼽히는 성공회 신자 T.S.엘리엇은 “리틀 기딩”(Little Gidding)이라는 긴 시를 남겼다. 그의 유명한 <사중주>로 편찬된 시집의 마지막 네 번째 장이다. 이 “리틀 기딩”은 니콜라스 페라가 내려가 수도원을 세웠던 마을이자, 그 수도원 교회의 이름이었다. 시인 엘리엇은 리틀 기딩을 방문하고 이렇게 노래했다.
우리가 시작이라 부르는 것은 종종 끝이며
끝을 내는 일이 곧 시작하는 일
그 끝이 우리가 시작하는 곳.
교회력은 세상의 달력인 11월로 마감하며 12월로 다시 시작한다. 12월은 교회 시간(교회력)의 시작 달이지만, 세상 시간(세속력)의 마지막 달이기도 하다. 한 해를 끝내는 시간에 겹쳐 우리는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한다. 신앙인은 자신의 세상 삶을 마감하고 새로운 삶을 따르라고 부름받은 사람이다. 니콜라스 페라는 세상의 권력과 부를 끝내고 작은 시골의 삶 속에서 새로운 수도원과 영성 생활을 시작하며 사람들을 보살폈다. 시간이 교차하는 11월과 12월, 낡은 삶이 끝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이웃을 발견하고 보살피는 시간이 펼쳐진다.
우리가 시작이라 부르는 것은 종종 끝이며
끝을 내는 일이 곧 시작하는 일
그 끝이 우리가 시작하는 곳.
- 성공회신문 2018년 10월 27일 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