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공부’와 공동체

Wednesday, January 15th, 2014

멀리서 안부를 묻는 어느 벗된 신부님의 편지에 답장했다. 공부하는 일에 관한 고민과 여러 어려움이 담겨진 편지였고, 나를 여러모로 기억하며 격려해 주는 편지였다. 나 역시 깊이 공감하고 그분을 응원했다. 그러나 먼저 된 사람으로서 이렇게 밖에 적어 보낼 수 없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편지는 늘 나 자신에게도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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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바실, 요한 크리소스톰, 신학자 그레고리)

*** 신부님, 잘 지내셨지요? 자세한 소식을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울러 [오래 전 제가 진행한 전례 워크숍과 특강 등에 관한] 옛 기억을 되새겨 주시니 반갑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부끄럽게도, 지난날을 돌아보면, 지금은 그 열정이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에 하늘을 멍하게 쳐다볼 때가 많습니다. 특히 지난 5년은 제게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안팎[에서 비롯한]… 깊은 절망에 저 자신이 눌리고 말았습니다…

이미 여기저기서 밝힌 바와 같이, 지난 10여 년의 미국 생활은 제게 여러 가지로 축복이요 은총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분들을 만나서 깊은 공부와 경험을 한 것이 그것이고, 공부와 더불어 사목 현장에서 발을 떼지 않은 것도 그렇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난한 신자들과 버텼다는 것이 스스로 자랑스럽고, 그나마 하느님 앞에 덜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찌보면 지금처럼 제 공부의 진척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성직자로 불린 이상 어떤 이유로도 사목 현장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

교회의 변화는 그야말로 교회의 현장에서 일어나지, 신학교나 신학자의 책상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 혹은 신학자는 [하느님의 백성이] 현장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경험을 좀 더 보편적인 언어로 정리해 내고, 역사와 전통 안에서 그 맥락을 이어주고 새로운 대화의 길을 열어주는 일에 종사할 뿐입니다. 이 순서가 잊히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회와 신학, 특히 신학은 ‘지식인의 유희’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교회 현장을 누가 점령했는지 깊이 살펴볼 일입니다.

특히 신학교는 “성직자 양성 기관”이며, 신학을 가르치는 이는 그 일에 복무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르치는 신학자”의 임무이며, 이 임무를 하지 않을 요량이면, 그냥 “연구하는 신학자”로 남으면 될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직자 양성 과정에 대해 깊이 살펴보는 기회를 얻길 바랍니다. 학위는 개인적인 성취이지, 교회의 성취는 아닙니다. 그것이 교회의 성취가 되려면 교회 현장과 신앙 교육에 연결돼야 하고, 좁게 보더라도 성직자 양성 과정과 연결돼야 합니다.

[…] 여러 식으로 한국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 공통적인 아쉬움은 교회에 좀 먹는 반지성/반신학주의와 신학교의 전혀 헤아릴 길 없는 신학 교육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 편견이겠으나, 한국 성공회의 실패는 바로 이런 지점의 결핍에 있습니다. 그 와중에 교회는 더욱 피폐해져 갑니다. 더 나빠진 한국 교회로 돌아가는 마음이 참으로 무겁습니다. 어쨌든 신학 교육과 성직 양성 과정에 대한 고민을 계속 고민해 주세요. […] 적어도 저는 여기에서 그 점을 깊이 경험하고 대화한 것을 큰 다행으로 여깁니다.

‘꼰대’ 같은 소리를 지껄여 대서 미안합니다. 신부님께서 깊이 생각해 주시리라 믿기에 드린 말씀일 뿐입니다. […]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적었다고 헤아려 주세요.

평화를 빕니다.

주낙현 신부 합장

성공회 역사와 전통은 왜 교회의 미래에 중요한가?

Monday, April 22nd, 2013

영국에 가 계신 최스테파노 수사님(성공회 프란시스 수도회)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차가 아주 고약해서 줄곧 실패하다가 오늘에야 연락이 닿았다. 어떤 글을 읽자니 지난 몇 해 동안 나와 나눈 대화가 송곳처럼 되살아나더라는 말이었다. 신학교 성직 양성 과정과 성공회 신학과 역사에 관한 교육 문제였다. 내친김에 글을 번역해서 나누자고 했고, 그 초벌 번역을 검토하여 다시 싣기로 했다.

(실은 위 문단 아래에 긴 투정 어린 잡감을 적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다 날아가 버렸다. 그런 허튼 투정은 우리 현실을 비판하고 누구를 탓하는 모양이 돼서, 그들에게도, 내게도 덕이 될 일이 아니니, 염려 많은 블로깅 프로그램이 내 안전을 위해 적당히 알아서 날려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오래도록 나눈 대화와 생각을 지인들을 잘 알 것이다.)

성공회 역사와 전통은 왜 교회의 미래에 중요한가?

배리 오포드 신부 (옥스퍼드 대학교 푸지 하우스 신학교, 문서자료실 사제)

성공회 신학교 과정을 잘 아는 한 친구가 내 길을 가로막고 말했다. “문제는 성공회가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는 이들을 성직 후보자로 양성한다는 거에요.” 요즘 성직후보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성공회 역사와 영성은 물론, 그 역사 안의 중요한 인물들에 관한 이해 수준이 바닥이라는 말이었다.

그 친구 말이 맞는가? 만약 성공회 사제들이 성공회 역사와 영성 전통에 대해 무지하다면 정말로 심각한 문제이다. 1970년대 초반 내가 신학교에서 성직후보자로 훈련을 받을 때를 돌아봐도 우리 성공회 유산에 관한 일관된 교육이 없었다. 그런 상황이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이제 고인이 된 위대한 교회사학자 헨리 채드윅(Henry Chadwick) 신부가 경고한 대로, 성공회는 지금 기억 상실증 환자가 될 위험에 놓여 있다. 그나마 이 말은 그 사람이 적어도 지금은 잃어버린 정보를 한때 가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성직자들이 잃어버릴 지식조차 없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성직후보자들은 어디서 우리의 과거와 토대에 대한 이해를 얻을 것인가? 성직후보자는 신학교에서 관례에 따라 신학 학위 과정을 위해 공부하지만, 그 과정에서 성공회 역사와 영성은 별로 인기가 없는 듯하다.

성공회 신학교는 성직후보자들을 우리 전통 속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소임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학문적인 접근과 더불어 체험적인 접근 방법을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성공회 기도서의 역사에 관한 강의는 성공회의 영성 전통을 만들어낸 형식과 언어, 특히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체험하는 일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

성공회 역사학자였던 존 무어만(John Mooman) 주교는 이렇게 썼다. “성공회는 천주교와 개신교와는 다른 위대한 영성 전통을 지녔다.” 성공회의 영성 전통을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 미래에 성공회 사제가 될 신학생들은 조오지 허버트(George Hebert), 존 던(John Donne), 헨리 본(Henry Vaughan) 정도는 잘 알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성공회의 위대한 신학자와 영성가에 관해서도 잘 아는가?

청교도주의에 맞서 싸우면서 성공회의 본질을 확립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독특한 도덕신학과 수덕신학을 통해서 새로운 “실천 신학”을 마련했던 인물들을 떠올려 보라. 예를 들어, 리차드 후커(Ricard Hooker), 랜슬롯 앤드루스(Lancelot Andrews),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 로버트 샌더슨(Robert Sanderson), 윌리암 비버리지(William Beveridge) 등을 떠올릴 수 있는가?

교회에 남은 골동품 연구를 옹호하는 말이 아니다. 성공회 기도서나 그보다 못한 킹제임스 성경을 숭배하자는 말도 아니다. 17세기 정신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요구와 경험과 이해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신학자들이 말해줄 거리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현재의 성공회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그들의 존재와 가르침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굳건한 반석 위에 서지 못한다.

걱정스럽다. ‘성공회’라는 말을 역사적 정당성이 없는 용어로 내동댕이치는 일을 볼 때도 그렇거니와, 어떤 사람들이 성공회에서 성직후보자가 된 이유가 성공회에 헌신해서가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성공회가 “고기를 잡는데 유리한 고깃배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자니, 걱정스럽다. 우리 역사와 전통에서 배우지 않으면, 우리의 목적도 금세 흐려지고, 물려받은 전통의 가치에 대한 확신도 흔들리게 된다.

미래의 성직자들이 성공회의 유산 위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신학교의 사제 양성 과정을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특별히 성직후보자들에게 필요한 자격 요건이 일반 대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의 요건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분명히 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성공회 역사에 관한 무지가 교회 일치 대화에도 영향을 미치리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올바른 교회 일치 운동은 각 대화 당사자 교회의 전통이 마련한 공헌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전통을 모른다면 다른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줄 것은 없다.

교회사는 신학 공부에서 자주 무시당하거나 관련 없는 일로 취급된다. 성공회 역사는 성직자 양성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래서 성직자는 사회와 교육에서,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무시당하는 그리스도교와 성공회의 유산을 가르쳐야 한다.

성공회 영성신학자 알친(A.M. Allchin)은 이렇게 말했다. “성공회 신자는 지금 깨닫지 못하는 전통의 상속자이다. 정체성을 회복하려면 기억(역사)을 회복해야 한다.” 성공회의 독특한 신학 방법, 그리고 하느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방법을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다.

지난 4세기 동안의 성공회 영성을 아우른 선집이 2001년에 출간되었다.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 등이 편집한 “Love’s Redeeming Work”(OUP)라는 책이다. 과연 성직후보자들 중 몇 명이나 이 책을 사서 읽으며 성공회의 위대한 유산을 익히라고 지도를 받았는지 궁금하다.

성공회 신자들은 우리 성공회의 질과 가치를 하찮게 보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성공회의 위대한 유산 속에 담긴 가치를 깨닫고 받아들여 자신감과 정체성을 회복할 때이다. 제3천년의 시대가 던지는 도전들에 잘 대응하려면 우리 자신이 쇄신된 성공회 신자가 돼야 한다. 이 쇄신은 성공회의 초석을 놓은 신학자들의 생각과 신심을 알 때라야 가능하다. 그들도 급변하는 시대를 살면서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실천에 관한 분명한 가르침을 찾는다. 이들이 우리 성공회에 귀 기울이게 하고 싶다면, 이미 검증된 “성공회 교부들의 신앙”에 뿌리를 두면서 우리 시대에 맞게 다시 빚어진 성공회 방식의 제자도를 당당하게 전해야 한다.

원글: The Rev. Dr. Barry Orford, “Why history is crucial to the Church’s future” in The Church Times, Feb 8, 2013
번역: 최스테파노 수사 / 수정: 주낙현 신부

성소 잡감 2 – 성직자주의의 그늘

Thursday, April 19th, 2012

의도했든 안 했든 교회의 문화가 성직자주의로 미끄러지면, 성소에 대한 이해도 어긋나고 성직자와 평신도의 바른 관계를 세우기도 어렵다. 그 결과 교회는 선교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내부 혼란으로 기력마저 쇠진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왜곡된 이해와 관계를 바로잡기가 쉽지는 않다. 예를 들어 ‘평신도’라는 말은 적어도 어떤 계급적 질서를 염두에 둔 용어이다. 그저 ‘신자’라고 하면 될 일이지만,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미국 성공회 어느 주교님은 굳이 ‘평신도’(lay people)라는 말을 쓰지 않고, 늘 ‘하느님의 백성’(People of God)이라 부르자고 제안하고 그리 쓰기도 한다. 어쨌든 왜곡은 왜곡대로 인정하고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이 잡감에서는 여기저기서 ‘신자’와 ‘평신도’라는 용어를 그대로 쓴다.

성소와 교회의 실제 사목과 관련하여 한국 성공회에는 그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잡감이라 이름 붙였으니 순서나 논리적 연계 없이 떠오르는 일 세 가지를 예로 들어 적어 보려 한다. 첫째는 성직자의 증가에 따른 평신도 사목의 축소 현상이요, 둘째는 ‘자급 사제’로 오해되는 ‘명예 사제’ 서품 관행, 셋째는 성직자와 신자의 힘 겨루기이다.

1. 성직자의 증가에 따른 평신도 사목의 축소 현상

언젠가 시골 교회 사목 경험이 풍부한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특히 신자들의 교회 참여와 전례에 대한 참여에 관련한 이야기였는데, 그분이 들려준 고민이 이채로웠다. 예전에는 성직자가 모자라서 시골의 모든 교회를 돌보는 성직자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동네에 있는 신부님이 주일에만 성찬례 집전을 하러 오후에 오시고, 주중이나 토요일에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저녁기도(만도)를 바쳤다고 한다. 물론 이 예식에서는 평신도가 ‘사식자’이다. 이런 만도, 혹은 매일기도 전통이 적어도 평신도의 지도력으로 시골 교회에는 나름 뿌리를 내렸다는 말이다.

그런데 성직자 수가 늘어서 작은 교회에도 파송되어 오고, 모든 전례를 성직자가 담당하게 되었다. 신자들도 전례와 예절은 모두 성직자의 몫이라 당연시했다. 굳이 성직자가 하지 않아도 되는 매일 기도(성무일도)도 모두 성직자 몫이 되었다. 그런데다 매일 기도 전통도 차츰 사라졌다. 매일 미사를 드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사는 사제 아니면 집전할 수 없다. 자연스레 신자는 매우 수동적인 출석자, 전례와 사목의 방관자가 되었다.

전례와 다른 예배에서 신자들이 전례와 사목을 이끌 자리를 잃은 대신에, 신자들은 그 본연의 일을 할 수 있다고들 기대하기도 했다. 전례는 성직자에게 맡기고 신앙생활과 다른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양상은 현대 사회의 직업주의, 혹은 전문화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신자는 전문가가 아니니, 전문가인 성직자에게 맡기고 자신은 방관자가 되면 된다. 신자가 참여할 수 있는 사목직이 있었으나, 이제 ‘풀타임’ 성직자가 있으니, 그가 모든 것을 맡으면 된다.

이 과정에서 신자는 참여자에서 벗어나 구경꾼이 되기 쉽다. 구경꾼의 특징은 종종 꼬투리를 잡는 것. 자신이 할 때는 안 보이지만 다른 사람이 하면 허점이 보이는 법이다. 이러면서 성직자에 대한 요구 사항과 불만은 늘어간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이는 주인의식의 상실에 대한 보상 심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불만과 요구는 박탈당한 주인의식을 되찾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성직자도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굳이 성직자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모두 나서서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일은 점점 많아지고, 여유로운 기도 생활보다는 탈진 상태가 속출한다. 그리고 이마저도 성직자의 운명이라고 자신을 위로한다. 피로가 쌓인다. 그런데 이 피로 상태로 신자들과 새로운 사목을 여는 일이 쉽지 않다.

2. 성직의 혼란 – 자급 사제, 명예 사제

한국 성공회는 지난 십 여년 동안 세계 성공회 역사에 놀랄 만한 역사적 기록을 남겼다. 다행히 그 기록이 한국 성공회 밖으로 알려지지 않아서 서운할 정도다. 매우 냉소적인 표현인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몇몇 기이한 사건이 성직을 둘러싸고 일어난다는 점에서 염려가 크다. 소위 ‘자급 성직’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나, 실제로는 그 개념이 혼란스러운 성직 서품 관행이다. 서술하는 내용으로 봐서는 ‘명예 성직’이라는 말이 그나마 정확한 표현이겠다. ‘자급 사제’는 말 그대로, 사제이되, 교구나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고 자신이 손수 생활비를 마련해서 생활하는 사제를 말한다. 아내 등을 쳐서 먹고 살면서 교구나 교회에서 전혀 사례비를 받지 않는 내 경우도 ‘자급 사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관행에는 나름 좋은 뜻도 있다. 즉 성직 성소를 식별한 신자 가운데서 그 신앙의 경륜과 지식, 그리고 교회를 향한 헌신을 깊이 인정하고, 한정된 영역에서 전문적 사목을 할 수 있도록 성직을 서품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위한 특별 과정이 있다는 것인데, 일반적인 성직 서품 과정인 성소 식별 과정, 신학 훈련, 사목 실습 및 필요한 기간을 전혀 달리해서, 이 모든 것을 축소한 ‘단기 코스’다. 물론 사목 활동에 대한 제한도 두었다. 그러나 성직(부제, 사제)으로 서품되면 그냥 부제요, 사제이지, 그 앞에 다른 말을 붙일 수 없는 법이다. 성직은 그런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이 일을 천연덕스럽게 계속하고 있다. 교회가 정한 성직 성소 식별 과정에 함부로 예외를 둬서는 안 된다. 교회는 오랜 경험과 공동체의 지혜를 모아서 성직 성소 식별 과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모순되는 사례를 법제화하면, 교회는 그 일관성과 권위를 조금씩 잃는다.

어떤 이들은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사회 선교 단체에서 일하는 신심 깊은 이들을 종신 부제직에 서품하자고도 한다. ‘종신 부제직’은 또 다른 사안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성직이므로 성직 성소 식별 과정이 필수적이다. 게다가 이런 주장에는 성직 성소 식별보다는 그 사회 선교 단체 활동의 편의를 위한 목적이 앞서는 일이 많다. 이는 그저 안타까운 해프닝에 그치지 않는다. 적어도 성직에 대한 신학이 우리 교회에 빈곤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실은 이런 문제 제기를 사석이나, 잠시 마련된 공론의 장에서 여러 차례 던졌지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이런 현상은 역설적이게도, 성직자주의의 뚜렷한 부작용이다. 성직 성소 식별을 위한 일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좀 더 쉽게 성직자가 될 길을 열어 놓는다는 생각에 물어야 할 단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왜 굳이 성직자여야 하는가? 이에 대한 가능한 대답에 문제의 요인도 있고 해결책도 있다. 성직자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다시 말해, 성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고, 신자로서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실제로 성직자가 여러 일을 독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더 나은 해결 방법은 그 사목을 함께 나누는 길이요, 이른바 “세례받은 신자들의 교회” 곧 “하느님 백성”의 교회를 만드는 길이다. 바란다고 더 많은 성직자를 만드는 일로는 교회의 위계화만 심해진다. 또 그에 따른 권위주의가 깊어지는 만큼, 성직자의 실제 권위는 얕아진다. 성직 소명 식별이 분명하다면, 일반적인 과정을 따르면 된다. 성직의 길에 예외를 만들면 중세 교회 꼴이 난다. 그 탓에 현대의 많은 건전한 교단은 이 길에 예외를 거의 두지 않는다.

3. 성직자와 평신도의 힘겨루기

다시 말하거니와, 성직자주의는 성직자가 갖는 권위를 하나의 권력으로 휘두르는 현상을 말한다. 성직자에게는 교회가 부여한 권위와 권한이 있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이 권위가 흔들리면서 이를 지키기 위한 자기 보호 본능이 발동한다. 물론 성직자의 권위가 정당한 근거 없이 도전받는 때도 있다. 그러나 이도 어찌 보면, 오랫동안 교회를 지배하던 성직자주의 문화에 대한 신자들의 무의식적인 반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 반응과 반작용은 어느 쪽에서도 건강한 결과를 내지 못할뿐더러, 머지않아 교회를 깨뜨린다는 점이다. 이때 어느 한 쪽이 눈을 감고 참으면 평화를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상태는 거짓 평화이다. 어느 한 쪽이 떠날 것을 서로 기대하는 불행한 평화이다.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이것이 현재 우리 교회의 실상이요, ‘수준’이다. ‘수준’을 운운하면 ‘욱’ 하고 덤벼들 분들이 우리 교회에 여럿인 것도 잘 안다. 이 문제를 이런 식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게도 심각한 ‘수준’ 문제가 있다. 우리 교회의 현실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교회의 수준에 우리 자신 모두가 못 미친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덮어두고 서로 불평할 일이 아니다. 수준을 높이려면 서로 불평하고 힘 겨루는 일을 그만두고, 그것을 높이는 일에 힘써야 한다.

성직자의 수준에 대한 요구 사항은 사실 성직 서품 예식문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더 보탤 말이 없다. 다만,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계속되는 기도와 공부에 기초한 신학하는 권위, 그리고 교회가 성직자에게 배타적으로 부여한 전례 거행의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적어도 성공회 성직자가 바탕을 둬야 할 두 권위이다. 이 권위가 작동하지 않으면, 신자들은 자신이 따라야 할 권위를 바로 찾을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성직 서품 이후에도 계속되는 성직 성소의 핵심이어야 한다.

신자가 갖는 권위는 우리 교회의 전통과 신학, 그리고 교회가 공적으로 인정한 성직자의 권위를 따르며, 자신의 신앙을 교회의 선교적 가치에 맞추어 실천하는 데 달렸다. 적어도 성공회 신자라면 성공회의 전통과 신학을 존중하며 배우고, 성직자가 교회에서 받은 공적인 권위를 인정할 때, 신자의 영성도 깊어지고 신자의 권위도 선다. 자기 개인의 신앙적 내력과 유산은 교회의 바른 권위와 만나서 대화하고 서로 배울 때 더욱 풍요로워진다. 결국, 신자의 성소 식별은 이런 풍요로움을 위해 자신의 은사와 성소를 알아차리고 그 부분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어떤 신자들은 세속 정치에 대한 성직자들의 발언을 문제 삼아 비판하기도 한다. 소위 ‘정-교 분리’라 부르는 정치와 종교의 불간섭 원칙을 내세운다. 그러나 성직자들이 세속 정치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정교분리는 아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정교분리 원칙은 대단히 미국적인 맥락에서 나온데다, 원래는 종교적인 교리를 세속 사회에 강요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적어도 성공회 안에서는 ‘정교분리’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여 쓰지 않으면 성공회 전통에 대해 무지한 것을 금세 드러내는 일이 되고 만다. 성직자가 성직 성소를 식별하며 교회에서 받은 권위에는 공동체에 대한 사목적인 배려와 더불어, 복음의 가치에 대한 예언자적 선포가 그 권위의 책임으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신자들이 계속해서 성직자와 힘겨루기를 하면, 역설적이게도, 결국 교회가 정치판이 되고 만다. 이런 정치판이 사실 교회를 망친다.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의 염려

서구 그리스도교 역사에서는 이런 말이 흔히 떠돌았다. 4세기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 대주교가 한 말이라 전해진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사제들의 해골이 깔린 포장도로요, 주교들의 해골은 그 이정표라네!”

교부 자신이 이 경구를 발설했을 법하지는 않다. 아마 단테가 지은 <<신곡>>의 영향, 그리고 실제로 존 웨슬리가 크리소스톰 대주교가 한 말이라고 부정확하게 인용한 탓에 퍼진 말일 테다. 실제로 요한 크리소스톰 대주교는 당시 교회 현실을 두고 자주 개탄했다. 콘스탄티노플 주교좌 성당에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설교했다고 한다. “이 수많은 신자, 성직자 가운데 구원받을 이가 얼마나 될까요? 수천 명 가운데 백 명도 안 될 겁니다.” 그 맥락은 당시 만연한 성직매매와 같은 교회 부패, 그리고 신자와 성직자 모두 연루된 교회 내 불화였다.

성직자나 신자가 자신의 성소 식별을 정확히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권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바른 힘의 균형이 깨진다. 이런 참에 더욱 서로 대화하고 서로 배우지 않으면 교회의 선교는 물론이요, 교부 성인이 염려한 대로 구원에서도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