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아름다움 – 카타리나 성인 축일

Tuesday, November 25th, 2014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순교자 (11월 25일)

“그리스도와 결혼한 여인”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성인은 자신이 물려받은 재산과 지위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모두 이 신비한 결혼에 바쳤습니다. 4세기를 살았던 그는 왕비의 지위를 주겠다는 왕의 청혼을 물리쳤습니다. 자신이 깊이 체험한 신비한 결혼으로 이미 그리스도께서 남편이 되었으니, 다른 사람과 혼인할 수 없노라 주장했습니다. 수레바퀴로 만든 형틀에 묶어 살과 뼈를 찢는 고문에도 그는 자신의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능지처참하려는 형틀마저 부서지자, 왕은 카타리나를 참수하여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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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지오,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c.1598)

교회의 전설은 카타리나의 처절한 순교와 신앙을 그의 아름다움과 대비하여 전하곤 했습니다. “그의 미모는 햇살보다 아름답고, 그의 지성은 온 세상을 헤아릴 정도이며, 그의 재산은 넘치도록 많았다.” 그런데도 성인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내밀하게 따르는 일에 바쳤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천사들이 카타리나의 시신을 모세가 하느님을 만났던 시나이 산 중턱에 옮겨 묻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시나이 산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다른 이름은 주의 변모 수도원)이 섰습니다. 이 수도원은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오래되고 잘 보존된 이콘과 교회 기록물로 이름 높아 지금도 시나이 산 순례의 필수 여정이기도 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성인이 역사의 실존 인물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대체로 여러 여성 순교자들과 빼어난 여성 지성인의 이야기들을 한데 얽어 구성한 인물이라는 견해에 동의합니다. 후대 신앙인들은 많은 여성 성인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향한 깊은 사랑, 그리스도와 나누는 지극히 친밀한 관계를 발견하여 카타리나 성인을 그렸습니다. 신앙이란 이 사랑의 내밀한 관계 속에서 격조를 지키며 지성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세기에 이르러 카타리나 성인은 여성 수도자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미혼, 비혼 여성과 여성 지성인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결혼의 삶과 의미를 신앙의 차원에서 더욱 넓게 바라보도록 했습니다. 그의 거룩한 유해에서 여전히 머리카락이 자라나고 치유의 기름이 흘러나왔다는 전설은, 세상에서 결혼하지 않은 한 여성의 삶이 천상의 결혼 속에서 여전히 아름답게 피어올라 세상에 더 깊은 치유의 손길을 펼친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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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성인 생애 이콘, 13세기)

생명을 살리는 칼 – 성 마틴 축일

Tuesday, November 11th, 2014

성 마틴 수사 주교 축일 (11월 11일)

성인(Saint)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성 마틴 수사 주교에 얽힌 이야기는 성인의 기준과 면모를 살피기에 좋습니다. 일찍이 그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 나와서 여러 전설을 담은 것을 보면, 당대와 후대에도 여러모로 존경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4세기 Sulpicius Severus 가 쓴 ‘성 마틴의 생애’)

성 마틴은 4세기에 지금의 헝가리 지역에서 태어나서 일생을 프랑스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는 군인이 되었습니다. 군장차림으로 말을 타고 가던 어느 날, 그는 추운 겨울 길바닥에 벌거벗고 앉아 구걸하는 거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곧장 칼을 빼서 자신이 입은 망토를 잘라서 거지를 입혔습니다. 사람 죽이는 칼을 그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썼습니다. 그날 꿈에 그 거지가 나타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 거지는 예수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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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겪은 탓일까요? 성 마틴은 군인으로 사는 일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 생각했고, 곧장 군복을 벗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평화주의자와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전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교의 평화 신앙을 살고 싶었던 그는 곧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고독하게 숨어서 수행하는 삶을 좋아했습니다.

삶과 영성이 일치했던 성 마틴을 눈여겨 본 사람들을 그를 주교로 삼고 싶었습니다. 주교가 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사람을 피하여 거위 우리에 숨었다가, 우리가 무너지는 바람에 엉망이 된 모습으로 사람 앞에 나와야 했습니다. 억지로 주교가 된 그는 오늘날과 비슷한 교구 체제를 마련했고, 본교회 사목구를 개편하여 지역 사람을 돌보게 했습니다. 자신은 이런 본교회를 걸어서, 혹은 당나귀를 타고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신자와 성직자의 사목을 보살피고 도왔습니다. 오늘날 주교의 지역 교회 순회 전통을 세운 것이지요.

후대 사람들은 성 마틴의 전설을 즐겼습니다. 그가 거지에게 주고 남은 망토(cappa)를 잘 보관하여 이를 지키는 교회를 만들기도 하고, 이 망토와 교회를 지키는 사제(cappellanu)를 두기도 했습니다. 이런 작은 교회를 ‘채플’이라 부르고, 후대에 이런 채플을 지키는 사제 기사단에서 ‘채플린’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성 마틴은 헐벗은 이웃에게서 하느님을 보았고, 자신의 작은 도움뿐만 아니라 일생까지 던지며 살았습니다. 권력과 지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청원을 존중하여 그 지위를 받아들였고, 그 일에 충실하여 책임을 다해 신앙 공동체를 섬겼습니다. 중세 이후 오늘까지 유명한 순례길로 사랑받는 ‘산티아고 데 캄포스텔라’를 향한 길에서, 사람들이 프랑스에 있는 성 마틴 유물 성당에 꼭 들르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만인을 위한 만인의 사제 – 마르틴 루터 축일

Friday, October 31st, 2014

마르틴 루터 축일1

1517년 10월 31일, 모든 성인의 날 전야. 독일 성 어거스틴 수도회 수사 신부이자 신학교수였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95개 조항으로 정리한 교회 개혁의 글을 비텐베르그 교회 정문에 붙였습니다. 종교개혁의 서막이 열린 순간이었습니다. 하나였던 서방 교회가 분열하여 현재의 천주교와 여러 개신교회로 나뉘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루터는 수도자로서 엄격한 규율을 따르며 죄의 용서와 구원의 기쁨을 얻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해 괴로웠습니다. 더 깊은 기도와 공부를 통해서 그는 마침내 용서와 구원이 하느님께서 인간을 향한 사랑과 자비로 값없이 주시는 선물로 온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신앙의 은총이 그 선물입니다. 앞선 여러 학자와 성직자들의 노력과 성과에 기댄 이 깨달음은 중세 교회와 근대 교회 사이를 잇는 다리이자, 교회 안에서 신앙의 본연을 회복한 분기점입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하느님과 관계가 깨졌지만, 하느님은 사랑 때문에 어떤 조건 없이 몸소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죄인을 ‘의인’이라고 인정해 주신 은총을 깊이 성찰하여 사는 일이 신앙입니다. 이 성찰은 한 인간이 절대자이신 하느님 앞에 홀로 서 있다는 현실을 깨달을 때 더욱 깊어집니다. 하느님을 향한 예배와 인간의 선행은 바로 이 은총에 응답하는 감사와 찬양입니다.

이러한 ‘관계의 회복과 은총의 신학’을 바탕으로 루터는 당시 타락하고 엇나간 교회와 신학을 95개 항으로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특히, 별세한 조상의 구원을 미끼로 교회가 팔아먹던 면벌부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행동인지 밝혔습니다. 교회가 바른 신앙과 신학을 잃으면 장사꾼이 되다 못해 사기꾼으로 전락한다는 현실을 고발하고 경고한 일이었습니다.

루터가 가르친 ‘모든 신앙인은 사제’라는 ‘만인 사제직’ 교리는 세월이 흐르면서, 특히 한국 개신교에서 큰 오해를 낳았습니다. 이는 ‘너나 나나 사제, 그러니 특별한 사제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만인을 위한 만인의 사제’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서로 기도를 바치고,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산다는 말입니다. ‘만인을 위한 만인의 사제로서 살아가는 신앙인’이 만인사제직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서로 사제가 되어 함께 모인 교회는 세상에 구원을 펼치는 곳입니다.

서로 갈등하는 시대를 살았고 자신도 병고에 시달린 탓인지, 루터의 논리적이고 분명한 주장은 때로 거칠고 사납기도 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한국 교회는 루터의 깊고 성실한 자기 성찰의 신앙과 신학을 외면하지 않았는지, 오히려 그 사나움과 배타성만 배워서 중세 교회의 타락을 되풀이하여 이제는 자신이 개혁의 대상이 되지 않았는지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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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주보 2014년 10년 26일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