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모의 빛 – 선교를 향한 변화

Sunday, August 6th, 2017

Transfiguration.png

변모의 빛 – 선교를 향한 변화 (루가 9:28-36)

주님의 변모 축일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셔서 영광스러운 빛으로 변모하신 사건을 기억하고 축하합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아픈 이들을 고치시고 배고픈 이들을 먹이시느라 아주 바쁘셨습니다. 그런데도 자주 홀로 떨어져 기도하는 시간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에서 자주 빠져나와야 새로운 신앙의 힘을 충전할 수 있습니다. 잠시 떨어져서 우리 삶을 지긋이 돌아볼 수 있습니다. 안주하던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꿈으로 삶에 변화를 키워낼 수 있습니다. 그 변화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과 교회의 선교가 세상에 펼쳐집니다.

사건은 산에서 일어납니다. 성서에서 산은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땅의 유한한 인생이 하늘의 영원한 차원으로 이어지는 곳입니다. 이 경계 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환하게 우뚝 서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신앙인은 아등바등 살아가는 땅의 생활을 하늘의 가치에 비추고 잇대며 살아갑니다. 자기 삶과 세상이 잘 변하지 않는 까닭은 땅의 염려에만 붙들려 골몰하기 때문입니다. 눈을 들어 고귀한 가치를 바라보며 떠나는 일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산 위에서 모세와 엘리야는 이러한 변화의 역사에 참여하라고 우리에게 손짓합니다. 모세는 판에 박힌 자신의 삶이 문제가 있다고 깊이 느꼈을 때 가녀린 떨기나무에 깃든 하느님의 불을 만났습니다. 말주변이 없어 주눅 들었던 그가 노예의 대탈출을 이끌었습니다. 예언자 엘리야는 하늘의 뜻을 기준으로 삼아 세상 권력을 비판하다가 모진 고생을 했지만, 하느님은 그를 하늘의 자리에 올려주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누리는 자리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구원 활동에 참여하며 예수님과 만납니다. 이때 비로소 교회와 사회도 빛을 얻기 시작합니다.

변화를 향한 새로운 참여는 관습과 통념에서 탈출하는 모험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과 함께 ‘죽음과 떠남’에 관해 논의합니다(31절). 이때 ‘죽음’에 해당하는 희랍어는 ‘엑소더스’(해방의 탈출)입니다. 교회와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기득권의 관행을 그쳐야만 구원이 일어납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오히려 겉에 드러난 영광만을 좇아 초막을 지어 머물려고 합니다. 안주하고 머물려고 온갖 변명과 뒷이야기마저 만듭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명령입니다. 자신의 기득권과 명예 주장을 그치고 하느님의 일에 귀 기울여 참여하라는 일갈입니다.

신앙인의 목표는 높은 산에서 땅과 하늘을 이으시며 빛으로 변화하신 예수님입니다. 신앙인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억압하는 어두운 땅의 관습에서 떠나는 사람입니다. 모진 수고의 땀을 흘려 자유롭고 시원한 산의 높이에 올라서 하느님의 가치로 세상을 조망하는 사람입니다. 그 가치를 훈련하고 그 뜻을 품어 하산하여 교회와 세상을 바꾸는 노력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이 이 땅에서 빛나는 존재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교회가 세상의 변화를 향한 선교의 제자로 우뚝 서는 일입니다. 이때 주님의 비밀과 빛이 세상에 널리 드러나 펼쳐집니다.

[전례력 연재] 눈물의 신앙 – 성 막달라 마리아 축일

Saturday, July 22nd, 2017

Tear_Mary_M.jpg

눈물의 신앙 – 성 막달라 마리아 축일 (7월 22일)1

주낙현 요셉 신부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막달라 마리아는 성서 인물 가운데 가장 야릇한 시선을 받는 성인일 테다. 예수와 특별한 인연 때문에 역사는 다양하고 극적으로 성인의 삶과 운명을 상상했다. 예수의 연인으로 착색하여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다. 최근에 발견된 고대 파피루스 조각에서는 ‘예수의 아내’라는 표현이 나와 떠들썩했다. 거기에 나온 ‘아내’를 막달라 마리아로 섣불리 단정한 사람들도 있었다. 몇 년 후 그 파피루스는 가짜로 판명 났다. 소설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등은 이런 상상력으로 세간의 이목을 받았다. 그렇다면 복음서와 교회는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까?

막달라 마리아는 네 복음서에 모두 등장한다. 그는 예수와 함께 여행하던 여인들 가운데 한 명이었고, 자기 돈을 들여 예수의 선교를 돕던 사람이었다. ‘일곱 마귀’로 고생하던 그를 예수께서 구해주신 뒤에 그리했던 것 같다. 이 ‘일곱 마귀’의 정체는 알 수 없다. 학자들은 정신이나 육체에 깃든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만성 질환이었으리라고 짐작할 뿐이다.

서방 교회는 복음서 이야기를 엮어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었다. 몸을 파는 여인으로 돌에 맞아 죽을 뻔했다가 예수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인물로 보았다. 이 사건이 벌어진 한참 뒤에 이 여인이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를 풀어 닦아드린 아름다운 이야기가 복음서에 나온다. 참회와 헌신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중세교회는 이 여인에게서 신앙인의 모본을 찾고는, 그를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인물이라고 멋대로 결론 내렸다. 12세기 때부터다. 그러나 동방 교회는 이런 상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묻힌 현장에 있었다. 그는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는 빈 무덤의 첫 증인이었다. 모든 복음서의 한결같은 기록이다. 그의 삶이 어떠했든 그토록 따랐고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기에 예수님의 시신을 두고라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는 향유를 들고 무덤을 찾았다. 그런데 시신이 없어져 그 기회마저도 사라졌다. 마리아는 상실과 절망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 속에서 예수를 다시 만났다. 그 눈물이 그의 귀를 적셨을 때, 그는 예수의 음성을 알아들었고, 그 눈물이 그의 눈을 씻어내렸을 때,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다.

다른 열두 남성 사도들을 다 제쳐놓고,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다. 이 여성이 다른 열두 남성 사도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했다. 이 때문에 동방 교회는 막달라 마리아를 ‘사도들 가운데 사도’로 여기며 존경했다. 서방 교회도 나중에는 그를 ‘사도들을 향한 사도’라고 불렀다. 서방 교회는 최근에야 동방 교회를 따라 축일을 7월 22일로 정했다.

막달라 마리아는 복음서와 그리스도교 초기 역사에서 성모 마리아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한 분은 ‘하느님을 품은 사람’(테오토코스)로, 다른 한 분은 ‘사도들 가운데 사도’로 불렸다. 예수를 신실하게 따랐던 두 마리아는 우리 신앙인이 걸어야 할 길이다. 신앙인은 예수를 마음과 가슴에 품은 사람이다. 신앙인은 예수를 애틋한 그리움을 담아 연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신앙인은 삶의 고통과 슬픔, 기쁨과 즐거움 전체를 대면하면서 그 안에 깃든 눈물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1. [성공회 신문 2017년 7월 22일 치 7면 []

[전례력 연재] 시간 순종 참여 – 성 베네딕트 축일

Saturday, July 8th, 2017

st_benedict_rule.png

시간, 순종, 참여 – 성 베네딕트 축일 (7월 11일)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성 베네딕트(480-540년)는 서방 교회 수도회의 아버지라 불린다. 당시 수도회 전통과 규칙을 집대성하여 6세기에 베네딕트 규칙서와 수도회를 만들었고, 이후 많은 수도회의 모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축일은 별세한 날로 알려진 3월 21일이었으나, 사순절기에 겹쳐서 중요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우려 때문에, 1969년 이후부터 7월 11일로 옮겼다. 8세기 말 어느 전례력에서도 그의 생일과 별세일을 같이 기념하여 7월 11일을 축일로 지킨 적이 있다는 증거와 판단이었다.

‘복되다’는 이름 뜻을 지닌 베네딕트 성인은 로마 귀족 출신이었고 좋은 교육을 받았으나, 상류 계층이 주도하던 사회와 문화에 큰 의문을 품고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성인의 신앙과 신학은 ‘베네딕트 규칙서’에 가장 잘 드러난다. 후대 사람들은 이 규칙서와 수도회가 서구 유럽의 문화와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한다. 영국 교회 초기 역사를 쓴 성 베다(762-735년)의 기록과 이후 역사를 보면 성공회의 영성과 신학에 끼친 영향이 역력하다.

“베네딕트는 공동 생활의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었다. 욕심 없이 살며, 다른 사람이 거저주는 것에 만족하며, 기도로 일치하여 사는 삶이다. 주교직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교회의 삶이다”(성 베다). 그런 탓일까? 영국의 대다수 주교좌성당들은 베네딕트 수도회로 운영됐다. 공동체의 삶이 교구 조직의 중심이며, 그 핵심 생활은 성무일도와 성찬례라는 확신이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신학자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2012년 은퇴)는 베네딕트 영성 전통을 ‘시간의 균형, 순종, 참여’의 측면에서 요약한다.

첫째, 삶의 시간은 노동과 공부와 기도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현대인의 시간은 무엇을 성취하는 데 대부분 사용되고, 그 피로를 풀려고 지나치게 노는 일로 채워지기 일쑤이다. 열심히 살기는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잊고 사는 시간이 되고 만다. 그러니 잠시 멈추어 “기억을 되살리고 지성을 깊이 하고, 사랑이 성장하도록 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공부와 기도로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밖에 있는 남을 발견하고, 하느님을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순종은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고집과 생각을 포기하는 훈련이다. 순종은 굴종이 다르다. 경청하는 일이다. 지위고하, 나이, 신분을 넘어서 서로 경청하는 행동이 진정한 권위의 시작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경쟁적인 싸움을 거절하면서도, 자신의 삶과 조직에 균형과 억제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받아들여야 권위가 생긴다. 서로 피어나도록 돕고, 거룩함을 위해 서로 격려할 때 참 공동체가 마련된다.

셋째, 참여는 사회와 조직의 삶에서 소임을 찾아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자신의 소임을 누구에게 맡겨놓고 방관해서는 권위가 나오지 않는다. 이러면 계속 수동적인 삶을 강요받게 되고, 그 영혼은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 난 영혼에서 난폭한 분노와 테러리즘이 나온다. 중앙집권적인 문화는 참여가 없는 문화이다. 관료정치는 비인간적인 정치이다. 이에 맞서는 힘과 내용을 갖추고 활발히 연구하고 논쟁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요 참여이다.

윌리엄스 대주교는 베네딕트 영성 안에서 성서의 인간학을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 인간은 서로 섬기고, 모든 이를 위해 각 사람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을 존중하고 격려하며, 이로써 관상적인 기쁨을 누리도록 창조되었다.”

  1. [성공회 신문] 2017년 7월 8일 치 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