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역사' Category

잘린 머리를 들고서 – 성 데니스 축일

Thursday, October 9th,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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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데니스 축일 (10월 9일)

성 데니스(St. Denis)는 3세기 중엽 프랑스 파리의 주교로 활동하다 순교한 성인입니다. 로마 제국 발레리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일어난 그의 순교에는 기괴한 전설이 따라 붙었습니다.

파리 시내의 한 언덕에서 동료 성직자들과 참수를 당한 데니스 주교는 잘린 자신의 머리를 들고 파리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를 걸어가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강론을 펼쳤다고 전설은 전합니다. 그가 처형된 곳이 파리의 몽마르트르(Montmartre: 순교자의 산)이며, 자신의 머리를 내려놓고서야 죽음을 받아들여 안장된 곳이 생-드니(Saint-Denis) 현(睍)입니다. 6세기에 이르러 그의 무덤 위에 성당이 서기 시작하여 지금의 생 드니 바실리카 성당이 자리 잡았습니다. 성 데니스는 프랑스의 수호성인입니다.

이 기괴한 전설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주교는 교회를 위해 동료 성직자와 더불어 순교하는 직분이고, 그 순교의 행동을 통해서라야 사람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며 선교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순교와 선교의 증언은 어원이 같은 말입니다(마티리아). 교회는 순교의 터 위에 섭니다.

순교는 신앙인의 죽음과 삶과 부활을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깊은 신앙인은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이며, 교회는 역사 속에서 그를 잊지 않고 하느님을 깊이 품은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이 기억이 영원한 생명의 올바른 뜻입니다. 순교한 언덕의 이름이 지금도 남아 그를 기억하고, 그가 걸음을 멈춘 도시에 그의 이름이 영원히 새겨졌습니다.

“주 하느님, 성 데니스와 그의 동료들을 보내시어 주님의 영광을 세상에 선포하게 하시고, 고난 속에서도 선교의 사명을 다하게 하셨으니, 우리에게도 성인을 따라 세상의 기준과 판단을 부질없는 것으로 여기며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향해 걷게 하소서.”

역사와 신학 사이 – 성 십자가 축일

Sunday, September 14th, 2014

역사와 신학 사이 – 성 십자가 축일 (9월 14일)1

십자가는 그리스도교 신앙 가장 중심에 우뚝 선 역사의 현실과 신학이며, 오늘 우리 삶의 이정표입니다. 십자가 축일은 예수님께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사건을 십자가를 통해 기억하는 날입니다. 십자가라는 죽임의 도구가 어떻게 용서와 화해를 마련하는 구원의 도구로 변했는지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십자가의 역사와 신학을 잊을 때 그리스도교 신앙도 변질한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날입니다.

로마 제국의 십자가는 강대한 권력을 상징합니다. 그 권력은 자국민이 아닌 식민지의 ‘타인’을 압제하고 처형하는 힘입니다. 로마는 자국민에게는 고통이 덜한 참수형을 적용하고, 식민지 지역 사람들에게는 훨씬 고통스러운 십자가 처형을 적용했습니다. 로마 권력이 예수님께 들씌운 죄목은 십자가 위에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I.N.R.I.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 예수님의 언행이 어떤 권력에는 불온하고 위험한 정치적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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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는 폭력과 죽임의 상징을 용서와 화해, 생명의 상징으로 바꿉니다. 역사의 현실에서 거듭되던 폭력과 죽임의 악순환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멈춥니다. 이 지점에서 죽은 십자나무가 생명을 품은 십자나무가 되어서 세상의 생명을 위한 열매를 맺습니다. “보라, 십자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걸려 있네.” 여기서 새로운 삶의 길을 발견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 생명 행렬에 참여하여 기꺼이 세상의 질서에 거슬러 삽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는 말의 참뜻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신앙입니다.

역사는 역설의 반복입니다. 십자가 축일도 이 역설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4세기에 이르러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황제 플라비우스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는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한 십자가를 찾아 나섭니다. 콘스탄티누스와 헬레나는 예루살렘에서 ‘진짜 십자가’를 발굴했다는 소식을 듣고 십자가가 섰던 자리와 예수님께서 묻히셨던 자리에 ‘예수의 거룩한 무덤 성당’을 지어 봉헌합니다. 326년 9월 14일의 일입니다. 이후에 십자가 경배를 성 금요일에 거행하는 관습도 생겨났습니다.

제국의 국교가 된 그리스도교에서 십자가는 그 참혹한 역사를 잊고, 종교적 의미만 남긴 십자가 신학으로 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육신하여 역사를 사셨던 예수님을 잊거나 그분의 고통과 죽음이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고서는 신앙과 신학은 제대로 서지 않습니다. 십자가가 한 개인의 내면적 종교심과 신심을 위한 방편으로 전락하면 중세 교회의 폐해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성당과 예배당 안팎, 장신구나 기도 묵주의 십자가에서 여전히 ‘타인’의 아픔과 눈물과 피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멈춥니다. 그러니 십자가 축일에 우리는 다시 사도 바울로 성인의 고백을 되뇌며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갈라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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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낙현 신부, 서울 주교좌 성당 주보 9월 14일 치 []

폭력의 고발 – 세례자 성 요한 참수 축일

Tuesday, August 26th, 2014

세례자 성 요한의 참수 (8월 29일)1

목을 잘라서 사람을 죽이는 참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처형 방법입니다.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지만, 보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주고, 당하는 사람을 지독히 경멸하는 방법입니다. 20세기 초에야 거의 없어진 이 흉악한 일이 지금도 극단적인 이슬람 국가 몇 나라에 남아 있습니다.

참수는 우리 역사 안에 크고 깊이 새겨진 상처와 아픔을 되새기게 합니다. 조선 말기의 폭정과 수탈에 시달리다 못해 일어섰던 동학농민전쟁의 전봉준 장군과 지도자들이 참수를 당했습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는 한국 독립군들의 목이 일본 군인의 무자비한 칼부림과 작두질로 땅에 뒹굴어야 했습니다. 권력자에게는 처형이지만, 힘없는 이가 보기에는 살인입니다. 이 몸서리쳐지는 살인이 세례자 요한에게 일어났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뱃속 시절부터 예수님의 친구였고, 커서도 깊은 우정으로 하느님 나라를 향한 꿈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꿈은 다양한 권력으로 사람을 억압하며 짐짓 거룩한 체하는 사람들이 회개하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위선과 악행을 회개하며 물 속에 들어가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이 세례 사건으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활동이 더욱 깊이 연결됩니다. 우리 신앙인은 세상에서 계속되는 억압과 불의와 위선을 비판하고 저항하라는 사명을 받고 기름 부음(크리스토스)을 받은 새사람, 작은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작은 그리스도가 되는 사건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나라 사건의 전면에 섰습니다. 불의하고 부도덕한 왕에 맞섰습니다. 그 결과, 그는 참혹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헤로데 왕은 먹고 놀며 춤추는 연회장에서 내기의 노리갯감으로 세례자 요한의 생명을 앗았습니다. 낙타 털옷과 들꿀로 살던 세례자 요한과 헤로데의 화려한 옷과 기름진 잔칫상이 큰 대조를 이룹니다. 쟁반에 올려진 세례자 요한의 마르고 차가운 얼굴과 낄낄거리며 만족하는 왕의 반지르한 얼굴 차이가 선연합니다.

오늘 우리 세계에도 세례자 요한의 운명을 나누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직도 근본주의 종교 집단은 선량한 사람을 붙잡아다 참수하는 잔혹한 일을 벌입니다. 참수는 아니더라도, 더 교묘한 방식으로 생살(生殺)여탈(與奪)권을 쥐고 흔드는 다양한 권력자들이 우리 일상에 숱합니다. 이들은 가진 지위와 힘으로 약한 사람을 겁주고 경멸하고 모욕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일이 여전하다면, 우리는 무례하고 악독한 헤로데 시대를 사는 셈입니다.

이콘이 비추는 대로,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우뚝 선 세례자 요한은 우리에게 못된 권력과 힘부림에 맞서라고 촉구합니다. 교회 전통에서는 세례자 요한 참수 축일에 단식하며 그의 죽음을 기리거나, 음식을 먹더라도 칼을 쓰지 않고 둥근 쟁반을 쓰지 않았습니다. 일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세상의 억압과 폭력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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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낙현 신부, 서울 주교좌 성당 주보 8월 24일 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