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 성 프란시스 호칭 기도

February 8th, 2011

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병고와 굶주림에 고통받다가 안타깝게 숨을 거두었다. 슬픔과 안타까움에, 그리고 연원을 헤아릴 수 없이 끓어오르는 분노에 말을 잃는다. 가난과 외로움이 겹쳐 싹튼 죽음이었다. cf. 어느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민노씨)

“복되어라, 가난한 사람들아,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복되어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아,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복되어라, 지금 슬피 우는 사람들아,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루가 6:20-26, cf. 마태 5:3-12)

이 참된 복락의 선언이 어제오늘은 슬프기만 하다. 진중하며 힘 있는 희망의 기쁨이 될 노래(아래)가 더욱 슬프게 들린다. “내가 함께 있겠다”는 말씀은 헛된 약속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작은 그리스도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이웃들 안에 작은 그리스도로 함께 있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자신의 수도 성소를 식별하는 과정에서 프란시스 성인의 삶과 영성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일찍이 그가 적은 프란시스 성인을 향한 호칭 기도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진복 선언을 위한 그리스도의 투신과 실천이 무엇인지를 되새겨준다. 그것은 신앙이 요구하는 역설이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실천은 그 역설에서 권위를 얻지 않는가? 프란시스 성인은 그 역설을 살지 않으셨던가? 그 역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첫출발이 아니겠는가?

쓸쓸히 세상에 작별을 고한 최고은 작가와 세상의 모든 병들고 배고픈 이들을 위한 위탁 기도로, 이 주간 내내 드려야겠다. 독자들도 참여해 주시라.

“성 프란시스, 거룩한 사부여, 저를 위해 빌으소서.
성인께서는 주님께 다다르려 드리는 제 기도를 언제나 들어주시니,
제가 가난한 이들과 최대한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해 주소서.
그리하여 제가 굶는 만큼 다른 이들이 먹게 하시고,
그리하여 제가 고통당하는 만큼 다른 이들이 고통당하지 않게 하소서.
제가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조롱을 당할 때라도
웃고 노래하게 하시며,
제가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미친놈, 바보, 재수 없는 놈이라 욕을 먹을 때라도
춤추며 즐기게 하소서.
아멘.”

* 진복선언 – 러시아 정교회 챈트, 성공회 성가 556장

번역 후 잡감 – 신학, 식민지성, & 역사의 맥락

January 29th, 2011

1. 세계 성공회 관구장 회의가 열리고 있다. 우간다 성공회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여러 성공회 관구장들은 이 관구장 회의를 반대하며 참석하지 않았다. 미국 성공회 의장 주교가 여전히 제재 없이 참석한다는 이유였다. 함께 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들 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브라질 관구장 마우리치오 주교는 “에큐메니칼 대화도, 다종교간 대화도 가능하다면서, 왜 성공회 주교끼리는 대화할 수 없단 말인가?” 되물으며 그 보수적인 관구장 주교를 비판한 바 있다. (기사 연결)

2. 한편, 우간다 성공회는 우간다 정부가 추진 중인 동성애자 처벌법을 지원하고 있다. 이 법은 동성애자를 사형에까지 처할 수 있다. 국제적인 비판이 지속되지만 안하무인이다. 그러던 중에, 우간다 동성애자 인권운동가 한 사람이 혐오 범죄 행위의 대상이 되어 목숨을 잃었다. 관구장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암스 박사는 곧장 동성애 혐오 범죄 행위를 규탄하며, 영국 정부에 우간다 동성애자들의 망명을 허용하는 조치를 촉구했다. (기사 연결) 그러나 알만한 이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늘 한발 늦으신 것 같다. (cf. 배신, 식민주의, 그리고 캔터베리 대주교)

3.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의 신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 저작을 내기도 해 살핀 바 있는, 젊은 신학자 테오 홉슨(Theo Hobson)의 영 가디언 지 칼럼을 하나 읽는다. 그는 오랫동안 아나키적 교회 문화를 꿈꾸며 거리 예배 등 매우 파격적인 교회 실험을 해 오던 실천적인 신학자이다. 칼럼을 보니 그가 아예 미국으로 이주했나 보다. 그가 추구하는 교회의 실험을 확장하기 위한 것일게다. (어떤 이의 ‘귀여운’ 부탁도 있고, 읽으며 마음먹은 바 있어서 전문을 번역해서 따로 올렸다.)

4. 복잡한 이유로 미국 유학행을 결심했을 때, 많은 이들은 ‘성공회라면 당연히 영국에 가서 공부해야지’하며 걱정 반 빈정거림 반으로 묻곤 했다. 물론 내 이유와 결심은 상당히 확고한 것이었지만, 그리 자주 설명한 기회가 없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성공회=영국 성공회=국교”라는 잘못된 등식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은 아예 귀를 열지 않았던 탓이다. 여기서 미국 신학생들에게 “성공회 신앙 전통과 삶”을 교수 신부님과 함께 가르치는 마당이지만, 한국에서는 내 ‘미국 성공회’ 경험은 ‘모(母) 교회 영국’이 아닌 변방의 목소리라고 치부되곤 한다. 혹은 미국물 먹어서 이상한 목소리를 들고 사람을 선동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애처로운 일이다. 우리 교회에, 그리고 나 자신에게.

5. 여러 이유에서 한국에 있을 때부터 세계 성공회 소식을 신자들과 나누려고 애썼고, 이곳에 와서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요즘은 시들해졌다. 편견에 싸우는 일에 지친 탓도 있다. 미국 성공회, 아니 세계 성공회에 대해서, 그보다는 좀 더 근본적으로 성공회 신앙의 전통에 대해서 어떻게 말해야 할까? ‘모 교회’를 숭상하든 어떻든, 신앙은 특정한 시공간의 맥락에서 일어나는 하느님 경험에서 비롯한다. 그 신앙의 다양한 경험을 보편적 언어와 논리로 풀어서 소통해보려는 노력이 신학이다. 이 점에서 신앙과 신학은 모두 역사적 맥락 안에서만 이해 가능하다.

6. 성공회 신학자들의 신학과 성공회 전통의 신학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손꼽히는 성공회 전통의 신학적 대가들과 그들의 신앙과 신학을 이야기하는 일은 좀 더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성공회의 경험이 없이는 성공회 전통의 신학을 다루기도 말하기도 어렵다. 그 경험 중에서 스코틀랜드 성공회와 미국 성공회의 경험이 가장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스코틀랜드 성공회는 국교의 위치를 점한 적이 없었고, 늘 소수자로 존재했다. 또 미국 성공회는 소위 신대륙 식민지에 이식된 영국 교회에서 최초로 독립한 성공회다. 이 독립된 성공회를 기초로 세계 성공회(Anglican Communion)라는 새로운 발전이 있었다. 그 식민지 경험와 독립, 그리고 그 와중에서 마련된 자기 정체성 찾기가 독특한 성공회의 기풍을 만들었다. 이 경험에서 배우지 않으면 우리 역시 식민지 교회를 벗어나기 어렵다.

7. 앞에 올려놓은 테오 홉슨의 칼럼(우리말 번역)은, 영국 성공회 안에서 자라나, 그 도저한 문제들에 환멸을 느끼고 실험적 교회 운동을 벌이다, 미국 성공회까지 경험을 확장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고민이다. 그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야 비로소, 식민지 경험에서 독립하여 그 경험과 전통의 대화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구축하려 노력했던 미국 성공회의 역사 한 가닥을 겨우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은 단정하기 어렵다. 미국 성공회는 홉슨이 추구하는 ‘자유주의’의 다른 어둔 면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니까. 이 어둔 면을 발견하여 그의 비판과 실험을 밀고 나갈 수 있을 때라야, 그는 정말 그의 모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모델은 만들어 나갈 것이지, 발견할 대상이 아니다. 그가 그 모델을 만들어가길 빈다. 나 역시 우리 맥락에서 어느 모델을 만들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실험해야 한다.

“미국 성공회는 교회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놨다.”

January 29th, 2011

번역자의 발뺌

영 가디언 지에 난 테오 홉슨(Theo Hobson)이라는 젊은 신학자의 글을 올린다. 그의 경력에서 보이듯, 조직신학 분야에서 학위를 하고(교회의 권위 문제),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신학, 특히 그의 성사적 교회론에 대한 비판적 저작을 펴낸 바 있다. 제도적 교회의 문제, 특히 영국 성공회의 국교회 지위를 비판하면서, 스스로 제도 교회를 나와 가족과 함께 거리에서, 혹은 어느 곳에서 새로운 교회 운동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그의 짧은 글 하나는 우리 말로도 소개된 적이 있다. 테리 이글턴의 <이성, 신앙, 그리고 혁명>(우리말 번역본 제목은 기괴하게도 <신을 옹호하다>) 서평.

그의 칼럼을 내 식대로 읽는다면, 그의 중요한 지적 하나는 교회 전통 안에서 발전된 제도적 교회의 어둠 뒤로 새롭게 발견하는 제도적 교회의 경험과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의례'(ritual)의 전통에 대한 재발견과 연결된다. 이는 내가 언젠가 말한 바 있는 문제의식과 닿아 있다. 예를 들어, 위계(hierarchy)는 늘 오용 자체, 혹은 오용의 근원인가? 권력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며, 저항의 대상만 되는가? 이 의문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위계와 어떤 권력과 맞서고 있으며, 어떤 위계/질서와 어떤 권력/힘을 만들어 내려 하는가로 고민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지배하는 권력(power-over)이 아닌, 보호하며 섬기는 권력(power-within)으로 위계와 권력을 재규정할 때라야, 정치 혹은 권력에 대한 만연한 혐오주의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와중에 ‘의례’는 이러한 새로운 위계와 권력의 삶을 실험하고 훈련하는 새로운 시공간이다. 이는 전례(liturgy)의 목적이기도 하다.

번역은 맥락과 맥락을 연결한다. 번역어는 그 사이에서 불안하게 휘청거린다. 아랫글에서 가장 휘청거리는 번역어는 ‘리버럴'(liberal)과 ‘자유주의'(liberalism)이다. ‘리버럴’과 ‘자유주의’는 그 번역어 이전과 이후에도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좁은 이해로 공격받아 고생해 온 서러운 개념이다. 그 서러움을 여기서 다 풀 수는 없겠고, 번역자의 발뺌을 일러두기로 삼는다.

원문의 “liberal”은 대체로 ‘리버럴’ 혹은 ‘자유로운’으로 번역했다. (즐겨찾는 맞춤법 검사 사이트는 이를 ‘혁신적’ 혹은 ‘진보적’으로 고치라고 조언하지만, 무시했다.) ‘자유주의자’ 혹은 ‘자유주의적’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냄새가 나는 표현으로 제한하기에는 그 경계가 넓고 모호하다. 그러나 이 문제의식에 일관되지 않게 “liberalism”을 통상 번역하는 대로, “자유주의”라고 했다. 이 비일관성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자유주의’ 개념을 인식하는 우리 안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원래 글에서 말하는 ‘리버럴’과 ‘자유주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용례는 고종석에게서 본다, 고만 적는다. ‘Post’는 ‘이후’ 또는 ‘탈'(脫)로 번역할 수 있겠으나, 그 의미의 이중성때문에 ‘포스트’로 남겨 두었다.

“미국 성공회는 교회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놨다.”

테오 홉슨

단골 독자라면 알겠지만, 그동안 나는 이 난(가디언지 Comment is Free: 역자 주)을 비롯하여 이곳저곳에서 좀 더 급진적으로 리버럴한 그리스도교를 논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썼다.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의 국교 유지를 맹렬히 비난한 것으로 시작하여, 교회 모든 주요 형식들이 자유와 동떨어진 사고방식들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했다. 정말로 리버럴한 그리스도인들은 새롭고, 아나키적이며, 포스트-교회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중요한 지점에서 내 마음을 바꿔 먹었다. 조직을 갖춘 종교가 그렇게 나쁜 방식은 아니겠다고 이제는 생각하게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권위주의적 형식들은 피할 수도 있거니와, 구원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생각을 고쳐 먹은 데는 두 가지 일이 있었다. 첫째, 몇 년 동안 살핀 끝에, 새로우면서도 포스트-제도 교회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아주 잘 드러내고 있는 실체를 찾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둘째, 내 생각에 반대되지 않는 교회의 한 형식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약 10년 전, 9.11 사태 직후에 일어난 논쟁을 통해서 나는 영국 성공회에 대한 내 헌신을 재고하게 되었다. 나는 영국 성공회가 그 국교회의 위치를 박차고 나오면서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고 믿었다. 개혁이 있었나? 전혀 아니었다. 영국 성공회 내부에는 그러한 개혁에 대한 의지가 거의 없음을 발견했다. 오히려, 보수적인 목소리들이 점차 지배하게 되었다. 이들 보수적 주교들과 신학자들은 세속의 자유주의가 암울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들 떠들었다. 나의 환멸은 교육 분야에서 영국 성공회가 하는 역할을 보면서 끝을 봤다. 영국 성공회는 이류 학교 운영에 점차 관여하면서, 실속 없는 교회 참석률 올리기에 급급했다.

다른 교회들도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모든 제도 종교들은 구제 불능의 꼴통들 같았다. 비국교 교회들도 오야붕스런 교리주의로 끌려가는 것 같이 보였고, 그리스도교와 자유주의 사이의 친화성을 선포하는 데 실패했다. 그 때문에 나는 새롭고, 좀 더 급진적이며, 리버럴한 그리스도교를 주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교는 세속의 진보적 생각을 인정하면서, 제도적인 정통주의를 경계한다. 전통적인 교회 대신에, 나는 자유로운 형식과 축제적이며 예술적으로 신앙을 표현하는 어떤 느슨한 문화를 제안했다. 새롭고 자유로운 종교 문화 말이다.

그러나 참여할 만한 이런 문화를 찾지 못했다. 나도 경험해 본 대안 예배 운동(alternative worship)의 몇몇 시도들은 영국 성공회가 소심하게 진행하는 것들이었다. 교회를 멀리하는 몇몇 그리스도인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어떤 일을 하는 데는 너무 냉담했다. 정말 인정하기 싫었던 사실은, 제도에 기초한 그리스도인들만이 의례의 중요성을 이해했다는 점이다. 이들만이 고대의 어느 팔레스틴 사나이에 대한 예배의 의례에 깊이 참여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참여 없이는 그 무엇도 그리스도교라 부를 수 없다.

조직된 종교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조직된 종교만이 그리스도교 의례를 조직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이 의례가 없다면 그리스도교는 그저 모호한 관념의 집합에 불과하다. 나는 의례(ritual)가 그 제도들로부터 해방되었으면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가능한지 알지 못했다. 이 질문을 몇 년 동안 살폈지만, 그 어떤 대답도 얻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에 나는 미국 뉴욕으로 옮겨 갔다. 그곳에 좀 더 강력한 포스트-제도적 그리스도교 문화가 있는지 보고 싶었다. 좀 더 구체적인 “이머징 처치” 운동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발견했는지는 모르겠다. 미국 성공회(The Episcopal Church)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궁금했다. 미국 성공회는 국교회가 아닌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세계 성공회 여러 교회와는 달리 동성애 혐오의 원리주의와도 단절했다. 그러면 여기서 자유주의의 어떤 모델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제도 종교의 다양한 병증에 시달리고 있는가? 아마도 후자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국 성공회 예배의 맛은 내게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거 아냐?”

세계 성공회의 위기를 뒤돌아 보면서, 미국 성공회의 담대함에 깊은 인상을 받은 나 자신을 발견한다. 진 로빈슨 주교의 성품을 유보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기본 원칙 하나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도덕적 원리주의에 반대할 필요가 있으며,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로의 프로젝트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울로는 보수적인 인사들에게도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 위기는 바울로의 마음 내부에서 일어나는 논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리버럴한 성공회 신앙을 (모호하게) 믿으며 자랐다. 그리고 그것이 대부분 신화였다는 것을 점차 알게됐다. 영국 성공회는 항상 자유주의에 양가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문제에 과감하게 직면하기보다는 점잔빼며 무시했다. 정말 영국 성공회에도 지적이며 리버럴한 목소리가 있지 않나? 그렇다. 그러나 그들의 범위는 제한적이다. 그들은 방 안에 있는 코끼리를 무시하는 실용적 방법을 택했다. 교회를 어슬렁거리는 그 늙은 반(反)리버럴의 저주를 말이다.

이곳의 공기는 더 상쾌하다. 미국 성공회는 지난 십여 년 동안 리버럴한 그리스도교의 전 지구적 선구자로 등장했다. 이 점이 내가 아직 교회를 포기하지 않도록 나를 설득하고 있다.

번역: 주낙현 신부
원문: 英 가디언 誌 2011년 1월 28일 치 http://goo.gl/Pgn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