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 연재] 예복 유감 – 개성과 일치 사이에서

Saturday, April 28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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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복 유감 – 개성과 일치 사이에서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19세기 작가 스탕달의 <적과 흑>은 격변하던 사회의 권력 대결, 신분 상승의 욕망과 좌절을 그린다. 책 제목은 당시 사회 지배 세력의 복장 색깔이다. 적색은 귀족과 군인, 새로운 욕망과 열정의 상징이다. 흑색은 성직자, 오래된 절제와 지성의 상징이다. 이밖에도 더 많은 뜻이 숨어 있지만, 복장 색깔은 집단의 특성과 통일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교회는 좋지 못했던 시대를 걷어내고, 원래 좋은 뜻을 되살리는 일도 해야 한다. 전례 예복도 마찬가지다.

교회 전통은 색깔에 신앙의 의미를 담았다(본지 지난 호 ‘전례 색깔’ 글). 13세기에는 성직자의 평상복을 통일했다. 가난하고 혼란한 시대에 성직자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알아보고 요청하라는 배려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위와 권력을 겉으로 드러내는 용도로 더 쓰였다. 성직자 안에서도 색깔로 지위를 구별했고, 전례 안의 기능을 드러내는 뜻이 세상의 지위를 으스대는 계급장이 됐다. 이 때문에 16세기 종교개혁은 전례복을 간소화하거나 없앴다. 그 후 천주교회도 성직자의 화려한 평상 옷차림을 금했다.

성공회는 오랜 전통을 되새겼다. 평상복은 사목 기능에, 예복은 전례에 충실하도록 했다. 성직자는 평상복인 검은 캐석을 입고, 사목 예식 때마다 그 위에 중백의를 덧입었다. 여기에 ‘말씀의 권위와 사목’을 강조하는 검은 스카프를 목에 걸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성공회 예복 착용이다. 19세기 말, 전통 회복 운동이 진행되면서 전례색에 따른 제의가 다시 도입됐고, 색깔 영대가 검은 스카프를 대체하며 정착했다. 세계성공회의 예복 착용은 16세기 직후 전통과 20세기에 널리 퍼진 복고 전통이 있다고 해도 좋다. 처음에는 두 전통이 강하게 대립했지만, 지금은 전례의 성격과 봉사의 임무에 따라 적절하게 섞어 사용한다. 성공회다운 해결이다.

대한성공회는 복고 운동의 영향이 깊지만, 두 전통을 잘 혼용했다. 성찬례에서는 제의를 입고, 그 외 사목예식이나 전례 참여에서는 캐석 중백의 영대를 입었다. 그런데 최근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천주교의 간편 예복이 성공회에도 파고들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캐석과 장백의를 합친 ‘캐석-앨브’라는 일체형 예복이 널리 퍼졌다. 모양으로는 장백의와 닮아서 그 위에 제의를 입기에도 좋다. 문제는 이러면서 성공회 전통의 ‘캐석과 중백의’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 아쉬운 점은 전례가 만드는 일치감과 미적인 전통의 상실이다. 전례 안에서 예복은 그 일관성으로 전례 공동체의 일치를 드러낸다. 그런데 다양한 디자인과 서로 다르게 보이는 백색의 색조, 입는 형태 등의 불일치가 눈에 더 띈다. 다양한 개성이라기보다는 어수선한 느낌이다. 성공회 전통의 캐석과 중백의가 보여주는 검소하고 단아한 아름다움과 일치감은 희미해졌다. 굳이 다양성을 강조하려면 영대에 표현하는 편이 훨씬 낫다. 이도 일관성과 절제미가 있어야 한다.

수정한 기도서의 전례 지침을 풀어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적용했으면 한다(괄호 안은 선택 사항).

* 성찬례 집전

1) 전통 적용: 캐석+장백의 (혹은 일체형 예복) +띠+영대+제의

2) 상황 적용: 일체형 예복 + (띠) + 영대 + (제의)

* 기타 성사 집전:

1) 전통 적용: 캐석+중백의+영대

2) 상황 적용: 일체형 예복 + 영대

* 성직자단 참여 전례와 성직자 순행: 캐석(흑) + 중백의 + 영대

  1. 성공회신문 2018년 4월 28일 치 (↩)

[전례력 연재] 신비, 신앙과 이성 사이 – 토마스 아퀴나스 축일

Saturday, January 27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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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 신앙과 이성 사이 – 토마스 아퀴나스 축일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1225-1274)은 그리스도교, 특히 서방교회 최고의 신학자로 꼽힌다. 그가 남긴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은 당시 그리스도교에 큰 도전이자 집대성이었으며, 이후로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교회는 그를 ‘천사와 같이 위대한 학자’로 불렀다. 그가 세상을 떠난 3월 7일이 축일이었으나 사순절기인 탓에 그의 위대한 생애를 적절히 기념할 수 없었다. 1969년 천주교의 전례력 개정에서는 그의 유해를 프랑스 툴루즈 자코뱅 성당으로 옮긴 600주년을 기념하여 축일을 1월 28일로 옮겼고, 성공회도 이날을 따른다.

토마스 성인은 이탈리아 아퀴노 지방의 귀족 가문에 태어났다. 부모의 강요로 당시 출세가 보장된 베네딕트 수도회에 입회했으나 곧 ‘탈출’하여, 새롭게 등장한 설교 수도회인 도미니코회에 몸을 담았다. 이 수도회는 겸손과 절제와 가난의 삶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를 깊이 연구하고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쉽게 전파하는 일에 힘썼다.

오늘처럼 13세기 교회도 혼란스러웠다. 교회 권력자들은 관습과 교리에 기대어 자신의 입지를 변명하기 일쑤였다. 새로운 영성을 주장하는 이들도 사적인 종교체험을 부풀려 전통과 신학을 내치고 지성을 거부했다. 성찰하는 지식과 연구에 소홀하면 교회의 기초는 무너진다. 부패와 타락이 스며들고, 근거와 논리가 몹시 부족한 주장이 깨달음인 양 판을 친다. 토마스 성인의 의지는 뚜렷했다. 신앙인은 성서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 맞게 새로운 언어와 논리로 끈질기게 묻고 대답해야 한다.

토마스는 고위 성직자나 신학자와 논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성인을 시기하고 질투한 사람도 많았다. 처세술도 모르고 ‘무식한 황소’처럼 덤비는 ‘젊은 급진파’라고 핀잔했다. 그의 주장은 너무 ‘급진적’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번 교회의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스승 알베르토는 토마스의 성실함과 총명함이 교회를 구할 것이라며 변호하고 응원했다. 이러한 보호와 가르침 속에서 성인은 하루도 쉬지 않고 연구하며 글을 썼다.

성인의 관심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였다. 신앙의 은총은 자연 세계와 인간 이성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자연과 이성의 완성이었다. 신앙과 이성이 서로 도울 때라야 오히려 둘이 건강하게 제대로 선다. 그는 시대의 질문을 궁리하고 시대 학문과 대화했다. 당시 떠오르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용하여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소통하려고 애썼다. 그 결실이 <신학대전>이다.

위대한 성인 학자는 신비 앞에 겸손했다. 어느 날 신비 체험을 한 뒤 그는 붓을 놓고 글을 멈추었다. 그의 제자가 옆에서 물었다. “선생님, 왜 글을 쓰지 않고 멈추십니까?” “이제는 글을 쓸 수 없다. 내가 지금까지 쓴 모든 것이 다 지푸라기와 같구나.” 성인은 자신과 시대의 한계를 분명히 식별하고 손을 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후로 그는 글을 쓰지 않았다. 3개월 후, 교회 공의회에 참가하는 여행길에서 세상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후대의 역사가는 토마스 성인이 경험한 또 다른 신비 체험을 전했다. 절필 선언 후 자신의 저작을 모두 ‘지푸라기’ 같다고 말하던 성인에게 예수께서 나타나 위로하셨다. “토마스, 너는 나에 관해서 정말 잘 썼다. 너에게 어떤 보상을 줘야 할까?” 성인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있으면 됩니다.”

  1. 성공회 신문 2018년 1월 27일 치 (↩)

개혁 – 오직 사랑만이

Sunday, October 29th,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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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 오직 사랑만이 (마태 22:34-46)

올해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습니다. 여러 개신교에서는 특히, 오늘을 종교개혁 주일로 성대히 지킵니다. 독일의 수사 신부 루터가 중세 서방 교회의 부패와 잘못된 신앙 행태를 비판하며 개혁의 깃발을 올린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줄을 잇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사회와 교회를 둘러싼 크고 작은 정치적 변화를 겪느라 너무 바빴는지 모릅니다. 마련된 행사들은 많아도 개혁의 뜻과 가치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데는 소홀하지 않았나 반성합니다. 어디 시대, 어느 사회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이 가로막히거나, 인간의 자유롭고 정직한 감사의 찬양이 왜곡되고 억압당한다면, 개혁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종교개혁’이라는 번역어를 수정해야 합니다. 원래 말이 ‘개혁’(Reformation)이듯, 개혁을 종교에만 한정할 수 없습니다. 실제 역사가 그랬듯이, 개혁은 하느님의 창조세계에 새겨진 뜻과 질서를 기준으로 삼아 우리가 사는 세상과 사회, 교회와 공동체를 바꾸어 나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서의 말씀은 개혁의 기준을 한목소리로 증언합니다. ‘하느님이 거룩하시니, 인간도 거룩하여라’(레위 19:2). 우리는 거룩하게 창조되었으니 거룩하게 살 책임이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따라 살지 않고, 그리스도처럼 다른 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보살피는 사람’(1데살 2:7)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성서의 모든 가르침을 요약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여라”(37-38절). 하느님의 거룩한 존재를 서로 보살피며 사랑하는 일이 개혁의 기준입니다. 이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 모두 하느님의 사제입니다. ‘만인 사제’ 혹은 ‘신자의 보편 사제직’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여기에 근거를 둡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만든 논리를 개혁합니다. 고정관념처럼 되뇌는 교리와 신앙생활의 경력은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을 막는 걸림돌이기 쉽습니다. 혈연과 지위는 더욱 그렇습니다. 신앙의 정통성을 ‘다윗의 자손’이라는 족보로 판가름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선명합니다. 그리스도는 족보를 넘고 인맥을 넘습니다. 하느님의 가치인 사랑 앞에서 누구든 무엇이든 굴복해야 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개혁을 이끌고 완수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꿈과 미래에 식별의 기준을 둡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숨결이 깃든 인간 존재 자체에 판단의 기준을 둡니다. 이 사랑의 희망 속에서, 얼마 전 우리 성당에서 울려 퍼진 종교개혁기념 음악회의 외침과 찬미가 우리 삶에 이어져야 합니다.

“또 다시 미래를 / 통계를 넘어 미래를 / 정치를 넘어 미래를 / 은하수보다 더 큰 미래를 / 그래, 또 다시 미래를 / 숨쉬는 모든 것들아,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