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행동 연재] 전례 행동과 몸의 언어

Saturday, January 12th, 2019

연재를 시작하며

그동안 <전례력 연재>를 마감하고, 새롭게 <전례의 행동>을 연재합니다. 전례는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함께 모여 몸과 마음으로 감사하고 축하하는 행동입니다. 신자는 전례 안에서 정신뿐만 아니라 몸으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고 하느님께 감사하며, 전례 행동의 일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교회를 경험합니다. 새 연재에서는 전례 안에 있는 다양한 행동과 몸짓의 역사와 의미, 방법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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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행동과 몸의 언어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전례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펼치신 구원 사건을 신자들이 함께 모여서 감사하고 축하하는 행동이다. 신앙의 선조들이 보여준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인은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내적인 깨달음과 체험을 외적인 상징과 몸짓으로 드러내는 현상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

의례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은 말의 언어와 함께, 몸의 언어가 의사소통의 중요한 차원을 이룬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교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의 소통, 그리고 인간 사이의 소통이 일어나는 시공간이다. 전례에 담긴 말의 뜻과 몸의 행동이 일치하면 그 소통의 차원은 더 깊어진다. 이 소통 경험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마음과 몸짓을 갖춘다. 전례를 신앙의 예절이라고 말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동안 전례 행동에 대한 오해도 적지 않았다. 역사에서는 몸의 행동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강제했던 일이 있었다.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은 중세교회에서 만든 의례 행동을 신앙의 문제로 연결하여 비판하기도 했다. 그 결과 개신교 예배는 ‘머리로 드리는 예배’에 집착하여 몸의 행동을 극도로 자제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신앙 운동을 겪으면서 몸의 언어가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마음의 생각과 몸의 표현을 하나로 잇는 일은 ‘온전하게 살아있는 인간이야말로 하느님의 영광’이라고 말한 교부 이레네우스 성인의 가르침과도 닿아 있다. 인간의 몸짓은 하느님을 예배하는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다.

또 다른 염려가 없지 않다. 최근 사회 문화의 복고주의 유행을 뜻하는 ‘뉴트로’ 현상은 사소한 전례 행동에 집착하는, 이른바 ‘전례 마니아’를 낳기도 한다. ‘의례주의’라 불리는 이 흐름은 역사에서 자주 되풀이 됐다. 소중하게 기억했던 옛 체험을 간직하려는 마음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또는 첨단 기술로 단순 정보 전달의 양과 속도가 크게 빨라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공허한 마음의 한켠을 위로하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살아서 감동을 주는 전례는 과거와 현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그 안에서 뜻을 헤아려 미래를 바라보며 움직일 때 일어난다.

전례 행동에 관한 고정관념은 대체로 그 역사와 의미를 연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모든 행동은 유래가 있고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발전하면서 의미를 더하거나 빼면서 행동 자체가 변하기도 한다. 이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례 행동의 의미를 지나치게 축소하거나 생명력을 짓누르고 만다. 뜻을 알고 행동하며, 행동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체험하는 일이 전례 행동의 목적이다. 뜻이 담긴 신학과 이를 펼치는 문화의 맥락 안에서 우리는 전례의 행동을 조정하며 쇄신한다. 이때 전례 안에서 몸의 행동은 저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형성을 돕는다.

전례의 행동과 몸의 언어는 하느님의 구원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신자의 의지이다. 이 행동으로 그리스도인은 머리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예배를 드린다. 온몸으로 드리는 예배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펼치신 새로운 세계를 몸의 모든 감각으로 느끼며, 더 큰 하느님의 신비에 자신을 내어 맡길 수 있다.

  1. 성공회신문 2019년 1월 12일 치 (↩)

[전례력 연재] 배움 위에 선 교회 – 요크의 알퀸

Saturday, October 27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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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위에 선 교회 – 요크의 알퀸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 성공회신문 2018년 10월 27일 치 ))

<성공회 기도서 2004>의 성인 축일에는 근대의 새로운 성인을 여럿 추가했으나, 꼭 기억해야 할 고대의 성인은 소홀히 다뤘다. 축일 개정 원칙을 세울 때, <공도문 1965>의 축일을 최대한 유지하고, 종교개혁 이후 근대 성인을 더 넣자고 했기 때문이다. 역사 전체에 걸쳐 성인들의 중요성을 세심하게 헤아리지 못한 봉합책이었다는 인상이 짙다.

요크의 알퀸(Alcuin of York, 735-804년 )은 한국 기도서에서 한 번도 축일에 들지 못한 성인이다. 8세기 영국 출신의 부제이자 수도원장이었고, 시인, 교회학자, 전례학자였다. 성인은 8세기 서방 교회의 신앙을 학문과 지식에 근거한 지혜의 전통 위에 다시 세워, 교회가 세상을 새롭게 이끌어 나가는 데 크게 공헌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과 닮았으나, 교만과 무지도 비슷한 관계이다. 교만하면 배우려 하지 않는다. 조금 배웠다는 사람도 교만에 빠지면 배우기를 멈추거나 알량한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만다. 한편,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권위를 내세울 근거가 부족한 탓에 지위로만 교만을 부린다. 자신의 무지를 감추려는 행동이다.

알퀸은 교회가 교만과 무지로 고통받던 시대에 살았다. 샤를마뉴 황제가 서 로마 제국 패망 이후 분열되었던 유럽을 신성 로마 제국으로 통일하던 때였다. 교만의 대결이 만들었던 정치의 오랜 분열을 마감하려는 참이었다. 역사에 쌓아 올린 교부의 전통이 무지로 부서진 상태에서 신앙을 다시 세우려는 때였다.

샤를마뉴 황제는 변방 영국의 학자로 알려진 알퀸을 불러, 무너진 신학과 문학, 그리고 과학의 체계를 다시 세우게 했다. 성인은 학교를 세워 유럽 최초로 인문학 교육을 시작했다. 문법과 수사학, 대화법을 가르쳤다. 지금과는 형태가 다르지만, 문장에 물음표를 처음 만든 사람도 알퀸이었다. 그는 산수와 기하학을 정리하여 교과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깊은 사랑의 언어로 표현하는 신학자요, 문학가이기도 했다.

성인은 영국을 비롯하여 지금의 프랑스, 독일 지역을 돌며 학교를 세우고 지식과 학문의 방법을 계속해서 전파했다. 교육과 탐구가 진리를 이해하는 바른길이며, 진리를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성실한 연구가 있어야만 교회는 흩어지지 않고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꿈과 희망은 성찬례를 비유하여 노래한 시에도 담겨 있다.

내 아침의 세월, 혈기가 넘칠 때, 나는 영국 땅에 씨를 뿌렸지.
그리고 이제 내 저녁 시절, 내 피가 점점 차가워져도,
여전히 프랑스 땅에 씨를 뿌리고 있네.
하느님의 은총으로 두 곳에서 모두 씨가 자라나기를 희망하네.
그래서 달콤한 꿀 같은 성서의 맛을 전하며,
오랜 가르침에 깃든 잘 익은 포도주를 다른 이들이 마시게 하며,
나는 여전히 씨를 뿌리고 있네.

얄팍한 심리학적 경구나, 도통한 척하는 영성적 태도는 사람을 자주 현혹하며 교회를 위태롭게 한다. 성실한 배움과 불편한 지식을 멈추게 하고 교회를 무지의 나락으로 흩어지게 한다. 기도하면서 여전히 진리를 탐구하고 논쟁하고 대화하는 일로만 신앙과 교회는 단단해진다.

교회를 신앙의 지식과 지혜의 전통 위에 세우는 일에 헌신했던 알퀸은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여기 먼지와 벌레와 재로 덮여있으나
내 이름은 알퀸, 늘 지혜를 사랑했나니
이 묘비를 읽은 이여, 내 삶과 영혼을 기억해 주시오.

[전례력 연재] 황소, 코끼리, 여우 – 아빌라의 성 데레사

Saturday, October 13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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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코끼리, 여우 – 아빌라의 성 데레사 축일 (10월 15일)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기도서 2004>는 교회력의 성인 축일을 선정할 때, 종교개혁 이전의 성인들을 대체로 인정하여 ‘성’(聖: Saint)를 붙이고, 이후의 성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적용했다. 그런데 1965년 <공도문>은 종교개혁으로 서방교회가 갈라진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시성한 세 분의 성인을 포함했다. 동양 선교의 상징인 ‘성 사베리오 프란시스’(1552년, 축일 12월 3일), 그리고 16세기 수도원 개혁과 영성의 쇄신을 이루어냈던 ‘아빌라의 성 테레사’(1582년, 축일 10월 15일)와 ‘십자가의 성 요한’(1591년, 축일 11월 24일)이다. <공도문 1965>는 왜 예외를 두어 ‘로마 가톨릭 성인들’을 축일로 기념했을까? 그들이 교회에 남긴 족적과 유산이 크고 깊다면, 교파의 구분을 두지 않겠다는 너른 의지였겠다.

스페인 아빌라 지역 출신인 성 데레사(1515년~1582년)는 ‘십자가의 성 요한’(1542년~1591년)과 더불어 그리스도교 영성의 거인으로 불린다. 16세기 서양 정치와 종교의 격동기 속에서 교회의 신앙과 영성을 새롭게 비추었다. 성인은 생명력 없는 교리와 부패하는 교회 개혁에 앞장섰다. 스스로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수도자의 길에 들어서서, 갖은 반대를 뚫고 기도와 영성 생활의 쇄신으로 수도원 개혁을 이뤄냈다.

데레사 성인이 남긴 자서전과 영성 저술, 편지 조각들은 세월을 넘어 더 깊은 기도 생활을 원하는 이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읽혔다. 현대에 들어 유행처럼 밀려드는 영성 운동, 혹은 ‘영성주의’는 성인을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가장 주목할 영성의 교과서처럼 평가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완전함’을 향해 내달았던 내면의 영적 여정은 혼란한 시대의 신앙에 확신의 길을 마련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레사 성인의 영성이 그 시대와 종교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씨름했던 결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스페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했지만, 유대인이라는 차별의 딱지가 그 가족을 내내 괴롭혔다. 열네 살에 어머니를 여읜 성인은 ‘성모 마리아’에게 어머니를 비춰 자신의 슬픔을 이겨냈다. 탁월한 수도자이긴 했지만, 사회와 종교 전체에서 여성에게 들씌우는 차별을 견뎌야 했다. 게다가 중세 시대에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을 주었던 ‘악마’ 문제에 집착했다. 평생 병고에 시달렸던 그의 삶도 성인의 영성을 이해할 때 헤아려야 할 지점이다.

성인은 당시 교리 중심의 교회와 신학을 ‘신앙 경험이 부족한 상태’라고 비판했지만, ‘성서와 신학을 배우려 하지 않고 체험에만 머물려는 영성가들’에게도 경고했다. 견고한 신앙인은 지적인 연구와 영적인 훈련으로만 탄생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교회는 종교개혁의 격동기 속에서 전통 진영과 개혁 진영이 서로 비난하고, 공동체와 개인이 서로 힘을 겨루면서 정작 그리스도는 놓치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현대 영성가들이 성인을 ‘내면의 영성가’로 축소하는 일은 큰 염려를 불러 일으킨다.

데레사 성인의 전문가인 로완 윌리엄스(전직 캔터베리 대주교)는 성인의 영성이 ‘복음’과 ‘성찬례’에 깊이 새겨져 있다고 분석한다. 복음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야기 속에서 성인은 ‘사회 중심부에 멀어진 이들’ 안에서 펼쳐지는 하느님의 모험과 도전을 새롭게 읽어낸다. 성찬례는 ‘주변부 사람들’과 만나려고 ‘성육신하신 하느님’ 예수를 오늘 우리가 만나는 길이다. 성찬례는 정신적인 회상이나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의 몸과 영에 깃들어 만나는 실제 경험’으로 받아들일 때만, 신앙인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복음과 성찬례 없이는 교회는 물론, 영성도 설 수 없다는 말이다.

그 탓일 테다. 1970년,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를 ‘교회 박사’로 선포했다. 여성으로서는 처음이다. 교회와 신앙의 개혁에 단호했던 성인을 일컬어 현대의 어느 작가는 ‘황소처럼 완강하고, 코끼리 피부처럼 두껍고, 여우처럼 지혜로운 성인’이라고 불렀다. 교회의 개혁과 신앙의 쇄신을 향한 그 용기와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성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흔들리지 마라.
어느 것도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하리니,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인내하라.
부족함 없이 충분하신 하느님이 늘 곁에 계시리니.’

  1. 성공회신문 2018년 10월 13일 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