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Sunday, February 19th, 2017

A Pair of Trees, Dearborn, Michigan, USA. 1995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마태 5:38-48)

종교와 신앙은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을 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이루려는 마음에서 생겨났습니다. 연약한 자신보다 더 큰 능력자를 신으로 만들어 그 도움을 빌자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불행을 피하고 복을 구하는 마음이야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연약함을 틈타 종교를 악용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자신을 종교의 숭배 대상으로 삼고 사람들을 얽어매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때 등장하셨습니다. 인간이 만든 종교의 신과 결탁하여 사람을 짓누르는 정치권력에 대항하시는 하느님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의 탈출을 이끄신 하느님이십니다.

이 해방과 자유의 경험 속에서 하느님은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하셨다는 기억의 신앙을 마련하셨습니다. 가장 높으신 하느님이 보시기에 인간의 우열다툼은 우습기만 합니다. 그분의 햇빛과 비를 혼자서 독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창조의 하느님 앞에서 모두 같습니다. 다만, 인간은 하느님보다 낮은 미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보물입니다. 이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사람들 저마다 그 사랑을 품고 있다는 확신이 그리스도교 신앙입니다. 이 관계를 기억하며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려는 약속이 율법입니다. 그런데 다시 존중과 예의의 율법이 남을 억누르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면요? 개혁과 회복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뜻을 회복하십니다. 자기 자신의 주장과 성취를 향하면 율법의 길은 부패합니다. 율법은 하느님과 이웃이라는 ‘남’을 향할 때, 그 의미가 되살아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너무 유명하지만, 문자 그대로 따르기 어렵습니다. 다시 생각하면, 우리 잣대로 ‘원수’를 지정하지는 않았나요? 타인의 잣대, 하느님의 잣대를 적용한다면 그가 꼭 원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더 가까워집니다. 오늘 복음의 다른 명령들도 모두 ‘타자’와 ‘낯선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은 새롭고 낯선 생명을 창조하시고 기뻐하신 데 있습니다. 인간의 거룩함은 창조의 하느님께 감사하고 낯선 이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흔적을 기뻐하며 함께 축하하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합니다. 이 일을 잊을 때, 하느님께서 다시 새로운 창조와 변화의 사건을 일으키십니다. 낯선 타인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자신을 바치실 때 역사가 바뀝니다. 자신의 몸과 피를 내놓아 우리에게 음식으로 나누어주실 때 거룩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거룩하고 완전한 부활의 새로운 생명이 피어납니다.

새 창조와 부활의 축제인 성찬례는 하느님의 창조와 사랑을 기억하는 행동입니다. 함께 모인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안에서 형제자매로 태어난 것을 확인하고, 서로 최대의 예를 갖추어 존중하고 그들의 자유와 희망을 서로 격려하는 자리입니다. 우리 자신이 멋대로 세운 정의의 기준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 자신의 빛과 어둠을 함께 비추는 곳입니다. 빛과 어둠이 불안하게 교차하는 우리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서로 깨져버린 관계를 조심스럽게 하나로 붙이는 일치의 자리입니다. 서로 같은 점을 찾아 동행을 시작하는 곳입니다. 하느님이 거룩하시니 우리가 서로 거룩하다는 확신을 체험하는 자리입니다. 이 거룩함이 하느님의 꿈, 우리의 신앙입니다.

하느님의 어린 양 – 예수의 정체, 신앙인의 선교

Sunday, January 15th,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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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어린 양 – 예수의 정체, 신앙인의 선교 (요한 1: 29-42)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을 보라.” 세상을 향해 예수님의 정체를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행동의 핵심입니다. 신앙인은 역사 속의 억압과 질곡으로 생긴 죄의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구원 사건에 자신을 내어 바친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그런 예수님의 삶에 자기 삶을 포개며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두려운 심판의 위협이 아니라 사랑의 언어와 평화의 몸짓으로 우리 안에 머무시는 성령과 함께 걷는 사람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언행이 돋보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태중부터 알아보았던 사촌’이었지만, 자신도 ‘이분이 누구신지 몰랐다’고 고백합니다. 신앙은 혈연과 지연 같은 인맥으로 엮을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진실하고 투명한 삶에서 받은 도전을 인정하고 새로 배우는 일에서만 바른 신앙이 솟아나고 진일보합니다. 더욱이 그는 자기 제자들에게 새로운 스승을 소개합니다. 새 스승을 따라 새 길을 걷겠다는 제자들을 기쁘게 떠나보냅니다. 과연 신앙의 역사에 우뚝 선 큰 인물입니다. 옛 세대가 새 세대를 격려하며 밀어주는 넉넉한 행동에서 새 역사가 펼쳐집니다.

요한이 바라본 예수님의 성령 세례는 ‘함께 머무시는 하느님’의 사건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한번 받는 물의 세례로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라고 요청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직접 받은 세례는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들에게 들리는 하느님의 새로운 위로와 격려, 희망을 선언합니다. 신앙인의 삶에서도 여전히 아픔과 기쁨, 슬픔과 즐거움, 실패와 성공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밝은 대로를 걷든, 그늘진 험로를 헤매든, 하느님께서 우리 위에 내려오셔서 머무시고, 베푸시며,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십니다. 이때 제자들이 대답한 대로,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예수님과 동고동락하겠다는 다짐이 신앙인의 제자도입니다. 이렇게 다짐하고 따르는 이들에게 주시는 하느님 약속을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합니다. 어느 처지에서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당신의 영광을 빛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지극히 귀하게 보시고, 나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이사 49:5).

이제 하느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라는 세례자 요한의 선포는 예수님의 삶과 우리의 삶에 겹쳐져 새롭게 펼쳐집니다.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 나는 너를 만국의 빛으로 세운다. 너는 땅끝까지 나의 구원이 이르게 하여라.” 이것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모시는 우리 신앙인의 정체요, 선교 사명입니다. 하느님의 어린 양이 신앙의 삶, 신앙의 선교 행진에 함께하시니, 이 길에 초대받은 우리는 정녕 복됩니다.

경계의 파수꾼 – 세례자 요한

Sunday, December 4th,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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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파수꾼 – 세례자 요한 (마태 3:1-12)

세례자 요한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고 방향을 전환하는 회개로만 구원자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회개의 징표로 ‘물로 세례’를 베풀고 사람들에게 나쁜 행실을 그치고 자기 뒤에 오실 분을 향해 온몸을 돌리라고 외칩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와 역할을 정확히 알고 분별하여 다음 세대의 길을 열고 닦아주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요한과 예수님은 늘 이어져 있습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서로 만나 기뻐 반기던 우정입니다. 요한이 권력을 비판하다가 옥에 갇히자, 예수님은 당신의 사목 활동을 시작합니다. 예수님도 권력자와 인간의 그릇된 욕망을 비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여시다가 권력자와 대결하십니다. 이 대결이 만든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부활의 문을 열립니다. 세례자 요한은 옛 시대를 어떻게 마감해야 새 시대가 열리는지 보여줍니다. 옛 시대가 그저 지나가고 새 시대가 자연스럽게 오지는 않습니다. 옛 시대를 아름답게 마감해야 새 시대가 놀랍게 펼쳐집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은 먼저된 사람의 임무와 역할에 관한 깊은 통찰이기도 합니다. 먼저 태어난 사람, 먼저 신앙인이 된 사람, 먼저 서품받은 사람, 먼저 배운 사람은 자신의 경륜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지혜와 경험이 자기 세대에서 주역을 끝내고, 미래 세대를 위해 거름이 되는 일을 종종 잊곤 합니다. 자기가 여전히 역사를 이끌고 간다고, 자기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다가 고집과 아집이 생겨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집착은 그동안 총명하고 지혜로웠던 눈을 가리는 방해물이 되고 맙니다.

경륜과 지혜와 경험이 진정으로 존중받고 싹을 틔우는 일은 그 다음 세대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새로운 역사에 맡겨놓고 겸손하게 작아지지 않으면, 새로운 역사가 열리지 않습니다. 요한은 새로운 역사를 열려고 자신의 경륜과 지혜와 경험을 스스로 낮추고, 자기 다음에 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완전히 열어 놓은 사람입니다.

요한은 새로운 길을 가로막는 옛 시대의 걸림돌을 치우며 길을 평탄하게 만듭니다. 시대의 전환과 새로운 역사를 위해서 자신마저도 쓸어담아서 스스로 치워버립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는 예수님이 “오기로 약속된 메시아”인지를 확인하고, 예수라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 기쁘게 자신의 목숨을 내놓습니다. 그는 시대의 경계에 선 파수꾼입니다. 이렇게 요한은 신앙의 역사 안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어른으로 우뚝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