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 연재] 전례독서 –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Saturday, May 12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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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독서 –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전례력(교회력)의 목적은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펼쳐진 구원의 역사를 축하하고, 주님의 삶을 우리 삶에 포개어 사는 일이다. 신앙인은 이를 전례 안에서 훈련하고, 성서 안에서 확인한다. 전례력에 따라 ‘전례독서’(성서정과)를 마련하여 복음에 드러난 주님의 삶과 가르침을 되새기고, 서신성서에서 교회의 신앙을 확인하는 이유이다.

‘전례독서’는 정해진 절기와 주제에 따라 전례 안에서 성서를 읽는 방법이다. 그 기원은 유대교까지 올라간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펼치신 구원 역사를 매년 되새기도록 1년에 걸쳐 ‘토라’(모세오경)를 읽는 전통이 있었다. 그리스도교는 이 전통을 이어받아 일찍부터 전례독서를 마련했고, 전례략이 정비된 5세기에 이르러 그에 맞는 ‘전례독서’가 자리 잡았다. 초기 전례독서는 복음과 서신서로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구약은 크게 중시하지 않았고, 시편은 성가대의 노래로 편곡하여 불렀다. 대체로 1년 주기 전례독서로 매년 되풀이하여 읽었다.

1960년부터 전례독서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천주교는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전례 개혁을 교회 개혁의 첫걸음으로 삼았다. 전통적인 1년 주기 독서를 개정하여, 공관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가)에 바탕을 두고, 요한복음서를 주제에 따라 삽입한 3년 주기 독서를 마련했다. 1969년의 천주교 전례독서는 전례독서에 관한 이해를 크게 증진했다. 당시 기도서를 개정 중이던 성공회와 루터교가 이를 적극 수용했고, 다른 개신교들도 잇따라 도입했다. 이로써 3년 주기 주일 성찬례 전례독서와 2년 주기 매일기도(성무일도)의 독서가 마련됐다. 물론, 교단 전통에 따라 조금씩 수정하여 사용한다.

북미 그리스도교 연합 모임인 ‘공동전례문위원회’는 수년의 노력 끝에 1983년 ‘공동전례독서’를 출간했다. 이후 다른 영어권 교회들과 협력을 확대하여 1992년 ‘개정공동전례독서’(Revised Common Lectionary: RCL)를 내놓았다. 성공회는 대체로 이 전례독서를 따른다. 대한성공회는 1983년부터 ‘공동전례독서’를 따르기 시작했다.

주일 전례독서는 3년 주기이다. ‘가’해는 마태오 복음서, ‘나’해는 마르코 복음서, ‘다’해는 루가복음서를 따라 주님의 길을 걷는다. 요한복음서는 주요 절기들(대림/성탄, 사순/부활)에 사용되며, 짧은 마르코 복음서를 보충하여 ‘나’해에는 요한 6장을 덧붙여 사용한다. 전례력의 주제는 같지만, 복음서의 특성에 따라 해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최근 전례독서의 큰 변화는 구약성서의 재발견이다. 구약과 신약에 드러난 구원 역사의 일관성을 확인하고, 구약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노력이다. 전통적으로 구약을 복음서의 주제에 따라 배열한 ‘선택 독서’가 있고, 새롭게 구약의 흐름을 존중한 ‘계속 독서’가 있다. 천주교는 전자를 고수하지만, RCL은 ‘계속 독서’와 ‘선택 독서’를 모두 제시하여 설교자가 선택하도록 배려했다. ‘선택 독서’든 ‘계속 독서’든 한 방식을 선택하면, 한 해 동안 유지하는 것이 좋다.

‘전례독서’가 3년 주기로 반복되는 탓에, 사목 상황과 사목 주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자의적으로 성서 본문을 선택하는 개신교 예배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데 많은 성서학자가 동의한다. 세계 여러 교회가 같은 전례력을 지키며 같은 성서 본문을 두고 성찰하는 일은 한 분이신 구세주 그리스도를 함께 고백하고 따른다는 중요한 징표이다.

  1. 성공회신문 2018년 5월 12일 치 (↩)

[전례력 연재] 성 요셉 – 보호와 퇴장의 신앙

Saturday, March 10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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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셉 – 보호와 퇴장의 신앙 (3월 19일)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복음서에 나오는 성 요셉은 역사에 잠시 등장했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성모 마리아의 배필’, ‘예수의 양 아버지’라는 별칭이 앞에 붙어야 할 정도로 존재감이 얕다. 예수를 적대하는 이들이 그분을 깍아내리며 ‘요셉의 아들’이라고 부를 때나 슬쩍 보이는 이름이다. 성인 이름으로 신명을 정할 때도 구약성서의 ‘꿈장이 요셉’을 선호하지, 이 성인은 인기가 덜하다. 이처럼 별 볼 일 없는 성인이 전례력에 깊이 박힌 까닭은 무엇일까?

네 복음서를 다 뒤지면 요셉은 열두 번 나온다. 대체로 마태오와 루가에 있고, 요한에 이름만 한 번 내비치고, 마르코에는 아예 언급이 없다. 그것도 예수 탄생 사건에 집중돼 있다. 요셉은 젊은 마리아와 약혼했고, 마리아가 이미 임신한 사실을 알고는 괴로워했으나, 천사의 말을 따라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린 엄마와 아기의 생명을 지키려고 헤로데의 학살을 피해 고향을 떠나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나자렛에 돌아와 정착했다. 예수께서 열 두 살 나던 해에 예루살렘 성전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요셉은 자취를 감춘다.

초기 교회 전통에서도 요셉은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4세기 교부 성 제롬이 잠시 언급했지만, 9세기에 이르러서야 마리아 신심에 곁들여 요셉의 지위가 조금씩 떠올랐다. 이때 처음 성인은 ‘주님의 양육자’라는 이름을 얻었고, 3월 19일을 축일로 지키기 시작했다. 예수 탄생 사건 안에서 요셉 성인의 의미를 풀어낸 사람은 13세기 교부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요셉이 없었더라면 마리아는 혼외 임신으로 돌에 맞아 죽거나, 헤로데의 학살을 피하지 못했을 테다. 이런 점에서 거룩한 어머니와 아들 안에서 펼쳐질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지켜낸 성인이었다.

토마스 성인의 해석에 따라 교회는 성인에게 ‘겸손한 보호자’라는 뜻을 다양하게 덧붙였다. 16세기 종교개혁 때는 혼란한 교회의 처지를 염려하여, 19세기 근대 세속화로 위기를 맞는 교회를 보호한다는 뜻으로 ‘보편교회의 수호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1955년에는 아예 ‘노동자 성 요셉’ 축일을 노동절인 5월 1일로 따로 정하여 노동자의 수호성인으로 삼았다. 노동자의 권리를 교회가 먼저 생각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역사를 두고 대체로 천주교에서 마련한 결정이었으나 성공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동방교회는 성인 축일을 성탄 첫 주일에 지켰다. 일찍부터 성탄 사건에서 성인의 의미를 확인하려는 노력이었을 테다. 흥미롭게도, 천주교는 17세기부터 성가정축일을 성탄과 공현 절기 사이에 지키다가, 1969년 전례력 개정 때, 성탄 후 첫 주일로 옮겼다. 동방교회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덧붙여 만든 축일이겠다.

성서와 역사에서 보듯이, 성 요셉은 겸손한 환대와 보호, 용기 있는 퇴장의 성인이다.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을 무릅쓰고 힘없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품어 지켜냈다. 소임이 끝나자 주저 없이 사라졌다. 환대와 보호 속에 신앙이 움트는 자리가 생긴다. 퇴장하여 생긴 빈자리에 다시 새로운 역사가 피어난다. 교회와 신자의 사명은 성인이 마련한 환대의 공간을 넓히는 일이다. 완고하고 딱딱한 곳에서 갈라지고 부서진 이들과 더불어 틈을 넓히고, 그 사이로 빛의 공간을 품은 요셉의 영성을 사는 일이다. 그리고 삶의 막바지에 하느님께로 조용히 퇴장하는 일이다.

(도판: Fr. Edward M. Hays, The Great Saint Joseph, 20세기)

  1. 성공회 신문 2018년 3월 10일 치 (↩)

[전례력 연재] 신비, 신앙과 이성 사이 – 토마스 아퀴나스 축일

Saturday, January 27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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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 신앙과 이성 사이 – 토마스 아퀴나스 축일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1225-1274)은 그리스도교, 특히 서방교회 최고의 신학자로 꼽힌다. 그가 남긴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은 당시 그리스도교에 큰 도전이자 집대성이었으며, 이후로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교회는 그를 ‘천사와 같이 위대한 학자’로 불렀다. 그가 세상을 떠난 3월 7일이 축일이었으나 사순절기인 탓에 그의 위대한 생애를 적절히 기념할 수 없었다. 1969년 천주교의 전례력 개정에서는 그의 유해를 프랑스 툴루즈 자코뱅 성당으로 옮긴 600주년을 기념하여 축일을 1월 28일로 옮겼고, 성공회도 이날을 따른다.

토마스 성인은 이탈리아 아퀴노 지방의 귀족 가문에 태어났다. 부모의 강요로 당시 출세가 보장된 베네딕트 수도회에 입회했으나 곧 ‘탈출’하여, 새롭게 등장한 설교 수도회인 도미니코회에 몸을 담았다. 이 수도회는 겸손과 절제와 가난의 삶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를 깊이 연구하고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쉽게 전파하는 일에 힘썼다.

오늘처럼 13세기 교회도 혼란스러웠다. 교회 권력자들은 관습과 교리에 기대어 자신의 입지를 변명하기 일쑤였다. 새로운 영성을 주장하는 이들도 사적인 종교체험을 부풀려 전통과 신학을 내치고 지성을 거부했다. 성찰하는 지식과 연구에 소홀하면 교회의 기초는 무너진다. 부패와 타락이 스며들고, 근거와 논리가 몹시 부족한 주장이 깨달음인 양 판을 친다. 토마스 성인의 의지는 뚜렷했다. 신앙인은 성서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 맞게 새로운 언어와 논리로 끈질기게 묻고 대답해야 한다.

토마스는 고위 성직자나 신학자와 논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성인을 시기하고 질투한 사람도 많았다. 처세술도 모르고 ‘무식한 황소’처럼 덤비는 ‘젊은 급진파’라고 핀잔했다. 그의 주장은 너무 ‘급진적’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번 교회의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스승 알베르토는 토마스의 성실함과 총명함이 교회를 구할 것이라며 변호하고 응원했다. 이러한 보호와 가르침 속에서 성인은 하루도 쉬지 않고 연구하며 글을 썼다.

성인의 관심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였다. 신앙의 은총은 자연 세계와 인간 이성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자연과 이성의 완성이었다. 신앙과 이성이 서로 도울 때라야 오히려 둘이 건강하게 제대로 선다. 그는 시대의 질문을 궁리하고 시대 학문과 대화했다. 당시 떠오르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용하여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소통하려고 애썼다. 그 결실이 <신학대전>이다.

위대한 성인 학자는 신비 앞에 겸손했다. 어느 날 신비 체험을 한 뒤 그는 붓을 놓고 글을 멈추었다. 그의 제자가 옆에서 물었다. “선생님, 왜 글을 쓰지 않고 멈추십니까?” “이제는 글을 쓸 수 없다. 내가 지금까지 쓴 모든 것이 다 지푸라기와 같구나.” 성인은 자신과 시대의 한계를 분명히 식별하고 손을 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후로 그는 글을 쓰지 않았다. 3개월 후, 교회 공의회에 참가하는 여행길에서 세상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후대의 역사가는 토마스 성인이 경험한 또 다른 신비 체험을 전했다. 절필 선언 후 자신의 저작을 모두 ‘지푸라기’ 같다고 말하던 성인에게 예수께서 나타나 위로하셨다. “토마스, 너는 나에 관해서 정말 잘 썼다. 너에게 어떤 보상을 줘야 할까?” 성인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있으면 됩니다.”

  1. 성공회 신문 2018년 1월 27일 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