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성공회

Sunday, June 24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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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성공회1

주낙현 요셉 신부 (전례학-성공회신학)

<오래된 미래> Ancient Futures 라는 책은 1991년 출간되어 현대인의 삶에 깊은 성찰을 제시했습니다. 히말라야 자락 ‘라다크’ 사람들의 전통과 변화를 살피며 새로운 삶의 대안을 고민하도록 합니다. 우리가 자주 잊거나 잃은 가치를 되새겨 줍니다. 불행하고 절망하는 삶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이를 넘어서는 방법에 관한 고민과 지혜를 나누려 합니다.

라다크 사람들은 ‘전통’의 지혜 안에서 생태 친화적인 공동체로 살았습니다. ‘전통’은 혹독한 자연환경을 견디며 터득한 선조의 지혜와 가치입니다. 세대 간 협력과 공동 소유, 검소한 생활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관광 개발이 시작되어 실제로 생활 편의는 나아졌지만, 사람들은 더 가난하다고 느끼고 공동체 문화도 부서지기 시작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거나 현대화의 홍수에 몸을 맡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전통의 가치와 현대의 흐름을 새롭게 접붙이는 일이 필요합니다.

‘오래된 미래’는 성공회의 전통과 고민에 딱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성공회 신자이자 예배학자로서 개신교 신학교에서 오래 가르친 로버트 웨버 교수가 이 말을 교회와 전례에 적용해서 반성을 이어갔습니다. 교회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예배와 신학 전통을 무시하고 새로운 변화에만 눈을 돌렸습니다. 전통을 시대와 관습에 가두어 기득권을 휘두르는 세력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통의 근거와 성찰의 거울이 부족한 채 시도하는 ‘새로운 변화’는 매혹적일지 몰라도 자주 위태롭습니다. 교회를 성사(sacrament)와 역사의 실체로서 살지 못하면 친목 단체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개혁과 대안의 실상이 의도와는 반대로 개인주의와 영성주의로 미끄러지는 이유입니다. 그 결말은 대체로 종교 상품화과 소비주의입니다.

성공회는 신앙의 ‘오래된 미래’입니다. 초대교회 전통에서 길어 올린 예배와 신앙의 가치로 사려 깊게 자신을 빚어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교리에만 얽매이지 않고, 현대 학문에서 배우고 대화하며 오늘의 문제들과 정직하게 씨름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회 예배는 오랜 신앙의 선조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도록 초대합니다. 켜켜이 쌓인 역사를 전례 안에서 체득하고 음미하여 새로운 시공간을 상상하고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회 교리와 신학은 신앙의 가치를 오늘에 되살리려고 정직하게 흔들리며 배웁니다. 그 흔들림이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배와 배움 안에 모인 사람들이 부족하나마 함께 모여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미래인 성공회는 당장 시원하지만 갈증만 더하는 ‘사이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맑은 정직한 생수를 나누려 합니다. 당장 손에 잡히는 생색내기 성과로 사람을 탈진하게 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래 곰삭아 빚어진 맛과 영양의 잔치를 널리 나누려 합니다. 음식을 내는 오래된 그릇이 조금 답답하고, 시중드는 걸음이 흔들려 조금 못 미더워도, 서로 받아주고 견디어 순례의 잔치를 이어갑니다.

오래된 미래의 잔치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1.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복음닷컴 2018년 6월 24일 치 (↩)

[전례력 연재] 전례력과 성인 시성

Saturday, May 26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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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력과 성인 시성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최근 천주교의 프란시스 교종은 오는 10월 14일 교종 바오로 6세와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를 시성(諡聖)한다고 발표했다. 바오로 6세(1897-1978)는 2차 바티칸 공의회 도중에 별세한 요한 23세 교종(2014년 시성)을 이어 교회 개혁을 이끌었다. 1966년 성공회 마이클 램지 캔터베리 대주교를 16세기 교회 분열 이후 처음으로 교황청에 초대한 분이다. 교회 일치에 큰 공헌을 해서 ‘대화의 교종’으로도 불린다. 오스카 로메로(1917-1980)는 엘살바도르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가난한 민중에 편에서 사목했다. 미사를 봉헌하는 도중에 총에 맞아 순교했다. 엘살바도르의 첫 공식 성인이 된다.

시성 전통은 오랜 역사만큼 다양하고 그 이해도 교단마다 다르다. 처음에 교회는 성인을 순교자에 한정했다. 순교자는 생명을 바쳐 복음을 증언하고 교회를 지켜낸 분이다. 교회는 순교자의 무덤과 유해 위에 제대를 올리고 성당을 지었으며, 그에 따라 성당 이름도 정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4세기 이후 박해가 끝나자, 신앙인이 생전에 보여준 신앙의 가르침과 덕행에 따라 성인을 정했다. 성인이 살았던 지역에서 자연스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성인숭배가 남발하자 서방교회에서는 점차 엄격한 시성 절차를 거쳐 주교가 결정했다. 10세기에 이르러 교종만이 결정권을 갖게 됐다. 천주교는 시성을 ‘탁월한 신앙의 위인을 성인의 품위에 올리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신앙인에도 위계질서가 있다는 냄새가 풍긴다. 해당 성인과 관련된 기적도 필수 조건이다. 대중 신심의 문화가 배어 있다.

성인의 신학은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위기)는 성서에 바탕을 둔다. 사도들의 가르침처럼, 신앙의 본분에 따라 살면 신앙인 모두 ‘거룩한 사람’이다. 사도 바울로는 그의 편지를 받는 교회의 신자를 늘 ‘성도’(saints)라고 불렀다. 성인은 ‘품계’가 아니라, 거룩한 삶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동방교회인 정교회는 초대 교회 관습을 여전히 따른다. 성인의 지정은 여러 청원에 따라 지역 교회와 주교가 검토하여 선포한다. 정교회는 성인을 사도들, 예언자들, 순교자들, 교회의 교부들과 주교들, 수도자들, 그리고 신앙의 의인들로 범주를 나눈다. 천주교 관습인 기적의 유무와 횟수는 따지지 않고, 그가 보인 거룩한 삶과 그 가르침이 정교회 ‘정통’ 교리에 합당한지가 더 중요하다.

성공회는 성서의 성인 신학에 기초하면서도 동서방교회의 역사가 마련한 성인을 존중한다. 성공회에서 천주교와 같은 형태의 시성은 ‘순교자 성인 찰스 1세’ 이후로 없다. 그를 서방교회의 여러 성인과 함께 기도서 전례력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성공회는 서방교회 전통을 존중하여 16세기 개혁 이전의 성인을 인정하되 이후로는 신앙의 위인에게 ‘성’(saint)이라는 표현을 붙이지 않았다. 대신, 성서가 말하는 ‘거룩한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역사의 신앙인들을 전례력에 넣어 기념한다. 이는 관구 교회의 자유로운 결정이다. 성공회에서는 이름 앞에 붙은 ‘성’(聖) 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대한성공회는 전통적인 ‘성인’에게만 한정했던 1965년 기도서에 큰 변화를 주었다. 1999년 시험교회예식서를 시작으로 2004년 기도서에 전례력에 수많은 ‘성인’을 넣어 기념한다. 교단과 시대를 막론하여 ‘거룩한 신앙인’을 더 많이 포함하여 따르려 한다. 성인의 신학과 전통에서는 성공회의 품이 더 넓다.

  1. 성공회신문 2018년 5월 26일 치 (↩)

[전례력 연재] 예복 유감 – 개성과 일치 사이에서

Saturday, April 28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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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복 유감 – 개성과 일치 사이에서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19세기 작가 스탕달의 <적과 흑>은 격변하던 사회의 권력 대결, 신분 상승의 욕망과 좌절을 그린다. 책 제목은 당시 사회 지배 세력의 복장 색깔이다. 적색은 귀족과 군인, 새로운 욕망과 열정의 상징이다. 흑색은 성직자, 오래된 절제와 지성의 상징이다. 이밖에도 더 많은 뜻이 숨어 있지만, 복장 색깔은 집단의 특성과 통일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교회는 좋지 못했던 시대를 걷어내고, 원래 좋은 뜻을 되살리는 일도 해야 한다. 전례 예복도 마찬가지다.

교회 전통은 색깔에 신앙의 의미를 담았다(본지 지난 호 ‘전례 색깔’ 글). 13세기에는 성직자의 평상복을 통일했다. 가난하고 혼란한 시대에 성직자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알아보고 요청하라는 배려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위와 권력을 겉으로 드러내는 용도로 더 쓰였다. 성직자 안에서도 색깔로 지위를 구별했고, 전례 안의 기능을 드러내는 뜻이 세상의 지위를 으스대는 계급장이 됐다. 이 때문에 16세기 종교개혁은 전례복을 간소화하거나 없앴다. 그 후 천주교회도 성직자의 화려한 평상 옷차림을 금했다.

성공회는 오랜 전통을 되새겼다. 평상복은 사목 기능에, 예복은 전례에 충실하도록 했다. 성직자는 평상복인 검은 캐석을 입고, 사목 예식 때마다 그 위에 중백의를 덧입었다. 여기에 ‘말씀의 권위와 사목’을 강조하는 검은 스카프를 목에 걸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성공회 예복 착용이다. 19세기 말, 전통 회복 운동이 진행되면서 전례색에 따른 제의가 다시 도입됐고, 색깔 영대가 검은 스카프를 대체하며 정착했다. 세계성공회의 예복 착용은 16세기 직후 전통과 20세기에 널리 퍼진 복고 전통이 있다고 해도 좋다. 처음에는 두 전통이 강하게 대립했지만, 지금은 전례의 성격과 봉사의 임무에 따라 적절하게 섞어 사용한다. 성공회다운 해결이다.

대한성공회는 복고 운동의 영향이 깊지만, 두 전통을 잘 혼용했다. 성찬례에서는 제의를 입고, 그 외 사목예식이나 전례 참여에서는 캐석 중백의 영대를 입었다. 그런데 최근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천주교의 간편 예복이 성공회에도 파고들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캐석과 장백의를 합친 ‘캐석-앨브’라는 일체형 예복이 널리 퍼졌다. 모양으로는 장백의와 닮아서 그 위에 제의를 입기에도 좋다. 문제는 이러면서 성공회 전통의 ‘캐석과 중백의’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 아쉬운 점은 전례가 만드는 일치감과 미적인 전통의 상실이다. 전례 안에서 예복은 그 일관성으로 전례 공동체의 일치를 드러낸다. 그런데 다양한 디자인과 서로 다르게 보이는 백색의 색조, 입는 형태 등의 불일치가 눈에 더 띈다. 다양한 개성이라기보다는 어수선한 느낌이다. 성공회 전통의 캐석과 중백의가 보여주는 검소하고 단아한 아름다움과 일치감은 희미해졌다. 굳이 다양성을 강조하려면 영대에 표현하는 편이 훨씬 낫다. 이도 일관성과 절제미가 있어야 한다.

수정한 기도서의 전례 지침을 풀어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적용했으면 한다(괄호 안은 선택 사항).

* 성찬례 집전

1) 전통 적용: 캐석+장백의 (혹은 일체형 예복) +띠+영대+제의

2) 상황 적용: 일체형 예복 + (띠) + 영대 + (제의)

* 기타 성사 집전:

1) 전통 적용: 캐석+중백의+영대

2) 상황 적용: 일체형 예복 + 영대

* 성직자단 참여 전례와 성직자 순행: 캐석(흑) + 중백의 + 영대

  1. 성공회신문 2018년 4월 28일 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