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2010

블로깅의 기쁨 – 소요유님에 답하여

Wednesday, February 10th, 2010

1.
블로깅에 대한 상념을 올리고 나서, 이상하게 오른쪽 어깨에 큰 통증이 왔다. 밤늦게 이메일을 열어보니, 그 상념에 트랙백된 글이 배달되어 있었다. 소요유님의 글 “블로깅에 대한 나의 몇 가지 생각”이라는 글이었다. 죽비로 시원하게 얻어맞는 듯했다. 물론 그 효과가 내 어깨의 통증을 없애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쨌든 이것은 소요유님의 글에 대한 긴 댓글이다.

2.
죽비의 정체는 ‘기쁨’의 문제였다. 초심(初心)에 관한 일갈이었다. 처음에 품은 마음을 잊고, 몇몇 걸림돌에 예민해졌던 것이다. 사람살이 저마다에 감춰진 기쁨을 들춰내어 나누고 누리도록 부추기는 일은 내 안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마음을 보살피기 위해서 엄살 부리고 칭얼거릴 필요도 있지만, 그 본연의 기쁨과 그에 대한 희망이 그늘지도록 내버려 둬선 안된다. 얼마 전 누군가에게 ‘분노’하되 그것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짐짓 고상한 조언을 했던 일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죽비 한 대 얻어맞아 뻐적지근한 어깨가 풀리듯 블로깅의 목적을 다시 발견했으니. 소요유님께 감사의 합장.

기쁨의 큰 자리를 차지한 것은 새로운 인연이다. 게시판 형태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다, 블로그라는 도구를 발견하게 하고, 그 소통과 나눔의 의미를 가르쳐 준 지인들을 역시 블로그에서 만났다. 내 도량이 작고 내용이 부실한 지라 많은 이들과 인연을 맺지 못했으나, 이를 헤아리면서도 함께 이야기 나눠 준 이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공교롭게 소요유님이 언급한 분 중에 두 분이 내게도 특별하다. 아거(gatorlog)님과 민노씨(minoci)이다. 그동안 감사의 표현을 적당히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서, 특히 두 분께 깊은 감사의 합장.

3.
소요유님이 ‘독립형’ 블로그에 대한 생각을 나눴는데, 나도 덩달아 유감을 덧붙여 본다.

1) ‘독립형’ 블로그 – 내 블로그 역시 외국 웹호스팅을 사용한다. 다른 관련 인터넷 프로젝트 관리 문제도 있지만, 계정에 대한 자유를 누구에게 건네주고 싶지 않았다. 내 이야기가 검열에 걸릴 여지는 없겠으나, 나 혼자만의 생각이 나마 항의의 표시는 되겠다 싶었다. 게다가 이메일도 한국의 서비스는 포털의 몇몇 카페/클럽 접속 말고는 전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그리하고 있었지만, 지난 피디 수첩 사건 때 개인의 이메일을 열어젖히는 권력에 치가 떨렸다.

2) 한국의 포털 사이트 – 한국의 인터넷 포털에서 지원하는 여러 서비스 폐쇄성과 그 행태들 역시 용납하기 어렵다.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질적 수준을 가로막는 포털 사이트의 검색 기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만족할 만한 검색 결과를 얻은 적이 없다. 포털의 폐쇄성에 큰 탓이 있다. 이미 누차 지적되었지만, 내 블로그 글들이나 관련 검색도 다른 사람들이 퍼다 놓은 블로그나 카페에서 먼저 검색된다. 이런 황당한 서비스를 하는 곳에 기회를 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참에 생각 있다는 블로거들이 이런 포털 서비스에 둥지 트는 일이 그 블로거들의 몇몇 주장과 일관되는가 하고 슬쩍 참견해 본다.

4.
다시 돌아가, 블로그 초심을 소요유님의 글에서 되새긴다. “블로깅을 통해 좀 더 자유로와져야 하고, 블로그로 인한 소통과 공감을 통해 좀 더 기쁨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명심할 말이다. 기쁨을 누리도록 비는 격려가 더없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잠시 잊었으나, 나 역시 블로깅을 통해 숨은 기쁨이 크고 많았노라고, 대답해 드린다. 다만, 나는 누구를 “일깨울” 만한 사람은 아니니, 애초에 기대를 접으시는 게 좋겠다. 어떤 선한 이에게 트윗으로 ‘리플’한대로, 나는 그저 “적나라하게 명확하게 보이고 들리는 것들에 딴죽 걸고 희미하게 하고 의심하도록 대화하는 사람”일 뿐. 대화 상대로 여겨주시면 그걸로 넘치는 일이다.

5.
자칫 아래 상념이나 이 기이한 댓글 또한 소위 ‘인정 투쟁’으로 들릴까 저어한다. 그런 유치함이 발견되거들랑 한국식 말고 일본식 죽비로 후려쳐달라고 부탁한다.

블로깅 – 변명 어린 잡감

Wednesday, February 10th, 2010

1.
블로깅에 대해서는 지난 몇 달 동안 한 번도 개운한 마음이 없었다. 그리 성실하지 않은 블로깅이었으니 쉰다고 해도 티 나지 않은 것이었다. 민노씨 같은 이가 베푼 선의의 과대평가가 쑥스럽게 퍼지긴 했지만, 그 평가에 동의하지 않으니 애써 모른 체했다. 독자들이 읽어보면 뻔히 드러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개운치 않았던 것은, 내 안에 작동하는 여러 검열 기제 때문이었다. 특히 성직자 신분이 노출되는 처지에서 하고픈 이야기와 주장에 스스로 제동이 걸렸다. 어떤 이들에게는 내 블로깅이 여전히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매우 위험한 이야기를 담아서 교회와 사회에 해를 끼치는 짓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 검열의 압박에 굴복했다. 그 때문에 켕겼다.

2.
이런 내적인 검열을 강화하는 외적 요인도 있었다. 여러 통로로, 직간접적으로, 내 블로깅의 내용에 시비거는 일이 있었다. 아니 직접 블로그 안에서 토론이라도 했으면 했는데, 대체로 공격은 익명으로, 뒷구멍으로 와서 일격을 가했다. 마음의 상처를 애써 부인한다고 덮어질 일이 아니었다. 급속도로 보수화되고 있는, 아니 실제로는 그다지 진보적인 적이 없는 우리 교회(이 표현은 모두 ‘한국 성공회’를 가리킨다)에서 어느 사안 하나 차분하게 짚어보기 어려웠다. 어떤 이들은 필요할 때 내 블로그의 내용이나 논지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자신을 ‘구별 짓기’위한 허울로도 사용했다. 종종 같은 이들이 다른 이들의 악평을 이용해서 핀잔하기도 했다. 마음이 쓰렸다.

3.
허튼일이나마 블로깅에 일말의 책임감을 가진 것은 두 부류의 독자들 때문이었다. 숨죽여서 가만 읽고 가는 우리 교회 내의 독자들, 그리고 몇 안 되지만 허튼소리를 새롭게 들어주는 우리 교회 밖의 독자들이다. 공개 블로깅이니 애초에 두 부류의 독자들을 늘 염두에 뒀다. 숨죽인 교회 내부의 독자들에게는 어떤 논의의 맥락과 언어를 실험적으로 제시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 그리고 외부의 독자들에게는 한 줌도 되지 않는데다 ‘성공회’가 무슨 ‘성공하는 모임’인지 ‘승공회’의 잘못된 발음인지도 구별할 수 없는 한국의 그리스도교계에서 이름자 홍보라도 하겠다는, 내 안의 기대가 있었다. 이런 이기적인 기대를 알아차리고 여러 방식으로 호응한 이들에게 감사한다.

4.
교회의 독자들을 생각할 때, 내가 저만치 앞장서 경계를 넓혀 놓으면, 다른 이들에게는 그만큼 여유로운 공간이 생기리라 여겼다. 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보폭에 맞지 않게 앞서가는 이가 야속할 테다. 종종 주저 앉아버리거나, 뒤꽁무니만 바라보며 좇아오기에 바쁘다. 아직 나는 그 보폭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 난처함을 되돌아 보되, 경계의 지경을 넓히는 일, 자기 보폭으로 부지런히 걷는 일, 풍경을 깊이 조망하며 관상하는 일, 섬세하고 자비로운 사목적 시선과 실천, 그 어느 하나를 그만둘 수도 늦출 수도 없는 일이라 다짐하고는 있다. 이 난처함을 넘으려면, 좀 더 많은 이가 자신의 독특한 은사를 식별하고, 다른 이들과 다양한 은사의 끈들을 이어 얽어야 한다. 쉬이 한사람이 다 해주길 바랄 수 없다. 이 지점이 막혀 있다. 불평을 그만두려면 자기 은사를 발견하고 보완할 사람을 벗으로 삼을 일이다. 그게 연대다. 내 작은 호소이다.

5.
외부의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물론 읽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너무 성공회라는 특정 전통에 대한 홍보가 과했다고 할 수 있다. 소수자인 교회 전통(한국에서는)에 대해 알리려는 동기가 컸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쓰는 내 마음이지만, 한국의 그리스도교계 전반이나 종교 문제에 대해서 적절한 도움은 주지 못했다. 고백하건대, 다른 교회 전통(특히 한국 개신교의 주류)에 마음이 별로 가지 않는 탓이 크다. 한편, 이들에 대한 비판을 배경 삼아 우리 교회를 돋보이게 하려 했던 얄팍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곳곳에서 들켰다. 그런데도 선의로 발라내어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미안함과 감사함이 겹치는 와중에 우리 교회 외부의 독자(그리스도교 신자이든 아니든)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있다. 기회 닿으면 곧 쓰겠다.

6.
좀 쉬면 마음 정리가 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더더욱 게을러지고 감을 잃었다. 되든 말든 써보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다만, 감정의 쓰레기를 공적인 공간에 퍼뜨리지나 않는지는 살피겠다. 이 말은 내 안에서 ‘이제부터 좀 더 열심히 블로깅하겠다는 거냐?’ ‘이제는 주제나 독자 눈치에서 좀 더 자유롭겠다는 것이냐?’ ‘이제 좀 과격하게 속내를 내보이겠다는 것?’ 등의 물음을 키운다. 모르겠다. 개운치 않은 마음을 살피려는 내 안의 보호장치가 작동해서인지, 그저 오늘 이 변명 어린 잡상이 떠올라, 두서없이 적어본 것이다.

늘 응원해 준 민노씨에게 이 글을 드린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번역] 서평: 디아메드 맥컬로흐, 그리스도교 역사: 그 첫 3천년

Tuesday, February 9th, 2010


Book Review: Diamaird MacCulloch, A History of Christianity: The First Three Thousand Years, 2009.

By Dr. Rowan Williams, Archbishop of Canterbury

이 책에 붙은 자극적인 부제목은 이 책이 한권의 교재를 넘어서리라는 걸 알려준다. 디어메드 맥클로흐는 많은 역작 가운데 하나인 이 책을 유대교 세계와 아울러 고전의 세계 안에 자리한 그리스도교의 지적, 사회적 배경을 요약하면서 시작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그리스도교 신앙이 놀랍고 새로운 응답을 제공했는 지를 보게 된다.

그리스-로마 종교는 황제 숭배(황제가 군사적인 독재자가 되어 피비린내나는 갈등 뒤에 계속 손을 대면서 더욱 이상해진)와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했던 지방의 의식들과 신화들이 쉽지 않은 혼합을 이루게 되었다. 유대교 세계는 유대교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생생한 긴장으로 점철됐다. 이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교가 가져 온 것은 새롭게 열린 유대교의 정체성으로서, 어떤 특정한 국가적 장치에서도 독립된 인간의 정체성이었다. 이로써 그리스도교는 정치적인 충성심에 기대지 않고, 서로에게 소속된 어떤 형태로서의 종교에 대한 이상을 창조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재빠르게 정치적 힘을 이용하는 쪽으로 나갔고, 그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맥컬로흐는 회의적인 교회사가를 늘 유혹하는 쇠퇴와 타락이라는 구색만 맞춘 진술을 거부한다. 대신에 그리스도교적인 삶과 신앙의 기본 형태들이 구성된 지극히 다양한 방법들을 추적한다. 엄격한 역사가인 저자는 무성하게 피어나는 음모 이론 – 영지주의자, 막달레나 마리아, 템플 기사단과 같은 환상의 세계 – 를 말끔히 털어낸다. 그러나 저자는 과거 시대의 소수파나 분리파가 나름대로 깨인 근대인과 같았다는 요즘의 대중적인 가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예를 들자면, 원죄 문제로 어거스틴에 반대했던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그리 밝고 낙관적인 전망 속에서 나온게 아니라, 인간의 경험의 빛과 어둠에 대해서 별 여지를 두지 않았던 극히 혹독한 도덕성에 기초한 것으로, 우리가 부르는 자유와는 질이 다른 것이었다.

맥컬로흐가 어거스틴을 다룬 부분은 이 책의 탁월함을 말해주는 한 예일 뿐이다. 저자는 공정하고, 놀랍도록 넓은 식견을 드러내지만, 무비판적이거나 적대적이지 않다. 게다가 저자는 실제로 모든 영역에서 전문적인 문헌에 아주 정통한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교의 동진 확장과 중앙 아시아 교회들의 비참한 역사에 관한 부분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고 연구가 되지 않은 처지를 생각할 때, 이 책에서 가장 훌륭하다. 그 밖에 뛰어난 부분이 여럿이다. 유럽 그리스도교의 선교(저자는 인도에서 그 정치적인 이점을 이용해서 실행한 개신교의 선교적 노력은 “최대의 실패”라고 기술한다)가 이룬 성과와 한계를 다루는 부분, 17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동안 러시아 제국 경계 지역에 있었던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의, 건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이야기, 그리고 칼빈의 독보적인 유산, 즉 기존 제도의 부분적인 개혁이 아니라, 교황 교회를 옹호했던 이들이 사용했던 바로 그 성서적, 전통적인 자료에 기반하여 보편적(Catholic) 신앙을 새롭게 상상하려 했다고 저자가 평가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잃어버린 세계와, 반짝했다 사라진 가능성들에 대한 언급도 있다. 13세기 중국의 그리스도교 제국, 16세기 폴란드의 유니테리안 공국뿐만 아니라, 중앙 아메리카 이슬람 공화국(스페인에 대항하기 위해 엘리자베스 기 튜더 왕조와 모로코 사이에 마련된 협력안으로 단명으로 끝난 제안) 등이 그 예이다. 맥컬로흐는 지적이면서도 당연히 필연적으로 일어난 발전을 독자들이 볼 수 있도록 돕는 역사학자의 몫을 해내고 있다 (특히 이 점에서 교황제를 다룬 부분이 뛰어나다). 저자는 또 이렇게 상실된 가능성들이 필연이었었음을 명백히 한다. 그 사라진 이유는 교회 내의 갈등과 식민주의 그리스도교 권력의 개입이었다. 저자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이용할 줄 알지만, 어떤 신학적인 제안도 없이 이에 집착하는 여느 역사가들과는 다르다.

세부적인 면에서 몇가지 실수는 피할 수 없는 법이다. 주교가 쓴 주교관(mitre)은 로마의 공적인 예복에서 나온 게 아니라, 중세 교황이 머리에 쓰던 것들을 변용한 것이다. 흑사병이란 명칭 자체는 언급한 때보다 몇 세기 후에 사용되었다. 또 어쩔 수 없이 몇가지 틈도 보인다. 폭군 이반 대제(Ivan the Terrible) 재임기에 관한 아주 훌륭한 설명 속에서도, 짜르의 포악함을 비판했다가 죽임을 당한 모스크바의 필립 총대주교에 대한 언급과, 흔히들 이야기하는 바와는 달리 동방 그리스도인들이 세속 권력과의 관계에서 늘 무관심하지만은 않았던 여러 사례를 찾아 볼 수 없었다. 렘브란트를 최고의 개신교 성서 주석가라 말한다면, 저자의 방향에 좀더 머리를 끄덕일 만한 여지가 있을 뻔했다. 다시 말해, 단테가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나 아쉽다. 많지 않지만 상투적인 교재 냄새가 나는 부분도 있다. 맥컬로흐는 어거스틴과 아퀴나스가 말하는 “자기 충만한 신적 존재”와 프란시스 성인의 인격적인 하느님을 비교한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철학적이면서 관계적이고 인격적인 면을 함께 추구하려고 했으며, 단테의 신곡 천국편은 상상력과 영성을 통하여 신앙의 이러한 면모들이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이 성공적인 성과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이 책은 이 분야의 획기적인 저작이다. 그 범위의 섭렵이 놀랍고, 읽기 쉽거니와, 물릴대로 물린 전문가에게는 통찰을,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에게는 해명을 제공할 것이다. 영어권에는 이에 맞설 만한 책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야기는 분명하면서도 절제된 언어로 풀려 나간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지도 그리 광범위하지도 않은 시대와 문화 속에서, 이 책은 놀랍도록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어떻게 활력을 가졌는지에 대한 중대한 증언이다. 그 첫 삼천년은 또한 마지막이 될 것 같지 않다.

저자: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

번역: 주낙현 신부

원문: Guardian, 23th September, 2009

번역 교정: 2009년 9월 24일 / 26일
위치: http://liturgy.skhca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