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성공회' Category

여기는 캔터베리…

Wednesday, July 16th, 2008

한국에서 돌아와서 며칠 쉬고는 – 실제로는 앓고는 – 다시 영국 캔터베리에 왔습니다. 그 탓에 지난 번 한국 방문에서 만난 여러 신부님들과 교우들,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도 다시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적어왔던 소소한 생각도 정리해서 올려야 하는데 잔뜩 미뤄놓은 채로 캔터베리에 와 있습니다. 예, 람베스 회의가 오늘부터 시작입니다. 저는 세계 성공회 사무소 커뮤니케이션 팀의 일원으로 들어와서 회의 기간 동안 일하게 됐습니다. 복잡한 내막은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요.

우선 람베스 회의에 대한 소식과 생각들을 되는 대로 올리는 블로그를 마련했습니다. 이곳 일정과 일이 있으니 얼마나 블로깅에 충실할 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좀더 정리되거나 발전된 생각들은 이곳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이 블로그와 더불어, 새로운 – 한시적인 – [람베스 통신]도 자주 들러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곧 다시 뵙죠.

봉천동 나눔의 집, 대안 공동체

Monday, June 16th, 2008

관계는 돈이나 재원의 전달에 기반하지 않으며, 오히려 희망과 두려움과 삶의 이야기를 교환하는 일에 기반한다. 그리스도교 영성이 의미하는 바는, 함께 먹는 일, 함께 나누는 일, 함께 마시는 일, 서로 이야기하는 일,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 서로를 통하여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일이며, 이런 일 속에서 모든 이들…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과 내쫓긴 사람들, 얻어 맞고 사는 이들을 위한 하느님의 대안적인 전망(vision)인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in Elizabeth S. Fiorenza, In Memory of Her

어제는 봉천동 나눔의 집에 다녀왔다. 성공회 나눔의 집의 선교 실천과 영성에 마음의 빚을 많이 진 사람으로서, 기회가 되는대로 들러서 경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 며칠 전에 몇몇 나눔의 집 신부님들과 작은 공동체 안의 전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으나, 전례란 그것이 드려지는 현장에서 함께 참여할 때라야 경험되는 법, 그래서 작년 성북 나눔의 집을 방문한 것처럼 주일 미사에 함께 참여했다.

봉천동 나눔의 집은 이제 섬처럼 남아 있었다. 재개발이 완료된 뒤 들어선 주위 아파트들에 둘러 싸여 ‘아직’ 옛모습으로 남아 있는 몇몇 이웃들과 함께 그 오래된 보금자리를 20년이 지키고 있었다. 7년 전엔가 들르고 나서 다시 찾은 나눔의 집은 그때와는 달리 한없이 작게 보였다. 그러나 이웃 여러 채의 허름한 집들 사이에 혹은 뜰에 정성스럽고 소답스럽게 핀 작은 화단과 꽃들로 여전히 아름다운 생명을 피워내고 있었다. 작은 담장을 뒤덮은 푸른 잎의 넝쿨들은 그 너머 보이는 위압적인 고층 아파트의 페인트와 대비되는 푸르고 풍요로운 생명을 시위하고 있었다.

나눔의 집은 문턱 없는 환대의 공동체요, 나눔의 공동체이다.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모두 품고 와서 함께 미사를 드리고, 새로 태어난 아이를 안고 온 산모를 함께 축복하고, 축하의 떡을 함께 나누며, 콩나물밥에 간장을 비벼 먹고 시원한 콩나물국을 곁들여 배를 채웠다. 편하게 둘러 앉아 작은 공동체 안에서 누릴 전례의 기쁨과 행동들, 그리고 이를 위해 개선할 점들을 서로 나누면서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살짝 얼린 막걸리가 배달되었다. 걸쭉한 막걸리와 그 사발 만큼이나 진하고 편한 이야기들을 행복하게 나눴다. 1부의 미사에 드린 성찬례를 2부인 일상에서 실천으로 이어온 것이다.

기쁘고 반가운 하루를 마련해 준 이들, 그 착하고 맑은 마음들에게 깊은 합장.

캔터베리 대주교, 성령 강림, 람베스 회의

Friday, May 16th, 2008

세계성공회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을 만한 람베스 회의(Lambeth Conference)가 올 여름에 열린다. 이 회의가 이미 벌어지는 교회의 분열을 멈출 수 있을까? 성공회 계약(the Anglican Covenant)은 그 분열의 치유책이 될까? 인간의 성(Human Sexuality)을 둘러싼 논쟁이, 세계의 가난과 질병, 불의와 같은 산적한 주요 선교 과제를 부차적으로 만들고 있는 처지이다. 진정한 교회의 일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일치는 세계를 향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교 사명(창조-구원-자유)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수구파들이 벌인 람베스 회의 보이코트는 성공적이지 못한 듯하다. 그게 안되니까 여기저기서 불참을 선언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이들에게 대화를 바라기는 힘들다. 그런 와중에 캔터베리 대주교는 성령강림 축일을 기하여 세계 성공회에 서신을 보냈다. 람베스 회의의 목적을 성령께서 주시는 불과 은총에 마음을 열고, 성령에 대한 식별 속에서 선교 사명을 다하자는 것이다.

거칠게 번역한 서신 전문을 싣는다. 함께 기도해 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세계 성공회 주교들에게 전하는 캔터베리 대주교 성령강림일 서신

성령강림 축일은 성령이라는 선물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이뤄진 놀라운 일들을 우리가 서로에게 이야기하고 세상 전체에 알릴 수 있도록 하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이는 람베스 회의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면서 하느님께 그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어, 그 은총을 입고 그분의 이름으로 용감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구하기에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미 저는 이번 람베스 회의가 예전과는 다른 모양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서구식의 의회 토론식 모임에 대해서 어려움을 표명한 분들의 목소리에 조심스레 귀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이 회의의 준비 모임은 새로운 방식을 찾으려 애를 썼습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선물을 받았던 성령 강림 사건을 좀더 반영한 방식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핵심은 “인다바”(indaba) 모임이 될 것입니다. 인다바는 아프리카 줄루 족의 말인데, 서로 평등한 가운데서 토론한다는 뜻입니다. 그 목적은 모두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어떤 결정문을 타협하여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따라야 할 하느님의 길을 구하기 전에, 어떤 문제의 핵심에 들어가서, 진정한 도전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다른 여러 문화권에서 그 상응한 예를 발견하거니와, 베네딕트 수도자들이나 퀘이커의 모임에서 모두 함께 하느님께 귀울이면서 이루는 것과 비슷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사랑의 사귐에 자신을 내어 맡기고, 서로에게,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회의 기간 매일 우리는 사려깊은 조정과 준비를 통하여 모든 목소리들(또한 모든 언어들!)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함께 하는 두 주간 동안 이 모임들을 통하여, 세계 성공회 안에서 서로에게 반목해야만 했던 벽들을 무너뜨리는데 도움이 되는 어떤 신뢰의 수준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집중적인 기도와 작은 성서 연구 모임을 결합하여,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우리가 할 일에 대한 좀더 선명한 전망과 식별을 가져 올 것입니다.

지난 대림절기 서신에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대로, 이를 위해서는 람베스 회의에 참석하는 분들이 윈저 보고서와 성공회 계약 과정이 계획하는 좀더 친밀한 일치를 향하여 기꺼이 온전히 참여하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자신만의 어떤 제안이나,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온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지 못하게 하는 어떤 지역적 우선성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오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모여 본 분들은 알겠지만, 분열적이고 논란이 되는 행동이 있는 상황 속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몇몇 주교들과 공동의 전망과 과정을 함께 하기 위해서 혼신을 다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논의했습니다.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의 양떼를 보살피는 사목자로서, 우리는 어떤 낮은 단계의 합의를 찾으려거나, 서로 정중하게 의견을 달리 할 수 있다는 식의 단순한 동의를 구하자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성령의 불을 구합니다. 그 불은 예수 안에서 유일하게 제공된 하느님의 은총을 신실하게 선포하기 위하여 서로를 위하여, 서로에게 책임있게 행동하고, 그리고 하느님께는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더해 줍니다. 이러한 깨달음의 길은 고통스러울는지 모릅니다. 성령께서는 십자가를 피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지 않습니다. 이 길을 통해서만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즉 가난과 폭력과 불의로 각인된 세계에 도전하는 하느님 나라의 표지로 드러날 것입니다.

람베스 회의의 잠재력은 매우 큽니다. 우리가 관심하는 바는 우리 세계성공회 공동체를 강화시키려는 것이고, 모든 주교들이 선교에 좀더 효과적으로 참여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이신 성령만이 영원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길 안에서 우리를 묶어 줄 수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이신 성령만이 우리에게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한 말씀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불어 기도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이러한 열매의 가능성을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람베스 회의를 준비한 사람들은 함께 일하면서 이러한 성령의 감동을 느꼈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한가지, 우리를 위해 계획한 것들을 통해 우리의 사귐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쇄신과 기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회의는 갈망이 가득한 사건입니다.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향한 갈망입니다. 람베스 회의의 목적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갈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와 그 성령의 힘 안에서 우리 모두가 쇄신하고 부흥하는 것 뿐입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의 모임을 준비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날마다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요한 14:17).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암스

번역: 주낙현 신부 http://viamedia.or.kr
원문: http://www.aco.org/acns/news.cfm/2008/5/13/ACNS4403
일자: 2008년 5월 13일 (번역: 2008년 5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