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상' Category

시: 제8의 성사

Saturday, April 10th, 2010

제8의 성사 *

매리 케넌 허버트

무릎 꿇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유향 내음을 맡는다

때로 스테인드 글래스 창문을 바라보며
궁금해 한다. 만약에

천사들이 나를 응시하며
내 신앙심을 헤아려 보고 있다면

공동 기도서**를 집어
무심하게 몇 장을 넘긴다

또 한번
죄스럽게도 축복을 바라며

십자성호를 그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검은 옷에 예복을 입은 그 남자는 알까
내 지루한 발 하나는 안쪽에

다른 하나는 바깥에
그 문 사이에 걸쳐 있는 것을

스스로 용서하려 애쓰며
나는 이 시를 조심스럽게 접는다

세 겹으로 고이 접어
봉투에 넣는다

조심스레 봉인하여
그렇듯 우표를 붙이고

* Mary Kennan Herbert, “The Eighth Sacrament” (1998)
** The Book of Common Prayer 성공회 공동 기도서 – 역자 주

담대하고 분명한 부활의 증언 – 캔터베리 대주교 부활절 서신

Wednesday, March 31st, 2010

다가오는 부활절을 맞아,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부활절 서신을 발표하셨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폭력과 불의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은 담대하고 분명하게 저항하며 증언해야 한다는 것이다(전문 번역은 아래에).

그런데 언론은 이 서신의 정황에 주목한다. 얼마 전 영국의 몇몇 교회 지도자들의 영국 내 그리스도인 역차별에 대한 불만을 담아서 발표한 성명서에 대한 반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직전 캔터베리 대주교인 조오지 캐리 경과 다른 보수적인 영국 교회 지도자들이 낸 성명서는, 영국 정부가 종교 자유 명목으로 영국 내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차별한다고 볼 멘 소리를 낸 바 있다. (텔레그래프, 가디언, 에클레시아 UK)

몇몇 종교 관련 언론은 이 정황에서 윌리암스 대주교의 부활절 서신은 이러한 보수파 교회 지도자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가공한 폭력에 비하면, 교회 지도자들이 편안한 처지에서 걱정하고 불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영국 내 보수파들의 엄살이야 하루 이틀이 아니니 그리 깊이 연결지을 일은 아니다 싶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부활절 서신

복음서 기자 성 요한이 들려주는 바로는, 부활 첫날 제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습니다(요한 20:19). 성 요한은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은 결코 쉽거나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다양한 상황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가공할 집단적 폭력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몇 주간에 걸쳐서 나이지리아 모술 지역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난 대량 살육과 위협, 이집트의 콥틱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공격, 그리고 짐바브웨 정권이 계속 자행하는 성공회 여러 교회에 대한 탄압 등이 그 사례입니다. 엘 살바도르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순교 30주기를 맞는 이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불의와 공포의 세계 속에서 결코 안전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로메로 대주교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다른 세계에 대한 희망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세계는 권력자들이 그 특권을 내려놓고 자신이 세상을 섬기는 종에 불과한 것을 깨달아야 하고, 가난한 자들이 들어 올려져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주님이신 예수의 부활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 그가 일어선 것은 그 세계에서는 죽음이 그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의 죽음, 안전의 죽음, 그리고 육체적 죽음 마저도 마지막 말은 아닙니다. 부활 첫날, 새로운 창조의 첫날, 하느님께서는 다시 한번 에덴 동산을 걸으시며, 우리의 새로운 경험과 가능성이 담긴 세계 전체를 새롭게 짓기 시작하십니다. 이 제 2의 아담은 십자가라는 나무와 새로운 삶, 자유, 용서에 대한 약속 아래서 깨어나 전체 인류 세계로 나갑니다.

어떤 두려움이 팽만한 곳에서는 이러한 약속은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기꺼이 그리스도인으로 확신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활 사건이 예수께서 모든 인간의 권력과 폭력을 넘어섬을 드러내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이 예수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진리를 증언하다가 고통당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 그 자체는 변화시키며 새롭게 하는 그리스도의 힘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순교자는 이를 알고 자신의 눈을 이 기쁜 전망에 맞춥니다.

좀 더 편안한 처지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두 가지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첫째, 매일의 삶 속에서 생명의 위협과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기도와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과 직접 연락하면서 우리의 정부 기관과 언론들에 이러한 사실을 되새겨 주는 일들로 계속해서 도와야 합니다. 이러한 위협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이 결코 외롭지 않으며 잊지 않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둘째는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 자신의 두려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편안하고 상대적으로 평온한 사회에서는 교회와 사회의 미래에 대한 걱정에만 신경 쓰기 쉽습니다. 우리는 담대하고도 분명하게, 그러나 분노와 두려움이 없이 증언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주권과 그분이 구원하시러 오신 이 그분의 세계에 대해서 말하고 믿는 바를 그대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 세계는 두려움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희망과 기쁨으로 구원받습니다. 순교자들과 신앙의 고백자들이 보여준 이 기쁨의 기적은 예수의 복음에 대한 확고한 증언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이 기쁨을 서로 주고받고 나누어야 합니다. 하늘은 어둡고 불확실한 것만 같더라도 말입니다. 모든 권위는 예수께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의 미래는 바로 그의 상처 난 손에 자리합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을 돌립니다.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

번역: 주낙현 신부
원문: http://www.archbishopofcanterbury.org/2804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소리내어 읽기

Thursday, March 11th, 2010

법정 스님께서 세상의 끈에서 자유로워지셨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지상에 남은 우리야 이제 그분이 남긴 말씀과 삶을 방편 삼을 뿐이다. 그가 들려준 목소리가 이 지상에 남아,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여유도, 죽음을 깊이 성찰한 기회도 주지 않는 팍팍한 우리네 삶을 위로하는 한편, 그 처지를 호되게 돌아보게 했으면 한다.

소요유님이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적은 상념과,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인용 글이 오늘 아침에 흘러왔다. 그 글을 나지막이 읽는 참에, 며칠 전 nassol님이 내 블로그 글을 소리 내어 읽은 것을 생각했다. 되든 안되든 스님의 떠나심에 한마디씩 하는 참에, 어떤 말을 덧붙이든 그분의 삶에 누가 되리라 여겼다. 이미 민노씨서머즈님이 블로그 글 소리내어 읽는 일에 몇몇 생각을 보탠 마당이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소요유님의 생각과 법정 스님의 글을 읽어 올린다. 고마움에 답하는 이런 품앗이가 퍼졌으면 한다, “맑고 향기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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