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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락 – 눈물의 대화

Friday, May 31st, 2013

깊은 우정의 대화 속에서 감정과 에너지를 완전히 쏟아내고, 다시 새로운 사랑과 격려의 에너지를 얻은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하루 다닌 길처럼 돌고도는 인생. 고마운 친구요, 선생님이요, 신부님을 가진 복락을 누렸다. 그 복락의 한 조각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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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lake, “Visions of the Daughters of Albion” circa 1795)

신부님을 5개월 만에 다시 뵈었다. 신부님께서 홍콩에 계시는 동안 이메일 몇 통만 간단히 나누고 말았다. 뵙고 싶었다. 여전하셨다. 그분의 건강한 모습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환대하며 염려하고 경청하시는 모습이 여전하셨다. 어느 처지에서든 당신 자신을 열어 놓고 여전히 배우시는 분임을 다시 확인했다. 삶에서 얻은 그 배움을 신부님과 나누는 일은 참으로 유쾌하다.

유쾌한 대화 후에 속을 찢어 토로하는 시간을 나누었다. 덫에 걸린 들짐승처럼 상처 입고 피 흘리는 내 모습이었다. 딴에 권력이랍시고 가진 것을 의식, 무의식으로 휘두르는 이들을 향한 혐오감, 그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이용당하느니 아예 초야에 묻혀 살겠다는 성급한 생각, 가치 없는 동네에 나 자신과 고민의 산물을 나눌 필요도 없겠다는 건방진 태도, 나도 어느 권력이나 특권을 얻으면 온갖 변명을 들이대며 적절히 즐기고 남을 짓누르게 될까 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 기대했던 이들에게서 발견하고 싶었던 길동무의 모델을 접어야 했을 때의 허탈함 등이 지난 몇 년의 내 허송 세월, 그에 따른 가족의 희생과 겹치며 눈물을 타고 흘렀다.

이것들은 지난 몇 년의 경험이었거니와 그 안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얻는 내 식별이기도 했다. 그러나 식별 자체로 일이 풀리지는 않는다. 분노는 분노대로 쌓일 뿐이다. 서로 그리워하고 서로 나누고 경청하며 도전하고 도전받는 길동무의 관계가 지속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남남이 되고 만다. 저마다 얻은 식별이 즐거운 내용이든 어둔 내용이든 그 식별 자체의 진가에 마음을 두어 깊이 서로 기도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선생님이자 친구, 그리고 말 그대로 아버지가 되어주신 신부님(Father)께 늘 감사하다. 대화 중에 신부님은 연신 함께 눈을 적시며, 아픈 속내를 나눠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돌아서서 떠나는 나를 다시 불러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오는 10월쯤에 신부님과 함께 운전하여 콜로라도에 다녀오는 계획이 성사되었으면 좋겠다.

***

“이렇게 에너지를 다 쓰고 그를 만나러 갈 수 있겠어요?”

온갖 감정을 다 쏟아낸 터라 신부님의 염려가 컸다.

“예, 에너지를 쏟은 만큼, 새 기운을 얻었으니까요.”

다시 한 시간을 달려, 이제는 어머니 같은 친구 신부님을 만났다. 내 안의 분노를 다스리고, 내 안의 찌꺼기를 청소하는 방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잘 보호하는 방법을 나눠줄 테니, 어서 건너오라던 신부님이었다. 개와 고양이가 여러 마리인데다, 곧 이사를 준비하는 터라 집안이 어지러웠다. 이것저것을 밀쳐 치우고 너른 공간을 마련하여 서로 마주 앉아 차를 나누었다.

“무슨 차 마실래요?”

“난 커피가 좋은데요” “우리 집엔 커피 없어요.”

“흠… 음, 여기 detox 라 이름 붙은 허브 차가 있네요? 이걸로 하죠. 오늘 만남이랑 딱 어울리는데요?”

이미 한 시간 전에 어떤 묵은 감정을 토로했던 탓일까? 신부님과 나누는 몇몇 방법은 간단하고 손쉬웠다. 내부에서 어떤 격정이나 반항이 없었다. 그러나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충분하게 연습했다.

다시금 깨닫거니와 자신을 잘 보살피려면 내 안의 분노를 적절하게 내보내야 한다. 치미는 분노는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다만 그것을 바로바로 내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분노를 쌓아놓으면, 작은 일을 타고 묵었던 분노가, 그 일과 상관없는 과거의 분노까지 한꺼번에 치고 올라와 일을 망친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망친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잘 돌봐줘야 한다. 예전에 여러 친구 신부님과 나누던 생각이 났다. 나도 늘 친구 신부님들께 간절하게 부탁했다. “신부님, 자기 자신을 잘 대해 주세요. 분노가 신부님을 삼키지 않도록 하세요.” 이 말은 내게도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적절하고 유용한 자기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세상은 상처 입을 일로 가득하다. 어떤 선한 만남도 그렇다. 그렇다면 신발을 신고 길에 나가듯, 내 마음에 보호막 하나, 외투 하나를 걸치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를 보호해야 한다.

막바지에 신부님과 사목 이야기도 나눴다. 5~6년 정도 후에 은퇴하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아마도 지금 맡은 공동체는 자신의 은퇴와 더불어 생을 마감하리라 내다봤다. 슬프고 아픈 일이 되리고 담담히 말했다. 내 지난 4월이 생각나서 한마디 덧붙였다. “예, 나는 이미 겪었잖아요. 그런데 그거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어요.”

말 그대로 어머니 같은 신부님(Mother)과 넉넉한 작별의 포옹을 하고, 다시 한 시간 반을 달려 돌아왔다. 남쪽으로 향하는 1번 국도 옆에 펼쳐진 바다가 상쾌했다.

어느 5월의 삼위일체 주일

Monday, May 27th, 2013

어느 5월의 삼위일체 주일

주변 모두가 싱그럽고 그 생명력을 발산하는 5월입니다. 꽃이 흐드러지고 바람도 개운합니다. 옷도 가벼워지고 얼굴에 활기가 넘칩니다. 이런 5월에 우리 역사는 우리 기억과 몸에 숱한 상처와 슬픔을 남겼습니다. 특히 그것이 죽음의 그림자인 탓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화사한 이 시절에 죽음을 이야기하자니 아주 짓궂은 일로도 들립니다.

시인 T S 엘리엇은 자신의 유명한 연작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읊은 적이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가운데 하나였던 1차 세계 대전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그 참혹한 역사를 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흘렀습니다. 세월은 망각하는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시인은 그 망각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꽃이 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한탄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 잔인한 4월이 4.19 혁명 기념일에서 5월의 5.18,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도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4월과 5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입니다. 역사를 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소위 ‘일베충’들과 수구 언론들은 인터넷과 방송으로 5.18 광주 민중 항쟁에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립니다.

수구 보수주의 언론인 가운데 한 명인 조갑제씨는 80년 당시 기자로서 5.18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부끄러운 줄 모르는 허위와 거짓말이 범람하는 현상을 보며하며, 자신이 아무리 보수주의자라 하더라도, 이런 사실 왜곡만은 인정하기 어렵노라 말했습니다. 북한군 개입설을 일축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조갑제씨마저도 좌파라고 몰립니다. 역사를 망각하는 시대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잔인한 시대입니다.

한편, 우리가 역사를 되새기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지 않나 되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4.19 나 5.18, 그리고 역사 속의 안타까운 삶과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그 역사적 의미가 너무 중요한 탓에, 그 큰 그림과 거대한 구호와 정당성으로만 그 역사를 기억하지 않았나요? 그 억울한 죽음을 직면한 충격이 너무 큰 탓에, 감당할 수 없는 분노로만 그 역사를 기억하지 않았나요? 33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5.18 이라는 숫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침묵)

1980년 5월 18일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독재자 전두환은 5월 17일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인 5월 18일, 민주 인사를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국회의사당을 군대로 점령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이에 저항하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광주에서는 공수부대로 이루어진 계엄군이 시위 학생을 무참하게 진압했습니다. 이에 분개한 학생과 시민이 거리에 나와 시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이튿날부터는 증원된 공수여단이 광주에 들어와 무자비한 진압과 살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광주는 시민군을 조직하여 계엄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계엄군은 5월 22일 광주 전체를 고립시키기 위해 작전상 후퇴를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광주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몰려왔을 법합니다. 이러면 보통 사람들은 제 정신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친구와 자녀와 남편과 아내를 잃었습니다. 이웃이 처참하게 쓰러졌습니다. 총상과 자상, 타박상을 입은 수많은 부상자로 병원은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5월 22일부터 고립된 광주는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학생과 시민은 총기를 나눠들고 계엄군의 진압과 공격에 대비했습니다. 수 많은 시민이 주먹밥을 해 와서 시민군의 식사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여고생과 시민은 병원으로 찾아가 부상자 치료를 위해 헌혈했습니다.

시장은 예상대로 섰습니다. 부 도지사를 비롯한 도청 공무원들이 정상 출근하여, 사망자와 부상자를 위한 대책을 세웠습니다. 이 혼란의 시기에 범죄율은 오히려 현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신비하게도, 5월 22일부터 5월 27일 새벽 전남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이 완전히 진압되기까지, 이 닷새는 실제로 밥과 피를 나누는 거룩한 공동체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닷새는 거룩한 날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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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은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를 외치는 간단한 구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힘 있는 자들이 휘두르는 폭압과 그로 인한 고통을 함께 견디고 통과했을 때, 새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5월 22일부터 26일까지 닷새 동안은 5.18 의 정의로운 삶이 세상에 드러나는 실험의 시간과 공간이었습니다. 고통과 상처 위에서 거룩한 일이 벌어지는 성사의 시공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5.18의 진정한 꿈이 아닐까요? 여기에 우리 역사의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지난 33년 동안 이 실험과 꿈을 우리 몸으로 훈련하며 그 실험을 계속했나요?

(침묵)

오늘은 그리스도교회가 전통적으로 지키는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한 분이시지만, 그 모양과 활동은 독립적인 세 분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세 분도 결국은 한 하느님이라는 주장입니다. 논리가 허무맹랑하게 들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한 분이라는 기이한 교리입니다.

이것을 머리로 이해하려 하고 교리로 접근하면 삼위일체의 신비에 다가가지 못합니다. 교회는 그동안 이 문제를 두고 머리로 이해하고 논리를 세우려 애썼습니다. 그동안 교회는 서로 자기 설명이 맞네 틀리네 하며 서로 싸우고 비난하며, 정죄하고 투옥하고, 심지어 서로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럴 가치가 있는 교리일까요?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느님은 셋이지만 결국 하나라는, 삼위일체는 그냥 무작정 믿어야 할 교리가 아닙니다. 삼위일체는 무엇보다도 창조와 구원과 사랑이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드러내는 거룩한 관계입니다. 거룩한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사랑으로 서로 보살피는 공동체의 관계를 말합니다. 우리 인간 사회가 본떠 만들어야 할 새로운 관계의 모델입니다.

16세기 러시아 수도자였던 안드레이 류블레프는 그 유명한 삼위일체를 나그네가 나누는 밥상의 친교로 표현했습니다. 함께 모여서 서로 응시하며, 서로 초대하고, 서로 나누는 친교의 공동체를 통해서 삼위일체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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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냐시오는 삼위일체를 음악의 악보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음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관계가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서로 다르지만, 각자가 전체를 위해 서로 기여하고, 큰 몸, 한 몸을 만듭니다.

성부 하느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고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창조의 하느님은 요즘 일부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창조과학’의 하느님이 아닙니다. ‘창조의 하느님’이란 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거룩함(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땅과 환경과 우주에 하느님의 거룩함이 깃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어떤 차별도 없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 존재하며, 그러니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자 하느님은 예수입니다. 예수는 세상의 고통을 몸소 겪으러 오셨고, 가난한 이들과 권력이 없는 이들과 함께 길을 걷다가 정치범 처형 방식인 십자가 위에 죽임을 당한 분이었습니다. 구원의 하느님인 예수는 구원이 어떤 도통한 종교적 도력에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아픔에 동참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애틋함과 측은지심의 시선을 돌리는 행동 안에 우리의 구원이 있습니다. 그것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 예수입니다. 정의는 바로 이 위에 서야 합니다.

성령 하느님은 바람처럼 자유로운 분입니다. 성령 하느님은 모든 세상 위에 골고루 내려 생명을 키우는 단비 같은 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든 저마다 은총의 선물을 주어, 그 선물을 이용해서 서로 봉사하고 섬기도록 이끄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표현으로 하느님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하느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니까요. 하느님은 오직 경험할 수 있을 뿐입니다. 가족, 친구, 이웃을 가슴에 품고 애틋하게 여기고 기도하고 사랑할 때 경험하는 분입니다. 세상의 고통을 응시하고 내 안에 초대하여 내 아픔으로 삼을 때 경험하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로의 말을 빌어볼까요? 삼위일체 하느님은 서로 지닌 고통을 함께 나눌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서로 참아주며, 함께 시련을 이겨낼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밥을 나누고, 자신의 피를 나눌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사회와 역사의 희망이 있습니다.

주먹밥과 피를 나누었던 33년 전을 기억합니다. 서로 초대하고 감싸며 보살폈던 그때를 기억합니다. 이제 여러분을 저 제대에서 나누는 밥과 피의 잔치로 초대합니다. 저 둘레에서 같이 먹고 나누며, 2천 년 전 예수가 나누던 밥상, 33년 전 닷새 동안 나누던 잔치를 기억해야 하니까요. 그때라야 우리는 잔인한 4월, 잔인한 5월을 제대로 기억하며, 망각을 끝낼 수 있으니까요. 그때라야 우리는 진정한 생명력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계절을 맞이할 테니까요.

그렇게 해볼까요?

(침묵)

종교 간 대화 – 환대의 한 실험

Sunday, May 12th, 2013

한국 성공회 안에서 대안 교회를 꿈꾸는 “길 찾는 교회”가 불교의 젊은 학승 혜준 스님을 초대하여, 종교간 ‘잡담’을 나누려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반가운 소식이다. 실은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이 ‘열린 포럼’이라는 이름 아래 이곳 이민 사회에서 가장 먼저 추진하려던 일이 바로 이런 ‘종교 간 대화’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일로 그 일이 이뤄지지 못했다. 넓게 말한다면, ‘직업적 종교인’의 눈치 보기 때문이었다. 그런 참에 듣는 이 ‘잡담회’ 소식이 너무도 반가웠고, 바다 건너에서 기쁘게 응원한다.

꼬리 문 생각에 이어 또 다른 독특한 실험이 있어 잡감을 적어둔다.

종교 간 대화 (interfaith dialogue)는 기대와 의혹의 눈초리를 동시에 받는 매우 매혹적인 주제이다. 그동안 종교간 대화는 어떤 양상이었나? 그 양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법은 없는가?

학자들은 인간이 지닌 종교의 보편성이라는 전제 아래서 비교 대상이 된 종교들의 공통점과 상호 이해를 추구했거니와, 이들은 종종 신학이나 교리에 집중한 면이 많았다. 어떤 이들은 종교 경험에 좀 더 눈길을 돌려 그 실존적인 경험이 서로 겹치는 부분을 강조하며 종교간 대화의 길을 확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도 여전히 학자들의 몫이었다.

종교간 대화나, 상호 종교 연구가 학자들의 몫이 되는 동안, 그 논리나 담론, 연구 등은 현실의 종교와 현실의 종교인에게는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현실의 종교 생활에서는 전혀 다른 두 길이 엇갈렸다. 즉 전통적으로 자기 종교가 우월하다는 입장에서 타종교인들을 그저 무시하기 일쑤인가 하면, 바로 그 순간에도 사람들은 다종교 상황에서 타종교인을 서로 가족으로, 친구로, 동료로 만나서 살아야 한다.

생활 현장에서 종교 간 대화가 잘 이뤄진 경험이 없지는 않았다. 7-80년대의 민주화 운동 속에서 종교는, 특정 교단의 이름이 아니라, 종교 전체의 이름으로 사회의 불의에 저항하며 싸웠다. 이들은 거리에서 손을 잡았고, 함께 피를 흘렸고, 함께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공동선을 향한 공동의 협력이 종교간 대화의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게다가 그 삶의 실존적인 만남은 타종교에 깊은 이해와 더불어 존중심을 갖게 했다.

학자들의 연구와 대화는 계속돼야 한다. 공동선을 향한 노력에서 종교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보통 사람들’은 종교의 다양성에 대해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는다. 종교의 다양성은 자명한 현실인데도.

음반사의 기획으로 나온 듯한, 의례 음악 실험에서 새로운 경험을 듣는다. 서방 그리스도교 신앙 전통에서 나온 의례 음악인 ‘그레고리안 성가’와 동양 불교의 의례 음악인 범패가 만나서, 새로운 양상의 종교 간 대화를 들려준다. 이는 분명 실험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그리스도교의 성당인 것이 분명하다. 이 공간은 타종교인을 환대하는 현실 세계의 공간이다.

이는 책이나 거리가 만드는 공간과 사뭇 다르다. 신앙의 반복과 재현, 핵심이 집약된 공간이 마련한 환대는 낯선 음악을 초대하며, 그 음악의 발언에 조심스럽게 응답하는 모양으로 전개된다. 낯설어 어긋날 것만 같은 종교 의례 음악은 서로 존중하며 어우러진다. 서로 받아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와중에 우리는 귀를 열고 그 소리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길 일이다.

종교와 신앙생활은 언제나 이런 내맡김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종교 간 대화가 학자들의 것이든지, 현장 활동가들의 것이든지, 아니면 보통 신앙인의 것이든지, 이처럼 새로운 공간에서 이루는 상호 환대와 새로운 목소리에 귀를 열고, 마음을 내어 맡기는 체혐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어떤 ‘잡담회’라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