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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에 자유를! Free Tibet!

Tuesday, April 8th, 2008

프리 티벳! 티벳에 자유를!

수천의 함성이 이곳 샌프란시스코를 들끓게 하고 있다. 어제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 기습적으로 올라가 자유 티벳을 외치는 현수막을 걸었는가 하면, 오늘은 광장에서 남아프리카 성공회에서 은퇴한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대주교와 배우 리처드 기어를 중심으로 수천명의 군중이 모여 촛불 시위를 벌였다. 중국의 억압 아래 있는 티벳에게 자유를 달라는 것이다. 이 시위는 올 여름 중국 베이징 올림픽에 사용될 성화 봉송이 내일로 잡혀 있는 시점에 극에 다를 것인데, 이 때문에 SF 시 당국은 얼마전 일어나 런던과 파리의 성화 보이코트 시위를 겪을끼봐 전전긍긍하는 모양이다.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을 정치에 끌어들리지 말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한 것은 정치인들이거나 독재자들이었다. 우리의 남아 손기정(1912-2002)이 마라톤 금메달을 딴 올림픽(1936)은 히틀러가 마련한 세계를 향한 정치 선전장이었다. 일제의 강점기 아래,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손기정의 슬픔은 올림픽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복잡하게 만든다.

삶이 두터운 탓에 그 중층적인 의미들과 효과들이 무우처럼 썰어지지는 않는다. 운동을 극도로 회피하는 성격이지만, 나는 올림픽 경기에 비칠 때마다 그 순간에 몰입하여 승리하는 자와 패한 자의 마음을 번갈아 가며 느끼고 하릴없이 함께 환호하고 눈물도 흘린다. 미국에 와서 다시 확인했지만, 여기 놈들은 한국을 한국 전쟁과 서울 올림픽으로 밖에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 참 고맙다, 이 놈들아!’)

그러나 적어도 내게 1988년의 서울 올림픽은 히틀러의 것과 구분되지 않는 독재자 전두환의 올림픽이었기에, 아니면 최소한 그 기회를 통해서라도 전두환이가 어떤 자인지를 알려야 했기에, 참으로 오래도록 길바닥을 뛰어 다니고 눕기도 했던 것이다. 자유 티벳을 외치는 이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최근에 일어난 티벳 내의 독립 시위에 대한 중국의 무력 진압과 살상은 광주에 대한 전두환의 살상과 함께 “올림픽”으로 곧장 포개진다. 이들의 참상을 알리는 유투브 동영상이 차단되고 있다 하니, 그곳이 80년의 한국과 2008년의 미얀마와 다를게 무언가?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걸 외면하려거나, 감추거나, 아직 모를 뿐이다. 비정치적이라는 말은 이미 정치적이다.

투투 주교는 올림픽 자체를 보이코트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스포츠는 그 자체로도 선양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정치 행사가 되어 버린 올림픽에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은 참석하지 말아야 하며, 올림픽을 통해서 중국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는데 거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림픽이 열리는 마당에 세상의 이목을 티벳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도 중국을 압박하는 더 효과적일런지 모른다. 실제로 보이코트할 방법은 없다. 반대(protest)를 시위(demonstration)할 뿐이지.

한편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든다. 미국은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경쟁자 중국을 견제하는데 이 마저도 이용하리라는 것. 서로를 비난하는 인권백서를 경쟁적으로 내는 이 두 나라의 싸움은 선량한 사람들의 착한 생각과 행동들도 정치적으로 써먹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천년 동안이나 중국 눈치만 살핀 습속에 젖어 우리는 달라이 라마 방한 하나 허용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 노무현 참여 정부도 못했는데, 제 잇속에만 밝은 이명박 실용 정부에서 일어날 리 만무하다.

작은 사람들과 연대하는 일에 인색한 작은 나라(사람)는 결코 세상을 이기지도, 이끌지도 못한다.

사형 집행과 장로 대통령

Sunday, March 23rd, 2008

집권 말기에 사형을 무더기로 집행한 사람이나, 이 참에 10년 공백을 깨고 사형 집행 재개를 주장하는 이들의 정권 우두머리가 모두 개신교 “장로 대통령”이란게 눈에 띈다. 도대체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다.

흑인 설교 전통과 미국 정치 및 문화

Monday, March 17th, 2008

못돼 먹은 여우 한마리(Fox News)가 또 사냥감을 물었나 보다. 이번에는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The Rev. Jeremiah Wright)이다. 그는 최근 설교에서 힐러니 클린턴을 비롯한 많은 백인 대선 후보 경쟁자들을 백인 문화의 틀에서 온갖 특권을 가진 이들로 격렬하게 비난했다. 게다가 전형적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설교가의 대단한 격정을 곳곳에서 드러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바락 오바마가 다녔던 교회의 담임 목사였던데다, 정신적으로 그의 신앙적 멘토(mentor)였다고 한다. 나쁜 짓만 골라 하는 미국 언론의 여우가 호기를 잡았다고 물고 늘어지는 것은 라이트 목사가 설교 시간에 미국의 백인우월주의를 신랄하게 씹어댔기 때문이다. 여러 언론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는데, 무엇보다도 폭스의 보도 영상은 유투브를 타고 확산되며, 미국의 “우월한” 백인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라이트 목사의 말을 들어보면 다 맞는 것 아닌가? 하지만 능청스러운 품위를 가장하여 말투가 거칠다느니, 극단적이라느니, “반(反) 미국적’이라느니, 사회에 증오를 불러일으킨다느니 하면서, 이게 결국 오바마에게도 도움이 안될 것이라면서, 다시 오바마의 입장이 궁금한 척 하면서 언제라도 그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곧장 오바마는 라이트 목사의 견해와 거리를 두었다). 솔직히 거친 말하고 얼굴 안붉히고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역사 안에서, 그리고 사회와 문화 안에 여전히 뿌리깊은 인종주의에 대해서 이런 분노를 한번씩이나마 표출하는 걸 가지고도 트집잡아 대선 정국에까지 몰고 가려는 짓은 죄질이 심히 불량하다.

물론 모든 백인들이 그런 건 아니다. 언젠가 한번 소개한 적이 있거니와, 실은 이 이야기도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Diana Butler Bass)의 성찰 깊은 글을 통해서 전해들었다. 모든 신자들이 설교자의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고, 이게 그 자리에 앉았던 교인들 전체, 혹은 그 교회의 일원이었던 오바마의 생각도 같다고 할 수 없다고 운을 뗀 배스는, 이 문제를 이렇게 진단한다.

라이트 목사에 대한 공격은 그리스도교 교회 공동체의 기본적인 역동성에 대한 무지 이상의 어떤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 공격은 여전히 미국에서 백인과 흑인 그리스도인을 여전히 갈라 놓고 있는 어떤 오해를 드러내고 있다. 많은 백인들은 아프리카계 그리스도들의 설교 전통을 매우 공격적인 것이라고, 특히 이것이 정치적인 문제에 관련될 때 그렇다고 생각한다.

배스는 자신도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 가운데 하나였음을 인정하며, 교수의 권유로 미국 흑인 사회의 신앙과 이들의 설교 전통을 연구하면서 이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게 되었노라고 말한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감정 상의 극복 과정은 만만치 않았는데 특히 흑인 설교자 프레데릭 더글러스가 1852년 7월 5일에 행한 (미국 독립 기념일) “7월 4일은 노예들에게는 무엇인가?”라는 설교였단다.

이 정치적 설교는 백인 문화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동료 시민 여러분, 모든 국민이 시끌벅적하게 즐기고 있는 이 시점에, 나는 무엇보다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울부짖는 통곡 소리를 듣습니다. 무겁고 참담했던 어제의 쇠사슬은 그들에게 다가왔던 희년의 환호성(노예 해방)을 통하여, 오늘에는 더욱 참을 수 없이 힘든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나아가 미국인의 행태를 “극악 무도하고 혐오스러운 것”이라며, 백인 그리스도인들이 미국 헌법과 성서를 “짓밟고 무시한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이런 말로 설교를 끝맺는다. “이 혐오스러운 야만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위선이 어떤 반대에도 직면하지 않고 미국을 통치하고 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설교를 읽으면서 자신이 변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비판의 힘”을 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흑인 설교의 예언자적인 본질을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목소리들은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들에게 나온 것이었음을 깨달았고, 성서와 사회 정의 사이를 연결짓는 내러티브를 존중하게 되었다. 이 설교들을 통해서 어떤 극한적인 상황에서 바라 보는 복음을 듣게 되었다. 노예, 해방된 흑인, 그리고 사적인 폭력에 대한 두려워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던 이들의 입장에서 말이다. 이 설교들을 통해서 나는 예수를 통한 해방이 얼마나 강력한 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종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백인들은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오히려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이루는 화해의 비전을 보고 싶어 한다.

경청하는 걸 배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인내와 역사적 상상력, 그리고 내 친구들을 향한 – 내 흑인 친구들에게도 – 많은 불평이 필요했다. 결국 내 조상들이 억압자였다 하더라도, 우리는 아량과 변화에 열려 있는 마음으로 억압받는 이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설교는] 복음에 비하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 백인들에게 이 말은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신앙과 문화 속을 깊이 흐르는 영적인 물줄기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권좌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이다.

어떻게 잦아들까? 하기야 공격은 그만 됐다는 소리도 들린다. 다만 은퇴한 목사의 설교를 두고 물어 뜯는 걸 보니, 이제 부시 정부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지난 미국 대선 기간 동안 설교 시간에 대선 후보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고 하여 종교 조직의 면세 해택을 박탈한다고 겁주었던 세리청(IRS)이 떠오른다. (세리청은 LA 파세데나에 있는 성공회 올 세인츠 교회의 라가츠 신부의 설교를 문제 삼아 그 교회의 면세 혜택을 중지한다고 편지를 했고 법정 논쟁으로 비화되었다.) 이제 이 교회에도 겁주기를 시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