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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교와 여성 사제직, 그리고 선정적 언론 보도

Thursday, November 16th, 2006

어디서나 선정주의 저널리즘은 문제거리인데 종교 관련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캔터베리 대주교의 직무실인 람베스궁은 대주교의 말을 인용한 짤막하면서도 단호한 어조의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영국의 로마 가톨릭 신문인 “가톨릭 헤럴드”가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와 행한 인터뷰에 대해 여러 신문 논평들이 대주교의 뜻을 “의도적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윌리암스 대주교의 “여성 사제직” 문제에 대한 인터뷰에서의 언급을 두고, 대주교가 영국 성공회의 여성 사제직 서품 실행을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잘못 해석해서 보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는 그동안 여성 사제직을 옹호해왔으며, 이번 람베스궁의 보도를 통해서 다시한번 1992년 영국성공회의 여성 사제 서품 결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현재 여성 사제들을 치하한다고 못박았다.

바티칸 방문을 앞두고 로마 가톨릭 언론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로완 윌리암스 주교는 성공회와 천주교 사이의 일치와 관련된 다양한 신학, 교회, 신앙의 문제들에 대해서 성공회의 입장을 피력했다. 예수의 신성과 성찬례의 관계, 세속 사회 안에서 교회의 사명, 그리고 양 교회 간의 일치와 분열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그 자신의 신앙적 신학적 배경과 더불어 펼쳐졌다. 문제는 양 교회의 관계에서 “여성 사제직”이 일치의 장애물이 될 게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에서 비롯되었다. 즉 천주교의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여성 사제 문제를 양 교회 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언급한 점을 인터뷰어가 지적하자, 윌리암스 대주교는 이 문제가 매우 어려운 문제이고 교회 내부의 분열과 더불어 계속될 것이지만, 이것을 돌이킬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 여러 언론은 이를 두고 “캔테베리 대주교, 여성 사제직 재고할 수 있어..” 혹은 “캔터베리 대주교 여성 사제직에 대한 의심 인정” 등으로 제목을 뽑았다. 게다가 칼럼들은 대주교가 지적한 여러 난점들에 초점을 맞추어, 그가 충분히 여성 사제직 실행과 여성 사제들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비꼬았다. 그러나 이들은 대주교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어디서도 인용하지 않았다.

“영국 성공회가 여성 사제 서품을 결의했을 때, 수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여성 사제 서품은 우리가 그것이 유용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단지 남성에게만 있다고 생각할 때 잃어버리거나 희미해져버리는, ”모든 세례받은 이들의 몸“을 드러내고 대변하는 사제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나의 신학적인 견해는 이런 확신에 근거합니다: 세례받은 여성이나 남성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관게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결의를 한 것은 이런 인식이 가져다 줄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이런 어려움때문에 이것 그만 두어야 하느냐?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이미 영국 성공회 안에서는 이에 대한 충분하고 깊은 신학적 논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아, 로만 가톨릭 교회를 아프게 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 하면서 돌아가는 것도 잘못이요, 또 그런게 로마 가톨릭 교회에 위로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윌리암스 대주교는 또한 양 교회의 일치에 대한 논의가 이런 교리적인 일치에서 진전될 수만은 없다고 보았다. 이런 한계는 이미 성공회-로마가톨릭 국제 위원회의 문서(ARCIC 1)에서 인정한 바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아프리카 수단에서의 에큐메니칼 협력을 예로 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하는 선교 사명을 위해 일하는 일이 일치의 또다른 길인 것을 강조했다.

아마추어의 관찰로 보자면, 선정주의에 경도된 저널리즘은 대체로 상업적 이익의 추구가 한 동기가 되겠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데올리기적 대결 상황에서 나온 조작의 동기도 있겠다. 몇몇 코멘트가 보여주는 대로, 가판대에 눈을 쏠리게 할 선정적인 헤드라인 전략이 이 “의도적인 오해”에 한 술을 보탰다면, 자신의 신학적 정치적 이념을 덧씌운 기사로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이간질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세계성공회 내의 갈등이 이런 저런 일로 긴박한 처지에, 진보적 성향을 가진 캔터베리 대주교를 차제에 보수파로 덧씌어 놓고, 생색내며 비판해 보면서 다시 보수적인 견해로 이끌어 보려는 수작같은 것이다.

그나저나 이런 보잘 것 없는 독해 능력이 버젓하게 득세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이 쉽게 속아넘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 조선일보와 그 추종자들을 보라. 눈 똑바로 떠서 보고, 귀 똑바로 열고 들을 일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미국성공회 의장주교 캐서린 쇼리 취임 설교

Saturday, November 4th, 2006

성공회 사상 최초의 여성 관구장으로 선출된 미국 성공회의 캐서린 제퍼츠 쇼리 주교(The Most Rev. Katharine Jefferts Schori)의 의장 주교 취임식이 워싱턴 D.C.의 내셔널 캐시드럴에서 열렸다. 시간 차로 인해 이곳 성공회 신학교에서는 오전 8시에 웹캐스팅을 공동 시청할 계획까지 세웠다. 아, 오늘 아침의 분주한 일로 가지 못하고, 나중에야 웹캐스팅을 보려했지만, 끊임없는 버퍼링에 지쳐 버리고, 겨우 쇼리 주교의 설교만을 듣게 되었다. 그는 이전에 언급했던 대로 하느님의 꿈과 비전 속에서 본 세상의 샬롬, 그리고 교회의 사명에 대해 힘주어 강조했다. 그리고, 당장 번역해서라도 한국에 있는 분들과 나눠야겠다고 마음 먹고는 번역해서 이렇게 올리게 되었다.

하느님이라는 고향을 향해 가는 여정 길에서 어떻게 함께 걸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꿈, 즉 샬롬의 전망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 사명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전언이라고 하겠다.

그가 제안하는 샬롬의 비전과 하느님을 함께 걸어보지 않겠습니까? (아래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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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성공회의 미래 – 몇가지 시나리오, 그리고…

Wednesday, October 18th, 2006

세계성공회의 이야기는 시시각각 전혀 새로운 소식들로 갱신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시점을 두고 소식을 전할라 치면 금새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게다가 내내 반복되는 이야기들이어서 지치기 쉬운 뉴스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사태들의 진행을 놓치지 않되, 조금은 멀찍이 사태를 놓고 사태의 추이를 전망해보는 것이 오히려 나을런지도 모른다. “향후 몇년 동안에 세계 성공회 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물음에 대한 시나리오를 예상해 보는 한편,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두고 성찰해 보는 것이다.

시나리오는 대체로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겠다.

1. 세계 성공회에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 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2.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모든 교회가 2008년 람베스 회의에 초대받고, 이에 반대하는 “글러벌 사우스” 교회들이 새로운 연합체를 만들 수 있다. (회의 초대의 권한은 ‘지금까지’ 캔터베리 대주교가 가지고 있다.)

3. [윈저 보고서]가 제안한 [성공회 계약]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여기에 조인하는 교회만이 세계성공회의 구성원이 된다. (이는 지금까지의 성공회의 전통과는 전혀 달리 장로교나 루터교처럼 어떤 [고백적 문서]에 의해 교회를 규정하는 길을 만들어 낸다.)

가장 가능성이 많은 경우는 역시 세번째 [성공회 계약]의 채택이다. 불행하게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세계성공회의 혼란 양상은 더욱 복잡해 질 것인다. 그 관구 교회들 간의 관계 측면에서 그리고 지금까지의 전통과는 전혀 다른 길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이러한 예상 속에서 간과하기 쉬운 어떤 원칙에 관한 물음이 남아 있다. 그것은 내내 “교회의 존재 이유” 곧 “교회의 선교 사명”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무엇이 교회를 일치하게 하고, 혹은 무엇이 교회를 존재하게 하고 지탱시키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에 대해서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무엇을 전하고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고, 각각 시나리오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런 현상들에 대해서 하느님 선교 시각에서 성공회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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