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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와 세계 성공회 10년” 블로깅 목록

Tuesday, March 20th, 2012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에 대한 사적인 잡감을 적기 전에, 지난 10년 동안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가 다뤄야 했던 여러 문제들과 그에 대해서 이 블로그에 기록한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일별하여 원래 글에 연결한다.

1.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와 그의 신학 – 몸의 신학

덧붙이자면,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는 웨일스 사람으로, 역대 캔터베리 대주교 가운데 사상 처음으로 ‘영국인’(English)이 아닌 대주교였다.

한편, 그의 글 “몸의 은총”(Body’s Grace)은 기존의 관습적 교리를 넘어서서 인간의 성, 나아가 동성애 문제를 창조 신학과 전례 전통 안에서 풀아가면서 사고의 전향을 제시했다. 그는 그동안 교회와 신학에서 “‘몸’에 대한 논의가 너무도 ‘성’ 문제에 집착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뒤, 논의의 주제와 사고방식의 전환을 제안했다. 그 방향을 요약하면 이렇다.

  • 이성애/동성애에서 세례와 결혼으로
  • 개인적 정향에서 공동체적인 정향으로
  • 유전자 본질주의에서 이방인의 본질 문제로
  • 만족의 방향에서 성화의 방향으로
  • 성적 정향에서 성사적 정향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몸’에 대한 이해는 하느님의 창조 신학에 기반해야 하며, ‘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이신 새로운 몸의 창조를 ‘전례적’으로 형성하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2. 동성애자 주교직 성품과 세계 성공회의 정체성

그러나 미국 성공회 뉴햄프셔 교구에서 스스로 동성애자로 밝힌 진 로빈슨 신부를 주교로 선출하고, 연이어 관구 의회에서 그 선출을 인준, 이후 주교 성품이 있자, 세계 성공회 전반에 걸쳐서 찬반 논란이 거세져 세계 성공회 분열이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3. 윈저보고서와 ‘성공회 계약’

캔터베리 대주교는 세계 성공회에서 여러 성직자와 신학자, 신자 대표들로 구성된 특별 위원회를 만들어, 서로 다른 상황과 여러 의견을 함께 견디어 나가는 방법을 모색하게 했다. 이 특별위원회는 결국 ‘윈저 보고서’라는 문서로 세계 성공회의 일치를 위한 권고 사안을 발표하고, “성공회 계약” 문서를 만들어 이에 따라 성공회의 일치를 모색하자는 제안한다. 그리하여 다시 성공회 계약 문서 위원회가 구성되고 몇 차례에 걸쳐 초안 작성을 한 뒤 회람했다.

4. 2008년 람베스 회의 – 인다바, 그리고 경청 과정

10년마다 캔터베리 대주교의 소집으로 열리는 세계 성공회 주교회의인 람베스 회의에서는 그전과는 달리, 어떤 결의안도 내놓지 않고, 세계 성공회가 당면한 여러 주제와 사안들에 서로 나누는 경청의 시간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몇몇 관구들과 주교들은 동성애자 서품 및 동성 간 시민 결합 축복에 반대하고, 이를 시행한 관구 교회들과 함께 할 수 없다면서 람베스 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따로 모임을 가졌다.

5. 글로벌 사우스 – ‘자기 파문’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라 지칭되는 보수파 관구 및 주교들의 모임은 람베스 회의를 보이코트하는 한편, 캐나다와 미국 성공회에 명시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은 캔터베리 대주교도 비판하고 나섰으며, 람베스 회의에 참석한 이들 가운데서도 대주교가 집전한 성찬례에서 영성체에 참여하지 않았다.

6. 여성 주교직과 교회 일치

한편, 천주교 바티칸 교황청은 동성애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 성직에 대한 반대때문에 성공회에서 탈퇴한 성공회 그룹을 포용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성공회는 물론 천주교 안팎에서도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한편, 캔터베리 대주교는 로마에서 초대받아 교회 일치 모임에서 성공회의 길, 교회의 일치의 방법, 그리고 여성 성직에 대한 성공회의 경험과 입장을 분명한 견해를 피력했다.

7. 캔터베리 대주교와 대안 사회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영국 사회와 자본주의의 세계 질서, 그리고 자본주의적 세계 안에서 종교와 신앙의 왜곡 문제들을 살피며 신학적으로 비판적인 견해를 여러 번 드러냈고 여러 논란이 뒤따랐다.

21세기의 신학자 –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

Friday, March 16th, 2012

남의 글을 내 블로그에 그대로 퍼오는 일이 거의 없으나(번역 제외), 기사 원문이 신문사 웹페이지에서 사라진 듯하여, 글쓴이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옮겨 놓는다. 2008년 국민일보에 난 “21세기의 신학자들 36: 로완 윌리엄스 세계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이다. 기사 전문 게재에 관련하여 기사를 쓴 국민일보 신상목 기자에게 연락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 기사의 배경과 사적인 인연을 밝히면 이렇다. 2008년 어느날 국민일보 신상목 기자가 전화를 했다. 성공회에서 글을 써줄 이를 찾지 못하던 참에, 당시 한국에 잠시 방문하던 내게 연락이 닿아 글을 요청했던 전화로 기억한다.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부탁인지라, 할 수 없이 긴 통화와 더불어 내 블로그의 여러 글을 알려 주었다. 그때 나눈 대화를 충실히 반영한 글이라 생각한다. 이 기사의 로완 윌리암스 주교 인용은 로완 윌리암스, 진 로빈슨, 그리고 사제직 에서 나온 것이다.

21세기의 신학자들 36: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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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성공회의 대표인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암스(57)는 대주교이기에 앞서 세계적인 신학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2002년 캔터베리 대주교로 선출되기 전까지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영국 남부 웨일스에서 가톨릭 배경을 가지고 태어난 그는 성장하면서 성공회 신자가 되었고,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학자의 길로 접어든다. 특히 26세의 젊은 나이로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세계적 신학자로서의 면모를 일찌감치 발휘했다. 박사논문은 20세기 러시아정교회 신학자인 블라디미르 로스키를 연구하면서 삼위일체 신학을 주제로 썼다.

그는 영국 학계를 통틀어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에서 동시에 정교수 자격을 획득한 유일한 사람으로 기록됐다. 학문적 안목이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고, 영성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의 강의와 저서를 접한 사람들은 “빈 자리 없이 꽉꽉 채워져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평한다.

영성에 대한 관심은 ‘기독교 영성입문(The wound of knowledge)’을 통해 기독교 영성사를 정리했을 정도로 조예가 깊고, 매일 30분씩 기도 시간을 따로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옥스퍼드대학 교수 시절 헨리 나우웬처럼 삶 속에서 신학을 실현하고 싶다고 피력한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는 또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신학자이자 저술가이다. 수많은 신학적 분야와 교회일치 문제 등에 깊이 관여해 왔고, 철학과 신학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연구를 거듭해왔다. 특히 초대교회와 교부신학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 교회사 연구를 통해 교부신학과 이에 따른 신학적 논의를 전개해왔다. 또 정교회와의 인연으로 현대 러시아정교회 신학자들과 대화를 시도하면서 개혁신학을 변호하기도 했다.

그의 저서 ‘기독교신학’(On Christian Theology – 사진)은 신학적 입장을 잘 정리한 대표서로 조직신학에 대한 다양한 이슈와 논쟁에 대한 답변을 모은 것으로 유명하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이후는 다양한 사회 윤리적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신학자이자 사제이기도 한 그는 영성적 이해를 바탕으로 사제직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했는데, 그의 통찰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이해를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성공회 주낙현 신부는 “사제직에 대한 윌리엄스 대주교의 시각에 자신의 사제직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윌리엄스 대주교는 ‘현대문화 속에서의 그리스도인 사제직’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 안에서 보이는 하나님은 자신의 ‘영역’ 수호를 거절한 분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스스로 영역 수호를 거절하는 인간의 삶 속에, 그리고 그 인간의 삶을 통하여 지극히 역설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은 존재한다. 이 삶 속에 하나님은 모든 순간과 생각과 행동에 침투하시며, 그 삶을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신다. 십자가 사건의 결과 더 이상 다시 닫힐 수 없는 하늘과 땅 사이에 어떤 열린 문이 마련되었다. … 이 공간 속에서 인간은 오직 주어진 것들에 마음을 열며,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만 멈추지 않는 사랑 안에 머무르신다. 그 사랑은 인간의 세계와 인간의 언어로는 오직 ‘상처입기 쉬움’(vulnerability)을 통해서만 상상할 수 있다. 예수의 행동은 이 공간과 문을 여는 것이었다. 사제직의 임무는 이 예수를 통하여 마련된 공간을 집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공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사제직이란 예수 안에서 신과 인간의 행동이 겹쳐진 그 공간에 자리잡는 것이다.”

부인인 제인 윌리엄스 역시 신학자로서 인도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런던의 킹스칼리지, 세인트폴신학센터 등에서 방문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신상목 기자

국민일보 2008년 6월 4일치


모든 수요일 – 부활을 향한 길목

Wednesday, February 29th, 2012

전례학자 알렉산더 슈메만 신부(정교회)는 사순절을 간단명료하게 정의했다.

[사순절기는] 여정이요, 순례이다! 이를 시작하면서, 이 사순절기의 “밝은 슬픔” 안으로 첫발을 내딛으면서, 우리는 멀리, 저 멀리 있는 종착지를 응시한다. 그것은 부활의 기쁨이요, 하느님 나라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전례학자 돈 E. 샐리어스(감리교)는 오래된 이 ‘여정’의 비유를 좀 더 내면화했다.

사순절기는 두 겹의 여정이다. 그 하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하느님께서 펼치시는 구원의 손길이라는 신비를 향하여 함께(그리고 홀로서) 걷는 여정이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 인간의 심연을 향한 여정이다.

사순절과 부활의 연결의 돋보인다. 그 여정 길에는 온갖 고통과 수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순절은 겨울을 이겨내는 봄(Lent)이니, 그 봄이 부활처럼 피어오를 것이다.

탁월한 구약성서학자요, 설교가인 월터 브루그먼(그리스도의 연합 교회)은, 자신의 강의와 수업을, 자신이 지은 시나 기도로 시작했다. 사순절기를 걷는 그는 자신의 기도-시 “재를 바르고”(Marked by Ashes)에서 부활과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길인 사순절기의 여정을 ‘재의 수요일’과 한 주간의 ‘가운데’인 수요일의 이미지를 엮어 이렇게 노래했다.

재를 바르고

월터 브루그먼

밤을 다스리는 분, 낮을 지키시는 주님
이날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느니.
이날은 주님께서 주신 여느 날, 우리가 받은 여느 날과 다르나니
이 수요일은 선물과 새로움과 가능성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나니
이 수요일은 하루의 임무를 우리에게 지우나니, 이미 집을 향해 반을 걸었으니
여러 모임과 메모들의 반절을 뒤로하고
여러 전화와 약속들의 반절을 뒤로하고
다음 주일을 향해 남은 반절
반절을 뒤로 한 채, 반절은 벌써 지치고, 다른 반절을 기대하는 날
반절은 주님을 향하고, 나머지 반절은 그렇지 않은 날

이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에서는 이미 멀어진 날
그러나 모든 수요일은 재를 바른 수요일이니
우리는 이날을 입에 든 재를 맛보며 시작하나니
실패한 희망, 깨진 약속들의 재
잊어버린 아이들, 놀란 여인들의 재
우리 자신은 재에서 재로,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리니
우리 혀 위에 있는 재로 우리의 죽음을 맛볼 수 있으리니
우리가 흙이요 재인 것을 깊이 생각하리니
모든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이요, 확신하나니
모든 수요일은 이 메마른 파편 맛인 죽음을 이기는 부활을 기다리는 탓이리니

이 수요일, 우리는 재처럼 창백한 우리의 길을 주님께 드리나니
새로움을 가져다주는 주님의 부활 행진에 드리나니.
해가 지기 전, 우리의 수요일을 받아 주시고, 우리를 부활케 하소서.
우리를 부활케 하시어 기쁨과 활력과 용기와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를 부활케 하시어 두려움 없이 주님의 진리를 살게 하소서.
여기에 오시어 우리의 수요일을 부활케 하시고
자비와 정의와 평화와 너그러움이 넘치게 하소서.
곧 오실 부활하신 주님을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번역: 주낙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