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성공회를 분노케하는 사건들 – 한 동성애자 청년의 죽음

November 15th, 1998

성공회 신자이자 동성애자였던 한 청년의 죽음이 미국 성공회를 들끓게 하고 있다. 지난 10월 12일 와이오밍주 라라미시 근처에서 매튜 쉐퍼드라는 21살난 대학생이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끌려나와 무참히 폭행을 당하고서는 영하의 기온에 버려졌다. 병원에 이송되긴 했지만 5일후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일로 두 청년이 피의자로 체포되고 이들의 여자친구들도 공범죄로 체포되었다. 경찰은 이 일을 강도 행각으로 보면서도 쉐퍼드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희생되었다고 인정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몇 달 사이에 두차례나 같은 이유로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가족이 다니고 있는 성공회 교회에서 복사로 봉사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청년이었다.

쉐퍼드의 죽음은 와이오밍대학교의 동료들 뿐만 아니라 와이오밍주의 정치인들과 백악관에도 충격을 주고 있으며, 미국 성공회 전역에 큰 슬픔과 분노를 가져다 주었다. 쉐퍼드가 입원한 병원으로 급히 달려간 빌 베이컨 신부는 이 사건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온통 붕대로 감싼 그의 곁에 모여 우리는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기도를 바쳤다. 신호가 깜빡이고 산소호흡기 소리가 날 때마다 나는 동성애자들을 비난한 이번 람베스 회의의 결의안이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히 여러 생각 끝에 전원일치를 얻지 못하고 마지막에 붙여 넣은 ‘우리는 동성애자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성적 지향이 어떻든 간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일원으로서 세례를 받고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임을 확신한다’는 말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이 문제를 추상적으로만 생각하고 논쟁하며 이런 결의안 하나가 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잊고 있다. 이 일로 상처받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교회에는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사건에 앞서 텍사스주 자스퍼 카운티에서 살해당했던 장애자이자 흑인이었던 성공회 신자 제임스 버드 주니어가 인종차별주의자의 폭행으로 살해되었던 일이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미국성공회는 ‘증오’과 ‘편협한 신앙’은 죄악이라고 단정하면서 분노하고 있다. 에피스코팔 라이프(the Episcopal Life)지는 사설에서 이제는 인종차별주의라는 단순한 말도 사용하지 말자고 제안한다. 대신에 ‘증오’와 ‘편협한 신앙’이야 말로 온갖 형태의 차별주의를 낳는 근원으로 규정하고, 이를 우리의 신앙적 운동과 행동으로 척결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1995년도 미국 FBI의 집계에 따르면 차별과 증오에 의한 범죄가 9,947건으로 4년전의 4.558보다 높은 수치로 증가했다. 대부분은 흑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였으며, 종교와 관련해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범죄도 13%에 달했다.

캔터베리와 요크의 갈등?

November 15th, 1998

영국 성공회는 캔터베리관구와 요크관구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관구는 서로 갈등과 화합의 역사를 뒤풀이했다. 그런데 최근 요크관구의 데이비드 호프 대주교는 최근 영국 성공회의 성향에 대해서 “지루하고 단조로우며 위원회 중심적이고 교회에 대해서는 실용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상태로는 “어떤 사람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호프 대주교는 “교회란 거룩한 사회이며, 놀랍고 신성한 신비가 깃들어 있고 죄인들과 성인들이 함께하는 진정한 집”이고 규정했다. 이와 함께 그는 교회는 하느님의 비전이 갖는 충만함을 되찾아야 하고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회심시키는 임무가 있다고 말했다.

호프 대주교는 이와 함께 “‘가톨릭’이라는 말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 이슈에 이끌려 다니고 배타적인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통전성과 포용성의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하고, 성공회의 진정한 가톨릭성을 회복하여 교회에 대해서 좀더 “크고, 포용적인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아울러 “성공회의 신학적 사고 방식인 성서와 전통과 이성 사이의 정교한 활동이 중요하며, 이러한 신학적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호프 대주교의 비판과 촉구는 캔터베리 대주교인 조오지 캐리를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이에 대해 호프 대주교의 대변인은 단지 영국 성공회의 임무와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언급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도, 람베스 궁에서 두 대주교의 사이에 갈등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람베스 궁에서는 “두 관구는 신학적인 문제에서 역사적으로 서로 보족적인 관계에 있었다. 호프 대주교는 성공회 가톨릭 전통을, 캐리 대주교는 복음주의적인 전통에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둘 사이의 긴장은 긍정적인 것이라고 본다”면서 갈등설을 부인했다.

사이버 사회와 미래 교회의 전망

November 1st, 1998

15년 후쯤에 우리의 자녀들은 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매주일 단정히 차려입고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을 그들은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물리적인 공간에 대한 기존 개념이 이른바 사이버공간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그 도전에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미국의 한 조사기관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의 인터넷 사용도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그 내용이 우리 한국 교회의 현실과는 사뭇 이질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미래 사회를 대비한 선교 비전을 기획하는 일에서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 같아 들어본다.

이 조사 결과에서 놀랄만한 사실은 응답자 가운데 4%가 종교적이고 영적인 경험을 위해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 수치는 조금씩 올라간다는 것이다. 또한 16%에 이르는 응답자는 향후 5년 내에 지금과 같은 교회에 기초하기보다는 인터넷을 통해서 종교 경험을 하게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대답을 하는 10대 응답자의 대부분이 현재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있는 청소년들이라는 점이다.

청소년들만이 아니다. 이 조사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성인 인터넷 사용자 가운데 12%가 종교적인 목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대부분은 대화방이나 전자우편을 통해서 종교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나눈다고 한다. 이 지표대로라면 미국내 성인 2천 5백만명이 매달 종교적인 의사 표현을 위해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쯤 되면 이러한 사이버 신앙 생활에 대한 연령별 분포가 확연하게 구별된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18-32세의 젊은이들 17%가 이러한 목적으로 통신망을 이용하고 있는데 반해, 33-51세를 통틀어 11%, 52-70세까지는 8%, 71세 이상은 4%만이 통신망을 종교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뜻밖의 사실은 유색인종이 백인들보다 신앙 생활을 위한 인터넷 이용 빈도가 높고(16% 대 10%), 비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인들과 비슷한 수치로 통신망을 이용한 신앙적 추구 현황을 보인다는 것이다(10% 대 14%). 또한 이 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 가운데 60%가 비정기적이나마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매일 이용하는 10대는 9% 정도이다. 이들에게 종교는 인터넷에서 별로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정보를 찾아 보는 것이 가장 빈번한 일이고(93%), 종교적인 관심사에서 찾는 일은 4%정도를 차지한다.

이 조사 기관의 사장인 조오지 바르나씨는 이 조사 결과를 통해서 교회의 미래에 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 조사를 통해 볼 때 2010년쯤에는 10%에서 20%에 이르는 사람들이 종교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선적으로 인터넷만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이 사람들은 절대 교회 건물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을 포함한 다른 수단을 통해서 종교적이고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종교 지도자들이 기존 교회에서 발을 돌리게 될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이렇게 등장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어떤 도움을 줄지는 고민하다 보면, ‘사이버 처치'(SyberChurch)를 두고 ‘참’ 교회냐 아니냐는 논쟁은 벌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이 사이버 처치에 대해서 못마땅해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윌로우 크릭 코뮤니티 교회가 지난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찾아나서는 교회’라는 구상을 했을 때, 기존 교회 지도자들은 이를 쓸모 없고, 가능하지도 않으며 성서적인 신앙에도 부합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거부했었다. 사이버 교회도 오늘날 기존 교회에서 이런 대접을 받을 것이 뻔하다.”

바르나씨는 또한 젊은 사람들이 현재 신앙적인 목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는 조사치가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통신망을 이용하고 있다. 대화방에 드나드는 상당수가 신앙과 영성, 종교와 의미, 진리와 관련된 대화를 나눈다. 이야말로 교회에서 마련하고 부추기는 대화의 내용이 아닌가? 청소년들은 이러한 대화를 종교적인 표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종교적이고 영적인 문제에 관련된 대화를 하면서 공동체와 영적인 신앙에 대한 감각을 자신도 모르게 키워나가는 것이다. 그 결과는 전통적인 교회가 마련하려고 했던 내용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바르나씨는 이러한 결과와 통찰을 바탕으로 미래 교회의 다양한 구조와 모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새로운 조사 결과는 현재 미국 교회의 구조가 이미 급속한 변화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만일 사이버 교회를 자신들의 ‘본 교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치에다가 독립적인 가정 교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과, 교회와 담을 쌓아가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산한다면, 15년 이내에 미국인의 대부분은 전통적인 교회 모습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사람들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개중에 몇몇 교회들이 좀더 다양한 청중과 신앙의 표현들을 허용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명확한 영적인 책임으로부터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 만연하게될 신학적 이단으로 빠질 공산도 크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 씨름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중단시키는 일이 아니라, 굳이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새로운 형식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노력이다. 오히려 도전은 이러한 새로운 모습의 교회가 기존 교회의 근거가 되는 근본적인 신학과 원리 안에서 어떻게 조정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