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공부’와 공동체

Wednesday, January 15th, 2014

멀리서 안부를 묻는 어느 벗된 신부님의 편지에 답장했다. 공부하는 일에 관한 고민과 여러 어려움이 담겨진 편지였고, 나를 여러모로 기억하며 격려해 주는 편지였다. 나 역시 깊이 공감하고 그분을 응원했다. 그러나 먼저 된 사람으로서 이렇게 밖에 적어 보낼 수 없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편지는 늘 나 자신에게도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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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바실, 요한 크리소스톰, 신학자 그레고리)

*** 신부님, 잘 지내셨지요? 자세한 소식을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울러 [오래 전 제가 진행한 전례 워크숍과 특강 등에 관한] 옛 기억을 되새겨 주시니 반갑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부끄럽게도, 지난날을 돌아보면, 지금은 그 열정이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에 하늘을 멍하게 쳐다볼 때가 많습니다. 특히 지난 5년은 제게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안팎[에서 비롯한]… 깊은 절망에 저 자신이 눌리고 말았습니다…

이미 여기저기서 밝힌 바와 같이, 지난 10여 년의 미국 생활은 제게 여러 가지로 축복이요 은총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분들을 만나서 깊은 공부와 경험을 한 것이 그것이고, 공부와 더불어 사목 현장에서 발을 떼지 않은 것도 그렇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난한 신자들과 버텼다는 것이 스스로 자랑스럽고, 그나마 하느님 앞에 덜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찌보면 지금처럼 제 공부의 진척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성직자로 불린 이상 어떤 이유로도 사목 현장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

교회의 변화는 그야말로 교회의 현장에서 일어나지, 신학교나 신학자의 책상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 혹은 신학자는 [하느님의 백성이] 현장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경험을 좀 더 보편적인 언어로 정리해 내고, 역사와 전통 안에서 그 맥락을 이어주고 새로운 대화의 길을 열어주는 일에 종사할 뿐입니다. 이 순서가 잊히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회와 신학, 특히 신학은 ‘지식인의 유희’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교회 현장을 누가 점령했는지 깊이 살펴볼 일입니다.

특히 신학교는 “성직자 양성 기관”이며, 신학을 가르치는 이는 그 일에 복무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르치는 신학자”의 임무이며, 이 임무를 하지 않을 요량이면, 그냥 “연구하는 신학자”로 남으면 될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직자 양성 과정에 대해 깊이 살펴보는 기회를 얻길 바랍니다. 학위는 개인적인 성취이지, 교회의 성취는 아닙니다. 그것이 교회의 성취가 되려면 교회 현장과 신앙 교육에 연결돼야 하고, 좁게 보더라도 성직자 양성 과정과 연결돼야 합니다.

[…] 여러 식으로 한국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 공통적인 아쉬움은 교회에 좀 먹는 반지성/반신학주의와 신학교의 전혀 헤아릴 길 없는 신학 교육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 편견이겠으나, 한국 성공회의 실패는 바로 이런 지점의 결핍에 있습니다. 그 와중에 교회는 더욱 피폐해져 갑니다. 더 나빠진 한국 교회로 돌아가는 마음이 참으로 무겁습니다. 어쨌든 신학 교육과 성직 양성 과정에 대한 고민을 계속 고민해 주세요. […] 적어도 저는 여기에서 그 점을 깊이 경험하고 대화한 것을 큰 다행으로 여깁니다.

‘꼰대’ 같은 소리를 지껄여 대서 미안합니다. 신부님께서 깊이 생각해 주시리라 믿기에 드린 말씀일 뿐입니다. […]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적었다고 헤아려 주세요.

평화를 빕니다.

주낙현 신부 합장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와 세계 성공회 10년” 블로깅 목록

Tuesday, March 20th, 2012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에 대한 사적인 잡감을 적기 전에, 지난 10년 동안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가 다뤄야 했던 여러 문제들과 그에 대해서 이 블로그에 기록한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일별하여 원래 글에 연결한다.

1.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와 그의 신학 – 몸의 신학

덧붙이자면,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는 웨일스 사람으로, 역대 캔터베리 대주교 가운데 사상 처음으로 ‘영국인’(English)이 아닌 대주교였다.

한편, 그의 글 “몸의 은총”(Body’s Grace)은 기존의 관습적 교리를 넘어서서 인간의 성, 나아가 동성애 문제를 창조 신학과 전례 전통 안에서 풀아가면서 사고의 전향을 제시했다. 그는 그동안 교회와 신학에서 “‘몸’에 대한 논의가 너무도 ‘성’ 문제에 집착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뒤, 논의의 주제와 사고방식의 전환을 제안했다. 그 방향을 요약하면 이렇다.

  • 이성애/동성애에서 세례와 결혼으로
  • 개인적 정향에서 공동체적인 정향으로
  • 유전자 본질주의에서 이방인의 본질 문제로
  • 만족의 방향에서 성화의 방향으로
  • 성적 정향에서 성사적 정향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몸’에 대한 이해는 하느님의 창조 신학에 기반해야 하며, ‘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이신 새로운 몸의 창조를 ‘전례적’으로 형성하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2. 동성애자 주교직 성품과 세계 성공회의 정체성

그러나 미국 성공회 뉴햄프셔 교구에서 스스로 동성애자로 밝힌 진 로빈슨 신부를 주교로 선출하고, 연이어 관구 의회에서 그 선출을 인준, 이후 주교 성품이 있자, 세계 성공회 전반에 걸쳐서 찬반 논란이 거세져 세계 성공회 분열이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3. 윈저보고서와 ‘성공회 계약’

캔터베리 대주교는 세계 성공회에서 여러 성직자와 신학자, 신자 대표들로 구성된 특별 위원회를 만들어, 서로 다른 상황과 여러 의견을 함께 견디어 나가는 방법을 모색하게 했다. 이 특별위원회는 결국 ‘윈저 보고서’라는 문서로 세계 성공회의 일치를 위한 권고 사안을 발표하고, “성공회 계약” 문서를 만들어 이에 따라 성공회의 일치를 모색하자는 제안한다. 그리하여 다시 성공회 계약 문서 위원회가 구성되고 몇 차례에 걸쳐 초안 작성을 한 뒤 회람했다.

4. 2008년 람베스 회의 – 인다바, 그리고 경청 과정

10년마다 캔터베리 대주교의 소집으로 열리는 세계 성공회 주교회의인 람베스 회의에서는 그전과는 달리, 어떤 결의안도 내놓지 않고, 세계 성공회가 당면한 여러 주제와 사안들에 서로 나누는 경청의 시간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몇몇 관구들과 주교들은 동성애자 서품 및 동성 간 시민 결합 축복에 반대하고, 이를 시행한 관구 교회들과 함께 할 수 없다면서 람베스 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따로 모임을 가졌다.

5. 글로벌 사우스 – ‘자기 파문’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라 지칭되는 보수파 관구 및 주교들의 모임은 람베스 회의를 보이코트하는 한편, 캐나다와 미국 성공회에 명시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은 캔터베리 대주교도 비판하고 나섰으며, 람베스 회의에 참석한 이들 가운데서도 대주교가 집전한 성찬례에서 영성체에 참여하지 않았다.

6. 여성 주교직과 교회 일치

한편, 천주교 바티칸 교황청은 동성애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 성직에 대한 반대때문에 성공회에서 탈퇴한 성공회 그룹을 포용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성공회는 물론 천주교 안팎에서도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한편, 캔터베리 대주교는 로마에서 초대받아 교회 일치 모임에서 성공회의 길, 교회의 일치의 방법, 그리고 여성 성직에 대한 성공회의 경험과 입장을 분명한 견해를 피력했다.

7. 캔터베리 대주교와 대안 사회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영국 사회와 자본주의의 세계 질서, 그리고 자본주의적 세계 안에서 종교와 신앙의 왜곡 문제들을 살피며 신학적으로 비판적인 견해를 여러 번 드러냈고 여러 논란이 뒤따랐다.

마르크스는 옳았는가? – 테리 이글턴

Tuesday, April 12th, 2011

역자 주: 이미 한국에서 많은 독자를 얻은 테리 이글턴이 최근에 <<왜 마르크스는 옳았는가?>>를 펴냈다. 그 책 전체를 살피기 전에, 미국 천주교의 진보적인 잡지 Commonweal 에 실린 이글턴의 <마르크스는 옳았는가? – 아직 늦지 않은 질문>을 접했다. 출간된 책과 비교하니 1장의 부분을 순서를 조금 재편집하여 실은 것이다. 이 글을 거의 같은 때에 접한 @lightfaraway 님과 함께 번역하기로 했다. 알아보니 한국에서는 그 책 전체가 번역될 것이 확실하단다. 오히려 안심이다. @lightfarway 님이나 내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번역의 허점이 많을 테니 말이다. 다만, 전문가의 전체 번역이 나오기까지 맛뵈기가 되었으면 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린다. @lightfarway 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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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옳았는가? 아직 늦지 않은 질문

테리 이글턴

35년 전만 해도 미국과 유럽의 많은 사람은 마르크시즘에 기꺼이 귀 기울이려 했다. 겨우 10년이 지나자 마르크시즘은 신봉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거의 모두가 동의했다.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변했을까? 어떤 새로운 발견으로 마르크시즘 이론의 오류가 입증된 것일까? 마르크시즘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더는 관심이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그 문제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일까?

사실 문제의 그 시기에 무언가 일어나긴 했다. 1970년대 중반 이래로 서구의 체제는 몇몇 중대한 변화들을 겪었다. 전통적인 제조 산업에서 상업주의, 커뮤니케이션, 정보 기술, 서비스 산업과 같은 “탈-산업적” 문화로 바뀐 것이다. 소규모, 탈중심적, 다목적, 비위계적 기업들이 유행했다. 시장의 규제는 철폐되었으며, 노동계급 운동은 야만적인 법적-정치적 공격에 내몰렸다. 지역적, 젠더, 인종적 정체성은 더욱 꾸준히 성장했지만, 전통적인 계급 충성도는 약해졌다.

새로운 정보 기술은 이 체제의 세계화가 증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한 줌의 초국적 주식회사들은 가장 손쉬운 이윤을 추구하면서 전 지구를 가로질러 생산과 투자를 분배했다. 상당수의 제조공장은 “저개발” 세계의 저임금 지역을 외주처로 삼았다. 이로써 일부 편협한 생각을 하는 서구인들은 중공업이 지구 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 결론 내렸다. 이러한 전 지구적 이동에 뒤이어 대규모 국제적 노동 이주가 따랐다. 그와 더불어 빈곤한 이민자들이 더 나은 경제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인종주의와 파시즘이 부활했다. “주변부” 국가들이 저임금 노동, 사유화된 시설들, 삭감된 복지, 초현실적으로 불평등한 무역 조건에 얽매여 있었다면, 메트로폴리탄 국가의 수염을 기르신 사장님들은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를 풀고, 사원들의 정신적 웰빙에 조바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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