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잡감 1 – 성직자와 평신도

Thursday, April 19th, 2012

성소 주일을 안내하는 공문과 공동 설교문이 바다를 건너 눈앞에 펼쳐진다. 늘 9월에 지키던 관행을 버리고 4월 말 성공회대학교 설립일 언저리 주일로 옮겼다는 것과, 올해는 마침 부활 4주일 ‘착한 목자 주일’과도 뜻이 통하며, 연합 미사가 아닌 개별 교회에서 지키기로 했다는 안내다. 딸려 온 공동 설교문은 서품받은 성직자들과 미래에 서품받기 위해 훈련하는 신학생들에게 맞춰져 있다. ‘잠깐만!’ 하며 생각을 더듬는다.

성소(聖召)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거룩한 부르심’일 텐데, 그 부르는 주체는 하느님이시요, 그 부름의 내용은 새로운 약속을 받고 그에 다른 임무를 얻어 새로운 길을 떠나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성소를 이끄는 주체와 내용은 분명하되, 그것을 듣는 대상은 모호하다.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불러서 새로운 여행을 떠나라고 하셨다. 모세는 불타도 사그라지지 않는 떨기나무를 통해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생하는 히브리(합비루)들을 해방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모세는 지도자이지, 제사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사장직은 모세의 형 아론의 몫이었다. 아론에게 어떤 거룩하신 부르심의 경험이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나이 어린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가 듣지 못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다. 적어도 하느님의 부르심과 제도적 성직은 별개일 수 있다는 말이다. 더 분명히 말하면, 성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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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대사제로 유형화한 것은 신약성서 히브리서이다. 교회는 역사 속에서 이 유형화를 확대하여 예수의 제자들에게 적용하고, 그 제자의 계보 속에서 성직의 위계와 그 의미를 덧붙였다. 이 유형론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면서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연 일로 평가할 수도 있지만, 본래 ‘성소’의 의미를 매우 위축시키는 결과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제를 ‘제 2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로 부른 해묵고 허황된 주장이다.

성소의 본래 의미를 한편으로 좁게 해석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 좁게 해석된 의미를 과대평가해서 나온 행태가 바로 성직자주의(clericalism)이다. 이 성직자주의는 교회를 망치는 관료주의와 권위주의를 아우른다. ‘주님의 종’ ‘하느님 백성을 위한 봉사’라는 수사 뒤에는 온갖 관료주의와 독재가 판을 친다. 소위 ‘만인사제론’으로 불리는 ‘신자의 보편적 사제직’을 강조하는 ‘한국 개신교’에서 오히려 더 못된 독재자가 나오는 것은 단순한 아이러니가 아니라, 이런 뿌리 깊은 왜곡의 역사에서 자주 나타나는 일이다.

성직자의 성소에 맞춰진 한국의 ‘공문과 설교문’은, 평생 ‘평신도 사목자’로 식별하여 헌신한 앨다 모건 박사(Dr. Alda Morgan)의 인터뷰 기사와 겹친다. ‘앨다’와 나눈 사적인 인연과 훈훈한 경험을 세세히 적을 필요는 없지만, 통찰력 있는 교육사학자요, 따뜻하고 지혜로운 사목자로 그를 기억한다. 이번 인터뷰를 읽기 전까지는 그의 ‘성소’와 그 내력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내력도 내력이려니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고민하고 도전하는 그의 메시지가 무척이나 뼈 아프다. “1976년 미국 성공회 관구 의회에서 여성 성직 서품이 통과된 후, 나는 답을 얻었다. 성직자의 교회 안에서 평신도 전문가로 남는 것.”

나는 여성 성직, 특별히 세계 성공회와 한국 성공회에서 여성 성직의 실행을 마음 깊이 지지하거니와, 좀 더 넓혀서 성소 식별의 문제, 하느님 백성의 보편적 사제직, 그리고 서품받은 제도적 사제직, 사제 양성 문제를 사적인 공부와 고민의 중요한 주제로 삼고 있다. 이 틈에 늘 나를 괴롭히는 것은 성소에 대한 좁은 이해와 성직자주의라는 현상,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결과들이다.

모건 박사는 젊은 시절 미국 성공회 내 여성 평신도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계속된 식별 속에서 평신도 사목자가 그의 성소인 것을 알았다. 당시 미국 성공회 본부의 지원 속에서 여러 여성 단체들이 활발하게 움직였다고 회고한다. 많은 여성이 교회의 신앙 교육자로, 사회 선교 단체의 일꾼으로, 그리고 학원 선교의 담당자로 일했다. 그런데 여성 성직이 실행되면서 일대 변환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여성 평신도 사목자들이 하던 일을 모두 여성 성직자들이 맡게 되었고, 여성 평신도의 활동은 위축됐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 성직자들은 그의 좋은 친구들이었고 훌륭한 사제들이었다.

모건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여성 성직 서품 후] 교회 안에서 여성이 지도력을 얻게 되었다. 교회 언저리에서 돕는 일을 하다가 성직자가 된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선교에서 정말로 많은 측면에서 긍정적인 일이다. 너무 오래 지체됐던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여성 성직 서품은 평신도 여성이 교회에서 전문적으로 봉사할 길을 막아 버렸다. 기이하게도, 여성이 자기만의 조직을 꾸려가야 했던 때에는 다양한 여성 활동 단체를 통해서 서로 돕고 응원하는 공동체의 감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안 보인다. 과거를 돌아보니, 우리가 가졌던 그 열정과 활력, 그것이 너무도 아쉽다.

자주 밝힌 바 있거니와, 남성으로서, 그리고 상대적으로 별 어려움 없이 사제가 된 사람으로 여성 성직에 대해서 이런 말을 전하기가 참으로 미안하다. 여성 사제 서품에는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분투했던 많은 여성과 여성 성직 후보자들의 땀과 눈물이 흥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적 사제직으로 서품받은 한 사람으로서, 성직자라면 쉽게 물들기 쉬운 성직자주의의 위험,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평신도 성소와 사목의 축소 등을 아프게 돌아봐야 한다. 이는 이제 여성과 남성의 문제가 아니라, 성직자와 평신도의 문제이다. 이 부분에서 바른 자리를 찾지 못하면 이 사안은 교회를 여러모로 위태롭게 하는 사단이기 쉽다.

21세기의 신학자 –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

Friday, March 16th, 2012

남의 글을 내 블로그에 그대로 퍼오는 일이 거의 없으나(번역 제외), 기사 원문이 신문사 웹페이지에서 사라진 듯하여, 글쓴이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옮겨 놓는다. 2008년 국민일보에 난 “21세기의 신학자들 36: 로완 윌리엄스 세계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이다. 기사 전문 게재에 관련하여 기사를 쓴 국민일보 신상목 기자에게 연락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 기사의 배경과 사적인 인연을 밝히면 이렇다. 2008년 어느날 국민일보 신상목 기자가 전화를 했다. 성공회에서 글을 써줄 이를 찾지 못하던 참에, 당시 한국에 잠시 방문하던 내게 연락이 닿아 글을 요청했던 전화로 기억한다.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부탁인지라, 할 수 없이 긴 통화와 더불어 내 블로그의 여러 글을 알려 주었다. 그때 나눈 대화를 충실히 반영한 글이라 생각한다. 이 기사의 로완 윌리암스 주교 인용은 로완 윌리암스, 진 로빈슨, 그리고 사제직 에서 나온 것이다.

21세기의 신학자들 36: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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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성공회의 대표인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암스(57)는 대주교이기에 앞서 세계적인 신학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2002년 캔터베리 대주교로 선출되기 전까지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영국 남부 웨일스에서 가톨릭 배경을 가지고 태어난 그는 성장하면서 성공회 신자가 되었고,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학자의 길로 접어든다. 특히 26세의 젊은 나이로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세계적 신학자로서의 면모를 일찌감치 발휘했다. 박사논문은 20세기 러시아정교회 신학자인 블라디미르 로스키를 연구하면서 삼위일체 신학을 주제로 썼다.

그는 영국 학계를 통틀어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에서 동시에 정교수 자격을 획득한 유일한 사람으로 기록됐다. 학문적 안목이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고, 영성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의 강의와 저서를 접한 사람들은 “빈 자리 없이 꽉꽉 채워져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평한다.

영성에 대한 관심은 ‘기독교 영성입문(The wound of knowledge)’을 통해 기독교 영성사를 정리했을 정도로 조예가 깊고, 매일 30분씩 기도 시간을 따로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옥스퍼드대학 교수 시절 헨리 나우웬처럼 삶 속에서 신학을 실현하고 싶다고 피력한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는 또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신학자이자 저술가이다. 수많은 신학적 분야와 교회일치 문제 등에 깊이 관여해 왔고, 철학과 신학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연구를 거듭해왔다. 특히 초대교회와 교부신학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 교회사 연구를 통해 교부신학과 이에 따른 신학적 논의를 전개해왔다. 또 정교회와의 인연으로 현대 러시아정교회 신학자들과 대화를 시도하면서 개혁신학을 변호하기도 했다.

그의 저서 ‘기독교신학'(On Christian Theology – 사진)은 신학적 입장을 잘 정리한 대표서로 조직신학에 대한 다양한 이슈와 논쟁에 대한 답변을 모은 것으로 유명하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이후는 다양한 사회 윤리적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신학자이자 사제이기도 한 그는 영성적 이해를 바탕으로 사제직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했는데, 그의 통찰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이해를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성공회 주낙현 신부는 “사제직에 대한 윌리엄스 대주교의 시각에 자신의 사제직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윌리엄스 대주교는 ‘현대문화 속에서의 그리스도인 사제직’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 안에서 보이는 하나님은 자신의 ‘영역’ 수호를 거절한 분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스스로 영역 수호를 거절하는 인간의 삶 속에, 그리고 그 인간의 삶을 통하여 지극히 역설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은 존재한다. 이 삶 속에 하나님은 모든 순간과 생각과 행동에 침투하시며, 그 삶을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신다. 십자가 사건의 결과 더 이상 다시 닫힐 수 없는 하늘과 땅 사이에 어떤 열린 문이 마련되었다. … 이 공간 속에서 인간은 오직 주어진 것들에 마음을 열며,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만 멈추지 않는 사랑 안에 머무르신다. 그 사랑은 인간의 세계와 인간의 언어로는 오직 ‘상처입기 쉬움'(vulnerability)을 통해서만 상상할 수 있다. 예수의 행동은 이 공간과 문을 여는 것이었다. 사제직의 임무는 이 예수를 통하여 마련된 공간을 집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공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사제직이란 예수 안에서 신과 인간의 행동이 겹쳐진 그 공간에 자리잡는 것이다.”

부인인 제인 윌리엄스 역시 신학자로서 인도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런던의 킹스칼리지, 세인트폴신학센터 등에서 방문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신상목 기자

국민일보 2008년 6월 4일치


캔터베리 대주교는 ‘좌파’? – 공동체와 민주주의

Thursday, June 9th,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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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영국의 New Statesman 지(紙)에 쓴 글을 두고 영국 내 정치와 언론에서 논란이 거센 모양이다. 그의 글과 논란을 읽고 얻은 생각을 정리한다. 모처럼 긴 글이어서 차례를 먼저 적는다.

  1. 세속 정치와 성직자, 그리고 ‘정교분리’
  2. 성공회 전통 안에서 사회에 대한 시각과 실천
  3. 캔터베리 대주교들의 대(對) 사회 발언과 실천
  4.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는 ‘좌파’? – 공동체와 민주주의

1. 세속 정치와 성직자, 그리고 ‘정교분리’

성직자는 ‘세속’ 정치에 관하여 발언하면 안 되는가? ‘정교분리’는 성직자의 ‘세속’ 정치에 대한 발언을 막는 논리인가?

다른 교단의 입장은 차치하더라도, 성공회 전통에서 보자면, 성직자가 세속 정치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점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성공회 전통과 역사와 신학을 다시 배워야 한다. 진심이다.

한편, ‘정교분리’라는 논리는 성직자의 세속 정치 참여, 혹은 그에 대한 발언을 막는 논리가 아니다. ‘정교분리’는, 한마디로, 특정 종교의 이념과 신념 체계를 정치에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로 발전된 것이다. 종교가 세속 정치에 발언하는 것을 반대하는 논리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어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정교분리’ 논리가 악용되는 사례는 미국과 한국의 보수적 교회에서 뚜렷한데, 실제로는 보수 교회들과 지도자들이 이 논리를 특유의 성속/영육 이원론과 섞어서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는 데 이용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야말로 가장 질 나쁜 정치 참여를 한다.

세계 성공회의 최고 지도자요, 영국 성공회를 치리하는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최근 UK 연립 정부(보수당-자유당)의 정책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해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대정부 발언을 두고 정치인들과 언론이 찬반으로 다투고 있지만, 캔터베리 대주교가 정치에 대해 발언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소리는 없다. 그의 비판 내용과 논리가 바른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서로 논쟁할 뿐이다.

2. 성공회 전통 안에서 사회에 대한 시각과 실천

그 내용을 살피기 전에, 한국 성공회 신자들은 캔터베리 대주교의 대정부 비판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그동안 한국 사회와 정치가 거의 60년대 수준으로 뒷걸음치면서, 교회 역시 보수화 물결에 올라타고 있다. 성직자들이 특정 정당과 정부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두고, ‘정치 발언’을 그만두라는 불평의 언성이 높다고 한다. 나 자신이 한 명의 신자요 사제로서, 이 현상을 바라볼 때, 두 가지 근거를 두고 생각한다. 첫째는 그리스도인 됨의 시작인 세례 언약이요, 둘째는 성공회의 경험과 전통이다.

첫째, 모든 신자는 세례 언약을 한다. 부활 밤 전례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세례가 있을 때면, 우리는 이 세례 언약을 갱신이다. 그 마지막 질문과 다짐은 이것이다.

여러분은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힘쓰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겠습니까?
예, 하느님의 도우심을 그렇게 하겠습니다.

신자인 성직자는 이 세례 언약에 근거를 두고, 성직 서품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권고와 다짐을 받는다.

부제는… 교회의 신자들과 함께 가난하고 소외당한 이웃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세상과 교회를 섬기며 봉사해야 합니다.

그대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한 이웃을 돕고 보살피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제는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를 선포하며 이 세상을 지키는 파수꾼과 청지기로서 하느님의 백성들을 이끌어 영원한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대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새 언약의 성사를 거행하여 이 세상이 하느님과 화해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도록 힘쓰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기서 다짐하는 언약이 세상의 정치와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둘째, 성공회의 역사적 경험과 전통은 세상 정치에 대한 무관심보다는, 오히려 그에 대한 참여가 각별했다. 성공회가 시작된 ‘영국’ 성공회가 여전히 국교이다(현재 세계 성공회에서 영국 성공회만이 영국의 국교일 뿐,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교파 교회로 존재한다). 그 역사적인 발전에서 나타난 관계 변화를 고려하더라도, 이는 교회가 세속 정치와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대표적 사례이다. 종종 잘못 이해하고 있는 ‘국교'(Established Church)는 원래 ‘국민 교회'(National Church)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했다. 나중에 이것이 ‘국가 교회'(State Church)로 변하면서 문제가 되긴 했지만, 성공회는 이 ‘국민 교회’라는 생각으로 교회의 사회 참여, 특히 예언자적 참여의 경험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 경험 탓에, 성공회의 신학과 영성 전통 어디를 봐도, 일상의 삶, 사회 정치적인 삶과 동떨어진 주장이 없었다. 발생 당시의 영국 복음주의가 얼마나 사회 참여와 그 개혁에 적극적이었는지, 성공회-가톨릭주의자들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실천을 통해서 그 신학과 영성을 얼마나 깊이 발전시켰는지를 보면 안다. 성공회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3. 캔터베리 대주교들의 대(對) 사회 발언과 실천

이런 점에서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대정부 비판은 새로울 것이 없다. 오히려 그동안 왜 주저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역대 캔터베리 대주교 가운데 신학적으로, 영적으로, 사목적으로 훌륭했노라고 기억되는 분들은 대체로 세속 정치에 대한 발언이 더욱 강했다.

윌리암 템플(William Temple) 대주교는 2차 세계 대전 중인 영국 국민을 위로하면서, 전후 UK 복지 국가 모델의 신학적 기초를 놓았다(Christianity and Social Order, 1942). 그는 주교로서는 처음으로 한때 노동당 당원이기도 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교회는 자기 내부의 일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지상의 유일한 사회이다.”

최근 예로, 로버트 런시(Robert Runcie) 대주교는 마가렛 대처 총리와 사사건건 부딪혔다. 영국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며, 대처 정부의 강압적인 노동 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대처 총리는 당시, 런시 대주교의 정치적 비판을 두고 “그러면, 광부들과 석탄을 먹고 살던가” 라고 대꾸하여 사회적인 공분을 샀다. 또, 영국이 아르헨티나와 벌인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대처 총리가 ‘승전 기념 미사’를 드리자고 제안하자, 런시 대주교는 하느님 앞에서 전쟁의 승자와 패자는 없으며, 오직 전쟁의 희생자들만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는 양국 ‘희생자들을 위한 기억의 위령 미사’를 드렸다.

4.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는 ‘좌파’? – 공동체와 민주주의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이번 대정부 비판에서는 ‘좌파’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뜻이 비친다. 이 말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 정치 세력들이 역사 속에서 좌파가 추구했던 가치를 무시해서 문제가 생겼다고 보는 것이다. 그 가치는 바로 그리스도교 전통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공동체’에 대한 생각과 잇닿는다. 이 가치를 위해서라면 당신 자신이 논쟁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다.

윌리암스 대주교는 현재의 UK 연립 정부(보수당-자유당)가 추구하는 ‘큰 사회'(Big Society) 정책이 매우 모호하며, 이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검토를 거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검토되지 않고 모호한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지난번 정권이 잘못해서 그렇다,” “경제가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만 둘러댄다고 비판한다. 특히 교육 정책, 복지 정책 등에서 가난한 이들의 삶이 위협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 사회가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만들어 온 바른 가치, 즉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이 ‘좌파’적이라면, 그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현 정부를 성토하겠다는 의지마저 읽힌다.

윌리암스 대주교가 문제라고 지적한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그 정책에 대해 평가할 능력이 없다. 다만, 윌리암스 대주교가 지적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공동체에 대한 가치 회복은 우리 사회와 교회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점을 우리 안에서 성찰하여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면, 우리 사회나 교회는 계속해서 가난의 희생자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세례 언약에서 다짐한 “정의와 평화”는 고사하고, 맛을 잃어 길에 버려져 밟히는 소금 처지가 될까 두렵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종교와 신학을 온정주의라는 차원에 말하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된다. 우리가 되새겨야 할 신학 전통이 있다. 이 전통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온정의 대상이 아니라, 지탱 가능한 공동체의 본질로 본다. 이 가난한 사람들은 마치 몸을 도는 피와 같은 존재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만들어 내는 힘이다. 이 전통은 다른 사람들과 집단의 능력을 세워준다. 그리하여 이들이 다시 사회에 생명과 책임을 가져다주도록 한다. 놀랍게도 이것이야말로 성 바울로 사도가 생각했던 공동체이다. 하느님은 이런 공동체를 원하신다

민주주의는 이런 이상을 평가하는 잣대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정책에서라도 민주주의는 핵심적인 문제이다. 즉, 민주주의를 통해 한 사람과 집단이 얼마나 넉넉하게 참여하는가, 그리하여 장기적으로 다른 사람과 집단에 풍요로운 복지를 제공하도록 하느냐는 문제이다. 초기 생디칼리스트의 말을 빌자면, 국가를 ‘공동체들의 공동체’로 보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이나 다수결주의를 넘어서며, 지역이기주의를 초월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유하는 필요와 희망과 진정한 포용을 위한 실질적인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후원: 한누다 교우 (서울교구, 강화 넙성리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