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신학 사이 – 성 십자가 축일

Sunday, September 14th, 2014

역사와 신학 사이 – 성 십자가 축일 (9월 14일)1

십자가는 그리스도교 신앙 가장 중심에 우뚝 선 역사의 현실과 신학이며, 오늘 우리 삶의 이정표입니다. 십자가 축일은 예수님께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사건을 십자가를 통해 기억하는 날입니다. 십자가라는 죽임의 도구가 어떻게 용서와 화해를 마련하는 구원의 도구로 변했는지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십자가의 역사와 신학을 잊을 때 그리스도교 신앙도 변질한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날입니다.

로마 제국의 십자가는 강대한 권력을 상징합니다. 그 권력은 자국민이 아닌 식민지의 ‘타인’을 압제하고 처형하는 힘입니다. 로마는 자국민에게는 고통이 덜한 참수형을 적용하고, 식민지 지역 사람들에게는 훨씬 고통스러운 십자가 처형을 적용했습니다. 로마 권력이 예수님께 들씌운 죄목은 십자가 위에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I.N.R.I.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 예수님의 언행이 어떤 권력에는 불온하고 위험한 정치적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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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는 폭력과 죽임의 상징을 용서와 화해, 생명의 상징으로 바꿉니다. 역사의 현실에서 거듭되던 폭력과 죽임의 악순환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멈춥니다. 이 지점에서 죽은 십자나무가 생명을 품은 십자나무가 되어서 세상의 생명을 위한 열매를 맺습니다. “보라, 십자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걸려 있네.” 여기서 새로운 삶의 길을 발견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 생명 행렬에 참여하여 기꺼이 세상의 질서에 거슬러 삽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는 말의 참뜻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신앙입니다.

역사는 역설의 반복입니다. 십자가 축일도 이 역설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4세기에 이르러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황제 플라비우스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는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한 십자가를 찾아 나섭니다. 콘스탄티누스와 헬레나는 예루살렘에서 ‘진짜 십자가’를 발굴했다는 소식을 듣고 십자가가 섰던 자리와 예수님께서 묻히셨던 자리에 ‘예수의 거룩한 무덤 성당’을 지어 봉헌합니다. 326년 9월 14일의 일입니다. 이후에 십자가 경배를 성 금요일에 거행하는 관습도 생겨났습니다.

제국의 국교가 된 그리스도교에서 십자가는 그 참혹한 역사를 잊고, 종교적 의미만 남긴 십자가 신학으로 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육신하여 역사를 사셨던 예수님을 잊거나 그분의 고통과 죽음이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고서는 신앙과 신학은 제대로 서지 않습니다. 십자가가 한 개인의 내면적 종교심과 신심을 위한 방편으로 전락하면 중세 교회의 폐해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성당과 예배당 안팎, 장신구나 기도 묵주의 십자가에서 여전히 ‘타인’의 아픔과 눈물과 피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멈춥니다. 그러니 십자가 축일에 우리는 다시 사도 바울로 성인의 고백을 되뇌며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갈라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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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낙현 신부, 서울 주교좌 성당 주보 9월 14일 치(↩)

폭력의 고발 – 세례자 성 요한 참수 축일

Tuesday, August 26th, 2014

세례자 성 요한의 참수 (8월 29일)1

목을 잘라서 사람을 죽이는 참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처형 방법입니다.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지만, 보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주고, 당하는 사람을 지독히 경멸하는 방법입니다. 20세기 초에야 거의 없어진 이 흉악한 일이 지금도 극단적인 이슬람 국가 몇 나라에 남아 있습니다.

참수는 우리 역사 안에 크고 깊이 새겨진 상처와 아픔을 되새기게 합니다. 조선 말기의 폭정과 수탈에 시달리다 못해 일어섰던 동학농민전쟁의 전봉준 장군과 지도자들이 참수를 당했습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는 한국 독립군들의 목이 일본 군인의 무자비한 칼부림과 작두질로 땅에 뒹굴어야 했습니다. 권력자에게는 처형이지만, 힘없는 이가 보기에는 살인입니다. 이 몸서리쳐지는 살인이 세례자 요한에게 일어났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뱃속 시절부터 예수님의 친구였고, 커서도 깊은 우정으로 하느님 나라를 향한 꿈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꿈은 다양한 권력으로 사람을 억압하며 짐짓 거룩한 체하는 사람들이 회개하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위선과 악행을 회개하며 물 속에 들어가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이 세례 사건으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활동이 더욱 깊이 연결됩니다. 우리 신앙인은 세상에서 계속되는 억압과 불의와 위선을 비판하고 저항하라는 사명을 받고 기름 부음(크리스토스)을 받은 새사람, 작은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작은 그리스도가 되는 사건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나라 사건의 전면에 섰습니다. 불의하고 부도덕한 왕에 맞섰습니다. 그 결과, 그는 참혹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헤로데 왕은 먹고 놀며 춤추는 연회장에서 내기의 노리갯감으로 세례자 요한의 생명을 앗았습니다. 낙타 털옷과 들꿀로 살던 세례자 요한과 헤로데의 화려한 옷과 기름진 잔칫상이 큰 대조를 이룹니다. 쟁반에 올려진 세례자 요한의 마르고 차가운 얼굴과 낄낄거리며 만족하는 왕의 반지르한 얼굴 차이가 선연합니다.

오늘 우리 세계에도 세례자 요한의 운명을 나누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직도 근본주의 종교 집단은 선량한 사람을 붙잡아다 참수하는 잔혹한 일을 벌입니다. 참수는 아니더라도, 더 교묘한 방식으로 생살(生殺)여탈(與奪)권을 쥐고 흔드는 다양한 권력자들이 우리 일상에 숱합니다. 이들은 가진 지위와 힘으로 약한 사람을 겁주고 경멸하고 모욕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일이 여전하다면, 우리는 무례하고 악독한 헤로데 시대를 사는 셈입니다.

이콘이 비추는 대로,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우뚝 선 세례자 요한은 우리에게 못된 권력과 힘부림에 맞서라고 촉구합니다. 교회 전통에서는 세례자 요한 참수 축일에 단식하며 그의 죽음을 기리거나, 음식을 먹더라도 칼을 쓰지 않고 둥근 쟁반을 쓰지 않았습니다. 일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세상의 억압과 폭력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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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낙현 신부, 서울 주교좌 성당 주보 8월 24일 치(↩)

도통한 영성주의

Friday, August 22nd, 2014

소위 “영성주의”의 폐해가 심각하다. 그리스도교 내, 아니 우리 교회 안 이곳저곳에서 영적 멘토니 지도자니 하는 ‘도통한’ 자들의 성서 이해와 영성 이해는 순진무구한 수준을 넘어 가히 자기기만의 수준이라 하겠다. 역사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할 성서 텍스트가, 유사 심리학과 뉴에이지의 풍의 근거 없이 야릇한 틀을 뒷받침하는 비유나 증거 구절(prooftext)로 전락하는 일이 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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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가슴’을 울리는 듯한 화법과 언어적 농간을 유심히 들춰보면 여느 종교에서 흔히 보이는 수준 낮은 미끼와 비슷하다. 이를 깨달음이자 경지 높은 영성 체험에서 비롯되었다고 짐짓 거드름을 피우는 행태가 가관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현실 인식이나 문제 해결 방식은 매우 얕거나 훨씬 타협적이라는 것. 깊게 살펴보는 척하면서 엄청나게 에두르는 화법은 궤변으로 판명 나고, 겸손한 듯 도통한 듯한 태도와 해법 제시는 현상 유지(status quo)이거나, 자기기만적인 타협이다. 자기기만에만 머물면 좋으련만 남들을 무시하는 거만함도 보인다. 자신의 눈과 귀가 막혔는지도 모른다.

이 태도는 비성서적이며 몰역사적이다. 그것이 어떤 신흥종교 풍의 영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아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성육신의 영성이요, 그래서 육체와 역사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영성이다. 여기서 한치라도 벗어날라치면 대체로 현대판 영지주의로 전락하거나, 그 안에서 도통한 체하며 스스로 만족하며 산다. 그들의 행복 선택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에 도전하고 변화를 가져오기는커녕 스스로 곤두박질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영성은 바로 이를 식별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