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다하면…

Monday, December 23rd, 2013

한 달 전,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하고 떠나기로 작정했을 때, 몇몇 분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쉬운 한숨이 겹겹이 싸인 대화 안에는 삶에 대한 지긋한 응시와 감사, 그리고 결정이 이끄는 새로운 모험을 향한 축복도 있었다. 그 대화와 감사의 편지와 돌아온 응답의 부분을 되돌아 읽으며 이곳에 옮긴다.

“실패나 이별이 아니에요. 선한 사람들의 지향과 그 일과 관계에는 실패라는 말은 없어요. 다만, 인연이 다하면 그걸 받아들이면 돼요. 억지를 부리면 오히려 탈이 나요. 다한 인연을 받아들이는 일은 서로 자유롭게 하는 길이고, 더 아름다운 인연이 열리는 길이기도 해요.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은 기억이에요.”

“때가 때이니만큼, 정말 감사의 시간(a time of thanksgiving)이에요. 그리고 새로운 모험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그분을 기다리는 시절이기도 하고요. 정말이지, 신앙은 늘 새로운 모험의 여정이에요. 그 여정에서 여러분과 길동무가 되었으니 참 복된 일이에요.”

“곧 너를 그리워할 거야. 정말 너의 존재는 이 공동체에 정말 멋진 일이었으니까. 여러 문제로 네가 고민하는 이 같은 상황에서라면, 나도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거야. 네 노력은 헛되지 않아… 성령님께서는 늘 독특한 방식으로 일하시지. 그리고 그 목적은 우리 눈에 늘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그 방식을 계속 신뢰하고 나가는 거야.”

그 모든 선한 얼굴들 앞에 깊은 합장, “나마스테”

사제직 – 애틋함의 영성

Saturday, November 30th, 2013

한 달 전 한국 성공회 서울교구 성직자 모임인 “성우회”(聖友會) 소식지에 실을 글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거듭 고사했으나 외국에 계신 신부님들의 사소한 근황을 소개하는 특집이니 한 분이라도 빠지면 안 된다고 친구 신부님은 거듭 부탁했다. 마지못해 글을 편지 형식으로 적어 보냈다. 늘 글을 너무 무겁게 풀어간다는 말을 듣는 참이니, 편지 형식이면 그나마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실패한 듯하다. 지난주에 소식지가 나와 배포됐으니, 이곳에도 올린다. (너무 사적인 한 문장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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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직 – 애틋함의 영성

신부님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머뭇거렸어요.

그동안 몇 분과는 소식을 깊이 주고받았지만, 신부님께는 연락드리려는 손이 좀체 움직이질 않더군요. 한국을 떠나온지 10여 년이 흘러서 생긴 삶의 간극이기도 하겠지요. 물론 처음 몇 년은 그 틈을 쉽사리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손을 내밀며 당기며 격려했던 시간이었어요. 활기와 의지를 다지며 나누기도 했지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의 인연에도 세월따라 부침이 크지요. 물리적인 공간의 간격이 너무 큰 탓에 긴밀하게 서로 보살필 처지도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바빠야만 일이 되는 듯한 강박증의 사회 속에서 모든 일에 마음을 주려는 신부님도 덩달아 바쁘실 테니, 그 틈을 노리거나 겨우 쉬는 시간을 훼방할 수 없노라 미리 판단한 탓도 있겠지요. 제 탓입니다.

기억하고 있어요.

늦은 시각 원근에서 바쁜 일 제쳐놓고 찾아와 이야기 나누며 토로하던 시간들. 어느 가을 산속에서 며칠 동안 워크숍을 마치고 지쳐버린 저를 격려했던 눈길과 말. 말없이 다가와 손에 쥐여 주었던 작은 선물. 혹은 남이 볼세라 얼른 주머니에 쑥스럽게 넣어주시던 봉투. 바쁘지만 정성스럽게 쓰인 격려와 기도의 카드. 고마운 기억은 늘 애틋합니다.

애틋함이었어요. 생면부지의 나라에서 공부하며, 사목하고, 이민자로 살아가며 얻은 마음의 감기 같은 것도요.

공부는 대체로 새로운 지식과 그 지식의 효용을 목표로 하죠.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지만, 즐거움과 기쁨은 그런 어려움을 훨씬 웃돕니다. 그런 공부를 친구들이랑 나눌 생각을 하면 더욱 힘이 납니다. 나눌 생각 없이 고통스럽게만 공부한 이들도 있는데, 입신양명을 위해 자기 살을 깍는 독종과 괴물로 변하는 일을 여럿 보았습니다. 어느 분이 현대 교회의 현실을 보며 개탄한 대로, 신학교의 교실과 성당의 제단과 세상의 거리가 따로 놀면서, 제 영역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그 안에 하릴없이 사로잡힌 일이 숱합니다. 이럴수록 제 공부의 근거와 내용, 방향과 목적을 늘 돌아보고 반성합니다.

보살피는 이 없이 불꽃이 잦아든 신앙 공동체의 사목을 얼떨결에 맡은 것은 어쩌면 피하고 싶었던 축복이었어요. 소속 교구가 눈길을 주지 않는 작은 신앙 공동체와 지난 10년 동안 살아왔어요. 작든 크든 사목은 마음을 주는 일이며 상처와 위로가 늘 교차하는 공간이니 시간과 에너지가 소진될 밖에요. 그러나 신학 공부는 이처럼 전혀 이상적이지 않은 현실 속에서 이를 진단하며, 그 현실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경험을 근거로 세워져야 할 테니, 그 10년은 사목자인 제게 뜻밖의 은총이었어요.

은총은 늘 가난과 주변부에서 다가옵니다. 한국에서 성공회가 소수자 교단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듯이, 이민자의 성공회 사목은 이중으로 불리합니다. 미국 성공회가 미국 사회에서 꽤 영향력 있다 하더라도 이민 사회에서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민 사회는 자기 본국의 문화와 종교의 지도를 재현하려 하니까요. 게다가 이민자의 성공회 사목은 미국 성공회 안에서 또 다른 소수자로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파격적 조치가 없는 한 이런 어려움을 가까운 미래에 이겨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다만, 이민 사회의 중심부에서마저 밀려난 이들을 신앙 공동체에서 만나며 사귄 은총은 제 공부와 삶, 그리고 사목에 큰 도전이요 배움이었어요.

(중략) 아이들이 그나마 불평 없이 무탈하게 자라니 하느님께 감사하고, 여러 어려움을 단단한 사랑과 신뢰로 이겨나가면서, 야위는 아내에게 고맙지요. 성직자는 가족에게도 신세를 지며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하느냐는, 성공회 성직자의 보편적이고 쓸쓸한 물음을, 저도 신부님과도 매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애틋함이에요. 그 안에서라야 은총과 사랑이 눈물처럼 밀려오고, 눈물로 맑아진 눈으로 더 넖고 깊게 세상을 응시할 수 있으니까요. 경제적 효용과 성과를 따져 묻는 세간의 기준이 팽배한 시절인지라, 쓸쓸한 사물과 사람을 향한 애틋한 시선을 지켜나가는 일은 이제 몇몇 소수자의 일이 된 듯해요. 성직자들이나마 이 시선을 더 깊이 성찰하며 붙들어야겠다는 다짐이 더욱 굳어져요. 공부에서든, 사목에서든, 일상의 생활에서든. 그 애틋한 시선이 마련하는 연대가 희망이라고 믿어요.

그 성찰과 다짐의 한켠에서 신부님께 편지를 쓸 용기가 났어요. “성우”라는 말이 성직자들의 친교와 우정을 뜻한다면, 앞에 적은 애틋함은 ‘서로 친구인 성직자들’의 영성이라고 믿어요. 그 촉촉한 영성에서라야 사물과 사람 사이를 잇고, 세상과 하느님 사이를 잇는 희망과 생명의 사제직이 자라날 테니까요.

곧 뵐 날을 기다립니다. 건강하세요.

주낙현 신부 합장

주디 콜린스 – 아버지

Thursday, February 9th, 2012

주디 콜린스(Judy Collins)가 쓰고 노래한 ‘아버지'(My Father, 1969)를 거듭하여 듣다가, 마음이 동하여 우리말로 옮긴다.

주디 콜린스가 부르는 <아버지>

니나 시몬이 부르는 <아버지>

아버지는 늘 약속하셨지
우리는 프랑스에 살게 될 거라고
센느 강을 따라 배를 탈 거라고
그리고 나는 춤을 배우게 될 거라고

그때 우리는 오하이오에 살었었지
아버지는 광산에서 일하고 계셨지
아버지의 꿈 위에 배처럼 올라 타고
우리는 언젠가 배를 저으리라 생각했지

머지 않아 언니들은 다들 떠나갔지
덴버로, 샤이엔으로,
다들 자라 결혼하는 언니들이 꾸는 꿈은
라일락과 남자였지

가장 어린 나만 여전히 남아
혼자서 춤을 췄고
아버지가 꾸던 꿈의 색깔은
바래갔지, 소리 없이

지금 나는 파리에 살고 있네
우리 아이들은 춤을 추고 꿈을 꾸네
한 광부의 삶이 걸어온 길을 들으며
한번도 보지 못한 그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고향의 기억을 따라 노 저어 올라가네
센느 강 위를 가르는 배처럼.
그리고 아버지의 눈 위에 다시 저무는
센느 강의 태양을 바라보네.

아버지는 늘 약속하셨지
우리는 프랑스에 살게 될 거라고
센느 강을 따라 배를 탈 거라고
그리고 나는 춤을 배우게 될 거라고

나는 고향의 기억으로 노저어 올라가네
센느 강 위를 가르는 배처럼.
그리고 아버지의 눈 위에 다시 저무는
센느 강의 태양을 바라보네.

(번역: 주낙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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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잘 못하지만, 작가를 꿈꾸는 우리 딸은 나중에 어떻게 제 아빠를 기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