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일도 – 사랑으로 품는 예언자 교회

Sunday, February 21s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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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 사랑으로 품는 예언자 교회 (루가 13:31~35)1

빛의 속도로 13억 년을 달려와 지구에 다다른 ‘중력파’라는 우주의 물결이 연일 뉴스입니다. 현대 과학의 난해한 이론이 어떻든, 상상하기 어려운 속도와 거리를 뚫고 그 오랜 시간을 견디며 어떤 힘이 와 닿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습니다. 먼 여행 끝에 다가와 우리를 가녀리게 감싼 우주의 파장은 우리 신앙 여정의 비밀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낯익고 편안한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향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듣고 ‘아브람’은 두려움에 떱니다. 자기 고향에서도 이룬 것이 미미한데, 정처없는 여행을 떠나라 하시냐는 볼멘소리도 들립니다. 하느님은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어” “하늘을 쳐다보게 하신 다음” “별들을 세어보라”고 하십니다. 신앙은 ‘자기 안’에 있지 않고, 세상 가치인 ‘땅’에 있지 않고, 약삭빠른 ‘셈’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선언입니다. 유혹하는 악마는 자기 안에서 당장 움켜쥐는 성과를 찾으라고 속삭이지만, 신앙의 예수님은 자신의 안위를 멀리 떠나서 자기 ‘너머’에 있는 더 큰 세상을 길게 바라보라 하십니다.

바울로 성인도 유혹받는 인생과 신앙의 인생을 분명하게 구별합니다. 유혹의 ‘세상 시민’은 “자기네 뱃속을 하느님으로 삼고” 수치스러운 성과마저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하며 세상일에만 마음을 쓰는 자”입니다. 반면에, 신앙의 ‘하늘 시민’은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어려움과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바라보고 굳세게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가치로 유혹하는 “원수들이 미워하더라도” 하느님 안에 머무는 삶을 갈망하는 시편 노래와 맥이 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노리는 ‘여우’와 이를 지키려는 ‘암탉’ 사이에서 분명한 선택을 촉구하십니다. 헤로데는 권력과 부를 누리면서도,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님을 위협하며 죽이려 합니다. 자리 보존과 이익에 따라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이용하는 사람은 생명을 짓밟는 ‘여우’입니다. 그러나 ‘암탉’은 세상 가치에 눈을 돌리지 않고, 깨지기 쉬운 ‘알’의 가능성을 보호하고, 병아리처럼 연약한 사람들을 사랑하여 온몸에 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멀고 험한 길이 계속되더라도, 자기 생애에 다 마치지 못하더라도, 연약한 가능성을 먼저 사랑하고 품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이것이 신앙이요, 선교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를 이루려는 예언자 교회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경고가 준엄합니다. 밖에 있는 낯선 사람, 연약한 사람, 정처 없이 서성이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지 않으면 ‘성전’은 곧 무너지고 맙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단단한 성당일지라도 구원의 배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오직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세상 밖을 걸으며 낯설고 연약한 이를 초대하여 사랑으로 품을 때, 그리스도의 구원이 긴 여행 끝에 다가와 우리를 어루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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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6년 2월 21일 사순 2주일 주보 []

성령에 이끌려 – 유혹과 신앙

Sunday, February 14th,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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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이끌려 – 유혹과 신앙 (루가 4:1~13)1

그리스도교 신앙은 너무 솔직해서 불편하고 낯선 종교입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는 귀에 감기는 멋진 말로 적당한 위로와 얄팍한 행복을 보장하곤 합니다. 반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생에서 축복과 고난을 분리할 수 없다고 투박하고도 단호하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세례 때 내리신 성령은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을 선언하지만, 같은 성령이 곧바로 춥고 외로운 광야로 주님을 이끕니다. 이 축복과 고난의 갑작스러운 교차가 당황스럽습니다. 악의 유혹은 이 순간을 파고들지만, 바른 신앙은 이 현실을 정직하게 대면합니다.

“성령에 이끌려” 떠나는 사순절 여정은 삶 곳곳에 똬리 튼 악마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내면 여행입니다. 오늘 예수님 이야기에는 악마를 식별하는 잣대가 선명합니다.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달라는 욕구에 목말라 합니다. 이때 악마는 귓속말로 “당신은 이런 사람이잖아” 하고 꼬드깁니다. 이 유혹에 넘어가면 “내가 이런 능력이 있거든, 내가 이런 지위가 있거든, 내가 이런 체험이 있거든” 하며 모든 상황의 중심에 ‘자기’를 내세웁니다. 자기 안에 악마가 움직인다는 징표입니다.

사순절 여정은 자기 안에 있는 악마를 감지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활개 치는 악마의 실체를 대면하여 물리치는 외면 여행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능력과 재력을 자기만족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문화, 여러 사람을 보살피라고 마련해준 자리에 올라앉아 제멋대로 힘을 부리는 행태, 자신의 종교 체험을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며 짓누르려는 태도가 악마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은 인생의 근거를 자기에게 두지 않고, 자기 바깥에 있는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에 둡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기쁨과 이웃의 안녕을 가치로 삼는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누리며, 사회를 변화하는 힘을 세웁니다.

유혹과 신앙의 싸움은 끝나지 않습니다.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떠나갑니다”(13절). 갈등과 고뇌를 완전히 끝내주겠다고 약속하는 종교는 달콤한 악마의 유혹일 뿐입니다. 성령의 축복이 광야의 고난으로 이어지듯이, 축복받은 신앙의 여정은 고뇌의 연속입니다. 다양한 갈등은 더 나은 공동체를 세우려는 애틋하고 아름다운 몸부림이고, 깊어지는 고뇌는 자신과 사회의 심연을 성찰하고 분석하며 대화하는 지성입니다. 이는 신앙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정직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징표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손에 이끌려 아픈 세상의 현장에 도사린 악마를 물리치며 걷는 사순절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6년 2월 14일 사순 1주일 주보 []

더 깊은 곳으로 – 신앙의 사도직

Sunday, February 7th,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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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곳으로 – 신앙의 사도직 (루가 5:1~11)1

“깊은 데로 가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을 낚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평생 어부로 살았던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어 새로운 임무를 주십니다. 이 부르심은 우리 신앙생활의 의미와 방향을 보여줍니다. 더 깊은 곳으로 가서 다시 도전하고 두려움 없이 사람을 만날 때, 신앙과 선교의 사도직이 펼쳐집니다.

베드로는 밤새 그물질을 했지만, 잡은 고기가 없었습니다. 누구나 노력하고 대가와 보상을 바라지만, 세상일이 늘 뜻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땀과 눈물이 모자란 탓이 아닙니다.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 더 많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은 절망감과 배신감의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그 감정이 커서 다른 이의 조언에 귀를 막고 마음을 닫기도 합니다. 이때 예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실패의 감정이 이끄는 자기 폐쇄의 유혹을 넘어서라는 초대입니다. 이 초대에 응답하는 일이 신앙입니다. 이때 새로운 사건이 펼쳐집니다.

“깊은 데로 가라.” 예수님의 초대는 명백한 해결책이나 분명한 위로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위험으로 이끄는 것처럼 들립니다. 더 깊은 데로, 더 멀리, 더 위험한 도전을 할 때, 자기 안위와 폐쇄의 그늘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깊은 바닥은 아직 꿈틀거리는 자기 본위의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고, 그 죽음을 경험하는 밑바닥입니다. 자기 중심성은 가볍고 표면적인 삶의 태도를 만듭니다. 그래서 작은 바람에도 출렁거리기 쉽습니다.

깊은 곳은 위험할지언정, 흔들리지 않는 깊이와 새로운 삶의 차원을 발견하도록 합니다. 절망이든 행복이든 그 깊은 곳에 닻을 내릴 때 우리 삶은 어떤 어려움에도 의연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그 깊은 곳에서 삶의 가장 큰 절망과 슬픔의 끝에 다다른 많은 사람을 선물로 발견합니다. 이 만남 속에서 우리는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과 손잡아 연대하여 바닥을 치고 떠오를 힘을 얻습니다.

신앙의 깊은 모험은 종교에 흔하게 퍼진 격려의 덕담이나 수사가 아름다운 잠언을 넘어섭니다. 우리 신앙의 배움을 더 깊은 곳으로 끌어가 함께 대화하며 심화합니다. 신앙인은 어떤 선생의 가르침에 그저 감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신앙의 모험과 체험과 배움으로 두려움 없이 다른 낯선 이들을 이끄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두려움 없는 신앙인의 사도직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진실로 “사람을 낚는 사도”가 됩니다.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6년 2월 7일 연중 5주일 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