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든 (W. H. Auden) “Night Falls on China”

Thursday, November 19th, 2009

밤은 중국에 지고,
흐르는 그림자가 드리우는 커다란 궁호는
땅과 바다 위를 움직이며, 삶을 바꾸나니…

오, 이제 우리의 광기가 웃자라도록 가르쳐 주시게
얼어붙은 마음의 완벽한 예절일랑 헝클어 버려야 하리니,
다시 한번, 서툴게 하고 살아 있도록 해야 하리니…

머리에서 치워버리게, 멋진 쓰레기 더미일랑,
잃었던, 전율하는 힘의 의지를 일으키어
그 힘을 모아 지상에 펼쳐야 하리…

그리고 이제 인쇄기의 소음을 들으니,
나무들의 숲이 거짓으로 바뀌는…


W.H. Auden (1907-1973), “Night Falls on China”
번역: 주낙현 신부

재의 수요일 – T. S. 엘리엇

Wednesday, February 25th, 2009

재의 수요일 – T. S. 엘리엇

Ash Wednesday (1930) by T. S. Eliot (1888~1965)

I / II / III / IV / V / VI

V

잃은 말을 잃고, 써버린 말을 써버렸다면,

들려지지 않은, 말해지지 않은

말씀은 말해지지 않고, 들려지지 않는다면;

여전히 말해지지 않은 말, 들려지지 않은 말씀은,

한마디 없는 말씀, 그 말씀은

세상 안에 있고, 세상을 위해 있으니;

그리고 빛은 어둠 안에서 비췄고

말씀에 대역하여 불안한 세계는 여전히 흘렀으니

침묵하는 말씀의 언저리를 돌아.

아,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했느냐.

어디서 말씀을 찾을 것이며, 어디서 말씀이

다시 들려질까? 여기는 아니리, 충분한 침묵이 없으니

바다도 섬도 아니리, 아니리

육지도, 사막도, 습지도,

낮 시간과 밤 시간에 함께 깃든

어둠 속을 걷는 이들에게

여기는 옳은 시간도 옳은 공간도 아니니

은총의 공간은 없으리, 그 얼굴을 피하는 이들에게는

기쁨의 시간은 없으리, 소음 속에서 걸으며 그 목소리를 부인하는 이들에게는

베일을 쓴 여인은 기도할까,

어둠 속에 걷는 이들을 위하여, 그대를 선택했으나, 그대를 적대하는,

계절과 계절,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며 찢겨진 이들을 위하여,

순간과 순간, 말과 말, 힘과 힘 사이에서, 기다리는 이들을 위하여

어둠 속에서? 베일을 쓴 여인은 기도할까

입구에 서 있는 어린이들을 위하여

떠나지 않고 기도하지 못하는:

선택했으나 적대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아,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했느냐.

베일을 쓴 여인은 연약한

주목(朱木) 사이에서 그녀에게 상처입힌 이들을 위하여 기도할까

그리고 무서움에 떨며, 항복할 수 없는

그리고 세상 앞에서 우겨대며, 바위 사이에서 부인하며

마지막 사막에서 마지막 푸른 바위 앞에서

말라버린 정원의 사막 사막의 정원

말라버린 사과씨를 입 밖으로 내뱉는 이들을 위하여.

아, 내 백성들아.

(번역: 주낙현 신부)

김흥겸 “민중의 아버지” 영역

Tuesday, June 29th, 2004

Father of the Lowly

By Kim, Hung-Gyum (1961-1997)
Trans. by Joo, Nak-Hyon (2004)

Respond to us, O God whose tongue is cut,
Hear our prayers, O God whose ears are stopped,

God, you turn away your burned face from us,
And yet you are my only one, my dear old father.

O God, are you dead?
O God, are you in the dark weeping under a back street shadow?
Or are you thrown away like refuse in a dump?
Oh, my poor God.

God, you turn away your burned face from us,
And yet you are my only God, father of the lowly.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짤린 하느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먹은 하느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느님.
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느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있을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 버렸나,
가엾은 하느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느님.
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영역 후기:

이른바 그의 ‘까마득한’ 학과 후배였지만, 동문인 탓에 학교에서 그를 몇 번 만났다. 빈민 선교하는 선배들은 야학이나 빈민 선교 일손을 구하려고 졸업 후에도 늘 학교를 찾았고, 밥 사주고 술 사주며 얼르며 신입생들을 설득했다. 이후에도 빈민 선교 연합 모임이나 민중 교회 연합 모임 등에서 그를 몇 번 만났다. 대체로 회의 끝난 이후 술자리였다. 그 전에도 나는 ‘민중의 아버지’를 듣고 노래 부르곤 했었다. 그는 전설이었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전설치곤 첫 인상이 참 지저분하고 과격했다. 나 같은 ‘하층 농촌’ 출신은 과격하더라도 보수적인데가 많아서, 당시 ‘도시’ 빈민 선교하는 선배들의 차림새와 행태를 속으로 능멸하곤 했다. 노래 ‘민중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도시인의 아버지이다. 그래도 그를 포함한 많은 선배들(전도사, 목사, 신부)의 삶과 투신은 어린 내 마음에 큰 영향을 남겼다.

이후 나는 늦게 입대했다가 2년 후 풀려났다. 우리 교단 내에서 성직자가 된, 그의 동기인 선배들을 만났는데, 김흥겸 선배 이야기가 나왔다. 이미 군대에 있을 때, 그의 소식을 듣던 참이었다. 암 투병을 하다가 몸이 좋아진 후, 성공회 쪽에서 성직을 희망했노라고 했다. 그런데 다시 악화되어 이제는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얼마 후 신촌 세브란스에서 열린 그의 살아있는 ‘장례식’에 갔다. 많이들 울었다. 특히, 그가 어느 대목에서 ‘사람들에게 용서를 빈다’고 했을 때, 많은 이는 죄책감의 눈물을 흘렸다.

다음 해 1월 어느 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잠시 생각하다, ‘죽은 자’의 장례식에 가지 않겠노라 답했다. 이미 그의 ‘산 장례식’을 치른 탓이라 했다. 아니, 그냥 그가 살아있는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싶었다. 그 날 밤, 아내와 술을 한 잔 했다.

대학 생활 이후로 도시에 산 탓에, 그 ‘도시인’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여러 사연으로 미국 땅에 유학을 왔다. 옛 생각과 더불어 한국 생각도 많이 났고, 내 생활도 여전히 궁핍했다. 고통받는 이들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종종 이 노래를 불렀다. 어느 짧은 페이퍼를 위해 어떤 시를 번역했다가, 갑자기 이 시가 떠올랐다. 흥얼거리다가 단숨에 번역해서 친구인 신부님께 살펴달라면서 번역을 마무리했다. 2004년 어느 여름 날 허름한 카페에서, ‘작은 이들의 하느님’을 부르며, 그와 그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