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종교와 영성이 충돌할 때

Wednesday, April 18th, 2012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10년을 돌아보는 글에서 적은 바 있거니와, 그분의 놀라운 영성과 지성이 세계 성공회 안에서 일어난 갈등을 극복하려던 대주교직 수행과 빗나갔던 사실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아쉬움과 낭패감의 원인은 여럿이겠지만, 나는 그분이 평소에 주장하던 예언자적이고 복음적인 삶에 대한 초월적 영성이, 제도의 일치라는 오래된 관념과 관습에 짓눌린 탓이라고 보았다. 게다가 세계 성공회의 식민적 유산과 그 역사에 대한 세심한 식별과 분석을 간과한 점도 지적했다.

미국 성공회의 신학자이자, 미국 종교 및 교회 현상을 연구하는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Diana Bulter Bass)의 글을 소개한다. (한국에서 강연했을 때, 이분을 몇 번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시는지들 모르겠다.). 내 생각과는 약간 다르지만, 현재 서구 사회의 종교 현상의 큰 흐름으로 지목되는 “Not Religious, But Spiritual”(‘제도적인 종교인이기를 거부하고, 영성을 추구한다’)의 맥락에서 살피는 의견과 그 전개가 매우 설득력 있다.

배스는 세계 성공회의 갈등과 분열을 동성애 문제로 벌어진 교회 내 좌파와 우파의 갈등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서구 사회에 흐르는 매우 중요한 긴장, 즉 종교와 영성의 긴장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장 리더십에 대한 옛 이해와 새로운 이해의 갈등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시대적 요구에서 나온 것이라 이해하더라도, 이제 그마저 제각기 자기 권력을 탐하는 틀이 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문제는 닫힘과 열림이다.

한편, 배스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 지도자에 대한 기대는 분명했다. 주교는 평신도를 지도하면서, 복종과 희생과 영웅적 신앙 행동을 촉구했다. 주교는 위에서 아래로 신앙을 명령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전혀 다르다.

[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제도적 기관들은 두 패로 나뉘어 갈등한다. 한쪽에는 예로부터 익숙하고 검증된 리더십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통제, 획일성과 관료제가 그 특징이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는 검증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시대에 걸맞고 그 미래를 향한 약속을 열어주는 리더십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풀뿌리의 권한, 다양성, 관계적인 네트워크가 그 특징이다. 이것은 보수와 진보의 분열이 아니다. 오히려 제도와 영의 분열이다.

하향식 구조는 저물고 있다. 성공회가 겪은 갈등을 보면, 영적인 리더십과 제도적인 리더십이 분명히 구분된다. 영적인 리더십, 그 새로운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기대는 기존의 관습적인 주교의 역할과는 구별되고 갈등한다.

배스는 이 문제를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에게서도 발견한다. 그는 분명히 탁월한 영성가요 신학자이다. 대주교로서 그는 세계 성공회의 “영적인 지도자”이다. 그러나 그는 성공회라는 종교 기업의 CEO로 행동하며, 사업 중심, 이익 중심, 자산 유지, 새로운 시장 개척에 관심을 두었다. 이것은 생동감 있는 영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관료적인 기업체 문화이다.

배스는 영성과 제도의 갈등과 그 변화를 관찰한다.

역사의 시간 속에서 신앙은 늘 하향적이었다. 영적인 힘은 교황이나 대주교가 신자들에게 내려주는 것으로 이해했다. 사제가 경건한 신자들에게, 목사가 교회 회중에게 건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변했다. 사람들은 영성은 하느님을 찾는 풀뿌리 모험이며, 진정성을 담은 통찰과 영감의 여정이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제도적인 교회나 회당, 사원에서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성은 아래부터의 신앙을 표현한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신학과 관습에 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두려운 나머지, 세계 성공회를 포함한 많은 제도적 종교들은 이를 명령과 통제로 고치려 한다. 그리고 그 조직을 더욱 위계적인 권위주의로 몰아가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열망에는 응답하지 않는다. 이러면 제도적 종교는 더더욱 어려워지고 쇠퇴할 수밖에 없다.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더 나은, 더 정의로운, 더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이 큰데도, 교회라는 제도, 국가, 경제가 이런 열망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영성과 제도에 놓인 틈이 문제다. 이 틈을 메꾸고 그 제도적 기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만이 새롭게 등장하는 문화 경제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사실 영적 쇄신은 곳곳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다. 기존 교회와 기존 신자들이 관습에 사로잡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그동안에 제도로서 종교와 교회는 죽어간다.

이 시대에, 영적 쇄신은 벗들과 신뢰를 나누고 서로 배우는 대화 속에서 일어난다. 새로운 일은 거리에서 커피숍에서, 지역의 작은 공동체에서 일어나고, 정의와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에서 일어난다.

이런 평가와 전언은 세계 성공회와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를 향한 것만은 아니다. 바로 우리 교단, 우리 교회, 그리고 성직자인 나 자신을 향한 것이다.

한편, 풀뿌리 영성에 대한 배스의 낙관을 그대로 우리 교회와 사회에 적용하기를 나는 주저한다. 유행처럼 번지는 영성에 대한 관심은 실제로는 개인주의에 들러붙은 영성주의(spritiualism)의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이것은 권위적인 제도만큼이나 복음적 가치를 해친다. 게다가 풀뿌리의 주인공인 신자들도 여러모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정말로 깊고 풍성한 풀뿌리 영성을 키워내지 않고 또 다른 관습적 신앙 체험을 무기 삼아 섣불리 권위를 부리지는 않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 안에 또아리 튼 관료주의와 권위주의, 관습주의, 세대주의도 교회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에 만연한 현상이다.

이는 변화의 기로에 서서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 모든 사회와 교회가 씨름해야 할 문제이다. 수구의 탐욕이 새로운 시대를 열리도 만무하지만, 진보연하는 수사와 이미지 뒤에 여전히 만연한 관료주의와 타성으로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잡감 –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 10년

Thursday, March 22nd, 2012

빚진 마음이 무거운 탓일까?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사임 발표에 대해서 ‘잡감’을 적기로 했지만, 잘 안 된다. 때아닌 감기가 몸과 머리를 어지럽히고 이런 글쓰기도 부질없는 짓이라 타박하는 듯하다. 로완 대주교에 빚진 신학적 통찰력과 그분의 대주교직 수행의 불일치를 목격하며 생각했던 것들이 너무 무거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편히 적으려는 데도 계속 힘이 들어간다. 힘을 빼고 그저 잡감에 충실해 보려 한다.

나는 10년 전 그분의 대주교직 지명에 기뻐했고, 그 전후로 그분의 글에서 깊은 배움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세계 성공회 전체에 닥친 분열의 위기 속에서 그분의 ‘치리’에 대해서는 다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그분의 글에서 읽는 신학자와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나는 여러 불일치와 모순을 느꼈다. 이런 내 느낌은 그분의 글을 내 멋대로 읽은 탓일 수도 있겠고, 교회 지도자가 처한 현실을 다 헤아리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그분에 대한 배움과 오해가 어떻든, 그마저 내 시각에서 몇 가지 의문으로 정리하는 것도 또 다른 배움이 될 테다.

교회 일치, 그 빛과 어둠

성공회는 특별히 지난 20세기 교회 일치 운동의 산파였다. 성공회는 ‘개혁하는 가톨릭 교회’(a reforming catholic church)로 자신을 규정하는가 하면,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는 갈라진 서방 교회(천주교와 개신교)를 다시 잇는 ‘다리 교회’(bridge church)로 자신을 규정하곤 했다.

이 희망은 50년 전 마이클 램지 대주교의 말에 아주 잘 드러난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성공회의 역할은 우리만의 독자적인 캠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지개의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남들과 깊이 사귀는 밝은 하나의 색깔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확장하여 어떤 이는 “성공회는 ‘보편 교회’의 일치를 위해 궁극적으로 사라지는 것을 기뻐하는 교회이며, 그날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교회 일치와 선교의 사명을 다할 뿐”이라고 비장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공회 자신의 이런 선의와 비장한 마음과는 달리, 다른 교단, 특히 정교회와 천주교는 성공회에 확정적인 교리적 통일성이 없어서 그 정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자주 보였다. 이것이 교회 일치 대화의 걸림돌이라고 늘 단서를 달았다.

성공회는 적어도 19세기 말 이래로 ‘영국 성공회’라는 단일 체제를 떠나 지역마다 독립적인 관구 교회로서 자신의 전례와 교리적 가르침을 정했다. 다만, 영국 성공회 안에서 경험하고 발전한 신학과 전례의 기풍을 너르게 나누고 친교하는 것으로 ‘세계 성공회’가 살아간다. 단일한 교리 체계가 아니라 우리의 처지와 맥락에서 다양하게 만나는 하느님의 경험을 성공회 전통과 전례라는 기풍 안에서 서로 나누며 살아간다.

교회 일치에 대한 희망은 종말론적이다. 종말론적 시각에서 보면, 이른바 ‘가시적 일치’는 환상이다. 갈라진 그리스도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종말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하느님의 힘으로 ‘온전하게 될’ 일이지, 억지로 저마다 다른 맥락에서 발전한 여러 교회의 다양한 발전과 특성을 무시하면서 우리 힘으로 하나 되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동안 교회는 일치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을 통해서 펼쳐지는 하느님의 다양한 경험을 억누르기 일쑤였고, 그 조직적인 일치에서 얻은 힘을 함부로 부리곤 했다. 어쩌면 역사 속에서 일어난 교회의 큰 분열들은 이런 문제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발이었고,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하느님의 뜻이었으리라.

그러니 하느님의 선교 사명을 저버리거나 소홀히 하는 교회의 일치는 종종 환상에 불과하다. 로완 대주교는 이런 환상에서 자유로우셨을까? 천주교의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공회와 천주교 간 일치 대화에서 성공회에 오래된 주문을 계속했다. 즉 성공회의 일치성을 보장해야만 양 교회가 일치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일치의 실상은 무엇인가? 천주교 자신의 일치는 어디에 있는가? 그 획일적인 교도권이 정말 우리가 바라는 일치인가? 그 일치의 교도권 아래 억눌린 천주교 내의 다양한 목소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게다가 이런 와중에 여성 성직 서품과 동성애 문제에 관련하여 성공회를 떠난 그룹을 받아들이고, 성공회 내 보수주의자들에게 미끼를 던지는 교황청의 조치는 정말로 교회 일치에 도움이 되는가?

아마도 교회 일치에 대한 필요 이상의 집착이 로완 대주교의 패착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성공회 계약’이라는 종이 문서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 내부에서도 그 ‘계약 문서’는 더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죽은 말에게 채찍을 가하듯이, 이미 실효를 상실한 ‘계약’ 문서를 옹호하고 역설하시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영국 vs. 미국 – 제국주의와 소비주의, 개인주의

고정관념, 고정된 편견은 늘 사람의 시각을 왜곡한다. 미국 문화와 관련하여 더욱 그렇다. 영국의 몇몇 주교들은 미국 문화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의견을 자주 내놓았다. 적절한 비판이 많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들의 비판에는 늘 함정과 허점이 있었다. 현재 미국이라는 제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휘두르는 힘, 그리고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은 옳다 못해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미국’이라는 제국과 ‘미국 성공회’를 그대로 겹쳐서 속단해서는 안 된다. 어떤 교회도 그 상황과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미국 성공회’는 미국이라는 전체 사회와 문화 속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적어도 그 기풍은 주류 종교 이념인 청교도주의를 거부하는 반문화 전통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경계를 너무도 쉽게 무너뜨리고, 싸잡아서 비판하는 일은 옳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보다는 오히려 미국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많은 독자를 거느린 신약성서학자 N.T. 라이트 전직 더럼 주교는 이런 태도가 뾰족한 분이었다. 미국과 ‘미국 성공회’를 그대로 겹치다 못해, 이제는 미국의 제국주의, 미국의 개인주의는 ‘미국 성공회의 제국주의’ ‘미국 성공회의 개인주의’로 펼쳐진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 종교의 처지를 생각하면, 영국 사회의 세속화는 미국보다 더 심하다는 평이 많았다. 적어도 영국 문화를 걱정하는 건전하고 지적인 종교인들의 언급이었다. 남 말할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왜 계속 ‘제국주의’ 비유에 빠져 함부로 남을 덧씌우는 것일까? 자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거나,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으면, 남 탓하면 그만이기는 하다. 정말 그런 심리에서 나왔을까?

아프리카 생각

로완 대주교는 아프리카에 대한 연민을 매우 자주 피력하셨다. 서방 국가들의 부와 힘이 아프리카의 질병과 가난과 극명하게 대비되곤 했다. 아프리카의 가난과 그 처지에 대한 동정과 연민은 버릴 수 없이 소중하다.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교회를 볼 때는 더 세밀한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게다가 아프리카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아프리카 전체를 뭉뚱그리기도 쉽지 않다. 실상을 펼쳐보면 여러 아프리카 교회들이 아프리카 국가의 독재에 협력하는 일이 허다하고, 교회 지도자들의 권력과 부패, 그 권위주의는 하늘을 찌른다. 특히 이슬람과 종교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선교를 정당화하고, 사회의 소수자를 앞장서서 박해하는 이들도 대개 교회들이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에 대한 연민은 늘 선별적이어야 한다. 그 식별의 기준은 하느님의 선교일 테고, 좀 더 적확히 말하면, ‘가난한 자를 우선 선택하시는 하느님의 당파성’일 것이다.

세계 성공회 안에서 동성애 논란이 크게 번질 때, 로완 대주교의 처사는 썩 중립적이지 않았다. 캐나다와 미국 성공회에는 동성애자 서품 ‘잠정 중지’를 촉구하면서도, 아프리카 교회들이 다른 나라 성공회의 ‘치리 지역 침입’하는 것에는 별 조치를 하지 않았다. 교회의 힘을 업고 아프리카 여러 독재 정부가 추진한 동성애자 처벌법 등에 대해서는 오래 함구했다. 이 불공정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마저, 지난 ‘영국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던 아프리카에 대한 어떤 죄책감과 부채감의 발로일까?

‘글로벌 사우스’와 람베스 회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몇몇 보수적 성공회 관구들은 소위 ‘글로벌 사우스’라는 이름으로 ‘리버럴’한 서구 교회, 특히 북미 교회에 반대하는 모임을 만들고, 캔터베리 대주교를 계속 압박했다. 그런데 이들이야말로 세계 성공회의 일치를 계속 위협한 이들이 아니었나? 세계 성공회의 일원이 되는 가장 중요한 문구인 “캔터베리 대주교와 나누는 상통”을 교회 헌장에서 삭제하고 자신들의 교세를 바탕으로 영구적 탈퇴를 위협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실제로 이들은 다른 관구 교회들과 함께하려 하지 않았다. 10년마다 열리는 세계 성공회 주교회의인 람베스 회의를 보이코트하려 했다. 그 보수적 대표들이 따로 예루살렘에 모여서 회의를 열었고, 람베스 회의 불참을 결의하고, 자기 관구에 속한 개별 교구 주교들의 참석을 강제로 막았다. 교회 분열은 누가 일으키고 있는가?

그러나 더 많은 주교가 람베스 회의에 참여했다. 직접 목격했던 충격스러운 일은 캔터베리 대주교가 캐나다와 미국 성공회를 징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주교가 집전한 람베스 회의 개회 성찬례에서 영성체(communion – communication)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인데, 이야말로 자기 파문(self-excommunication)이 아닌가?

전혀 새로운 형태의 람베스 회의를 기획하고 이끈 로완 대주교의 지혜는 겸손하고도 출중했다고 생각한다. 인다바 그룹을 통해서 서로 다른 경험을 나누고 귀 기울이도록 하는 일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 경청 과정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 누구에게 ‘귀를 기울일 것인가? 주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면 그 경청 과정이 완료되는가? 그들이 성공회 신앙인들을 대표하는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않은 일들이 세계 성공회 곳곳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귀 기울일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교회 일치와 여성 성직

세계 성공회의 절반은 여성 성직 서품을 시행하고, 나머지 절반은 반대한다. 세계 성공회의 여성 성직 서품 시행 역사에서 ‘영국 성공회’는 늘 뒤처졌다. 1993년 여성 사제 서품이 가능하게 되고, 여러 논란 끝에 2014년이면 여성 주교가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문제는 이를 반대하는 보수파들이다. 이 보수파들은 ‘성공회-가톨릭’이라는 전통을 아주 협소하게 이해하는 이들이라 하겠는데, 이미 그 무리의 절반은 1993년 영국의 여성 성직 서품 이후로 천주교로 건너갔다. 그런데 몇몇이 남아서 여전히 여성 주교직도 반대한다.

로완 대주교는 여성 성직 서품을 찬성하다 못해 적극 후원하는 분이다. 로마에 초청받아 전하신 강연에서도 당신의 이런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소위 ‘영국 성공회의 일치’라는 이름 아래서 이 보수적 주교들과 교회를 달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즉 1993년 여성 성직 서품 이후 만들어진 ‘플라잉 비숍’(flying bishop) 제도를 더욱 확대하려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혹시라도 여성 주교가 선출되면, 그 교구 내에서 여성 성직을 반대하는 성직자와 신자, 교회가 교구 밖의 다른 ‘남자’ 주교의 치리를 받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는 명백히 주교직에 대한 이해를 훼손하는 일이다. 실제로 로완 대주교는 요크의 존 센타무 대주교와 함께 여성 주교직과 관련된 치리 문제 개정안을 제출했다. 관구 의회는 두 대주교의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결국, 이로써 두 대주교는 자신들의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 역시 일치에 대한 집착에서 나온 패착이었다고 본다.

희생의 대가

성공회는 어떤 신학적인 ‘문서’를 가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하거나, 자신의 신학적 주장을 구획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례와 선교의 경험 안에서 만나고 나누는 행동으로 서로 의존하고 서로 이해하려 했다. 하느님의 손길은 그런 공동체와 선교의 경험 속에서만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로완 대주교는 ‘성공회 계약 문서’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 계약 문서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소위 ‘리버럴’을 좀 누르면서 보수파를 달래려는 방법이리라 기대했겠으나, 리버럴은 물론, 보수파도 ‘계약 문서’를 반대했다. 오히려 보수파는 세계 성공회의 분열 책임을 로완 대주교에게 돌렸다. 캔터베리 대주교직을 곧 사임하겠다는 발표에 대해서 나이지리아 관구장의 첫 반응은 모욕과 욕설이었다. 세계 성공회 분열이라는 역사에서 로완 대주교는 ‘본디오 빌라도’와 같은 존재로 기억될 것이라는 험담을 늘어놓았다. 로완 대주교는 누구를 감싸 안으려 했던 것일까? 자신의 친한 친구이자 동성애자인 사제가 영국의 한 교구 주교장직에 지명되었을 때, 그를 설득해서 주교직을 포기하게끔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일치를 위한 희생의 대가는 무엇인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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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문들과 더불어 로완 대주교 10년 세월을 따라왔다. 그분의 책과 글에 드러난 놀라운 영성적, 신학적 식견에 감복하고 찬탄하면서도, 그것이 교회 치리와 행정과 엇나갈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분의 여러 글을 조각으로나마 읽고 복기하고, 번역하여 다른 이들과 나눈 기쁨이 컸다. 전례력에 따라 발표되는 그분의 편지를, 하던 일 다 제쳐두고 냉큼 번역하여 퍼뜨리는 즐거움이 남달랐다. 그러나 교회와 관련된 그분의 처신은 내 기쁨과 즐거움을 짓누르곤 했다.

연말에 어느 분이 대주교로 지명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분이든 내게 로완 대주교의 지명 때와 같은 흥분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 말하는 것이 그대로 원고인 그분의 탁월한 지성은 그나마 남아서 성공회 신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시리라 기대한다. 그 높은 지성과 지위에도 늘 겸손하게 행동하셨던 분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고집불통처럼 ‘보라색’ 성직 셔츠를 한 번도 입지 않으신 분. 주교라면 뽐내고 싶을 주교 장백의의 꽃 소매 장식을 한사코 마다하신 분. 성공회를 대표하는 대외적인 일이 아니면 되도록 ‘보라색’ 캐석도 입지 않으려 하셨던 분. 람베스 회의 공청회장 뒤쪽에 남몰래 쭈그리고 앉아 찜통더위 속에서 연신 손부채를 하시며 경청하시던 분. 그러고 보면 이런 불평어린 잡감이 초라하여 그분에 누가 되지 않나, 잠깐 생각했지만, 크신 분이기에 그럴 리는 없겠다.

그분의 부활절 메시지는 아마 우리말로 번역할 것이다. 올 성탄절 메시지는 그분이 내실까? 아니라면, 또 다시 번역하게 될까? 지난 10년 동안 로완 대주교의 절기 메시지를 거의 다 번역했으나, 이 일도 올해로 그쳐야 할 성 싶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좌파’? – 공동체와 민주주의

Thursday, June 9th,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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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영국의 New Statesman 지(紙)에 쓴 글을 두고 영국 내 정치와 언론에서 논란이 거센 모양이다. 그의 글과 논란을 읽고 얻은 생각을 정리한다. 모처럼 긴 글이어서 차례를 먼저 적는다.

  1. 세속 정치와 성직자, 그리고 ‘정교분리’
  2. 성공회 전통 안에서 사회에 대한 시각과 실천
  3. 캔터베리 대주교들의 대(對) 사회 발언과 실천
  4.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는 ‘좌파’? – 공동체와 민주주의

1. 세속 정치와 성직자, 그리고 ‘정교분리’

성직자는 ‘세속’ 정치에 관하여 발언하면 안 되는가? ‘정교분리’는 성직자의 ‘세속’ 정치에 대한 발언을 막는 논리인가?

다른 교단의 입장은 차치하더라도, 성공회 전통에서 보자면, 성직자가 세속 정치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점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성공회 전통과 역사와 신학을 다시 배워야 한다. 진심이다.

한편, ‘정교분리’라는 논리는 성직자의 세속 정치 참여, 혹은 그에 대한 발언을 막는 논리가 아니다. ‘정교분리’는, 한마디로, 특정 종교의 이념과 신념 체계를 정치에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로 발전된 것이다. 종교가 세속 정치에 발언하는 것을 반대하는 논리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어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정교분리’ 논리가 악용되는 사례는 미국과 한국의 보수적 교회에서 뚜렷한데, 실제로는 보수 교회들과 지도자들이 이 논리를 특유의 성속/영육 이원론과 섞어서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는 데 이용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야말로 가장 질 나쁜 정치 참여를 한다.

세계 성공회의 최고 지도자요, 영국 성공회를 치리하는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최근 UK 연립 정부(보수당-자유당)의 정책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해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대정부 발언을 두고 정치인들과 언론이 찬반으로 다투고 있지만, 캔터베리 대주교가 정치에 대해 발언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소리는 없다. 그의 비판 내용과 논리가 바른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서로 논쟁할 뿐이다.

2. 성공회 전통 안에서 사회에 대한 시각과 실천

그 내용을 살피기 전에, 한국 성공회 신자들은 캔터베리 대주교의 대정부 비판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그동안 한국 사회와 정치가 거의 60년대 수준으로 뒷걸음치면서, 교회 역시 보수화 물결에 올라타고 있다. 성직자들이 특정 정당과 정부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두고, ‘정치 발언’을 그만두라는 불평의 언성이 높다고 한다. 나 자신이 한 명의 신자요 사제로서, 이 현상을 바라볼 때, 두 가지 근거를 두고 생각한다. 첫째는 그리스도인 됨의 시작인 세례 언약이요, 둘째는 성공회의 경험과 전통이다.

첫째, 모든 신자는 세례 언약을 한다. 부활 밤 전례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세례가 있을 때면, 우리는 이 세례 언약을 갱신이다. 그 마지막 질문과 다짐은 이것이다.

여러분은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힘쓰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겠습니까?
예, 하느님의 도우심을 그렇게 하겠습니다.

신자인 성직자는 이 세례 언약에 근거를 두고, 성직 서품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권고와 다짐을 받는다.

부제는… 교회의 신자들과 함께 가난하고 소외당한 이웃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세상과 교회를 섬기며 봉사해야 합니다.

그대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한 이웃을 돕고 보살피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제는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를 선포하며 이 세상을 지키는 파수꾼과 청지기로서 하느님의 백성들을 이끌어 영원한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대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새 언약의 성사를 거행하여 이 세상이 하느님과 화해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도록 힘쓰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기서 다짐하는 언약이 세상의 정치와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둘째, 성공회의 역사적 경험과 전통은 세상 정치에 대한 무관심보다는, 오히려 그에 대한 참여가 각별했다. 성공회가 시작된 ‘영국’ 성공회가 여전히 국교이다(현재 세계 성공회에서 영국 성공회만이 영국의 국교일 뿐,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교파 교회로 존재한다). 그 역사적인 발전에서 나타난 관계 변화를 고려하더라도, 이는 교회가 세속 정치와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대표적 사례이다. 종종 잘못 이해하고 있는 ‘국교’(Established Church)는 원래 ‘국민 교회’(National Church)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했다. 나중에 이것이 ‘국가 교회’(State Church)로 변하면서 문제가 되긴 했지만, 성공회는 이 ‘국민 교회’라는 생각으로 교회의 사회 참여, 특히 예언자적 참여의 경험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 경험 탓에, 성공회의 신학과 영성 전통 어디를 봐도, 일상의 삶, 사회 정치적인 삶과 동떨어진 주장이 없었다. 발생 당시의 영국 복음주의가 얼마나 사회 참여와 그 개혁에 적극적이었는지, 성공회-가톨릭주의자들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실천을 통해서 그 신학과 영성을 얼마나 깊이 발전시켰는지를 보면 안다. 성공회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3. 캔터베리 대주교들의 대(對) 사회 발언과 실천

이런 점에서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대정부 비판은 새로울 것이 없다. 오히려 그동안 왜 주저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역대 캔터베리 대주교 가운데 신학적으로, 영적으로, 사목적으로 훌륭했노라고 기억되는 분들은 대체로 세속 정치에 대한 발언이 더욱 강했다.

윌리암 템플(William Temple) 대주교는 2차 세계 대전 중인 영국 국민을 위로하면서, 전후 UK 복지 국가 모델의 신학적 기초를 놓았다(Christianity and Social Order, 1942). 그는 주교로서는 처음으로 한때 노동당 당원이기도 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교회는 자기 내부의 일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지상의 유일한 사회이다.”

최근 예로, 로버트 런시(Robert Runcie) 대주교는 마가렛 대처 총리와 사사건건 부딪혔다. 영국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며, 대처 정부의 강압적인 노동 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대처 총리는 당시, 런시 대주교의 정치적 비판을 두고 “그러면, 광부들과 석탄을 먹고 살던가” 라고 대꾸하여 사회적인 공분을 샀다. 또, 영국이 아르헨티나와 벌인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대처 총리가 ‘승전 기념 미사’를 드리자고 제안하자, 런시 대주교는 하느님 앞에서 전쟁의 승자와 패자는 없으며, 오직 전쟁의 희생자들만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는 양국 ‘희생자들을 위한 기억의 위령 미사’를 드렸다.

4.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는 ‘좌파’? – 공동체와 민주주의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이번 대정부 비판에서는 ‘좌파’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뜻이 비친다. 이 말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 정치 세력들이 역사 속에서 좌파가 추구했던 가치를 무시해서 문제가 생겼다고 보는 것이다. 그 가치는 바로 그리스도교 전통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공동체’에 대한 생각과 잇닿는다. 이 가치를 위해서라면 당신 자신이 논쟁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다.

윌리암스 대주교는 현재의 UK 연립 정부(보수당-자유당)가 추구하는 ‘큰 사회’(Big Society) 정책이 매우 모호하며, 이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검토를 거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검토되지 않고 모호한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지난번 정권이 잘못해서 그렇다,” “경제가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만 둘러댄다고 비판한다. 특히 교육 정책, 복지 정책 등에서 가난한 이들의 삶이 위협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 사회가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만들어 온 바른 가치, 즉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이 ‘좌파’적이라면, 그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현 정부를 성토하겠다는 의지마저 읽힌다.

윌리암스 대주교가 문제라고 지적한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그 정책에 대해 평가할 능력이 없다. 다만, 윌리암스 대주교가 지적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공동체에 대한 가치 회복은 우리 사회와 교회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점을 우리 안에서 성찰하여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면, 우리 사회나 교회는 계속해서 가난의 희생자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세례 언약에서 다짐한 “정의와 평화”는 고사하고, 맛을 잃어 길에 버려져 밟히는 소금 처지가 될까 두렵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종교와 신학을 온정주의라는 차원에 말하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된다. 우리가 되새겨야 할 신학 전통이 있다. 이 전통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온정의 대상이 아니라, 지탱 가능한 공동체의 본질로 본다. 이 가난한 사람들은 마치 몸을 도는 피와 같은 존재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만들어 내는 힘이다. 이 전통은 다른 사람들과 집단의 능력을 세워준다. 그리하여 이들이 다시 사회에 생명과 책임을 가져다주도록 한다. 놀랍게도 이것이야말로 성 바울로 사도가 생각했던 공동체이다. 하느님은 이런 공동체를 원하신다

민주주의는 이런 이상을 평가하는 잣대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정책에서라도 민주주의는 핵심적인 문제이다. 즉, 민주주의를 통해 한 사람과 집단이 얼마나 넉넉하게 참여하는가, 그리하여 장기적으로 다른 사람과 집단에 풍요로운 복지를 제공하도록 하느냐는 문제이다. 초기 생디칼리스트의 말을 빌자면, 국가를 ‘공동체들의 공동체’로 보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이나 다수결주의를 넘어서며, 지역이기주의를 초월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유하는 필요와 희망과 진정한 포용을 위한 실질적인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후원: 한누다 교우 (서울교구, 강화 넙성리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