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 주류 교회의 쇠퇴
Wednesday, February 24th, 2010비(非) 서구의 보수적인 그리스도교파일수록, 특히 성장에 열을 올리는 교회들일수록, 서구 주류 그리스도교의 쇠퇴와 죽음을 안줏거리로 삼는다. 이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은 서구 그리스도교의 쇠퇴는 단순한 쇠퇴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적인 문화와 가치가 서구 문화에 스며드는 현상이라며, 여러 긍정적인 영향의의 사례를 들어 맞불을 놓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서구 그리스도교, 특히 주류 교회(mainline church)는 쇠퇴하고 있다.
용어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우선 정리할 것이 있다. 서구에서 말하는 주류 교회와 한국에서 말하는 주류 교회는 아예 반대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서구의 주류 교회란 전통적인 개신교단, 특히 ‘리버럴’한 교단을 지칭한다. 미국의 보수주의 신학 – 그것도 미국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정치 문화적 우파와 상업주의가 결합한 – 에 기초한 메가 처치(mega church) 등은 신생 교회 혹은 교단이다. 물론 전통적인 보수 교단이 존재한다. 남침례교 같은 교단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의 주류 교단/교회는 대체로 한반도의 정치사와 엮여(특히 반공주의에 기반하여) 한국에 정착하여 특이하게 발전한 보수주의/근본주의 개신교들이다. 한국에서 진보적이거나 리버럴한 교회들은 교단적으로나 개별 교회 차원에서도 그 세가 지극히 미약하다.
많은 이들은 미국의 예를 들어, 진보적이고 리버럴한 교회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보수적 가치에 따른 복음주의 부흥이 가져오는 교회의 성장을 예로 들며, 교회의 미래를 점친다. 여기에는 통계 수치의 마법이 빠지지 않고 이용된다.
그러나 미국 주류 교단의 쇠퇴 현상에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면 안될 역사 문화적 요인과 교회의 내적인 요인이 있다.
1. 미국 주류 교회들이 신자를 잃은 것은 사실이다. 그 쇠퇴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시민 인권 운동을 겪으면서 진행되었다. 이때 많은 주류 교회는 자신들의 과거 신학과 그 행태를 반성하기 시작했고, 특히 그 교회 지도자들은 시민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때 이러한 미국 주류 교회의 반성과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 보수적인 교단으로 대거 이동했다.
2. 게다가 이 시기 많은 주류 교단 내 개별 교회들은 시민 인권 운동 참여로 많은 논란을 겪었다. 이 논란 속에서 진보적이고 리버럴한 교인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교회 행태가 싫거나, 보수파 교인들에게 지쳐서 교회를 떠났다. 이들은 이후에도 진보적으로 탈바꿈하려는 주류 교회에 다시 들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 연장선에서 이제는 세속 사회의 여러 가치가 자기들에게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들은 보수적인 신앙인들에게 치인 경험도 있어서 교회 자체에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3. 또 다른 요인은 미국 사회의 개인주의와 영성주의의 문제이다. 반성하는 주류 교회는 교회의 가치에 공동체와 사회적 책임을 두었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더욱더 개인주의화하고, 이에 들러붙은 영성주의(spiritualism)에 빨려 들어간다. 제도적 종교를 가지지 않되, 여전히 종교적/영적/신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4. 주류 교회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메가 처치(mega church: 초대형 교회)의 이른바 ‘번영 복음’ ‘번영 신학’이 사람을 유혹한다. 미국의 꿈은 이 번영의 복음을 통해서 실현될 참이다. 이들은 주류 교회에 남아서 흔들리는 신자들마저 미국의 가치를 들먹이며 뽑아간다.
최근 영국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국교인 영국 성공회가 지속적으로 쇠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사실이다. 그 요인과 관련하여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지적들이 있다.
1. 사회의 세속화는 대세이다. 그러니 그리스도교가 쇠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국에서 이슬람교의 성장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것은 종교 근본주의의 성장 맥락에서 봐야 한다.
2. 교회 내부에도 문제가 있다. 현대 사회에 대한 교회의 부적응이 눈에 띈다. 특히 젊은 성직자들은 대체로 학교에 배치되어 있어서 교회에 관련을 맺기 어렵고, 교회 현장은 나이 든 성직자들이 대거 점령하고 있어서, 새로운 사목적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3. 영국 성공회의 경우, 현재 논쟁 중인 여성 주교 문제, 그리고 동성애 문제 등이 언론을 통해서 드러날 때, 특히 이를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언론에 대서특필되곤 한단다. 이때 젊은 세대, 그리고 좀 더 지적인 사람들의 태도는 교회에 대해서 더욱 적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4. 특이한 현상이 또 있다. 복음주의 교회들의 성장은 교회 전체의 쇠락을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복음주의 교회들의 매우 협소하고 반지성적이며, 반동성애적인 극단적 주장을 거침없이 내뱉는 교회가 득세할수록, 교회 밖의 사람들은 이를 교회 전체의 목소리로 듣게 되고, 교회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영국에서 복음주의권이 성장하면 할수록, 영국 성공회와 다른 기타 주류 교회 등은 쇠락할 것이라고. 실제로 영국 감리교는 쇠퇴를 거듭한 결과, 영국 성공회에 재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주류 교회의 쇠퇴와 번영 신학에 입각한 보수파 교회, 그리고 메가 처치의 성장을 두고, 미국의 종교 사회학자 마틴 마티(Martin E. Marty)는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Schadenfreude) 현상이라며 혀를 찬 바 있다. 한국에서야 좀 더 부드럽게 “금붕어 어항 옮기기”라고 할 만하겠으나, 비슷한 현상이다. 이 현상은 한국 개신교의 성장이 둔화를 넘어서 쇠퇴를 기록하기 시작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도, 몇몇 대형 교회들은 거침없이 교인 수와 자산을 늘리는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교회의 계급화/계층화 및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과 영국의 상황에는 공통점과 상이점이 있겠다. 그러나 함께 고민할 만한 여러 시사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그리스도교계 (천주교, 개신교, 성공회 모두 포함)의 처지는 어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