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상' Category

예배 – 전례 공간의 형성

Friday, April 21st, 2006

아침에 반가운 전화가 한국에서 걸려왔다. 이곳 한인교회에서 함께 하다 돌아간 프란시스 전화였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현재 출석하는 분당교회 교회 이전과 관련된 이야기로 넘어갔다. 생각이 한국성공회 내의 교회 건축과 공간 배치 등에 대한 상념으로 이어졌다. 짤막하게 공부한 것들과 경험한 것들이 상념과 겹치길래 아침 나절에 메모를 하고는 프란시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다른 이들도 관심이 있을까? 부활절 아침에 통화한 이선우 신부님의 일갈이 떠올라 여기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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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 구성이라는 말보다는형성이라고 쓰는데는 기본적인 의도가 있습니다. 조성이나 구성은 누군가의 의해서 의도를 부과하여 만들어내는 같은 느낌이 묻어오는데, “형성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어떤 것이 자라서 태어난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국어사전을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사전적 정의로 구별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래에 주절거리는 것들이 내내 어떤 분야의 전문적 식견이라기 보다는, 전례를 공부하는 사목자로서의 느낌일 뿐이라는 말이겠습니다.

이런 점에서공간의 형성 관련된 아주 느슨하고 두서 없는 생각을 실제 제가 한국에서 경험한 실내 리모델링 교회, 개척 교회들에 대한 인상 속에서 말해 보겠습니다. 아주 추상적인 접근에서 소심한 접근까지 격의 없이 춤출게 당연합니다.

1: 공간의 형성

1. “형성이라는 속에서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교회의 공간은 공간에 모이는 이들이 안에서 경험하는 어떤만남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수직적으로 그것은 절대자 혹은 하느님과의 만남이고, 수평적으로 교회 공동체의 일원들과의 만남이다. 만남의 경험을 통해서 예배 공간에서 의미가 태어나는 것이고, 의미가 예배의 공간을 형성한다.

2. 만남의 경험들은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양할 터이니, 당연히 예배의 공간이 형성되는 방법도 다양하겠다. 예배 공간의 어떤 실체적 모델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겠다.

3. 수직적인 하느님의 만남이나 수평적인 교회 공동체의 만남이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수평적인 교회 공동체가하나의 이뤄서 하느님을 만나기때문에 이것은 교차된다. , 우리 앞에 중요한 상징이 있다. 십자가

4. 한국교회의 경우 너무 수직적인 만남에 강조를 두는 경향이 강해서, 이것은 대체로 개인주의적인 신심으로 협소해지고, 성직자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권위주의를 강화한다. 수평적인 교회 공동체의 사귐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이게 생일 잔치인지, 끼리끼리 모임인지 구별이 안될 수도 있다. 개인과 공동체는 분리할 없는데, 나는 공동체가 모여서우리라는 개인 만들어내는 경험이 예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우리인 하나 바로 하느님과 만난다.

5. 이런 점에서 예배 공간의 형성은 공동체의 경험에 기반을 두었으면 좋겠다. 교회는 주교의 교회도 아니요, 사제의 교회도 아니고, 교회 공동체 전체가 만들어가는그리스도의 이기 때문이다.

6. 그러니 공간은 몸으로 자라나고 형성된다. 똑같아도 똑같지 않은 우리 몸처럼속살처럼 나와서 자라나기도 하고, 늙어 죽기도 하겠지만그러나 우리는 다시 부활한 몸이 것이다. 그래서 이는 우리의 삶과 닮았지만, 시간에 따라 자연사하는 공간은 아니다. 부활하는 공간이요 영원한 삶의 공간이겠다.

7. 이런 허튼 소리를 머리에 떠올려보는 것은, 교회 예배 공간의 리모델링에서 최소한 우리의 신앙과 신앙의 경험들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느냐를 확인해보기 위해서다. 교회 리모델링은 사제와 몇몇 건축위원회 지도자가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작가 개인의 작품도 아니며, 인테리어 시공업자의 작품도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교회 공동체의 작품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를 찾지 않으면, 우리는 교회 공간 안에서 내내 손님이 것이다. 하기야 요즘은 손님으로만 받아주는 교회를 찾는 사람들도 많지만

8. 그러니 어떤 경우에라도 교인들의 신앙 경험물론 이건 개개인의 신앙 경험이 아니라, 하나로 어울어진 우리의 신앙 경험이다 기반하도록 해야겠다. 사제는 교회의 선교 사명과 이것을 대화하게 하고 조화시킬 책임이 있다. 하기야 그게 어려워서 문제인게지그리고 이런 점들에서 건축/리모델링을 교인들의 신앙을 경청하고, 신앙을 공동체 안에서 다시 생각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과정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새롭게형성되는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이 없어예배 공간의 형성 책임질 있겠는가?

9. 예배 공간은 못박힌 십자가가 아니라, 부활한 예수님의 몸이다. 벽을 뚫고 여기 저기를 통하는 몸이다. 우리도 예배 공간을 통해서 그런우리인 하나 몸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니 예배 공간이 상황에 따라 특징을 잃지 않으면서도 변용 가능할 있도록 고려해서 융통성있게 배치해야 한다. 절기마다 조금씩 예배 공간의 배치를 바꾸는 것도 좋다. 우리는 살아움직이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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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암 템플 대주교, 교회의 존재 이유

Monday, April 3rd, 2006

지난 세기 최고의 그리스도교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이었던 윌리암 템플 (William Temple, 1881-1944) 캔터베리 대주교는 교회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

교회는 자기 내부의 일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지상의 유일한 사회이다. (the Church is the only society that exists for the benefit of those who are not its members.)

교회가 커피숍보다 많은 한국의 처지에, 매 주일 미사 참석 인원 평균이 8천명에도 못미치는 성공회가 한국에 존재해야 할 까닭이 무엇일까? 템플 대주교의 교회에 대한 정의는 그 존재 이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자기 내부 사람만이 아닌 “타자들,” 특히 주변으로 내쫓긴 사람들을 끌어 안으려 노력해 왔던 까닭에 한국 성공회는 존재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이 노력과 이상이 꺽이지 않도록 스스로 채근질할 때다.

로데릭 신부의 파드캐스팅

Friday, March 31st, 2006

몇 개 안 되는 내 파드캐스트 구독 목록 가운데는 네덜란드의 한 로마 가톨릭 신부가 운영하는 “데일리 블랙퍼스트” Daily Breakfast 라는 것이 있다. 로데릭 본회겐 신부 Fr. Roderick Vonhögen 는 처음에 가톨릭 인사이더라는 이름의 사이트를 개설하여 작년에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 및 새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선출과 교황의 독일 쾰른 방문 등을 현장감있게 소개하고, 갖가지 신앙적 이슈와 관련된 영화 이야기 및 파드캐스팅 전반에 관련한 에피소드를 만들다가, 몇 개월 전부터는 세계 사람들에게 “매일 아침식사”를 선사하고 나섰다.

아무리 네덜란드 사람들이 영국인을 뺀 유럽에서 영어를 가장 잘한다곤 하더라도,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는 영어 방송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또한 바티칸에 신앙 교육과 홍보를 위한 미디어 학교가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실제로 파드캐스팅이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들과의 교감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의사 통로요 미디어라는 점에서 큰 자극을 얻었다. 게다가 신앙의 문제를 젊은 세대들이 쉽게 접하는 영화, TV 드라마 등을 소재로 하여 컴퓨터 매니아로서, 교구 사제로서의 일상과 함께 풀어나가는 것에 찬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용기를 내어 이런 걸 한번 시도해봐야지 하는 부러움에 넘쳐 한껏 자극을 받아 매일 아침 이어폰을 꽂고 있다. 물론 영어 듣기 훈련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어제는 평소와 달리 1시간이 넘는 긴 방송을 내보냈다. 쉬는 참에 후반부까지 다 들어보니, 아주 실망스러운 소식에 로데릭 신부 자신이 어리벙벙해 하고 있었다. 교구에서 그에게 맡긴 프로젝트는 이런 방송이 아니니, 불필요한 곳에 시간을 쏟지 말라고 하면서 파드캐스팅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문제는 이 교구 관계자들이 파드캐스트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니와, 최근에야 몇번 로데릭 신부의 방송을 듣고 자기들끼리 폐쇄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주교와의 면담을 요청하고, 세계 곳곳의 청취자들과 네덜란드의 교인들에게 자신의 파드캐스팅을 후원하는 이메일과 코멘트를 보내달라고 했다. 오는 토요일 2시에 주교와 면담할 때, 그 내용을 전달하겠다는 것. 다만 그 주교님이 전혀 컴퓨터를 모르는 분이서 걱정이 된단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개인 메일을 로데릭 신부에게 보냈고, 웹페이지만도 90개가 넘는 코멘트가 줄이어 그를 응원하고 있다. 물론 나도 한 줄 거들었는데, 다른 교단 신부가 응원한다고 흠이나 잡히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잘 해결되리라 생각하지만, 결국 중단되고 만다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 교구와 주교라는 오명을 얻을 것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말은 사실 로마 가톨릭이나 성공회, 정교회에서 중시하는 성사신학의 핵심이 될 만한 말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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