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상' Category

교회 분열에 대한 우스개 소리 하나

Monday, December 4th, 2006

어느 날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다리 난간을 넘어 뛰어 내리려는 참이었다. 나는 황급히 뛰어가서 그를 말렸다.

“잠깐만요. 그러지 마세요.”
“이러지 말 이유가 있소?” 하고 그가 묻자, 나는,
“그럼요, 살아야 할 이유야 많죠?” 하고 대답했다.
“그게 뭔데요?”
“종교가 있나요?” 내가 묻자,
“예,” 그가 대답했다.
“나도 그래요. 그럼 그리스도교 신자요, 아니면 불교 신자요?” 하고 물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도 그래요. 그럼 가톨릭이요, 개신교요?” 하고 다시 묻자, 그는
“개신교인데요.”
“나도 그래요. 그럼 성공회 신자요, 침례교 신자요?” 하고 묻자,
“침례교 신자요.”
“와, 나도 그래요. 교단이 하나님의 침례교요, 주님의 침례교요?” 하고 묻자,
“하나님의 침례교요.”
“나도 그래요. 그럼 원조 하나님의 침례교요, 아니면 개혁 하나님의 침례교요?” 하고 묻자,
“개혁 하나님의 침례교요” 하고 대답했다.
“나도 그래요. 그럼 1879년 개혁파요? 아니면 1915년 개혁파요?” 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는 “1915년 개혁파인데요” 하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래 죽어라 이 쓰레기 이단아!” 하고 말하면서 그를 떠밀어 버렸다.

초대 교회는 조화롭고 통일된 하나의 교회였다는 믿음은 신화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양이 처지에 따라 다양했기에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 분열과 다툼은 어디에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해결하는 양상이었다. 갈등은 초반 몇 세기에 대단한 신학적-교리적 논쟁을 겪으면서 정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황제의 권력에 의한 일시적인 봉합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학적 교리적 논쟁이 그런 분열을 치유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다름에 분명한 경계를 긋고, 그것을 틀린 것을 정죄하면서 더욱 곪아가는 양상을 보였다. 이 사이에서 어느 교회 전통도 그 본래 의미의 “가톨릭”이 아니다.

이런 논쟁과 분열의 양상은 대체로 정통과 이단이라는 이분법을 주무기로 하여, 정죄와 파문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고, 실제 그 집행 과정은 지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십자군 – 그게 이슬람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의 탈환이었지만, 실제로는 정교회 신자들을 도륙했다 – 으로부터, 종교개혁과 연관된 끊임없는 종교 전쟁을 낳았다. 오죽하면 이러한 종교에 의한 살육의 전쟁이 끝나서 각각의 독립성을 인정하기 시작한 계기인 “베스트팔리아 평화 조약”(1648년)에 이르러야 진정이 되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의 힘은 이를 계기로 국가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역사가들은 이를 서구 근대의 출발로 보는데 입을 모은다. 종교 권력이 끝나는데 근대의 시작이 있다면, 다시 패권적 종교 권력을 구사하려는 힘들이 부흥하는 것은 근대 이전의 회귀가 되는 것일까?

시시껄렁한 우스개 소리 하나 소개하려다가 참 거창한 이야기가 나와버렸다. 여전히 손쉬운 이분법과 편 가르기, 그리고 정죄와 파문이 사그라들지 않는 종교계 (대체로 그리스도교계)는 여전이 “근대” 이전에 있는 듯하다. 교회의 분열 상에 대한 이 농담은 한국의 교회 분열을 그대로 비춘다. 분열은 대체로 커다란 공통점보다는 작은 상이점에 초점을 맞춘다. 그 상이점들은 서로를 정죄하기 위해서 극대화되고 폭력적이 된다. 이런 극렬함은 대체로 경전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에 근거를 두어 자기 해석 이외의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근본주의이다. 근본주의는 정치, 종교, 주의를 막론하고 또다른 하나의 종교이다. 그리고 한기총이라는 다른 종교가 있다. 나는 “부시의 기독교”와 “오사마 빈 라덴의 이슬람교”를 같은 종교로 본다.

블로그 주소 이전

Wednesday, November 1st, 2006

아마도 옛 블로그 주소 (http://viamedia.new21.org)를 타고 오신 분이 계실 듯합니다. 모든 자료를 충분하게 옮기지 않고서도 서둘러 주소 이전을 밝힌 듯합니다. 예전에 게시판으로 운영하던 “질문과 답변”의 자료를 같은 게시판 툴로 옮길 수가 없는 처지를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다른 방도를 찾고 있습니다. 블로그 모양새도 하도 오래 전에 만져 본 터라 똑같이 옮겨 놓기가 쉽지 않더군요. 틈나는대로 불편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전통: 난쟁이와 거인의 관계

Friday, April 21st, 2006

아래 글에서 “전통”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다. “전통은 늘 양면적이지만, 사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참 많다. 그것은 마치 정교회 어느 아이콘처럼, 천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일 수 있다.” 다시 봐도 참 밋밋한 표현이다.

사실 전통에 대한 내 태도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정확한 인용이 생각나지 않아 이렇게 표현하고 말았다. 아마 십 수년 전 대학원 교회사 세미나에서 읽었을 어느 인용구였다. 종교개혁은 중세라는 거인에 무등탄 난쟁이라는 것이었는데, 오늘 그 기억을 되살려 그 말의 시작을 찾아보았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난쟁이와 같아서,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이 좀더 명확한 시선을 가져서도 아니요, 실체에 더 가까워서가 아니라, 거인의 키를 빌려 너 높이 올라 있기 때문이다.”

12세기 영국 출신으로 프랑스 샤르트르 주교가 되었던 솔즈베리의 존 (John of Salisbury)이 당대 철학자였던 베르나르의 말을 인용해서 전해준 말이다. 흥미롭게도 이 말은 성공회 정신을 대표하는 이들에게서 반복 이용되거나 변주되었다. 성공회 사제요 시인이었던 조오지 허버트,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튼, 그리고 근대 성공회 정신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문학비평가였던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가 그들이다.

조오지 허버트 George Herbert (1651):
“거인 어깨 위의 난쟁이는 그냥 난쟁이나 거인보다 멀리 본다.”

아이작 뉴튼 Isaac Newton (1676):
“내가 (그들보다) 좀더 멀리 볼 수 있는 까닭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 Samuel Taylor Coleridge (1828):
“거인의 어깨에 올라탔을 때, 난쟁이는 거인보다 멀리 볼 수 있다.”

말맛이 그 처지에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전통에 대한 비판과 존중을 생생하게 잡아내는 장면이라고 본다. 실제로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예언자들과 복음사가들의 관계를 이런 거인과 난쟁이로 표현했다. 우리는 난쟁이일 뿐이다. 겸손과 감사로, 묵은 것 안에서 힘을 찾아 그것으로 새로운 것을 열어보라는 지혜이겠다.

신앙을 성서와 전통과 이성의 관계 속에서 식별하려는 성공회로서는 이런 태도에서 전통을 생각해 볼 일이다.

이 난쟁이 때문인지 생각의 꼬리는 갑자기 발터 벤야민의 [역사 철학 테제]의 난쟁이로 이어진다. 물론 이 난쟁이들은 전혀 입장이 바뀌어 있다. 벤야민의 난쟁이는 베르나르의 거인이고, 베르나르의 난쟁이는 벤야민의 장기두는 자동기계이다. 하지만 같은 점은 이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