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영성' Category

성주간: 하느님의 고통 나누기

Tuesday, March 18th, 2008

게쎄마네에서 예수께서 물으셨다.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었느냐?” 이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하느님께 기대하는 바에 대한 전복이다. 인간은 이제 하느님 부재의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고통을 나누라는 부름을 받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 없는 세상에서 실제로 살아가야 한다. 어떤 종교적인 방법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 이 하느님 부재를 속여 넘기거나 설명하려 하지 말 일이다. 인간은 ‘세속’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로써 하느님의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방법 안에서 종교인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법에 의지해서 자신을 어떤 존재(죄인, 참회하는 자, 혹은 성인)로 만든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인간이 된다는 것, 그러나 그저 그런 인간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만들어 내시는 그 인간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은 어떤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이 세속 사회 속에서 하느님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의 [옥중서간] Letter and Papers from Prison에서

대운하 반대 100일 순례 – 최상석 신부님께

Wednesday, February 13th, 2008

+ 주님의 평화

최상석 신부님, 살을 에는 찬바람의 들판을 눈 맑은 분들과 함께 잘 걷고 계신가요? 출발 전 성직자들에게 보내신 한반도 대운하 반대를 위한 종교인 100일 순례의 출사표를 읽으면서, 사실 저는 그 큰 뜻보다도 먼저 신부님 건강을 먼저 걱정했습니다. 영상에 나온 그 얇은 스포츠 모자가 너무 추워보였어요. 뭐, 그게 사람 마음이지요.

약한 사람들을 이런 찬바람 속에 내미는 정치꾼들의 허황된 약속과 위험한 생각들이 참으로 야속하고 밉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우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사순절기, 신부님께서 가시는 길 마다에 제 마음도 실어 주십시오. 저도 거기에 있다면 함께 따라가면서 기도하고, 찬바람도 하느님의 시원한 숨결인 것으로 느끼고,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서 파이고 잘리는 산하를 보며 함께 아파하는 길을 걸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디 제 마음도 신부님의 마음 한 켠에 실어 주십시오.

저는 여기서 신부님, 그리고 함께 하시는 모든 순례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또 연락드릴게요.

미국 버클리에서

주낙현 신부 합장

기사: 종교인 16명 “대운하 반대” 100일 순례

대중적 수사학 – 센타무 대주교과 사순절

Wednesday, February 13th, 2008

현직 캔터베리 대주교의 공중 의사 소통 (public communication) 문제를 생각하니, 요크 대교구의 센타무 대주교(The Rt. Rev. Dr. John Sentamu, Archbishop of York)가 다시 떠오른다.

그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독재자 무가비 대통령의 학정이 문제가 되었을 때 이를 비판하면서, 그 상징적 행동으로 성직 칼라(이른바 “개목걸이” dog collar)를 생방송 인터뷰 도중에 가위로 잘라 버렸다. 무가비의 학정은 그 국민들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이라며, 그 행위를 빗대어 성직 칼라를 조각낸 것이다. 그리고 대주교는 무가비가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성직 칼라를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사순절기 내내 묵상해야 할 상징적 행위로도 손색이 없다. 게다가 오늘날 주교(bishop)란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BBC의 짧은 보도 및 행동에 대한 해명 (1분 55초)

전체 인터뷰 (6분 57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