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 1

August 25th, 2008

이래저래 바쁜 여름을 보냈다. 몸이 파김치가 되었으나, 참 좋은 경험이었다. 아래에도 적었지만, 한국 방문 기간에 환대해 준 분들의 마음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이어 곧바로 람베스 회의로 영국에 가는 바람에 몸의 집도 비우고, 이곳 블로그 집도 한동안 비웠다. 대신 새로운 임시 천막인 [람베스 통신]을 치고, 거기서 다시 몇몇 분들을 조우했으니 그것으로 족하게 기쁜 일이다.

몸의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길었는데, 블로그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더 멀었다.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연결 문제로 연발과 연착이 거듭되었 듯이, 블로그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의 길에 연착륙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우선은, 돌아와서 미처 영국에서 끝내지 못한 [람베스 통신]의 몇몇 글들을 정리해서 올려야 한 탓에 제 집을 소홀히 했고, 다른 이유로는 영국에 머물러 [람베스 통신]을 적는 동안, 거기다 적은 글들로 심기가 불편한 분들이 뒷담화하거나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통에 마음이 산란했다. 이런 일로 마음에 파장이 이는 건 분명 내 그릇이 작은 탓이요, 마음이 깊지 않은 탓이겠다.

수련과 내공이 깊지 못해서 얻은 상처라 해도, 우선 싸매고 치료하고 봐야 한다. 자칫 만신창이가 되면 남겨둔 수련의 일정을 소화할 틈도 없이 불구가 되어 하산해야 한다. 예전엔, 죽도록 싸워봐야 하리, 했는데, 돌아보니 객기였을 성 싶다. 우선 싸매고 보살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움츠리는 건 자연스런 보호 본능이다.

사실 이런 일에 익숙할 만도 하다. 연전에도 관구 게시판에서 더 험한 인신공격도 겪어 봤으니, 이 정도 가지고야, 할 만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문 상처의 자리는 더 약하다. 그 상처를 보호하고자 짐짓 단호한 어조로 “당부의 말씀”을 드리기도 했으나, 그걸로 잦아든 건 아니어서 다시 이런 공격이 머리를 든다. 게다가 알만한 사람이 뒷담화를 하거나, 인터넷에 주소를 입력하거나 링크를 타고 오면 언제든지 읽을 수도 있는데, 확인도 하지 않고 그런 뒷담화를 퍼뜨리는데 가담하는 일은 비겁하다 못해 가여운 일이다. 하릴없이 그 “당부의 말씀”을 다시 들려 줄 수 밖에 없다.

제 생각을 나누기 전에 여기서 잠깐 당부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 글을 끝까지 읽지 않으시고, 그저 몇가지 주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덧칠하려는 분이 있다면, 아래 내용을 읽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당사자 개인에게도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신앙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말을 내뱉음으로써 자신의 영을 추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민스러운 내용과 글을 어렵게 나누고자 하는 처지에서 나온 글에 대한 이런 비방들이 그 주장을 정당하게 하기 보다는 교회 전반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도 교회에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서로 바쁜 처지에 어떤 정신적 노동과 수고를 강제할 생각도 없습니다.

익명성으로 가려진 공간에서는 신앙인이라면 스스로를 더욱더 삼가는 일이 덕이겠습니다. 솔직히 저만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을 받으면서 무대 밖의 어둠으로부터 화살을 맞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처지라면 오히려 실명을 밝히시고, 교회에서의 위치를 밝히면서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이 자신의 영을 건강하게 붙잡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은 논쟁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요구가 아니라, 한 명의 사목자로서 몇몇 신앙인에게 드리는 권면입니다.

마지막으로, 몇몇 신자들이나 동료 성직자들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생각으로 남을 윽박지르는 일을 삼가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자신이 글을 쓰면서 매우 엄격한 “자기 검열”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기도요, 둘째로 제 자신에 대한 성찰이요, 세째로 신학 공부와 사목적인 경험을 통해서 여러분과 나누려는 하나의 열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교회에 대한 책임있는 자로서 말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물론 성직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가 제게 부여한 책임이고, 또 검증한 능력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잘못이 있다면 그에 상응한 절차로 제게 책임을 물으시면 됩니다. 그에 따라 저도 제 말에 책임을 지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제가 깊이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외부의 “윽박지름”이 우리 교회를 이끌어가야 할 분들 (신자, 성직자, 수도자 모두)에게 지나친 자기 검열을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리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크나큰 위험이자 손실입니다. 외부에서 강제된 이러한 검열은 결국 교회의 숨통을 죄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자기 듣기 좋은 말만 듣거나, 혹은 남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친목 단체로 전락할 것입니다. 교회의 사제직과 예언자직의 균형을 위해서 신자들이 먼저 성직자들을 응원해 주십시오. 저는 최소한 이것이 다른 교회와는 달리 성공회가 우리 사회 속에서 살아있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만 읽으시고, 떠나실 분들은 제발 떠나시고, 나머지 역시 읽지 마시고, 여러분의 영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아래의 이야기들이 그런 분들의 생각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며,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돌이켜 살피거니와, 화살을 맞는 장면을 지켜보는 보는 입장에서 느끼는 짠한 마음과 실제로 그것을 맞는 처지의 느낌은 다르다. 게다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서 가려진 면들 때문에 저 친구가 진짜 화살을 맞았는지 아닌지 의심하는 부류도 있을 뿐더러, 비명을 엄살이라고 우기는 분들도 종종 나타난다. 그동안에 화살은 살을 꿰뚫고 피를 내고 몸에 독을 퍼뜨린다.

그래도 많은 이들의 격려가 있었기에 돌아오고 있다. 사실 마음을 같이하고 같이 아파하는 사람이 훨씬 많이 있다는 걸 안다. 게시판에서 그야말로 장난질하는 사람이나 뒷담화하는 분들은 극히 적은 한 두 사람에 불과하고, 사실 또다른 배려의 대상이요, 기도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 화살에 맞는 사람은 그 충격을 감당하고 그 상처를 싸매느라, 혹은 그것이 나중에 덧나지 않을까 걱정하며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러니 이 참에, 사서 고생하는 일은 그만 두어야 할까?

그럴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곳은 내 돌아갈 작은 거처로 삼은 곳이요, 무엇보다도 선한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삶을 나누는 통로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으나마 이 공간에서 생명의 둥지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다물고 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참이다.

여기는 캔터베리…

July 16th, 2008

한국에서 돌아와서 며칠 쉬고는 – 실제로는 앓고는 – 다시 영국 캔터베리에 왔습니다. 그 탓에 지난 번 한국 방문에서 만난 여러 신부님들과 교우들,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도 다시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적어왔던 소소한 생각도 정리해서 올려야 하는데 잔뜩 미뤄놓은 채로 캔터베리에 와 있습니다. 예, 람베스 회의가 오늘부터 시작입니다. 저는 세계 성공회 사무소 커뮤니케이션 팀의 일원으로 들어와서 회의 기간 동안 일하게 됐습니다. 복잡한 내막은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요.

우선 람베스 회의에 대한 소식과 생각들을 되는 대로 올리는 블로그를 마련했습니다. 이곳 일정과 일이 있으니 얼마나 블로깅에 충실할 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좀더 정리되거나 발전된 생각들은 이곳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이 블로그와 더불어, 새로운 – 한시적인 – [람베스 통신]도 자주 들러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곧 다시 뵙죠.

봉천동 나눔의 집, 대안 공동체

June 16th, 2008

관계는 돈이나 재원의 전달에 기반하지 않으며, 오히려 희망과 두려움과 삶의 이야기를 교환하는 일에 기반한다. 그리스도교 영성이 의미하는 바는, 함께 먹는 일, 함께 나누는 일, 함께 마시는 일, 서로 이야기하는 일,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 서로를 통하여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일이며, 이런 일 속에서 모든 이들…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과 내쫓긴 사람들, 얻어 맞고 사는 이들을 위한 하느님의 대안적인 전망(vision)인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in Elizabeth S. Fiorenza, In Memory of Her

어제는 봉천동 나눔의 집에 다녀왔다. 성공회 나눔의 집의 선교 실천과 영성에 마음의 빚을 많이 진 사람으로서, 기회가 되는대로 들러서 경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 며칠 전에 몇몇 나눔의 집 신부님들과 작은 공동체 안의 전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으나, 전례란 그것이 드려지는 현장에서 함께 참여할 때라야 경험되는 법, 그래서 작년 성북 나눔의 집을 방문한 것처럼 주일 미사에 함께 참여했다.

봉천동 나눔의 집은 이제 섬처럼 남아 있었다. 재개발이 완료된 뒤 들어선 주위 아파트들에 둘러 싸여 ‘아직’ 옛모습으로 남아 있는 몇몇 이웃들과 함께 그 오래된 보금자리를 20년이 지키고 있었다. 7년 전엔가 들르고 나서 다시 찾은 나눔의 집은 그때와는 달리 한없이 작게 보였다. 그러나 이웃 여러 채의 허름한 집들 사이에 혹은 뜰에 정성스럽고 소답스럽게 핀 작은 화단과 꽃들로 여전히 아름다운 생명을 피워내고 있었다. 작은 담장을 뒤덮은 푸른 잎의 넝쿨들은 그 너머 보이는 위압적인 고층 아파트의 페인트와 대비되는 푸르고 풍요로운 생명을 시위하고 있었다.

나눔의 집은 문턱 없는 환대의 공동체요, 나눔의 공동체이다.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모두 품고 와서 함께 미사를 드리고, 새로 태어난 아이를 안고 온 산모를 함께 축복하고, 축하의 떡을 함께 나누며, 콩나물밥에 간장을 비벼 먹고 시원한 콩나물국을 곁들여 배를 채웠다. 편하게 둘러 앉아 작은 공동체 안에서 누릴 전례의 기쁨과 행동들, 그리고 이를 위해 개선할 점들을 서로 나누면서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살짝 얼린 막걸리가 배달되었다. 걸쭉한 막걸리와 그 사발 만큼이나 진하고 편한 이야기들을 행복하게 나눴다. 1부의 미사에 드린 성찬례를 2부인 일상에서 실천으로 이어온 것이다.

기쁘고 반가운 하루를 마련해 준 이들, 그 착하고 맑은 마음들에게 깊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