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하느님

January 31st, 2008

1. 하느님 행동의 신비

“errore hominum providentia divina”
(하느님의 은총 혹은 섭리는 인간의 잘못과 죄를 통하여 일어난다.)

신약학자 제임스 샌더스 (James A. Sanders)가 그의 책 여기저기서 되풀이 소개하는 고래의 신학적 금언.

이에 대한 부연으로 그가 덧붙이는 말: “분명한 건 성서에는 도덕률에 대한 어떤 모델이 별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 그보다는 우리 자신을 비춰보도록 하는 수많은 거울들이 들어있다. 하느님께서는 죄 많고, 신앙심이 없은 이들을 통해서 일하셨다… 때로 하느님께서는 종교 단체보다는 세속 단체들을 통하여 당신의 일을 하신다는 점도 알아야겠다.”

교회 망한다고, 교회가 공격당한다고 걱정할 일이 아니다. 교회답지 못하고,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면 하느님께서는 주저없이 다른 이들을 쓰신다.

2. “거울” 혹은 “창” – 성서와 성직에 대해서…

성서를 창(窓, window)으로 보는 일이 필요하다. “창”의 상징을 여러모로 숙고할 일이다 – “이콘” (icon)이라고 하면 한결 깊은 표현이겠다. 창이 없으면 어둡고 갇힌 상자에 머물고 만다. 창을 열어야 숨을 쉴 수 있고, 찬 기운을 막으면서도 햇볕을 받아들일 수 있다. 성직자는 창을 닦는, 혹은 창틀을 만들어 붙이는, 혹은 창 자체가 되려는 사람이다. 성서는 “창”이고 “이콘”이기에, 그것은 성사(sacrament)이다. 성직이 이 창과 결부되어 있는 한 이 역시 성사이다.

어떤 성사가 우상숭배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성사인 성서가 우상이 되는게 남 일이 아니다. 성사인 성직이 우상이 되는 것도.

우상에 대한 짧은 정의: “절대적이지 않은 것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
사례: 2MB 정권의 “경제” –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헉!), 시장지상주의, 자본 “물신” 주의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
“길에서 부처를 만나거든 그 부처를 죽여라.”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가리키는데 더러운 손가락을, 더러운 사람을 들어 쓰시는데 거침이 없는 분이시다.

문정현 신부님 생각

January 30th, 2008

문정현 신부님이 “교회” 사목에서 은퇴하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평생을 더 넓은 “보편적 교회” 안에서 사셨으니, 실제로는 은퇴라 할 수는 없겠다. 다시 그분은 대추리로 발걸음을 옮기시지 않았던가? (via 오마이뉴스)

수많은 이들이 제각기 이 분의 삶과 투쟁 속에서 큰 영향을 받았을 테다. 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한 복판에서 기억되는 그 큰 그림자를 언급하기에는 내가 너무 작다. 다만 22년 전 어린 기억 속에 스치듯한 아스라한 인연처럼 새겨졌던 그분의 허허로운 웃음은 아직도 철없는 이 젊은이에게 사제직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한다. 지난 세월동안 그 웃음은 늘 분노와 슬픔이 가득한 눈물과 겹쳐져서 내게 나타났다. 방송에서건 신문에서건, 또다른 삶의 현장에서건.

문정현 신부님을 처음 만난 건 아마 고등학교 2학년때였으리라. 지방의 한 천주교 재단 학교에 나닐 적에 천주교인 학생들만을 위한 피정에 ‘꼽사리’ 낀 단 한명의 개신교 신자였던 나는 명단 비고란에 프로테스탄트를 뜻하는 ‘P’를 달고 있었다. 천주교로 ‘개종’할 가능성 0%인 나를 종교반에서 2년 동안 교리 교육을 시켜주셨던 선생님들은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을 위한 신앙인의 삶을 체험하는 피정에 나를 초대하셨다. 우리는 경남 산청에 있는 음성 ‘나환자’ 마을과 병원에서 한센씨 병으로 고통받고, 여전히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던 이들과 함께 며칠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전북 장수에 있는 장계 성당을 들리기로 했다. 문정현 신부님께서 주임하시던 곳이었다.

신부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셔서 뵙지 못하고 곧장 성당 부설 “작은 자매의 집”을 들렀다. 오마이뉴스 기사에 나온대로, 작은 시골 동네에서 그것도 정신지체아라는 이유때문에 집혀 갇혀 걸레뭉치마냥 내팽겨져있던 이들을 하나씩 불러내어 이들을 위한 집을 막 마련하셨던 때였다. 거기에 있는 이들의 정신지체 등급 정도는 매우 심한 것이었는데, 당시 시골에서는 이 어린이들을 위한 복지 시설은 거의 전무했다.

곧 신부님이 오셨다. 반갑게 선생님들과 우리들을 맞이한 신부님은 대뜸 “막걸리 한 말 사오지 그랬어?” 하시고는, 곤혹스러워 하는 선생님들을 향해서, “고등학생은 아직 안되나? 하기야 공식적으로는…” 하시며, 이내 절룩거리는 발걸음으로 작은 자매의 집을 돌며 어린이들 이야기와 사목 활동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천국 가는 비법을 알게 됐어. 뭐 다른게 있겠어? 이렇게 살아온 걸로는 하늘나라 가기는 틀렸고, 한가지 이 애들 발뒷굼치만 놓지 않고 붙잡고 있으면 따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애. 이젠 그길 밖에 없어” 하시며 허허롭게 웃어주셨다. 구원론이 별건가?

선생님은 문신부님과 학교의 인연을 말씀해 주시고, 그분이 절름발이된 사연도 들려주셨다. 그분은 우리 학교 초대 종교감(채플린) 신부님이셨다. 그 시절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분들의 시신이 벽제 화장터로 가는 것을 막고, 가족들과 시신을 되찾으려는 과정에서 무릎을 다치셨다. 당시 우리 가운데 몇몇은 70년대의 인혁당 사건을 조금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아 어느 교회에서 몰래 상영했던 독일판(?) “광주 학살” 다큐멘터리에서 그분의 좀더 젊은 얼굴을 보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외국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세월은 그 젊은 외모를 가만두지 않았으나, 그분의 신앙과 열정을 어쩌지 못했다. 그분은 이후에 이리(현재 익산)으로 자리를 옮기시며, 장계성당 ‘작은 자매들’을 마음 속에 깊이 품으셨다. 그리고는 다시 이 ‘집’을 익산으로 옮겨 아이들을 자기 곁에 두게 하셨다.

서울 명동 성당 마당에서,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몇번 스치듯이 다시 얼굴을 뵈었다. 이후엔 전북 지역 평화 인권 단체에 참여했던 친구를 통해서 그 단체 이사장이었던 신부님의 이야기를 전해듣곤 했다. 그리고 그분의 모습은 대추리까지 이어졌고,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아낸 후 가족들의 서러운 울음이 그의 품에 안기는 것을 멀리서 컴퓨터 화면으로 지켜보았다.

22년 전 짧은 하루의 만남 이후 그분의 모습은 늘 내 삶에 참견했다. 그 참견은 때로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제의 모본을 내 앞에 그려주는 것이었지만, 안주하고 싶을 때는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참견이기도 했다. 내 안의 다른 변명거리가 그분의 모습을 애써 눈감게 하려 했다. 그것이 또다시 부채감과 죄책감으로 다가와서 몽롱한 머리를 한 대씩 때려주면, 이걸로 그분에 대한 존경의 소임을 다했노라고 슬며시 에누리하려 했다. 하지만 적당한 자기 위안으로 삼기엔 그분의 삶과 사랑이 너무 구체적이며 선연하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훗날 내게 “왜 문정현이 되지 못했느냐?”고 물으시진 않으실 테다. 대신 “넌 내가 기대했던 주낙현으로 살았느냐?”고 물으시겠지. 문정현은 문정현으로 살았고, 그렇게 살아가실 것이다. 이제 내 삶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물음이 어느 참견보다 무겁다.

나 같은 작은 사람에게도 이 물음을 던져주신 문정현 신부님께 깊은 합장.

하느님과 인간의 고통… 오직 모를 뿐!

January 9th, 2008

지난 해는 여러 상황들때문에 복잡한 심정이 극명하게 교차했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개인적으로 공부 과정에서 가장 큰 고비를 맞게 되었고 (이후에 더하겠지만), 다행히도 공부한 것들을 한국의 신부님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두차례나 가졌다. 내가 속한 교회는 세계적으로 분열로 더욱 치닫고 있으며,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발언한 탓에, 익명에 감춰진 이들에게서 어처구니 없는 인신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해가 지는 마당에 우리 사회는 “성장 이데올로기”의 우상을 지도자로 세웠다.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 새해를 시작할 것인가 하면서 “작은 것들에 대한 마음주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 가운데 지난 해에 다짐했던 대로, “두려움 없이” 나가되, 하느님 앞에서 정직하고 겸손할 것을 다짐한다. 여전히 내 마음 깊이에서 나오는 존경의 인사인 “합장”을 사람들에게 계속하겠고, 어느 신부님의 위로에 덧붙여 달았던 대로, “오직 모를 뿐”인 자세로 정진하겠노라고 다짐한다.

이 참에 3년 전, 전 세계를 아프게 만들었던 쓰나미 재앙에 관한 성찰을 우연히 듣는다. 번역해서 올렸던 캔터베리 대주교님의 글도 언급되거니와,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신앙인이 이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이해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성찰의 원칙을 정직하게 제공하고 있다. 도반인 신부님들, 그리고 눈 맑은 신자들과 예전부터 나누던 생각들이었으니 울림이 더욱 크다. 핵심어는 “두려움” “나마스테”(합장), “오직 모를 뿐”, “함께 고통받는 하느님,” “무한 앞에 선 유한의 겸손,” “측은지심” “의구심과 물음과 불확실성에 기초한 신앙”들이겠다.

동영상은 영국 성공회 엑스터 주교좌 성당의 톰 하니 신부(The Rev. Tom Honey)가 자신의 설교에 기초하여 미국 캘리포니아 몬트레이의 한 모임에서 강연한 내용이다. 필요한 분들을 위하여 강연 내용을 전체를 우리말로 아래에 옮겼다. (강연 원고가 없어서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지적해 주시압!) 

 

(강연의 우리말 번역은 아래 계속 읽기에…)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