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샤이보의 죽음

April 1st, 2005

15년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테리 샤이보가 어제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한 개인의 안타까운 죽음이 가족을 둘러싼 갈등을 넘어 미국 전역에서 찬반 논쟁을 일으키고, 심지어 백악관과 바티칸까지 가세한 “살 권리”와 “죽을 권리”의 대립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그러나 그 보다 먼저 나는 테리 샤이보가 지금 하느님과 있다고 믿고 있다.

성공회는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안락사와 관련한 람베스 회의의 연구와 결의안 가운데 이에 대한 언급이 있다.

1998년 람베스 회의 1부 1조14항

안락사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락사 법제화에 관련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란과 제안에 비추어, 본 회의는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a)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며, 본질적으로 존엄하며 중대하고 가치있는 것이라 천명한다.
(b) 안락사는 다른 사람이 고의적으로 말기 환자 혹은 중환자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그 사람을 죽게 하거나 죽도록 도움을 주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c) 그러므로 엄밀하게 정의한 바에 따라 안락사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에 부합하지 않으며, 어떤 시민법에서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결의한다
(d) (본 회의는) 안락사를 다음과 같은 행위와는 구별한다. 즉 과도한 의료 요법이나 의료적인 중재를 보류하거나 철회, 혹은 거부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부합하며 그 사람이 존엄을 유지하며 죽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영구 식물인간 상태인 경우에 인위적인 영양과 수분 공급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의료적인 중재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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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말씀이 아니다”

March 25th, 2005

“시”의 대체말 : 종교 – 신앙 – 신학 – 예전

시는 말씀이 아니다. 말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장르는 운명이다.
나는 시라는 장르적 특성 안에 편안히 안주한 시들은 싫다.
자기만의 형식이 없고 목소리만 있는 시들도 싫다.
나는 시라는 운명을 벗어나려는,
그러나 한사코 시 안에 있으려는,
그런 시를 쓸 때가 좋았다.
그 팽팽한 형식적 긴장이 나를 시쓰게 했다.
양수막 속에서 튀어나오려는 태아처럼.
자루에 갇힌 고양이처럼.

김혜순 [불쌍한 사랑 기계] 문학과 지성사, 1997

캔터베리 대주교 2005 부활절 메시지

March 25th, 2005

최근 아일랜드에서 열린 세계성공회 관구장 회의의 문서는 널리 읽히며 토론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팎에서 그 문서 가운데 한 문단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관구장 주교들은 유엔(UN)이 정한 새천년 발전 목표들에 대해 투신할 것을 거듭 강조하였습니다. 이 가운데는 2015년까지 가난과 기아 문제를 반으로 줄인다는 희망도 담겨져 있습니다. 이 목표들은 또한 HIV/AIDS에 대한 교육과 방지책을 담고 있으며, 거듭 번지고 있는 결핵과 말라리아의 위협을 막아내려는 일에 대한 헌신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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