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2nd, 2005
새로 선출된 교황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아직 미국 언론에서는 식을 줄 모른다. 미국 천주교회 안에서도 우려와 희망이 심각하게 교차하고 있다. 이 참에 로마에 머물고 있는 미국 천주교 베네딕도회의 조앤 치티스터 수녀님의 글을 읽는다. 매우 잘 알려진 베네딕도 영성 강연가이자 칼럼리스트인 조앤 수녀님 역시 새 교황과 관련한 우려를 염두하고 있다.
베네딕도 영성에서 바라본 지도자의 덕목을 살펴보는 이 글은 간결하지만 곱씹을 여러 내용을 담고 있다. “경청-겸손-공동체-환대”가 그것이다. 성공회가 발전시킨 신앙의 덕목을 여기서 다시 읽는 것도 매우 귀하고 감사하다.
천주교 형제들은 새로운 교황을 얻었고, 내가 속한 한국 성공회 서울교구도 새로운 주교를 축성했다. 그리고 내가 공부하고 있는 이곳 미국 성공회 캘리포니아 교구는 새로운 주교를 찾고 있다. 그들이 어떠한 분이건 그 모든 분들이 조안 수녀님이 밝혀주시는 베네딕도 리더십의 영성을 몸으로 실천한다면 “그 교회는 분명 건강한 교회”가 될 것이다.
지도자에게만 이런 영성이 필요하겠는가? 신앙의 길에 들어선 이상 모든 칠부대중이 함께 정진해야 할 신앙의 덕목이라 여겨 함께 나누고자 글 한부분의 졸역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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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9th, 2005
“나를 따르라”로 시작되는 교황 장례 미사 강론이 예견했던 것일까? 밤새도록 지켜 본 장례 미사에서 들렸던 요세프 라칭어 추기경의 거듭되는 “나를 따르라”는 주문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당부에서, 곧장 선종한 교황의 유지를 받들 것을 요구하는 수사로 나아가서, 이내 26년 여의 재위 기간 동안 “제 2의 교황”으로 불리던 라칭어 추기경 자신을 따르라는 요구로 자꾸 들리기만 했다. 세계 언론이 제 3세계 출신 교황 선출 가능성을 점치며 예의 선정적인 보도로 흥분을 조성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엔 그 강론에서 거듭되던 “Follow me”와 교황으로 선출될 라칭어 추기경의 모습이 겹쳐 그려지기만 했다. 결국 오늘 라칭어 추기경은 교황 “베네딕도 16세”로 세계 앞에 나타났다.
로마 가톨릭 신자들에게 축하할 일인데도 자꾸 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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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2th, 2005
지난 월요일 신학교 매일 성찬례의 집전 차례를 맡은 김에 성찬기도(Eucharistic Prayer)만 번역해서 사용해 보았다. 집전자인 나만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이미 신학생들은 성찬기도를 모두 알고 있는 참이니, 한국어로 챈트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그날 오르간 연주자 크리스토퍼의 제안도 있었다.
미국성공회는 1979년 기도서를 공식발행한 이후 1998년에 새로운 아침기도-저녁기도, 그리고 성찬례를 펴냈다. 20여년 전에 별로 드러나지 않았고 고려하지 않았던 이른바 “포용적 언어”(inclusive language) 사용을 반영하고 새로운 사목 상황에 따른 변화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것이었다.
교회 혹은 신학 내의 성차별적 언어들을 극복하려고 제기된 이른바 “포용적 언어”의 사용은 예전 안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1979년 기도서가 평등주의적 공동체 신학이라고 풀이할 만한 “세례 교회론” (Baptismal Ecclesiology)에 강력하게 기반하고 있던 터라, 이런 새로운 언어적 적용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막상 번역은 녹록한 작업이 아니다. 우리말 운율에 맞추기도 어렵고, 새로운 성찬기도의 핵심인 이른바 영어의 “포용적 언어”라는 것이 우리 언어와는 사뭇 다른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번역은 늘 반역이지만, 다시 새로운 창작이기도 해서 어의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어떤 친근한 이미지들과 어투를 사용해보려고 시도했다.
성찬기도 이해의 한 자료가 되었으면 하고, 무엇보다 하루를 위한 중요한 기도의 내용이 될 수 있을까 해서 함께 나누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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