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램지 학술상 – N.T. 라이트 주교

July 24th, 2005

지난 세기 뛰어난 신학자이자 캔터베리 100대 대주교를 지냈던 마이클 램지 주교를 기리고 세계성공회의 신학 발전을 위해 제정된 램지 학술상 첫 번째 수상 저작이 발표되었다. 세계적인 신약성서학자이자 현재 영국성공회 더럼 교구장을 맡고 있는 톰 라이트(N.T. Wright) 주교의 [하느님 아들의 부활 – 그리스도교의 기원과 하느님에 대한 물음](SPCK)이 그것. 램지 학술상을 위한 6명의 심사위원들은 이 책을 “근래에 가장 중요한 신학 저작”이라고 평가했다.

이 책에서 톰 라이트 주교는 그리스와 로마가 죽은 자들의 부활의 가능성을 반대했던 연유를 추적하며, 이에 대한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어떻게 다른 지를 조사했다. 그런 다음 그리스도교의 부활 이야기가 지닌 정치적 신학적인 영향과 더불어 예수의 죽음 후에 일어났어야 할 일들에 대해서 그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들에 대해서 고찰했다. 이후 라이트 주교는 역사가로서 부활일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파고들고, 그날 예수님의 빈무덤만이 발견된게 아니라, 그의 몸이 변화되었으며, 죽음을 넘어 새로운 육체의 창조 세계로 들게 되었으리라고 결론을 맺었다.

수상 결정에 대해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심사위원들의 선정 과정이 매우 어려웠으리라고 말하고, “선정 대상에 오른 모든 책들은 훌륭하지만, 톰 라이트 주교의 저작은 매우 광범위한 학문적 결과를 손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면서도 설득력있게 서술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주요한 신앙의 내용을 매우 권위 있게 다루고 있다”고 평했다. 대주교는 또 “새로운 상이 매우 길한 출발을 맞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톰 라이트 주교는 수상 선정 소식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다른 책들 가운데 하나가 선정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선정 대상에 오른 책들은 아주 훌륭한 것들이었다. 램지 대주교님을 이어 이곳 더럼에서 주교직을 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우며, 그분과 같이 부활에 관해서 책을 쓰게 된 것도 기쁘다. 게다가 그분의 이름을 딴 이 큰 상을 받게 되어 대단히 영광이다.”

램지 학술상은 지난 세기 캔터베리 100대 대주교를 지냈으며, 뛰어난 신학자이자 성공회 신학의 기둥이었던 마이클 램지 대주교를 기리며, 성공회 신학의 발전을 위해서 지난 해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제정한 학술상이다.

톰 라이트 주교는 번역된 책으로 한국에도 낯설지 않은 성서신학자이다. 번역된 대표적인 저서로는 [예수와 하느님의 승리](크리스찬다이제스트,2004), [신약성서와 하느님의 백성](크리스찬다이제스트,2003), 그리고 같은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다른 입장에 있던 미국성공회 평신도 성서신학자인 마커스 보그와 함께 쓴 [예수의 의미](한국기독교연구소,2001) 등이 있다.

http://www.michaelramseyprize.org.uk/

한국 방문 중… 방문 끝

June 7th, 2005

한국 방문 중입니다. 실은 지난달 25일에 왔었지만, 여러가지 일로 교회 행사와 연이어진 가족일, 그리고 미국에서 오신 손님의 특별 강연을 돕느라 지난 한 열흘이 후다닥 가버렸습니다. 이어서 다시 제 고향에도 잠시 방문할 생각입니다.

한달여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6월 28일자로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바쁜 일정이었는데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하게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생각들을 차근하게 풀어봐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구요. 여하튼, 돌아오자 마자 시차적응할 겨를 없이, 다시 시애틀에서 열리는 “미국성공회 아시아 사목회의”(Episcopal Asiamerica Ministries Council)에 참가하기 위해 12시간을 달려가야 합니다. 다행히 LA에 올라오신 김동진 신부님 가족과 함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갈 수 있기에 무료함이 덜하겠군요.

5.18…

May 17th, 2005

다시 오월이 오고, 한국날짜로는 오늘, 그리고 여기로는 내일이 다시 5.18 이다. 지난 25년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이고, 절대 시간 속에서 오늘의 5월 18일은 25년 전의 오늘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삶 속에서 그런 절대적인 추상의 시간이 존재할까? 그렇다면 올해도 여지없이 바다건너서 접하는 이 간단한 세 자리 숫자의 전율을 어떻게 설명할까?

종종 워드프로세서는 제 잘난 맛에,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억을 재현하는 성찬례의 핵심적 설명어인 “아남네시스”(anamnesis)를 “망각증”(amnesia)으로 교정할 것을 친절하게 권하기도 한다. 우리 역시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그런 통렬한 기억에 대한 망각을 권유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년에 5.18에 대한 이런 상념을 걸어 두었었다. 오늘 역시 빼지도 더하지도 않을 생각들이다.

아직 국립묘지가 된 이후의 망월동은 가보질 못했다. 붉은 흙이 도드라진 불온의 땅이었을 적에만 울며불며 그리고 전쟁치르듯이 가야 했던 그 망월동은 이제 내게 어떻게 다가올까. 2년 반만에 돌아가는 6월의 짧은 귀국길에는 꼭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