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 연재] 고치며 이어갈 순례의 신앙 – 히포의 성 어거스틴

Saturday, August 25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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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며 이어갈 순례의 신앙 – 히포의 성 어거스틴 주교 축일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북부 아프리카 히포의 주교 어거스틴(라틴명: 아우구스티누스, 354-430년)은 ‘서방 교회’ 역사상 최고의 신학자로 꼽힌다. 그의 신학은 서방 교회의 형제인 천주교와 성공회, 그리고 모든 개신교에 영향을 주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성서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어거스틴 신학을 다시 살려내자’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신학은 초대 교회의 역사와 신학을 종합하여 중세 교회를 열었다. 그는 진리를 향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그리스도교 신앙의 순례를 새롭게 열었다.

어거스틴은 로마 제국의 변방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어머니 모니카가 그를 그리스도인으로 키웠으나 세례는 받지 않았다. 당시 최고 교육을 받으며 법률가가 되려 했으나, 점차 플라톤 철학에 관심을 두고 학자와 교수의 길로 나섰다. 그는 한동안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마니교’에 빠져 어머니의 신앙에서 멀어졌다. 마니교는 세계를 ‘영와 물질’, ‘빛과 어둠’, ‘선과 악’으로 나누고, 두 세력의 싸움으로 우주와 인간의 흥망성쇠를 설명했다. 이 매력적인 이분법과 이원론은 세상을 확고하게 관통하고픈 젊은 어거스틴을 사로잡았다.

그는 마니교의 확실한 이론 체계가 실은 닫힌 사고라는 점을 서서히 알아차렸다. 스스로 영성 엘리트들이라 뻐기던 ‘영지주의자’들의 교만과 무책임한 태도를 확인했다. 그는 머물지 않고 배움의 여행을 계속하되, 얕게 걷지 않고 자신을 던져 그 깊이와 한계를 체험하며 나갔다.

마침내 그는 그리스도교로 돌아왔다. 어머니 모니카의 깊은 기도 때문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더 큰 영향을 준 인물은 당시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스 성인(340-397년)이었다. 처음에는 수사학에 뛰어난 주교에게서 논리 기술이나 배우려 했지만, 차츰 그리스도교 신앙의 논리와 깊이에 매료됐다. 그가 사막 수도자 안토니오 성인의 생애를 읽을 때 환청이 들려 펼쳐 읽었다는 로마서 구절은 그의 회심을 이끌었다. “진탕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로마 13:13-14).

그가 방탕하며 살았다는 고백은 신앙적인 과장도 섞여 있다. 결혼하지 않고 십수 년을 함께 살았던 연인과 헤어진 일로 마음의 큰 상처를 겪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 여인이 받았을 상처에는 말이 없다. 그는 여기서 얻은 아들과 함께 암브로스 주교에게서 세례를 받는다. 아들은 젊은 나이에 죽는다. 이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사제가 되고 4년 후에는 주교가 된다. 이후 탁월한 신학자 주교로서 성서 해석과 교리에 관한 저작으로 ‘서방 교회’ 신학의 주춧돌을 놓는다.

그의 유산에는 그늘도 있다. 그의 신학은 마니교의 이분법과 이원론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는 비판이 꽤 있다. 과거 생활의 죄책감에서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고, 죄와 악에 관해 집착했다. 그는 교회에 ‘원죄’ 신학을 심어 놓았다. 결혼 후의 성관계도 불가피한 악이라며, 이마저 아기를 갖기 위해서만 용인된다고 했다. 급기야 원죄는 성관계로 유전된다고 주장했다. 이후 교회는 여기에 머물렀고, 바울로 신학을 어거스틴의 눈으로만 읽게 만들었다.

어거스틴의 순례는 계속돼야 한다. 그의 순례가 시대의 그늘 안에 갇히지 않게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고맙게도, 마이클 마셜의 책 <순례를 떠나다>(비아, 2018)는 어거스틴과 함께 걷는 새로운 신앙 순례를 안내한다.

  1. 성공회신문 2018년 8월 25일 치 []

[전례력 연재] 숫자의 상징과 신앙생활

Saturday, July 14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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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의 상징과 신앙생활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그리스도교 안에서 숫자는 여러 상징으로 쓰이고 다양한 뜻을 지닌다. 숫자 자체는 뜻이 없지만,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드러내는 의미로 쓰였다. 수는 달력과 셈법처럼 생활에 밀접하다 보니, 신앙의 뜻을 더해 중요한 일을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데 도움이 됐다. 그리스도교는 구약성서의 숫자 상징을 적절히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 따라 새롭게 배열하고 의미를 더욱 깊게 했다.

뜻을 붙이기에 따라 모든 숫자가 의미 있지만, 그리스도교의 대표 숫자 상징은 1, 2, 3, 6, 7, 8, 40, 50 등이다.

일 (1) – 첫 시작과 기원을 뜻한다. 성서에서 창조의 시작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는 다른 ‘잡신’을 넘어선 유일한 하느님을 상징하고, 신약에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일치를 뜻한다.

이 (2) – 성서에서는 대립하는 여러 성격과 사건을 비교할 때 쓰기도 하지만, 그리스도교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본성에 자주 쓰였다. 제대에 촛불을 두 개 올려놓은 관습과도 관련이 있다.

삼 (3) – 삼위일체 하느님을 상징한다. ‘삼’은 고대 사회와 종교, 철학과 수학 등에서도 자주 쓰여 ‘온전한 완성’을 뜻한다. 성서의 사용은 더 다채롭다. 예수 변모 사건을 증언한 세 제자, 그리스도의 십자자 수난 세 시간, 셋째 되는 날의 부활을 생각하게 한다.

육 (6) – 성서의 창조 이야기에서 ‘인간’이 만들어진 날의 숫자다. 그 탓에 인간과 그 연약함을 뜻하기도 한다. 이 연약함이 자기중심으로 흐르면 큰 악이 된다. 묵시록에 나오는 악의 숫자 ‘666’이 그것이다.

칠 (7) – 삼(3)처럼 완전함을 뜻한다. 구약에서는 창조가 완성된 날로 하느님의 거룩함을 상징하고, 신약에서는 십자가 위 예수의 일곱 말씀, 성령의 일곱 열매를 말할 때도 쓰인다. 역사에서 마리아의 일곱 슬픔과 인간의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 목록에도 쓰인다.

팔 (8) –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팔’은 새로운 시작이다. 시간은 과거 역사의 쳇바퀴인 일(1)로 돌아가지 않는다. 부활은 새로운 시간, 새로운 창조인 탓이다. ‘팔’은 구약에서도 할례 날짜로도 쓰였지만, 신약 이후 ‘새로운 할례’인 세례의 뜻으로도 변화했다. 세례대나 세례당을 팔각형으로 만든 이유이다. 전례력에서 대축일을 작은 절기로 지키는 ‘팔일부’도 여기서 비롯했다. 또한, 팔은 칠 더하기 일(7+1=8)이라는 셈법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부활 은총은 기존의 완전함(7)에 하나를 더한 풍요로움을 드러낸다.

사십 (40) – 시험과 고난을 상징한다. 이 숫자는 성서에 빈번히 등장한다. 사십일 밤낮 비와 홍수, 이스라엘의 광야 사십 년, 모세의 시나이산 사십일 거주, 그리고 예수님의 광야 사십일 생활 등이다. 여기서 사순절의 절제와 극기 관습이 나왔다.

오십 (50) – 부활의 완성과 새로운 몸의 탄생이다. 부활절은 부활주일부터 성령강림에 이르는 시간이다. 부활은 성령 하느님이 내려서 신자들의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만드는 일로 완성된다. 구약의 희년(50년마다 해방과 안식) 사상을 이어받았다. 예수의 부활은 이제 교회가 예수의 몸이 되어 세상에서 펼치는 희년 실천이라는 말이다. 다시 여기에 사십 더하기 십(40+10=50)의 셈법이 등장한다. 부활은 고난보다 더 길고 풍성하기 때문이다. 신앙인의 별세를 불교 관습의 49재가 아닌 부활의 50일째 자주 기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 성공회신문 2018년 7월 14일 치 []

[전례력 연재] 전례력과 성인 시성

Saturday, May 26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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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력과 성인 시성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최근 천주교의 프란시스 교종은 오는 10월 14일 교종 바오로 6세와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를 시성(諡聖)한다고 발표했다. 바오로 6세(1897-1978)는 2차 바티칸 공의회 도중에 별세한 요한 23세 교종(2014년 시성)을 이어 교회 개혁을 이끌었다. 1966년 성공회 마이클 램지 캔터베리 대주교를 16세기 교회 분열 이후 처음으로 교황청에 초대한 분이다. 교회 일치에 큰 공헌을 해서 ‘대화의 교종’으로도 불린다. 오스카 로메로(1917-1980)는 엘살바도르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가난한 민중에 편에서 사목했다. 미사를 봉헌하는 도중에 총에 맞아 순교했다. 엘살바도르의 첫 공식 성인이 된다.

시성 전통은 오랜 역사만큼 다양하고 그 이해도 교단마다 다르다. 처음에 교회는 성인을 순교자에 한정했다. 순교자는 생명을 바쳐 복음을 증언하고 교회를 지켜낸 분이다. 교회는 순교자의 무덤과 유해 위에 제대를 올리고 성당을 지었으며, 그에 따라 성당 이름도 정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4세기 이후 박해가 끝나자, 신앙인이 생전에 보여준 신앙의 가르침과 덕행에 따라 성인을 정했다. 성인이 살았던 지역에서 자연스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성인숭배가 남발하자 서방교회에서는 점차 엄격한 시성 절차를 거쳐 주교가 결정했다. 10세기에 이르러 교종만이 결정권을 갖게 됐다. 천주교는 시성을 ‘탁월한 신앙의 위인을 성인의 품위에 올리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신앙인에도 위계질서가 있다는 냄새가 풍긴다. 해당 성인과 관련된 기적도 필수 조건이다. 대중 신심의 문화가 배어 있다.

성인의 신학은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위기)는 성서에 바탕을 둔다. 사도들의 가르침처럼, 신앙의 본분에 따라 살면 신앙인 모두 ‘거룩한 사람’이다. 사도 바울로는 그의 편지를 받는 교회의 신자를 늘 ‘성도’(saints)라고 불렀다. 성인은 ‘품계’가 아니라, 거룩한 삶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동방교회인 정교회는 초대 교회 관습을 여전히 따른다. 성인의 지정은 여러 청원에 따라 지역 교회와 주교가 검토하여 선포한다. 정교회는 성인을 사도들, 예언자들, 순교자들, 교회의 교부들과 주교들, 수도자들, 그리고 신앙의 의인들로 범주를 나눈다. 천주교 관습인 기적의 유무와 횟수는 따지지 않고, 그가 보인 거룩한 삶과 그 가르침이 정교회 ‘정통’ 교리에 합당한지가 더 중요하다.

성공회는 성서의 성인 신학에 기초하면서도 동서방교회의 역사가 마련한 성인을 존중한다. 성공회에서 천주교와 같은 형태의 시성은 ‘순교자 성인 찰스 1세’ 이후로 없다. 그를 서방교회의 여러 성인과 함께 기도서 전례력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성공회는 서방교회 전통을 존중하여 16세기 개혁 이전의 성인을 인정하되 이후로는 신앙의 위인에게 ‘성’(saint)이라는 표현을 붙이지 않았다. 대신, 성서가 말하는 ‘거룩한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역사의 신앙인들을 전례력에 넣어 기념한다. 이는 관구 교회의 자유로운 결정이다. 성공회에서는 이름 앞에 붙은 ‘성’(聖) 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대한성공회는 전통적인 ‘성인’에게만 한정했던 1965년 기도서에 큰 변화를 주었다. 1999년 시험교회예식서를 시작으로 2004년 기도서에 전례력에 수많은 ‘성인’을 넣어 기념한다. 교단과 시대를 막론하여 ‘거룩한 신앙인’을 더 많이 포함하여 따르려 한다. 성인의 신학과 전통에서는 성공회의 품이 더 넓다.

  1. 성공회신문 2018년 5월 26일 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