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어린 양 – 예수의 정체, 신앙인의 선교

Sunday, January 15th,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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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어린 양 – 예수의 정체, 신앙인의 선교 (요한 1: 29-42)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을 보라.” 세상을 향해 예수님의 정체를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행동의 핵심입니다. 신앙인은 역사 속의 억압과 질곡으로 생긴 죄의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구원 사건에 자신을 내어 바친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그런 예수님의 삶에 자기 삶을 포개며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두려운 심판의 위협이 아니라 사랑의 언어와 평화의 몸짓으로 우리 안에 머무시는 성령과 함께 걷는 사람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언행이 돋보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태중부터 알아보았던 사촌’이었지만, 자신도 ‘이분이 누구신지 몰랐다’고 고백합니다. 신앙은 혈연과 지연 같은 인맥으로 엮을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진실하고 투명한 삶에서 받은 도전을 인정하고 새로 배우는 일에서만 바른 신앙이 솟아나고 진일보합니다. 더욱이 그는 자기 제자들에게 새로운 스승을 소개합니다. 새 스승을 따라 새 길을 걷겠다는 제자들을 기쁘게 떠나보냅니다. 과연 신앙의 역사에 우뚝 선 큰 인물입니다. 옛 세대가 새 세대를 격려하며 밀어주는 넉넉한 행동에서 새 역사가 펼쳐집니다.

요한이 바라본 예수님의 성령 세례는 ‘함께 머무시는 하느님’의 사건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한번 받는 물의 세례로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라고 요청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직접 받은 세례는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들에게 들리는 하느님의 새로운 위로와 격려, 희망을 선언합니다. 신앙인의 삶에서도 여전히 아픔과 기쁨, 슬픔과 즐거움, 실패와 성공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밝은 대로를 걷든, 그늘진 험로를 헤매든, 하느님께서 우리 위에 내려오셔서 머무시고, 베푸시며,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십니다. 이때 제자들이 대답한 대로,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예수님과 동고동락하겠다는 다짐이 신앙인의 제자도입니다. 이렇게 다짐하고 따르는 이들에게 주시는 하느님 약속을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합니다. 어느 처지에서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당신의 영광을 빛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지극히 귀하게 보시고, 나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이사 49:5).

이제 하느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라는 세례자 요한의 선포는 예수님의 삶과 우리의 삶에 겹쳐져 새롭게 펼쳐집니다.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 나는 너를 만국의 빛으로 세운다. 너는 땅끝까지 나의 구원이 이르게 하여라.” 이것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모시는 우리 신앙인의 정체요, 선교 사명입니다. 하느님의 어린 양이 신앙의 삶, 신앙의 선교 행진에 함께하시니, 이 길에 초대받은 우리는 정녕 복됩니다.

경계의 파수꾼 – 세례자 요한

Sunday, December 4th,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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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파수꾼 – 세례자 요한 (마태 3:1-12)

세례자 요한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고 방향을 전환하는 회개로만 구원자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회개의 징표로 ‘물로 세례’를 베풀고 사람들에게 나쁜 행실을 그치고 자기 뒤에 오실 분을 향해 온몸을 돌리라고 외칩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와 역할을 정확히 알고 분별하여 다음 세대의 길을 열고 닦아주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요한과 예수님은 늘 이어져 있습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서로 만나 기뻐 반기던 우정입니다. 요한이 권력을 비판하다가 옥에 갇히자, 예수님은 당신의 사목 활동을 시작합니다. 예수님도 권력자와 인간의 그릇된 욕망을 비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여시다가 권력자와 대결하십니다. 이 대결이 만든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부활의 문을 열립니다. 세례자 요한은 옛 시대를 어떻게 마감해야 새 시대가 열리는지 보여줍니다. 옛 시대가 그저 지나가고 새 시대가 자연스럽게 오지는 않습니다. 옛 시대를 아름답게 마감해야 새 시대가 놀랍게 펼쳐집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은 먼저된 사람의 임무와 역할에 관한 깊은 통찰이기도 합니다. 먼저 태어난 사람, 먼저 신앙인이 된 사람, 먼저 서품받은 사람, 먼저 배운 사람은 자신의 경륜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지혜와 경험이 자기 세대에서 주역을 끝내고, 미래 세대를 위해 거름이 되는 일을 종종 잊곤 합니다. 자기가 여전히 역사를 이끌고 간다고, 자기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다가 고집과 아집이 생겨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집착은 그동안 총명하고 지혜로웠던 눈을 가리는 방해물이 되고 맙니다.

경륜과 지혜와 경험이 진정으로 존중받고 싹을 틔우는 일은 그 다음 세대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새로운 역사에 맡겨놓고 겸손하게 작아지지 않으면, 새로운 역사가 열리지 않습니다. 요한은 새로운 역사를 열려고 자신의 경륜과 지혜와 경험을 스스로 낮추고, 자기 다음에 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완전히 열어 놓은 사람입니다.

요한은 새로운 길을 가로막는 옛 시대의 걸림돌을 치우며 길을 평탄하게 만듭니다. 시대의 전환과 새로운 역사를 위해서 자신마저도 쓸어담아서 스스로 치워버립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는 예수님이 “오기로 약속된 메시아”인지를 확인하고, 예수라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 기쁘게 자신의 목숨을 내놓습니다. 그는 시대의 경계에 선 파수꾼입니다. 이렇게 요한은 신앙의 역사 안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어른으로 우뚝섰습니다.

대림 – 깨어 견디는 교회의 신앙

Saturday, November 26th,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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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 깨어 견디는 교회의 신앙 (마태 24:36-44)

시절이 혼란할수록 모든 문제를 단번에 풀어줄 해결사를 기대하기 쉽습니다. 전능한 해결사를 바라는 마음은 삶의 당혹감과 절망감 때문에 나옵니다. 이때 절박한 마음을 파고들어 ‘종말 사상’을 뒤집어쓴 사이비 종교들이 사람들을 유혹하곤 합니다. 그 역사가 길고 자주 되풀이 됩니다. 예수님 때도 그랬고, 오늘 복음을 기록한 마태오 때도 그랬습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그때는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현실의 어려움에서 나온 나약한 기대는 현실 도피일 뿐,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신, 예수님과 교회 전통은 대림절 신앙 안에서 주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풀어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삶 속에서 일하셨습니다. 연약한 아기로 탄생하신 예수님은 인간의 삶 속에서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도록 초대하셨습니다. 세상 권력이 욕망하는 성취와는 달리,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실패 안에서 부활을 이루시어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임마누엘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입니다. 새로운 세상은 예수님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교회 전통이 교회력을 마련한 까닭은, 주님의 탄생부터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삶을 교회가 그대로 겹쳐서 살아달라는 부탁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오셔서 시작하신 새로운 세상은 이제 교회가 겪는 탄생과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더 널리 펼쳐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교회의 삶과 신앙의 삶에 겹쳐지는 신비를 대림절 안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이 재림입니다.

복음서를 쓴 마태오는 지금처럼 희망과 신앙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았습니다. 외부에서는 역겨운 권력의 타락이 끝을 모르고, 내부에서는 불신과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신앙의 희망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며 소비주의에 몸을 맡겼습니다. 다른 어떤 이들은 하늘만 바라보며 땅의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오셨으니, 주님은 교회 안에서 머리가 되어 그 손발이 세상에 펼쳐져야 합니다. 교회가 이 일을 다 하지 않는 한, 예수님의 재림은 계속 연기되고 멀어질 뿐입니다.

재림의 신앙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삶의 순간마다 복음의 가치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우리 삶의 작은 선택과 결정이 모든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 겪는 정치와 경제, 교육과 복지는 우리가 순간마다 선택했던 일이 쌓여서 만든 결과입니다. 깨어있는 신앙은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의 복음을 되새기는 삶입니다. 오래 견디는 신앙은 복음의 가치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갈등과 고난을 함께 견디는 삶입니다.

깨어 견디는 교회를 향하여 이사야와 시편 기자가 우리의 대림절 신앙을 격려합니다. ‘자, 올라가라. 하느님의 산으로. 생명을 빼앗는 무기를 꺾어 생명을 먹여 살리는 도구로 만들라. 하느님의 평화, 샬롬의 세계를 만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