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을 향한 기대 – 교황의 한국 방문

Thursday, August 14th, 2014

비 내리는 남도 땅. 비에 갇혀 빗소리를 듣고 밖을 내다보며 상념에 잠긴다. 휴가 차 이십 여 년 만에 다시 들른 남도 기행 일정을 다듬으며, 천주교 교황 한국 방문 생중계를 본다. 여러 생각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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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참 훌륭한 분이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줄 안다. 게다가 그의 시선이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을 향할 때, 그의 입이 권세 부리는 자를 향해 비판을 토로할 때, 그것이 복음의 정신에 따른 언행일 때, 그는 참된 권위를 얻는다. 참된 권위에 따른 권력은 ‘함께하며 보호하는 권력’이다.

한편, 그의 한국 방문(사목적 방문)에 관한 사람의 기대는 참 크다. 한국 사회의 상황 때문이다. 그가 보여준 언행에 따라, 세계 최대 종교 지도자, 그것도 중앙집권적 조직의 지도자가 던지는 발언은 여러모로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작용하는 탓이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가족, 그리고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깊은 관심을 가진 분들이 교황의 관심과 발언에 기대하는 바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니다. 그는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정치적 ‘힘’에 대한 기대의 방향은 대체로 동상이몽이다. 정부는 교황을 국빈 이상의 예우를 갖춰 환대한다.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원수이니 국빈 자격을 받을 만하다. 이번 방문이 ‘사목적 방문’이라 하더라도 국빈 자격을 잃지 않는다. 정부는 오히려 국빈이 다른 목적으로 온다고 해서, 통상적인 국빈 예우 이상으로 대접할 여유까지 얻은 듯하다. 대통령 박씨가 서울공항까지 영접을 나간 것이 그 예이다. 공교롭게도, 80년 이후에 한국을 방문한 교황을 방문하러 공항까지 나간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이다. (이들의 집권 시절에만 교황이 한국에 방문했다.) 이 영접에는 독재의 피가 흐르는가?

평범한 사람들은 어쩌면 참으로 인간적인 희망과 기대를 품는다. 교황이 지난 1년 반 동안 보여준 행보에서 나온 기대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세월호의 비극과 관련하여 ‘교황이 정부에 압력을 행사했으면 한다’고 기대한다. 이 기대는 이해할 만하고 정말 그래 주시길 바란다. 그러나 그 기대가 그의 대중적 인기와 그가 지닌 권력에 기대는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그가 그런 기대에 따라 어떤 발언을 하더라도 현 정부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만, 교황이 세월호 가족이 단식하는 곳에 그저 찾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상징적인 영향력이 될 것이다.

이미 교황의 한국 방문 일정에 관하여 여러 염려가 천주교 내부에서도 나왔다. 장애인 방문을 위한 단체에 관한 뒷이야기가 있고, ‘태아 동산’ 방문이라는 천주교 교리의 상징적 시위도 마련됐다. 그가 검소하게 작은 한국산 차를 탄다지만, 나머지 일정은 대체로 헬리콥터로 이동한다고 한다. (추고: 이 계획을 뒤로 미루고 실제로는 KTX로 이동했다.) 이런 사소한 일에 시비를 걸 일은 아니다.

정작 기대와 희망과 염려가 겹치는 부분은, 교황 방문으로 한국 천주교와 천주교인들이 실제로 어떤 도전과 변화를 가질까 하는 점이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천주교의 성장은 놀랍다. 그러나 천주교 예수회 박문수 신부님의 지적대로, 천주교가 성장하면서 천주교 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점, 천주교가 하나의 ‘중산층 이상 계층을 위한 문화적 상징 권력’으로 작동하려 한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 와중에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처지와 활동은 이래저래 위축되는 현실이다. ‘부와 권력을 지닌 어떤 천주교 신자들’은 그들을 사제로도 바라보지 않는다고 듣는다.

여전히 교황 방한의 초점은 어떤 권력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향한 하느님의 우선적 선택”을 확인하는 사건이어야 한다. 불편부당한 하느님이 아니라, 약한 자를 편드는 ’하느님의 당파성’을 확인하고 이에 기반을 두어서라야 참다운 화해와 평화가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이 점에서 형제교회의 보잘것없는 사제로서, 그리스도교 신앙 안의 한 작은 형제로서, 그리고 불의와 불신과 분열이 가득한 가련한 한국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교황의 한국 방문을 열렬히 환영하고 축하한다. 그가 보여줄 복음적인 도전을 기대한다. 거기서 우리 모두 나누는 “복음의 기쁨”을 기대한다.

스테파노의 순교와 5.18

Sunday, May 18th, 2014

사도 7:55~60 / 시편 31:1~5, 15~16 / 1베드 2:2~10 / 요한 14:1~14

2014년 5월 18일,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오전 9시, 오후 3시 성찬례, 주낙현 신부

+ 나의 바위, 나의 구원자이신 주님, 
내 생각과 내 입술의 말들이 주님의 마음에 들게 하소서. 아멘.

오늘 우리는 성 스테파노의 순교 장면을 목격합니다. 스테파노는 그리스도교 역사의 첫 순교자였습니다. 사도행전을 쓴 루가 복음서 기자는 그리스도교 최초의 역사가입니다. 루가 복음서 기자는 스테파노의 증언과 선포가 어떻게 그의 순교와 연결되는지를 서술하며, 역사를 읽고 바라보는 태도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스테파노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로 증언합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여 베풀었던 보살핌과 동고동락의 역사를 차분하게 요약합니다. 스테파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분입니다. 고통과 어려움에 있었던 무리와 더불어 그 구원의 역사를 이뤄가는 경험과 약속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선택받았다는 이들은 자신 종교와 정치의 특권을 이용하여 보통 사람을 얕잡아 보고 율법으로 사람을 옥죄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시고 마련해 주셨는데도, 자신들의 업적인 양 떠벌렸습니다. 하느님을 섬긴다면서 결국에는 황금으로 만든 소를 섬겼습니다. 돈과 권력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의를 비판한 예언자들을 죽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스테파노의 입을 빌려, 이들은 신앙인이 아니라 “이교도의 마음과 귀를 가진 이 완고한 사람들”이라고 단언하십니다. 하느님을 믿는다 말한다고 다 신앙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도전이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스테파노의 불편한 진실 선포에 귀를 막았습니다. 자기 듣고 싶은 대로 들은 것을 진실로 여기고, 불편한 진실을 못 들은 체했습니다. 귀를 여는 대신에 그들은 사람들은 돌을 집어 들었습니다. 진실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진실을 선포하는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폭력이 등장했습니다. 결국, 사람을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한편, 사람을 죽이고 죽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떤 이들은 그저 수수방관했습니다. 옆에서 구경했습니다. 성서는 이 세밀한 장면을 놓치지 않고 낱낱이 기록합니다.

진실에 귀를 막고, 불편한 마음이 들자 돌을 들어 생명을 앗아가고, 참담한 불의와 폭력의 현실을 수수방관하는 상황, 이것이 스테파노의 순교가 일어났던 무대입니다.

우리 주교좌 성당 제대 위 정면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그 왼쪽에는 순교자 스테파노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그는 슬픈 얼굴입니다. 슬픈 표정의 그는 자신을 죽인 돌을 자신의 옷에 주워담고 있는 모습입니다. 알 수 없는 장면입니다. 이상한 장면입니다. 여러분은 이 모습을 어떻게 보나요?

이 모자이크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서 눈을 돌려 성당 밖 세상을 둘러봅니다. 주변 모두가 싱그럽고 그 생명력을 발산하는 5월입니다. 꽃이 아름답고 그 향기를 품은 바람이 참 개운합니다. 옷도 가벼워지고 사람들 얼굴에 활기가 넘칩니다.

바로 이런 5월에 우리 역사는 우리 기억과 몸에 숱한 상처와 슬픔을 남겼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죽음의 그림자인 탓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화사한 이 시절에 죽음을 이야기하자니 아주 짓궂은 일로도 들립니다.

성공회 신자였던 시인 T. S. 엘리엇은 자신의 유명한 연작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읊은 적이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가운데 하나였던 1차 세계 대전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그 참혹한 역사를 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흘렀습니다. 세월은 망각하는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시인은 그 망각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꽃이 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금세 잊고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잔인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한탄했습니다.

올해 우리에게 4월은 통째로 잔인했습니다. 세월호의 참극이 벌어진 4월은 5월로 연이어 있고 우리는 그 세월을 살아갑니다. 올해 우리에게 4월과 5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입니다. 시인 엘리엇의 말대로 우리 안에 있었던 참혹한 죽임의 역사를 망각하고 되풀이하기 때문에 더욱 잔인합니다.

오늘은 5월 18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1980년 5.18 광주 민중 항쟁이 어떤 불순한 의도를 지닌 외부 세력의 선동과 개입으로 이뤄졌다는 거짓말을 퍼뜨립니다. 이미 조사가 끝나서 확인된 사실과 진실을 세월의 망각을 이용해서 호도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수주의 언론인 가운데 한 사람인 조갑제 씨는 80년 당시 기자로서 5.18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5.18에 대하여 허위와 거짓말을 퍼뜨리는 현상을 보며, 자신이 아무리 보수주의자라 하더라도, 이런 사실과 진실 왜곡만은 인정하기 어렵노라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조갑제 씨마저도 좌파라고 몰립니다. 역사를 망각하는 시대는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잔인한 시대입니다.

한편, 우리가 역사를 되새기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지 않나 되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4.19 나 5.18, 그리고 역사 속의 안타까운 삶과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그 역사적 의미가 너무 중요한 탓에, 그 큰 그림과 거대한 구호와 정당성으로만 그 역사를 기억하지 않았나요? 그 억울한 죽음을 직면한 충격이 너무 큰 탓에, 감당할 수 없는 분노로만 그 역사를 기억하지 않았나요? 34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5.18 이라는 숫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침묵)

1980년 5월 18일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독재자 전두환은 5월 17일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인 5월 18일, 민주 인사를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국회의사당을 군대로 점령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이에 저항하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광주에서는 공수부대로 이루어진 계엄군이 시위 학생을 무참하게 진압했습니다. 이에 분개한 학생과 시민이 거리에 나와 시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이튿날부터는 증원된 공수여단이 광주에 들어와 무자비한 진압과 살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광주는 시민군을 조직하여 계엄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계엄군은 5월 22일 광주 전체를 고립시키기 위해 작전상 후퇴를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광주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몰려왔을 법합니다. 이러면 보통 사람들은 제 정신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친구와 자녀와 남편과 아내를 잃었습니다. 이웃이 처참하게 쓰러졌습니다. 총상과 자상, 타박상을 입은 수많은 부상자로 병원은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5월 22일부터 고립된 광주는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학생과 시민은 총기를 나눠 들고 계엄군의 진압과 공격에 대비했습니다. 수많은 시민이 주먹밥을 해 와서 시민군의 식사를 마련했습니다. 밥을 나누었습니다. 많은 여고생과 시민은 병원으로 찾아가 부상자 치료를 위해 헌혈했습니다. 피를 나누었습니다.

시장은 예상대로 섰습니다. 부 도지사를 비롯한 도청 공무원들이 정상 출근하여, 사망자와 부상자를 위한 대책을 세웠습니다. 이 혼란의 시기에 범죄율은 오히려 현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신비하게도, 5월 22일부터, 5월 27일 새벽 전남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이 완전히 진압되기까지, 이 닷새는 실제로 밥과 피를 나누는 거룩한 공동체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닷새는 거룩한 날들이었습니다.

5.18 은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를 외치는 간단한 구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힘 있는 자들이 휘두르는 폭압과 그로 인한 고통을 함께 견디고 통과했을 때, 새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5월 22일부터 26일까지 닷새 동안은 5.18 의 정의로운 삶이 세상에 드러나는 실험의 시간과 공간이었습니다. 고통과 상처 위에서 거룩한 일이 벌어지는 성사(聖事)의 시공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5.18의 진정한 꿈이 아닐까요? 여기에 우리 역사의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지난 34년 동안 이 실험과 꿈을 우리 몸으로 훈련하며 그 실험을 우리 사회 속에서 계속했던가요?

오늘 베드로서의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사람들에게 구박받고 버림받았다가 머릿돌이 된 돌 이야기입니다. 사람에게는 오해와 손가락질의 대상이고 버림받은 돌이었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영적인 건물을 튼튼히 받치는 귀한 머릿돌이 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돌이 아니라, 사람이 머물러 쉴 곳을 마련하는 기초, 사람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사랑을 나누며 행복을 지켜주는 집을 짓는 돌을 말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돌입니다.

베드로서의 기자는 압니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에게 이런 돌은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요, 장애물인 돌”입니다. 진실이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진실이 어떤 사람에게는 장애물일 수 있습니다. 죽임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돌을 만들려는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계속 불편하다고 말합니다.

이제 다시 대성당 모자이크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스테파노 성인을 다시 바라봅니다. 그의 신비로운 표정과 몸짓의 비밀이 풀립니다. 그는 자신을 죽이던 미움의 돌을 자기 품에 주워담아 생명을 보호하고 살리는 주춧돌로 쓰려고 합니다. 그는 죽음의 역사가 되풀이되는데도 수수방관하는 이들을 슬픈 눈으로 바라봅니다.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받아들이라는 아픈 시선을 우리에게 보냅니다.

스테파노라는 이름의 뜻은 ‘왕관’입니다. 그는 진실을 말하면서 박해받고 억압받는 이들이 결국에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서신 예수님의 관을 받아드리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스테파노가 당한 ‘순교’(martyria) 본래 뜻은 ‘증언과 선교’입니다. 그는 세상에 나가 진실을 증언하는 일이 순교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그 순교가 바로 우리의 선교 사명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은 역사에 담긴 아픔과 상처, 고통과 희망을 함께 기억하며, 역사를 새로 바라보고 진실을 알아내며, 새로운 생명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더불어 그 생명의 길을 내는 사람입니다. 그 생명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이 진실과 생명의 길을 걸으시겠습니까?

성주간 생각 –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

Monday, April 18th, 2011

어느 신부님의 부탁으로 성주간 전례에 관한 글을 써서 한국에 보냈다. 그동안 블로그에 적었던 여러 생각을 부활 성삼일 전례 전체에 맞춰 다시 엮어 확장한 것이었다. 이런저런 바쁜 마음 때문에 격하고 날이 선 글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성삼일 사건이 그만큼 격하고 전복적인 사건이라며 볼품없는 글품을 변명하려 했다.

못난 자식 보내는 심정으로 글을 보내고, 다시 돌아앉아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님의 ‘성주간 생각’을 듣는다. 그러고 보니 써서 보낸 내 글의 처지가 더욱 가련하다. 내 글은 그 못난대로 읽힐 처지를 찾으면 되겠고, 나도 캔터베리 대주교님 ‘급’이 당연히 아니다. 😉 늘 영어가 벽인 이들도 함께 나눠야 할 깊은 생각이기에 우리말 번역에 피곤한 하루의 마지막 시간을 쏟았다.

성주간 생각 –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

모든 점에서 성주간은 정말이지 그리스도교 교회력에서 가장 중요한 주간입니다. 바로 이 주간이야말로 우리가 누구이며, 하느님이 어떤 분인가를 발견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에 아주 극적으로 펼쳐지는 교회의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발견합니다. 오랜 전통을 지닌 성주간 전례와 예식은 우리를 하나의 여정으로 이끕니다. 성지 주일에 우리는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이 되면서 이 여정을 시작합니다. 성지와 십자가 매듭의 성지를 축복하고, 그것을 흔들며 호산나를 외칩니다. 이 순간 우리는 그 첫 성지주일의 바로 그 사람들이 되어 예수님을 기쁘게 환영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이 주간 동안,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예수님이 그리 환영할 만한 분이 아니라는 사실에 직면합니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께서 우리 세상과 삶에 다가오실 때, 우리는 그분을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성주간이 계속되면서 우리는 왜 예수님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인지를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그 첫 성주간의 그 사람들처럼 우리도 그분을 원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따라갑시다. 이 주간 내내 복음서에서 읽게 될 수난 이야기입니다.

지난 몇십 년 전부터 여러 교회에서는 성 목요일 아침에 특별한 예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교구의 사제들과 부제들이 주교와 함께 모여서 서품 서약을 갱신하고, 복음의 사목자로 약속한 바를 갱신하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주교는 성유를 축복하여 여러 교회에서 세례와 견진, 그리고 서품에 사용하도록 합니다. 성주간에 이 예식은 사목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다른 여느 신자들처럼 성직자들도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 속에 있습니다. 사제, 부제, 주교, 혹은 그 누구에게나, 예수의 제자로서 사목자인 것이 자기 본연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 자신들의 약속을 갱신하는 일은 그들 자신의 세례 서약을 갱신하는 일입니다. 즉 그리스도인 됨을 새로 확인하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부활밤 전례 안에서 모든 신자가 세례 서약을 갱신하는 것처럼, 성주간 중간에 이런 서약 갱신의 기회를 얻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리고 성유 축복도 복음의 사목자에게 무언가를 되새겨 줍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사물들에 대한 것입니다. 빵과 포도주, 기름과 물과 같은 일상의 물질이 교회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하고 상징하는, 강력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매체로 쓰입니다. 또한, 성서에서 기름은 도유와 치유로 연결되는데, 이는 복음의 사목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기름을 붓는 일을 되새겨 줍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는 뜻입니다. 또 기름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관계, 인간 사이의 소외, 그리고 병고로 공동체에서 멀어진 이들에게 치유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성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그리스도교 사목 자체의 중심이 되는 실체를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족식을 갖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만나는 위대한 사건을 기억합니다. 이 사건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펼쳐야 할 봉사직을 말 그대로, 그리고 완벽히 몸소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릎을 꿇으시고 종처럼 그들을 섬깁니다. 그러므로 성 목요일 밤 전례에서 성직자들은 모두 신자들의 발을 씻어 줍니다. 이는 예수 복음의 힘과 권위, 그 중요성이 늘 섬김을 통해서 드러남을 되새겨 줍니다. 섬김을 보여주지 못하는 권력은 그리스도교에서는 절대로 힘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 목요일 저녁, 제자들이 마지막 만찬의 식탁에 둘러앉아 예수님의 몸과 피를 거룩한 친교의 성사 속에서 나누는 일은 예수님에게서 그분의 겸손과 그분의 섬김이라는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밤의 어둠 속으로 이동합니다. 거기서 게쎄마네에 오르신 예수님을 지켜 바라봅니다. 우리는 그 첫 제자들처럼 잠에 빠지고 도망가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우리는 결코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십자가로 향하시는 예수님과 동행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그보다는 다른 곳으로 피하고 싶다는 사실을.

성찬례가 끝나면, 제대포를 벗기고, 장식을 치웁니다. 교회는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 남습니다. 이렇게 벗겨진 채로 성 금요일을 지나 부활밤이 시작되기 전까지 지낼 것입니다. 이는 우리 자신이 완전히 발가벗겨지는 순간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바닥으로 내려갑니다. 여기서 우리 자신이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직면해야 합니다. 우리의 궁핍, 우리의 가난을. 그러므로 꽃이나 그 어떤 장식이 필요한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본질적인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벽, 벗겨져 드러난 제대와 우리 자신을 성 금요일의 놀라운 현실 실체 속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 금요일에 많은 교회와 여러 전통에서는 수난 복음을 읽으면서, 교인 전체가 예루살렘의 군중이 되어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예수님의 죽음을 바랐던 이들과 일체가 되는 궁극의 순간입니다. 우리의 죄와 실패가 정말로 완전히 발가벗겨져 우리 자신에게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성 금요일은 우리 자신의 가장 깊은 면모를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의 죽음을 요구했던 이들이 지녔던 똑같은 동기를 우리 안에서 직면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표면적인 열광에 사로잡힌 여정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하다가도 예수님이 위험하고 어려운 분인 것을 깨닫자, 금세 그분을 저버리게 한 열광이었습니다.

그러나 성 금요일은 우리가 인정하기 꺼리는 우리 자신의 어떤 면모를 발견하는 날만은 아닙니다. 옛날 성가가 노래하는 것처럼, 우리는 생명의 나무 위에서 우리를 향해서 펼치시는 그리스도의 팔을 봅니다. 우리는 새로운 희망의 근원인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하시려는 그 희생의 사랑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자신의 어둠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고 우리를 포용하시고 이끄십니다. 그리하여 성 토요일과 부활일 아침의 사건 속에서 완벽하게 참된 이로 만들어 주심을 목격합니다.

우리는 성 토요일의 어둠 속에서 모입니다. 하느님께서 태초에 어둠 속에서 빛을 내시고, 사막에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그의 백성을 보호하신 이야기를 듣습니다. 출애굽기 이야기에서 그의 백성을 자유롭게 하시는 하느님을 들으며 환호하고, 예언 속에 드러난 하느님의 일과 말씀이 결국에 예수님에게서 완성되는지를 듣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부활의 위대한 신비로 초대받습니다. 빛으로 가득 찬 순간을 맞이하며, 촛불을 모두 켜고 이 세상에 다시 드러난 빛을 축하합니다. 한 주간 동안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이동하는 여정을 걸었습니다. 우리 자신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던 어둠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고 우리 자신을 보는 빛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실패와 죄가 드러난 어둠에서 희망과 용서의 빛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연유에서 부활의 첫 성찬례는 중단했던 모든 것을 집어들고, 오르간을 울리고, 종을 치면서 한 주간의 여정이 끝났음을 알립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계신 집에 당도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과 함께 서서 성령을 통하여 세상에 그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부활일에 우리는 그저 거기에 서서 그 사랑을 흠뻑 받을 뿐입니다. 여정이 끝나고 우리는 집에 당도했습니다. 그 집은 언제나 자비로이 받아들이시는 하느님 사랑의 집인 것을 압니다. 그 사랑이 궁극적인 희생을 통하여 하늘과 땅의 평화를 이루었습니다.

원문: http://www.archbishopofcanterbury.org/2880
번역: 주낙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