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개념과 전례학 입문하기

Monday, February 5th, 2007

전례 (Liturgy)

“백성들의 행동”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레이투르기아”(λειτουργια)에서 유래했으며, 구약성서 칠십인역에서 예배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전례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구성원들이 이루는 신비한 몸으로 드리는 하느님에 대한 공식적인 예식이다 (비오 12세의 전례에 관한 회칙 “하느님의 중재자” Mediator Dei, 1947; “기도의 법, 신앙의 법” lex orandi, lex credendi 참조). 히브리서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레이투르고스”이다 (물론 이 말은 거룩한 전례의 의미에 따른 것은 아니다). 요한 묵시록에는 장엄한 예식을 통해서 하느님과 어린 양에게 돌리는 경배에 관한 묘사가 나온다. 신약성서 서신서들은 예식에서 불렸으리라 추정되는 찬양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이 예식을 위한 지침은 발견되지 않는다. 초기 첫 세기 동안에 종교적 예식들과 그 안에서 사용되던 기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식사, 성서 독서와 기도, 그리고 설교와 신앙 고백이라는 기본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므로 초기의 전통적인 예식문들은 다만 다양한 사례들 가운데 몇몇 본보기일 뿐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예식들이 600년경 로마에서 의무적인 것으로 고착되었다. 신학적인 성찰의 진행에 따라이 공식적인 예문들이 고정된 형식을 갖게 되었으므로,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요소들을 잊어서는 않된다: 즉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 극적인 상징주의 (예수의 삶에 대한 그리고 천상의 전례에 대한), 주님의 죽음에 대한 기억(아남네시스 anamnesis), 그리고 이와 관련된 성인들에 대한 추모 축일 등이다. 이러한 진행 과정의 마지막 단계는 지극히 교회적인 언어 (즉 “죽은” 언어들)를 보전하는 것이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이라는 기간 문서를 통하여 교회는 매우 넓은 원칙을 내놓게 되었다. 그 원칙의 사목적 적용은 우리 세대의 중요한 임무가 되어야 하며, 그 원칙이 가톨릭 신앙 생활의 회복, 즉 예배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생각을 회복하는 일에 효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Karl Rahner and Herbert Vorgrimler ed. Dictionary of Theology, New Revised Version (New York: 1985, Original in German 1961). 280.

칼 라너(Karl Rahner)와 헤브베르트 포그림러(Hebert Vorgrimler)는 로마 가톨릭 교회 자체의 개혁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계 전체에 전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단 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현재진행형인 시점에서 작은 신학 사전을 편집해서 출간했다. 편집자는 이 짧은 사전 표제어에서 전례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낱말의 유래, 성서적 근거, 전례를 둘러싸고 진행된 역사, 그 내용, 그리고 현대의 흐름과 그 가치 등이 매우 함축적으로 담겨있으므로, 이에 따라 글을 풀어가는 나가면 전례학의 입문서가 되겠고, 여기에 살을 붙여나가며 그 내용들을 추적하는 것이 전례의 연구가 되겠다. 사전 표제어들의 작업은 이런 것이리라. 아쉬운 대로 한국어로 된 좀더 확장된 표제 설명은 주비언 피터 랑, [전례 사전] 박영식 역(서울:가톨릭출판사, 2005) 386-388과 그 위에 이어지는 전례에 관한 다른 표제어를 참조할 수 있겠다. (원제: Jovian P. Lang OFM, Dictionary of the Liturgy, New York: Catholic Book Publishing Co., 1989).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영어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몇권의 전례 사전을 추천하라면, 영어권 에큐메니칼 전례학의 산물이라 할 Paul F. Bradshaw ed. The New Westminster Dictionary of Liturgy and Worship (Lousville;Londo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2)과 미국 가톨릭 전례학계에서 나온 Peter E. Fink, The New Dictionary of Sacramental Worship (Collegeville: The Liturgical Press, 1990). 전례 혹은 전례학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려면 우선 이런 사전들로 개념을 분명히 하고, 역사와 논점들을 익힌 후에, 뒤에 따르는 참고도서 사항을 통해서 독서를 확장시키는 일이 필요하겠다.

전례는 하느님의 일

Monday, October 16th, 2006

미국 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례(예전) 관련 저널이라면 단연 “워십”(Worship)을 꼽겠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전례 운동이 미국에 와서 버질 미셸 신부(Fr. Virgil Michel:1890-1938)를 통해서 사회 정의와 전례의 삶을 결합시키게 되었다, 그가 창간한 저널(Orate Fratres)이 이름을 바꾸어 아직까지 “워십”으로 이어진다. 현재 편집장이자 미국 내의 주도적인 전례학자 가운데 한 분인 네이선 미첼(Nathan Mitchell)의 글 한 토막을 옮겨본다. 전례(예전)의 개혁이든 쇄신이든, 혹은 어떤 변형을 추구하든 간에 명심할 단순한 원칙이다.

전례(예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이지,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님을 올바르고 아름답게 예배할 것인지를 보여 주신다. 전례(예전)는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드리는 어떤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 안에서 하시는 아름다운 어떤 것이다. 함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요, 우리가 주도하는 것도 아니다. 성 베네딕도 규칙서가 되새겨 주듯이, 전례는 오푸스 데이( Opus Dei), 곧 하느님의 일이다. 우리의 일이란 굶주리는 사람을 먹이는 일이요, 목마른 이를 채워주는 일이요, 헐벗은 이를 옷입혀 주는 일이요, 병든 이들을 보살피는 일이요, 집 없는 이들에게 피난처를 마련하는 일이요, 감옥에 갇힌 자를 찾아보는 일이요,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일이요, 금새 상처받는 작은 이들과 궁핍한 이들에게 우리의 손과 마음을 여는 일이다. 이런 일을 우리가 잘 감당할 때, 전례(예전)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제대로 설 것이다.

전례 운동 Liturgical Movement

Tuesday, June 29th, 2004

“기도가 전복적이지 않다면,
기도가 냉혹함과 증오와 기회주의와 허위를
무너뜨리는 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기도는 의미 없는 일이다,

전례 운동 Liturgical Movement 은 혁명적 운동이어야 하며,
약속과 희망과 전망을 끊임없이 파괴하려는
모든 권력을 무너뜨리는 일을 추구해야만 한다.”

-아브라함 여호수아 헤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