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성공회? – 그리스도인의 증인됨과 선교
Sunday, July 16th, 2006여성 수좌주교의 선출이 미국성공회 관구의회의 전체 뉴스거리는 아니다. 다만 차분히 다른 내용들을 짚어볼 만한 여유가 없거나, 요즘같은 자극적인 세상에 선정적인 소재가 우선이 되기에 정작 깊은 내용들은 지나치기가 십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표면에 떠오른 일들을 모두 비껴서 중요한 것이라고 내세운들 관심이나 갖겠는가? 거창하게 말하자면 여기에 어떤 저널리즘의 한 딜레마가 있으려니 생각하곤 한다. 내내 이 블로그가 절반은 이런 저널리즘의 한 부분이겠거니 싶기에 같은 처지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세계성공회 안에서는 성서와 교리와 전통의 다른 해석에서 비롯된 논란이 줄기차다. 게다가 이것이 교회의 일치와 분열의 문제로 나아가는가 싶다 보면, 그 속내에 자리 잡은 검은 뒷거래와 자본과 권력이 조금씩 드러나기도 한다. 지금 세계성공회를 둘러싼 논쟁은 우리나라의 정치적 혼란과 격투가 실제로 한-미 FTA를 둘러싼 싸움을 통해 보면 좀더 그 속내의 실체가 확연하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돈의 흐름과 작금 세계성공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논란은 시간나는대로 한번 소개하고 다뤄볼 생각이다.
어쨌든 미국성공회 관구의회가 끝났다. 그동안 논란이 된 문제에 대한 어정쩡한 결의안도 있었고, 이에 대한 캔터베리 대주교의 여러모로 아쉽기만 한 “성찰”도 나왔고, 논란이나 대화의 진행이 어떻든 제멋대로인 나이지리아 주교의 행동도 계속되고 있는 참이다. 이전과 달리 캔터베리 대주교의 그 “성찰”에 조근조근 반박할 말이 여럿이고, 이른바 보수파를 자처한다는 “글러벌 사우스”의 행태도 절망적이지만, 좀더 근본적인 것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이에 대한 반응도 내내 싸움질 이상은 아니될 것같다는 생각이다.
이 사정과는 상관이 덜하겠지만, 한국의 성공회는 그나름대로 고민이 많다. 교회의 성장도 그 하나겠다. 그리고 이런 세계성공회의 논란이 이 “성장”이라는 눈으로 보자면 참 어처구니없는 광풍이겠다 싶을 것이다. 그러나 앞선 글에서 윌리암 템플 대주교의 경구를 인용하면서 잠시 물었던 것처럼, 한줌밖에 안되는 한국성공회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과 성찰이 없이는 성장도 발전도, 아니 그 생존 자체도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내 말을 잠시 뒤로하고, 전직 미국성공회 알래스카 교구장 주교이자, 현재 보스턴 성공회 신학교의 총장인 스티븐 챨스턴 주교 (The Rt. Rev. Steven Charleston)의 목소리를 나누고자 한다. 이 짧은 글이 다만 한국 사회에서 성공회의 존재 이유 찾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의 한 출발이 되고, 우리 교회가 어떤 되지도 못할 교만함이나 값없는 우월감이 아니라 선교적 사명에 따른 진면목에 대한 반성의 한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찬찬히 씹어 읽어주시기를…
우리는 어떤 증인이 될 것인가?
스티븐 챨스턴 주교,
보스턴 성공회 신학교 (the Episcopal Divinity School) 총장
성공회 신자들인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교회의 분열이나 인간의 성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증인됨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증인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향하여 우리의 신앙을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말한대로 실천하는 지를 세상이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공회 신자들은 이러한 증인으로서 실천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과 됨됨이가 일치하는 것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증인이 되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