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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반석 – 순교와 증언의 주교직

Thursday, August 7th, 2014

2014년 8월 7일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아침 성찬례
예레 31:31~34 / 시편 51:10~16 / 마태 16:13~23

주낙현 요셉 신부

+ 나의 바위 나의 구원이신 하느님, 내 생각과 입술의 말들이 주님 마음에 들게 하소서. 아멘.

일주일 후면 천주교의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우리나라에 방문합니다. 우리 성공회도 교황 방한을 축하하고 환영하는 현수막을 제작하여 내걸었습니다. 우리 주교좌 성당 뿐만 아니라, 교구 여러 교회에도 현수막 설치를 격려한다고 합니다. 그 현수막에 있는 문구는 이렇습니다.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종,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환영합니다. 복음의 정신으로 하느님 나라를 함께 이루어갑니다.”

수많은 사람이 교황의 방문을 기대합니다. 지난 1년 반 전에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행에 사람들이 감동합니다. 스스로 낮은 사람이라 칭하고, 가난한 이들, 힘없는 이들을 향한 그의 시선과 행보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싫어했던 이들마저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활동에는 찬사를 보냅니다.

지난 여름 한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 젊은 사람들 여럿을 만났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분이 묻더군요. 현 교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적어도, 외면받는 종교와 교회에 구세주 같은 분이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적어도, 천주교를 살리려고 하느님이 보내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교황은 공식 명칭이 아닙니다. 교황이라는 표현은 과장하여 번역된 말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교황을 일컫는 ‘파파’(papa)는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그저 ‘신부’라는 뜻입니다. 교황이라는 말은 종교의 왕, 황제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너무 무겁습니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 일각에서도 교회의 ‘맏 어른’이라는 뜻에서 ‘교종’(敎宗)이라 불러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교황의 공식 명칭은 ‘로마의 주교’입니다. 그는 일개 로마 교구의 주교입니다. 그런데 서방 교회에서는 로마의 위치가 남다릅니다. 두 가지 전통 때문에 그렇습니다.

첫째, 오늘 읽은 복음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제자 시몬 바르요나를 반석(베드로)이라고 부르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린 채 순교했고, 그의 무덤 위에 성당이 섰습니다. 지금의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은 그 첫 성당 자리에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건축된 것입니다.

둘째, 로마는 로마 제국의 중심지였습니다. 제국의 국교가 된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의 행정 체제를 본받아서 교회를 조직했습니다. 로마 역시 서방 교회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주교는 세계 그리스도교의 맏형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교황은 ‘로마의 주교’이지만, 이런 전통에 따라서, 로마의 주교는 전 세계 교회, 특히 서방 교회의 맏 어른이라고 통합니다. 이는 모든 서방 교회 전통 안에 있는 교회가 인정하는 역사적 신학적 내용입니다. 그러나 맏 어른이라는 말은 그가 실제로 세계 교회를 치리하거나 다스린다는 말은 아닙니다. 세상의 다른 주교들과 ‘동등한 가운데 으뜸’(primus inter pares)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오래된 교회 전통의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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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의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와 천주교의 프란치스코 교황)

성공회는 이 전통을 가장 잘 따르는 교회입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우리 성공회의 맏 어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세계 성공회의 다른 어떤 교구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사실 로마의 주교도 그리해야 합니다. 천주교는 오랜 교회 전통을 우리 성공회에서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듭니다. 천주교의 최고 어른이자, 로마의 ‘주교’인 그를 보면서, 우리는 주교를 비롯한 성직자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되돌아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널리 알려진 대로, 예수님의 제자 시몬의 고백을 칭찬하시며, 그가 교회의 반석이라 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좀 더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부르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러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런 뒤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부르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대답이 선연합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말 뜻이 너무 깊어서 오늘 다 살필 수는 없지만, 본문의 상황에서 오늘 우리는 두 가지는 꼭 살펴야 합니다.

첫째, 자신의 경험, 자신의 기도와 통찰, 자신의 언어, 자신의 입으로 예수님을 고백했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이 말한 이야기, 풍문, 주입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안에서 예수님을 고백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넘쳐나는 교회 장사꾼의 이야기를 듣지 마세요. 넘쳐나는 기독교 케이블 티비, 설교 방송 등을 듣지 마세요. 대신에, 여러분과 함께하는 신부님들과 더불어 복음을 읽으시고 대화하며 나누세요. 그들이 여러분의 고민과 아픔, 슬픔과 기쁨을 압니다. 그들에게 귀 기울이면서 여러분의 입으로, 여러분의 언어로 고백하세요.

둘째, 베드로의 고백과 예수님의 축복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 직전에 있습니다. 공관복음서에 공통된 내용입니다. 오늘 교회에 적용하여 푼다면, 성직, 특히 주교직은 주님의 수난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초대 교회의 주교 대부분은 모두 순교자였습니다. 순교(martyria)라는 말의 원래 뜻은 ‘증언’입니다. 말과 몸으로 신앙의 진리를 증언하는 일이 순교와 선교입니다. 그 순교의 터 위에 교회가 섰습니다. 그러니 그가 교회의 ‘반석’이라는 말은 세상의 높은 지위가 아니라, 순교할 곳, 묻힐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 순교 위에 교회가 섭니다.

Martyrdom_Peter.png
(십자가에 거꾸러 달려 순교하는 베드로)

오늘 순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뜻을 되새기고 나서야 우리는 주교직과 사제직과 부제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주교직에 관해 성공회 요한 수도회(SSJE) 출신의 마틴 스미스 신부님이 쓰신 글을 요약하여 소개합니다.

“주교직의 핵심 상징 중 하나는 의자이다. 감독한다는 말, ‘캐시드라’, 즉 주교좌에 앉는다는 말은 앉아서 가르치는 행동에서 유래했다. 선생은 우리가 의미를 찾도록 도와준다. 복음에 빛에서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과 의미에 집중하도록 우리를 도울 수 없는 이라면 주교가 되겠다고 나서서는 안 된다. 주교가 일에 휩싸인 관리자가 되어 그 사목에 소홀하게 되지 않도록 하느님께 구할 일이다…

주교좌는 오늘날 세계가 필요로 하는 사목적 요구에 대한 뜻을 담고 있다. 근간이 흔들리듯 요동치는 현대 세계 속에서, 우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앉아 중심을 잡고서 사태를 안정시키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초점을 견지하도록 돕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내게 큰 감화를 주었던 주교들은 모두 아주 잘 앉아 있는 이들이었다. 재빨리 뿌리를 내릴 줄 아는 분들이었다. 특히 팔을 걷어붙이고 탁자에 함께 둘러앉는 분들이었다. 우리와 함께 사태를 구별하여 파악하고 초점을 잡는 분들이었다. 사목자로서 그분들은 사람들과 함께 앉음으로써 간명하게 사목할 줄 아는 분들이었다…

이 주교직을 보완하는 상징이 있다면, 그것은 전체를 조망하는 위치이다. ‘에피스코포스’는 감독자라는 뜻이다. 조망이 유리한 위치에서 큰 그림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큰 맥락을 살피고 특수한 처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 사회와 조직의 흐름이라는 좀 더 큰 상황에 연결한다는 말이다. 좀 더 넓은 안목을 갖는 것이 주교직에는 본질적이다. 그리하여 곤란한 처지에서도 하느님의 세계에 대한 큰 그림과 명령, 즉 하느님 나라에 대한 약속을 위해 기꺼이 우뚝 서야 하는 직분이다. 지엽적인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이들은 주교가 되어선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앞을 바라보며 주위를 둘러보며 좀 더 멀리 보는 이를 부르신다. 반대와 분노에 직면하더라도, 우리가 더 넓게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되새겨주기 위해서 어떤 대가라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이를 부르신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어떤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아멘.

여성 성직, 성공회, 하느님의 선교

Friday, July 25th, 2014

여성 성직, 성공회, 하느님의 선교1

“영국 성공회, 여성 주교 성품 가능!” 최근 우리나라 언론도 ‘영국’ 성공회에서 여성 주교 성품이 법제화되었다는 소식을 앞다투어 전합니다. 그런데 대체로 “영국 성공회 480년 만에 여성 주교 허용”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더 들춰보면 정확하지 않고 여러 편견을 담은 표현입니다.

첫째, 성공회는 ‘480년 전’에 시작된 교회가 아닙니다. 원래 하나였던 그리스도교회는 1054년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나뉘었습니다. 이후 하나로 유지되던 서방교회는 다시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으로 천주교,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 등으로 나뉘었습니다. 다른 교단이 이 분열의 역사를 어떻게 보든, 성공회는 기원을 초대 교회와 그 선교 역사의 경험에 둡니다. 성공회는 말 그대로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입니다.

둘째, ‘허용’이라는 말은 편견에 사로잡힌 표현입니다. 여성 성직은 누가 누구에게 허용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닙니다. 여성은 허용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듯이, 여성 성직은 허용받아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를 억지로 금했던 역사가 모자라거나 잘못됐고, 이 잘못을 깨달은 여성과 남성 신자, 성직자들이 오래도록 잘못된 벽을 허물어 더 풍요로운 이해에 다다른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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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계성공회 주교회의 람베스 회의에 참석한 여성 주교들)

이번 ‘영국’ 성공회의 여성 주교 성품 법제화는 ‘영국’ 성공회의 많은 신자, 특히 여성들이 오래도록 바라며 분투했던 일이고, 교회의 오랜 전통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사건입니다. 더욱이 사제직뿐만 아니라 주교직에도 막힌 벽을 헐어서 여성과 남성, 인간 전체를 향한 하느님 은총과 소명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세계 성공회 역사 안에서 여성 성직을 이끈 교회는 아시아의 홍콩 성공회였습니다. 1944년 홍콩 성공회는 리 팀 오이 부제를 사제로 서품했습니다. 억지로 막은 담이 허물어진 뒤, 1970년대에 다시 홍콩, 미국, 캐나다 성공회에서 여성 사제 서품이 잇따랐습니다. 한국에서는 2001년 민병옥 부제가 사제 서품을 받아 여성 성직의 길을 열었습니다.

1988년에는 미국 성공회에서 ‘흑인 여성 사제’ 바바라 해리스가 세계 성공회 첫 여성 주교로 성품받았습니다. 세계 성공회 관구의 절반 이상은 사제직에 성의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주교직에서는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스코틀랜드, 호주가 성의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현재 세계 성공회 안에서 여성 주교는 20여 명에 이릅니다. 이제는 ‘첫’ ‘여성’ ‘흑인’ 등과 같은 수식어를 모든 성직에서 없애야 할 때입니다.

여성 성직을 반대하는 정교회와 천주교 등과 나누는 일치에 문제가 생긴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더욱이 주교직은 남성 제자들을 통한 사도적 계승의 한 표현이며, 교회의 일치 수단이라는 주장 때문입니다. 성공회도 교리와 전통을 나누는 일치를 추구합니다. 동시에, 다채로움을 포용하고 초대하는 실천으로 일치의 자리가 더 넓어지고, 예언자적 행동으로 교회의 전통이 풍요로워진다고 믿습니다. 이 너른 일치와 풍요로운 전통은 교회의 선교를 더욱 든든하게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선교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여성 성직은 든든한 선교를 향한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1. 주낙현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7월27일자 주보에 실은 글 []

눈물로 듣고 보는 신앙 – 성 막달라 마리아 축일

Tuesday, July 22nd, 2014

성 막달라 마리아 축일 (7월 22일)1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연인이었을까요? 아니면, 새로 발견되었다는 파피루스 쪽지의 표현처럼 예수님의 아내였을까요? 소설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등은 이런 의문을 다뤄 세간의 이목을 받았습니다. 이때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서와 교회가 이해하는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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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는 네 복음서에 모두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여행하던 여인들 가운데 한 명이었고, 자기 돈을 들여 예수님의 사목과 선교를 돕던 사람이었습니다. ‘일곱 마귀’로 고생하던 그를 예수님께서 구해주신 뒤에 그리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일곱 마귀’의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정신이나 육체에 깃든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만성 질환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몸을 파는 여인으로 돌에 맞아 죽을 뻔했다가 예수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인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한참 뒤에 이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를 풀어 닦아드린 아름다운 이야기가 복음서에 나옵니다. 서방 교회 전통에서는 이 여인의 사례에서 신앙인이 본받아야 할 참회와 헌신의 모본을 찾으려고 이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인물이라고 결론짓기도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묻힌 현장에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빈 무덤의 첫 증인이었습니다. 모든 복음서의 한결같은 기록입니다. 그의 삶이 어떠했든 그토록 따랐고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기에 예수님의 시신을 두고라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신이 없어져 그 기회마저도 사라졌습니다. 마리아는 상실과 절망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 속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눈물이 그의 귀를 적셨을 때, 그는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들었고, 그 눈물이 그의 눈을 씻어내렸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다른 열 두 남성 사도들을 다 제쳐놓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 가에서 우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당신의 몸을 드러내셨습니다. 다른 열 두 남성 사도들을 다 제쳐놓고,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난 사람, 부활의 첫 증인이었습니다. 이 여성이 다른 열 두 남성 사도들에게 부활을 전했습니다. 이 때문에 동방 교회 전통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사도들 가운데 사도”로 여기며 존경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복음서와 그리스도교 초기 역사의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한 분은 ‘하느님을 품은 사람’(테오토코스)로, 다른 한 분은 ‘사도들 가운데 사도’로 불렸습니다.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랐던 사도였던 두 마리아는 우리 신앙인이 걸어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예수님을 품은 사람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예수님을 애틋한 그리움을 담은 연인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삶의 고통과 슬픔, 기쁨과 즐거운 전체를 대면하면서 그 안에 깃든 눈물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사람입니다.

St_Mary_Magdalene.jpg

  1. 주낙현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주보 글 수정 보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