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역사' Category

보이는 것들과 감추인 것들 2

Monday, February 23rd, 2009

1.
나는 “성공회” 사제다. “신부” 혹은 “사제”라는 호칭 앞에 굳이 “성공회”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으면 사기치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천주교 신부를 사칭했다는 죄목을 가장 먼저 쓸 공산이 크다. 정교회(Orthodox Church) 신부 혹은 사제도 굳이 그렇게 해야 한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수식어가 붙지 않은 “신부”나 “사제”는 천주교만의 전유물로 당연시된다.

긴 말 필요없이, 천주교가 수적으로 절대 다수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숫자에 껌벅 죽게 된지라, 정당한 이유나 근거에 기반한 설명이 먹히질 않는다. 소수에 대해서는 ‘저리 찌그러져 있어!’라는 호통이 우세하거나, 그들이 한소리라도 낼라치면 ‘가난한 놈들은 질시와 불평만 많다!’라는 찬소리를 되받기 일쑤다. 우세한 목소리와 숫자들이 부각되어, 그저 작은 것들은 가려지고 감춰지고 만다.

왜 이런 허튼 소리로 시작했나? 한국 천주교에 대해서 한마디 언급하려는데, 혹시 사칭한다고 할까봐 미리 켕켜서다. 제 것 아닌 다른 교단 전통에 대해서 말하는 일이 적지 않게 부담스럽다. 천주교라는 거대 무리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내 자신이 천주교 전통에 기대어 그리스도교 신앙의 깊이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고, 내 성소 식별의 과정 안에서 인간의 연으로나 공부의 맥락에서 빚진게 크거니와, 지금도 여러 천주교 사제 친구들과 교류하고 있으니 한마디 보탤 수는 있다는 생각이다. (아, 콩만한 간덩어리여! – 도입이 길다는 건 벌써 쫄았다는 거다!)

2.
일전에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면서 그분의 30여년 전 말씀을 인용한 바 있으나, 현재 한국 천주교는 스스로를 “담장 안에서” 성명서나 발표하는 무리가 되어가는 듯하다. 사실 그 성명서라는 것들이 내내 그럴싸하게 들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촛불 정국 때나 용산 참사 사건에서도 보여준 성명서에 나타난 “말”들은 좋다 못해 자못 훌륭하다.

그런데 이를 내놓는 “주교회의”(산하 정의 평화 위원회) 내 주교들의 행동들은 이 “말”과는 판이하다. 작년 8월에 있은 서울대교구의 인사에서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사제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보면 분명하다. 흥미롭게도, 주교회의의 성명서는 일이 다 끝나갈 무렵,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과 주장들을 하나 마나 한 소리로 요약한다. 문제는 이게 마치 어떤 행동의 신호처럼 해당 사건에 관련된 이들에 대한 조치가 따라 나온다는 것이다. 용산 참사에 대한 성명서도 그런 인상이 짙다. 이게 다시 시국 미사를 주도하는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작은 무리를 향한 또다른 조처에 대한 신호일까? 시국 미사, 참사를 당한 이들을 위한 위령 미사를 드리는 이들의 주축이 이번에는 수도회 소속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이어서 그 조처가 미치지 못할까?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추모 열기로 천주교는 다시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 참에 신자들도 더 늘어나지 않을까 점치는 수준이라 한다. 그런 호기를 잡지 못한 다른 교단이나 종교들은 아쉬워 하는 바가 없지 않다고들 한다. 이 참에, 이렇게 보이는 것들과 감추인 것들 사이의 간극을 다시한번 돌아다 본다. 조명을 받은 물체는 곧장 어둔 그림자를 남긴다. 그 덩치가 클 수록 드리운 그림자 더욱 크고 깊다.

3.
이쯤 적어놓고 생각을 삭이고 있는 참에, 오마이뉴스의 기사가 보인다 (적으려던 여러 생각을 접게 해주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김수환 추기경 추모와 더불어 생각한 한국 천주교의 보수화에 대한 걱정어린 분석 글이다. 대체로 공감한다. 개인적인 관찰뿐만 아니라 천주교 쪽 지인들에게서 들었던 걱정들과 대체로 일치하는 내용이다. 등록 교인 수는 많아지는데 실제로 주일 미사 참석수는 줄고 있다는 관찰도 보인다. 주위에서 듣기로 젊은 세대의 냉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탤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종교의 “심리적 중산층화”가 아닐까 한다. 말인 즉, “중산층”의 욕망, 그리고 “중산층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종교 선택에서도 확연하다. 개신교인들이 줄고 있다고는 하나, 이른바 강남 대형 교회들이나 그 밖의 “중산층”을 선교 대상으로 한 대형 교회들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천주교의 성장도 이와 같은 선상에 있다. 천주교는 그동안 비판적이면서 지적인 ‘이미지’를 키워왔다. 이 ‘이미지’는 개신교의 그것과 차별화되기도 해서 더 유효했다. 그렇지만 이것들이 짐짓 뻐기는 “중산층 욕망”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에서, 성장하는 개신교 대형 교회와 천주교의 성장도 같은 맥락에 있다. 그러는 동안 이 ‘이미지’ 뒤에 가려진 힘없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잃어간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보이는 것들과 감추인 것들…

Tuesday, February 17th, 2009

큰 어른이 돌아 가셨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당신의 삶으로 많은 것을 비춰주고 가셨다. 큰 슬픔과 더불어, 부활의 생명에 드신 그분의 새로운 삶을 기린다.

사람은 역사에 족적과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여러 모양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살아있는 이들 가운데는 이름 값에 현혹되어 노욕의 추태를 부르거니와, 어떤 이들은 한 생명이 살아간 족적을 조급하게 평가하려든다. 한편, 한 생명의 죽음에 대한 존중때문에 사람들은 죽은 이에 대한 온갖 찬사를 쏟아놓기도 한다. 그 사이에 보이는 것들이 남발되고, 여전히 감추인 것들은 숨을 죽인다.

부활의 생명에 드신 김수환 추기경의 삶에 대한 기억 역시 내내 이런 유혹을 당긴다. 지난 40여년 간 한 교회의 지도자로서 한결같이 보이신 신앙의 용기와 사목자로서 약자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어떤 이들에게는 직책을 떠난 그분의 마지막 10여년과 불편하게 겹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 계실 때와 교회의 공적인 임무를 벗어났을 때를 가름하는 것이 어떤 이해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분과 함께 숨쉬는 공동체의 여부가 그분의 여러 언행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희박한 자유의 공기 속에서 공동체와 더불어, 밭으나 깊은 호흡을 나누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그 자신의 신학 연구 활동으로 바티칸 당국의 경고와 제재를 받은 바 있던 스리랑카의 천주교 사제 티사 발라수리야는 1977년에 나온 자신의 책 첫머리에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을 이렇게 옮겨 실었다.

교회는 부활의 신성한 촛불을 밝혀야 합니다. 교회 담장 안에서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 담장 밖에서 행동을 통해서 그리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양심과 정의를 되살리는 일에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좀더 밝고 좀더 정의로운 사회와 더불어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천주교 안에서 지난 30여년 동안 이 말대로 “교회 담장 밖에서 행동”했던 이들은 소수 무리인 정의구현사제단이었거나, 소수의 수도자들이었거나, 소수의 헌신적인 신자들이었다. 실은 종교 밖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땀과 희생이 더 컸다. 다만 종교는 늘 상징을 그 힘으로 삼기때문에, 그 상징적 인물과 그 행동이 도드라진다. 다만 그 속에서 밝히 드러나는 것도 있지만, 감춰지는 것도 있다.

과대평가된 한국 천주교의 진보 정도를 가늠해서 밝힐 생각은 없다. 단지 천주교 내의 소수 무리인 정의구현사제단의 그것에 한참 못미친다는 건 분명하다. 사람들이 지난 몇십년 동안 천주교에 갖게 된 호감은 정의구현사제단의 실천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사제단’은 소수이며, 듣기로는 그마저도 천주교 내의 힘있는 이들에게 여러 모양으로 핍박받고 있다고 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기는 형국일 수도 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남기신 족적과 이름에 대한 찬사가, 이 소수의 이름없는 이들, 그리고 종교 밖에 있던 이들의 실천을 가리지 않길 바란다. 성직자로서 그분의 소임은 이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비추는 거울이요 창이었으니, 그분은 당연한 일을 하셨다. “선종”(善終)의 뜻이 그러하리라. 어른을 잃은 것을 슬퍼하는 것은 그나마 그런 창들이 귀한 처지가 되었고, 어른입네 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 창이 쉽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큰 어른을 잃었다. 그 어른이 감추지 않고 드러내려고 했던 사람들, 함께 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삶이 그분의 이름때문에 가려지질 않길 바란다. 부활의 촛불은 모든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비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 어른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는 길이요, 올바로 추모하는 길이다. 그분이 의도하지 않았던 30여년 전 유언을 다시 듣는다.

교회는 부활의 신성한 촛불을 밝혀야 합니다. 교회 담장 안에서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 담장 밖에서 행동을 통해서 그리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양심과 정의를 되살리는 일에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좀더 밝고 좀더 정의로운 사회와 더불어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관구장 회의?

Monday, February 2nd,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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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e Walker

도대체 관구장 회의(Primates Meeting)란 무엇인가? 세계 성공회의 일치의 도구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이 모임이 현재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열리고 있다(2009, 2.1-5). 세계성공회는 그 안의 다양한 교회의 일치를 위해 캔터베리 대주교(직), 람베스 회의, 세계성공회협의회(ACC), 그리고 관구장 회의를 일치의 도구라고 선언해 주었다. 그 가운데 가장 역사가 짧고 그 존재 가치가 의심스럽게 등장한 것이 다름아니라, 관구장 회의이다. 그런데 이게 지난 십여년 사이에 가장 맹위를 떨치는 집단이 되고 있다. 그저 성공회 간 협력 관계를 위한 사교 모임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출발했던 모임을 이제 세계 성공회의 일치와 분열을 가름하는 잣대로 삼으려는 이들 탓이다.

교회 전통으로나 교회법 상으로나 성공회는 대체로 교구 중심으로 그 교회의 단위와 치리, 그리고 자율성을 구가해 왔다. 최소한 성공회 안에서는 모든 교구와 그 교구장인 주교들은 평등하다. 캔터베리 대주교 역시 세계 성공회의 일치의 상징일지라도, 그는 [동등한 가운데 으뜸](primus inter pares)일 뿐이다. 그런데 관구장들은 이런 오랜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 최소한 지난 몇십년간 관구장들은 그 직함에서나 그들의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서, 힘겹게 지워가고 있는 교회의 권위주의적 위계 질서를 역사에 되살려 내고 있다. 관구장이라는 허명에 집착하는 이들을 여럿 보았고, 다른 지역 주교들에게 엄포를 놓으면서 람베스 회의 참석을 막아서는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일도 들었다. 아마 자리와 허명에서 권위를 얻어보자는 욕심이 이 사교 모임을 공룡으로 만들었을게다. 개인의 허영심은 끼리끼리 모이면 큰 힘이 되곤 한다.

지난 람베스 회의에서 대부분의 주교들은 이런 관구장 회의의 헛된 권위주의에 매우 불편한 시각을 드러냈지만, 막무가내다. 람베스 회의를 훼방했고, 캔터베리 대주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노라 선언했고, 아예 그가 집전한 성찬례에서 영성체도 하지 않았던 이들이 여럿이었다. 관구장 회의를 일치의 도구는 커녕, 분열의 도구로 정착시켜려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무슨 낯으로 모여 들었는지 모르겠다. 하긴 낯두꺼운 관구장 회의니까. 그러니 이런 냉소의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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