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상' Category

참되고 완전한 기쁨

Saturday, August 30th, 2008

몇 년 전 아씨시의 프란시스 성인의 초기 문헌을 읽는 수업을 들었다. 가르치시던 수사님(Br. William Short, OFM)의 탁월한 강의와 해석 때문에 성인의 삶과 가르침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 왔었다. 그러나 성인이 너무 컸고, 내게 그 삶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일까? 가까이 두고 그 글들을 기도 삼아 읽었으나, 차츰 찾는 일이 잦아들었다. 성인의 단순하도록 생생한 삶을 내 거울에 비추기가 버거워서였노라 하면서, 비추고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했다.

이 즈음에, 당시 페이퍼의 주제로 삼았던 성인의 글과 이야기를 다시 떠올라 옮긴다. 다시 읽어보니, 늘 내 마음에 웅크리고 앉아 얼음송곳으로 내 발꿈치를 콕콕 찌르던 그 말씀, 평생 피하지 못할, 그 말씀, 그대로였다.

같은 이 [레오 형제]에게 같은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성 마리아 성당에서, 복되신 프란시스는 레오 형제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레오 형제, 기록해 두세요.” 레오 형제는 대답했다. “보세요, 준비 됐어요.” 프란시스는 말했다.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기록하세요.”

“한 소식 전달자가 와서 말하기를, 파리 대학의 모든 교수들이 우리 수도회에 입회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기쁨이 아니라고 기록해 두세요. 또는 산 너머 모든 고위 성직자들과 대주교들과 주교들이, 프랑스의 왕과 영국의 왕과 더불어 우리 수도회에 입회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기쁨이 아니라 기록해 두세요.

또 나의 형제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 모두를 신앙으로 개종시켰다고 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큰 은총을 받아 병든 이들을 고쳐 주고 많은 기적을 행한다고 합시다. 그러나 나는 형제에게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참된 기쁨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면 참된 기쁨은 무엇일까요?”

“나는 페루지아에서 돌아오는 동안 한 밤 중 여기에 도착합니다. 겨울이어서 진창이 되고 하도 추워서 내 수도복 끝자락이 얼어 붙었고, 그 얼음이 내 발을 하도 때려서 상처를 내고 거기서는 피가 흘러 나옵니다. 흙투성이에 얼음덩이가 되다시피 한 내가 어느 문에 다가가서 한동안 문을 두드리고 사람을 부르자, 한 형제가 나와서 묻습니다. ‘당신, 누구요?’ 나는 ‘프란시스 형제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는 ‘꺼져 버려! 지금은 어슬렁 거릴 시간이 아니야, 넌 못들어 와!’ 하고 말합니다. 내가 계속 애걸하자, 그는 다시 ‘꺼져 버려! 무식하고 멍청한 놈아! 다시는 오지 말거라!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너 같은 녀석은 필요 없어!’ 하고 말합니다. 나는 문에 서서 다시 애걸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오늘 밤만 쉬게 해 주세요.’ 그러자 그는 대답합니다. ‘그럴 수 없으니, 십자가 수도원에 가서나 알아 봐.’

“나는 형제에게 말합니다. 만일 이러한 처지에도 내가 인내를 갖고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다면, 바로 여기에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더불어 참된 덕과 내 영혼의 구원이 있습니다.”

in Francis of Assisi: The Saint: Early Documents, Vol. 1 (New City Press, 2002), 166f.

집으로 돌아오는 길 2

Monday, August 25th, 2008

아래 적은 일들로 몇몇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말한 대로 그릇이 크지 않아 혼자서 삭일 만한 내공이 없는 탓이었다. 지난 며칠 간 함께 나눈 분들의 위로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노라고 이 자리에서 사의를 표한다.

어떤 이와는 이런 말로 염려를 같이 했다. “아무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포용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일이나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관용이라고 한다면, 이는 포용과 관용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톨레랑스는 톨레랑스를 억압하는 것에 대한 불용(앵-톨레랑스)을 포함하는 것인데.”

어떤 이는 하찮은 것들에게 크게 대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냐며 허허로운 웃음의 지혜로 오히려 덕담을 건네셨다. 작은 소갈머리를 잠시 탓했다. (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그리고 어떤 이는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심지어는 함께 마음 아파 울었노라고 하며, 편지에, 책자에, 다른 여러 글들을 손수 복사해서 급행 우편으로 보내 주셨다. 참 고마운 손길이다. 그 작은 봉투에 담겨져 있는 마음씀씀이에 한동안 멍멍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편지 여기 저기에 적었다.

[공부도 하고 스스로를 깊이 돌아본 결과]… 문제 있는 사람들이 남을 문제가 있다는 시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상처를 줍니다. 이를 거울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물론 완벽한 사람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꼭 문제가 있어서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를 비난하고 나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분명히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긍정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지도자를 훈련시키고 성장시키는 과정이 있습니다. [특히] 영적 지도자들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는데, 그것은 거부, 배척당함, 비난받음, 그리고 그 과정을 통과하면 경험하는 절대적인 고독과 홀로 있음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하느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게 되며, 또한 자신의 인격을 성찰하고 연마합니다…

지금의 현실을 수용하시기 바랍니다. 라인홀드 니이버의 평온을 위한 기도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함께 부친] 책 속에 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경험은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거부하지 말고 수용하고 나면 하느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 수용에는 자기 자신을 수용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더욱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남들때문에 나 스스로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원치 않습니다…

사목을 하면서 깨달은 최고의 진리 가운데 하나는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불합리하고 이기적이고 파괴적이고 악마적이고, 도무지 신뢰할 수 없고, 그래서 인간에 대해서 절망했습니다. 화났습니다. 하느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 때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은 “그래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지 않았느냐? 너를 위해서,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판단을, 정죄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포용할 수 밖에 없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인간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절망, 원망, 분노는 죄에 대한 이해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비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우리는 하느님의 도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우리의 도움이 어디서 오는가?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그분에게서 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신부님, 지금까지 해 오신 일을 힘차게 계속 해 나가세요. 주님께서 힘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가족을 돌보는 데 열심을 내세요. 공부보다도 가족을 돌보는 일이 더욱 귀중한 일입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동의하지 않는 면도 있지만, 이 모든 말씀들이 따뜻한 마음을 건네고 큰 사랑으로 다가 왔으니 그 도전에 내 자신을 맡기고, 오래도록 되씹어야 하겠다.

이래저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멀었지만, 함께 기도하고 대화하고 고민하는 많은 이들의 따뜻한 손길에 들려 조심스럽게 안착하고 있다. 좀더 내 자신의 기준을 벼를 일이요, 내 속의 지경은 넓힐 일이다. 도와 주시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합장.

집으로 돌아오는 길 1

Monday, August 25th, 2008

이래저래 바쁜 여름을 보냈다. 몸이 파김치가 되었으나, 참 좋은 경험이었다. 아래에도 적었지만, 한국 방문 기간에 환대해 준 분들의 마음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이어 곧바로 람베스 회의로 영국에 가는 바람에 몸의 집도 비우고, 이곳 블로그 집도 한동안 비웠다. 대신 새로운 임시 천막인 [람베스 통신]을 치고, 거기서 다시 몇몇 분들을 조우했으니 그것으로 족하게 기쁜 일이다.

몸의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길었는데, 블로그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더 멀었다.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연결 문제로 연발과 연착이 거듭되었 듯이, 블로그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의 길에 연착륙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우선은, 돌아와서 미처 영국에서 끝내지 못한 [람베스 통신]의 몇몇 글들을 정리해서 올려야 한 탓에 제 집을 소홀히 했고, 다른 이유로는 영국에 머물러 [람베스 통신]을 적는 동안, 거기다 적은 글들로 심기가 불편한 분들이 뒷담화하거나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통에 마음이 산란했다. 이런 일로 마음에 파장이 이는 건 분명 내 그릇이 작은 탓이요, 마음이 깊지 않은 탓이겠다.

수련과 내공이 깊지 못해서 얻은 상처라 해도, 우선 싸매고 치료하고 봐야 한다. 자칫 만신창이가 되면 남겨둔 수련의 일정을 소화할 틈도 없이 불구가 되어 하산해야 한다. 예전엔, 죽도록 싸워봐야 하리, 했는데, 돌아보니 객기였을 성 싶다. 우선 싸매고 보살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움츠리는 건 자연스런 보호 본능이다.

사실 이런 일에 익숙할 만도 하다. 연전에도 관구 게시판에서 더 험한 인신공격도 겪어 봤으니, 이 정도 가지고야, 할 만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문 상처의 자리는 더 약하다. 그 상처를 보호하고자 짐짓 단호한 어조로 “당부의 말씀”을 드리기도 했으나, 그걸로 잦아든 건 아니어서 다시 이런 공격이 머리를 든다. 게다가 알만한 사람이 뒷담화를 하거나, 인터넷에 주소를 입력하거나 링크를 타고 오면 언제든지 읽을 수도 있는데, 확인도 하지 않고 그런 뒷담화를 퍼뜨리는데 가담하는 일은 비겁하다 못해 가여운 일이다. 하릴없이 그 “당부의 말씀”을 다시 들려 줄 수 밖에 없다.

제 생각을 나누기 전에 여기서 잠깐 당부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 글을 끝까지 읽지 않으시고, 그저 몇가지 주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덧칠하려는 분이 있다면, 아래 내용을 읽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당사자 개인에게도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신앙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말을 내뱉음으로써 자신의 영을 추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민스러운 내용과 글을 어렵게 나누고자 하는 처지에서 나온 글에 대한 이런 비방들이 그 주장을 정당하게 하기 보다는 교회 전반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도 교회에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서로 바쁜 처지에 어떤 정신적 노동과 수고를 강제할 생각도 없습니다.

익명성으로 가려진 공간에서는 신앙인이라면 스스로를 더욱더 삼가는 일이 덕이겠습니다. 솔직히 저만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을 받으면서 무대 밖의 어둠으로부터 화살을 맞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처지라면 오히려 실명을 밝히시고, 교회에서의 위치를 밝히면서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이 자신의 영을 건강하게 붙잡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은 논쟁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요구가 아니라, 한 명의 사목자로서 몇몇 신앙인에게 드리는 권면입니다.

마지막으로, 몇몇 신자들이나 동료 성직자들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생각으로 남을 윽박지르는 일을 삼가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자신이 글을 쓰면서 매우 엄격한 “자기 검열”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기도요, 둘째로 제 자신에 대한 성찰이요, 세째로 신학 공부와 사목적인 경험을 통해서 여러분과 나누려는 하나의 열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교회에 대한 책임있는 자로서 말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물론 성직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가 제게 부여한 책임이고, 또 검증한 능력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잘못이 있다면 그에 상응한 절차로 제게 책임을 물으시면 됩니다. 그에 따라 저도 제 말에 책임을 지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제가 깊이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외부의 “윽박지름”이 우리 교회를 이끌어가야 할 분들 (신자, 성직자, 수도자 모두)에게 지나친 자기 검열을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리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크나큰 위험이자 손실입니다. 외부에서 강제된 이러한 검열은 결국 교회의 숨통을 죄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자기 듣기 좋은 말만 듣거나, 혹은 남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친목 단체로 전락할 것입니다. 교회의 사제직과 예언자직의 균형을 위해서 신자들이 먼저 성직자들을 응원해 주십시오. 저는 최소한 이것이 다른 교회와는 달리 성공회가 우리 사회 속에서 살아있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만 읽으시고, 떠나실 분들은 제발 떠나시고, 나머지 역시 읽지 마시고, 여러분의 영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아래의 이야기들이 그런 분들의 생각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며,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돌이켜 살피거니와, 화살을 맞는 장면을 지켜보는 보는 입장에서 느끼는 짠한 마음과 실제로 그것을 맞는 처지의 느낌은 다르다. 게다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서 가려진 면들 때문에 저 친구가 진짜 화살을 맞았는지 아닌지 의심하는 부류도 있을 뿐더러, 비명을 엄살이라고 우기는 분들도 종종 나타난다. 그동안에 화살은 살을 꿰뚫고 피를 내고 몸에 독을 퍼뜨린다.

그래도 많은 이들의 격려가 있었기에 돌아오고 있다. 사실 마음을 같이하고 같이 아파하는 사람이 훨씬 많이 있다는 걸 안다. 게시판에서 그야말로 장난질하는 사람이나 뒷담화하는 분들은 극히 적은 한 두 사람에 불과하고, 사실 또다른 배려의 대상이요, 기도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 화살에 맞는 사람은 그 충격을 감당하고 그 상처를 싸매느라, 혹은 그것이 나중에 덧나지 않을까 걱정하며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러니 이 참에, 사서 고생하는 일은 그만 두어야 할까?

그럴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곳은 내 돌아갈 작은 거처로 삼은 곳이요, 무엇보다도 선한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삶을 나누는 통로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으나마 이 공간에서 생명의 둥지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다물고 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