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상' Category

문정현 신부님 생각

Wednesday, January 30th, 2008

문정현 신부님이 “교회” 사목에서 은퇴하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평생을 더 넓은 “보편적 교회” 안에서 사셨으니, 실제로는 은퇴라 할 수는 없겠다. 다시 그분은 대추리로 발걸음을 옮기시지 않았던가? (via 오마이뉴스)

수많은 이들이 제각기 이 분의 삶과 투쟁 속에서 큰 영향을 받았을 테다. 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한 복판에서 기억되는 그 큰 그림자를 언급하기에는 내가 너무 작다. 다만 22년 전 어린 기억 속에 스치듯한 아스라한 인연처럼 새겨졌던 그분의 허허로운 웃음은 아직도 철없는 이 젊은이에게 사제직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한다. 지난 세월동안 그 웃음은 늘 분노와 슬픔이 가득한 눈물과 겹쳐져서 내게 나타났다. 방송에서건 신문에서건, 또다른 삶의 현장에서건.

문정현 신부님을 처음 만난 건 아마 고등학교 2학년때였으리라. 지방의 한 천주교 재단 학교에 나닐 적에 천주교인 학생들만을 위한 피정에 ‘꼽사리’ 낀 단 한명의 개신교 신자였던 나는 명단 비고란에 프로테스탄트를 뜻하는 ‘P’를 달고 있었다. 천주교로 ‘개종’할 가능성 0%인 나를 종교반에서 2년 동안 교리 교육을 시켜주셨던 선생님들은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을 위한 신앙인의 삶을 체험하는 피정에 나를 초대하셨다. 우리는 경남 산청에 있는 음성 ‘나환자’ 마을과 병원에서 한센씨 병으로 고통받고, 여전히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던 이들과 함께 며칠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전북 장수에 있는 장계 성당을 들리기로 했다. 문정현 신부님께서 주임하시던 곳이었다.

신부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셔서 뵙지 못하고 곧장 성당 부설 “작은 자매의 집”을 들렀다. 오마이뉴스 기사에 나온대로, 작은 시골 동네에서 그것도 정신지체아라는 이유때문에 집혀 갇혀 걸레뭉치마냥 내팽겨져있던 이들을 하나씩 불러내어 이들을 위한 집을 막 마련하셨던 때였다. 거기에 있는 이들의 정신지체 등급 정도는 매우 심한 것이었는데, 당시 시골에서는 이 어린이들을 위한 복지 시설은 거의 전무했다.

곧 신부님이 오셨다. 반갑게 선생님들과 우리들을 맞이한 신부님은 대뜸 “막걸리 한 말 사오지 그랬어?” 하시고는, 곤혹스러워 하는 선생님들을 향해서, “고등학생은 아직 안되나? 하기야 공식적으로는…” 하시며, 이내 절룩거리는 발걸음으로 작은 자매의 집을 돌며 어린이들 이야기와 사목 활동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천국 가는 비법을 알게 됐어. 뭐 다른게 있겠어? 이렇게 살아온 걸로는 하늘나라 가기는 틀렸고, 한가지 이 애들 발뒷굼치만 놓지 않고 붙잡고 있으면 따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애. 이젠 그길 밖에 없어” 하시며 허허롭게 웃어주셨다. 구원론이 별건가?

선생님은 문신부님과 학교의 인연을 말씀해 주시고, 그분이 절름발이된 사연도 들려주셨다. 그분은 우리 학교 초대 종교감(채플린) 신부님이셨다. 그 시절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분들의 시신이 벽제 화장터로 가는 것을 막고, 가족들과 시신을 되찾으려는 과정에서 무릎을 다치셨다. 당시 우리 가운데 몇몇은 70년대의 인혁당 사건을 조금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아 어느 교회에서 몰래 상영했던 독일판(?) “광주 학살” 다큐멘터리에서 그분의 좀더 젊은 얼굴을 보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외국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세월은 그 젊은 외모를 가만두지 않았으나, 그분의 신앙과 열정을 어쩌지 못했다. 그분은 이후에 이리(현재 익산)으로 자리를 옮기시며, 장계성당 ‘작은 자매들’을 마음 속에 깊이 품으셨다. 그리고는 다시 이 ‘집’을 익산으로 옮겨 아이들을 자기 곁에 두게 하셨다.

서울 명동 성당 마당에서,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몇번 스치듯이 다시 얼굴을 뵈었다. 이후엔 전북 지역 평화 인권 단체에 참여했던 친구를 통해서 그 단체 이사장이었던 신부님의 이야기를 전해듣곤 했다. 그리고 그분의 모습은 대추리까지 이어졌고,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아낸 후 가족들의 서러운 울음이 그의 품에 안기는 것을 멀리서 컴퓨터 화면으로 지켜보았다.

22년 전 짧은 하루의 만남 이후 그분의 모습은 늘 내 삶에 참견했다. 그 참견은 때로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제의 모본을 내 앞에 그려주는 것이었지만, 안주하고 싶을 때는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참견이기도 했다. 내 안의 다른 변명거리가 그분의 모습을 애써 눈감게 하려 했다. 그것이 또다시 부채감과 죄책감으로 다가와서 몽롱한 머리를 한 대씩 때려주면, 이걸로 그분에 대한 존경의 소임을 다했노라고 슬며시 에누리하려 했다. 하지만 적당한 자기 위안으로 삼기엔 그분의 삶과 사랑이 너무 구체적이며 선연하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훗날 내게 “왜 문정현이 되지 못했느냐?”고 물으시진 않으실 테다. 대신 “넌 내가 기대했던 주낙현으로 살았느냐?”고 물으시겠지. 문정현은 문정현으로 살았고, 그렇게 살아가실 것이다. 이제 내 삶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물음이 어느 참견보다 무겁다.

나 같은 작은 사람에게도 이 물음을 던져주신 문정현 신부님께 깊은 합장.

작은 이들에게 눈길을 주는 새해

Sunday, January 6th, 2008

샌프란시스코 지역 신문사(한국일보)에서 새해 인사를 짧게 적어달라는 청을 해서 보냈는데, 그 후론 아무런 연락이 없다. 실렸는지 여부도 모르겠다.(알고 보니 실리긴 했다. 맞춤법이 이리저리 틀린 채) 허접한 흰소리라면 종이가 아깝고, 독자들이 들인 시간이 아까울 것이어서 조심하긴 하는데… 쏟아낸 말인 이상 그릇되지만은 않은 생각이려니 해서 여기에 올려서 찾아뵙고 드리지 못한 새해 인사를 대신한다.

작은 이들에게 눈길을 주는 새해

새해 인사는 으레 기운차고 희망있는 말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앞섭니다. 즐거운 기운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세상이 희망과 기대로 넘쳐나고 있으니 딴지거는 작은 목소리 하나 정도는 참아 줄 아량은 있겠다 싶어 이런 글의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무쪼록 새해가 작은 이들의 목소리를 허투루 듣지 않고 다독여 주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작은 것들에게 마음이 잘 가지 않는 까닭은 우리 안에 큰 것들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과 마음이 분주한 것도 가만보면, 저만치 세워놓은 목표가 너무 높아서 도대체 이런 속도로는 안되겠다고 스스로를 채근하는 탓입니다. 그렇게 달려오다 지친 세월에 대한 회한은 특히 이민사회의 쓸쓸한 풍경이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새해는 이런 풍경의 단편을 더하지 말고 우리 안에 있는 작고 소중한 것들을 잃지 말고 다시 눈길 주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종교에서 가장 경계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우상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종교 혹은 종교생활이 도리어 우상이 되거나, 우상을 세우는데 이바지하는 일이 숱합니다. 축복과 은혜가 곧장 세상살이의 성공으로 등치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면 이미 병세가 심각합니다. 종교를 갖거나 신앙 생활을 한다는 분들은 그 종교들이 담고 있는 “역설의 신비”에 깊이 마음을 두고 살았으면 합니다. 아무쪼록 새해는 자기 안의 우상을 깨뜨리고,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작고 참된 기쁨을 되찾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이런 것들을 한 다짐으로 단박에 이룰 수는 없습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람살이든 사물이든 그 가운데서 마음주지 못했던 가장 작은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고, 그 한두가지에 우선순위를 두어 짧은 시간이나마 반복적으로 실천해야겠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든지, 짧은 산책이든지, 그도 아니면 작은 화초 하나라도 키워내는 일로도 훈련이 가능합니다. 아무쪼록 새해가 이런 작은 자기 훈련의 시간으로 채워졌으면 합니다.

이런 소리도 새해 덕담이 될 수 있는 마음 넉넉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복 받으라는 덕담에 하나 보태렵니다. 줘야 받을 것이니, 이렇게 인사하고 싶습니다. 새해 복 많이 주고 받으세요!

우상, 그리고 경계에 선 파수꾼

Monday, December 10th, 2007

매주 한국에 계신 신부님들께 보내드리는 설교 자료를 빌미 삼아, 짧은 생각을 보탰다.

대림절기는 역시 설렘과 희망의 절기이지만, 한편으로는 도전의 절기이기도 하군요.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도덕이 밥먹여 주냐? 경제와 추진력이 최고야!”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기세를 높이게 된 모양입니다.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걸 투영해 누군가를 만들어보자고 하는군요. 우상이 하나 서고 있습니다.

이런 우상의 등장을 물 너머 하릴없이 지켜보면서, 우리 교회도 이런 세태에, 현실이니, 시대정신이니, 생존을 위한 변화니 하는 미명을 들어 은근슬쩍 따라 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합니다.

오늘 성서 주해에서 보듯이, 신약학자 보른캄은 세례자 요한을 이렇게 잘 정의했더군요.

“그는 영원한 시간을 가르는 경계에 선 파수꾼이다”

우리가 서있는 경계는 어디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감당하겠노라고 나선 파수꾼의 사명이 무엇일까요? 이 질문들이 목숨을 내걸고 감옥에 갇혀 자기 생의 마지막 순간에, “오실 그분”을 재확인하고 결단하려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과 겹치는 저녁입니다.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