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상' Category

한국 방문 일정

Wednesday, October 24th, 2007

서울교구 전례 세미나를 위해서 잠시 한국에 들어갑니다. (들어왔습니다!)

10월 25일 (목) 서울 행
10월 26일 (금) 인천 도착, 전주 행
10월 27일 (토) 서울 행
10월 28일 (주일) 오전 용산 나눔의 집, 오후 용인 교회 축성 기념 예배
10월 28일 (주일) 저녁-11월 31일 (수) 전례 세미나 (천안 디아코니아회)
10월 31일 (수) 광명 행
11월 1일 (목)
아침: 성가수녀원 미사 집전 – 모든 성인의 날 축일
오후: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 전례 특강
11월 2일 (금)
오전: 성가수녀원 수녀님들과 전례 대화
오후: 7시 번개 모임 (강남)
11월 3일 (토) 오전: 오랜 벗들, 오후 홍콩 행
11월 4일 (주일) 홍콩 성공회 성 요한 주교좌성당
11월 5일 (월) 신학교 “F.D.모리스와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Fr. John Kater)
11월 7일 (수) 서울 행
11월 8일 (목) 샌프란시스코 행

비통한 마음에, 죄에 대한 생각

Friday, October 19th, 2007

비통한 마음을 가눌 수 없어 거칠게 우리 성직자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렸다. 참담했다. 부끄러워 그 파편도 옮기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다. 성직자단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깊이 간직하고 있었고, 그 선교와 사목의 진정성들을 최소한 우리 교구 안에서만은 지키고 있노라고 생각했다. 몸이 떨어진 5년의 간극이 너무 큰 걸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는 다른게 아니다. 예수님을 죽인 것들이 무엇인가를 밝혀내어 목록을 만들면 그것들이 죄다. 끝내 예수님께서 그 죽임을 받아들여서, 마지막으로 단 한번에 끝장내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려는 그 대상들이 바로 죄다.

박물관, 역사책에서나 남겨져 길이길이 조롱받아야 할 “색깔 논쟁” “빨갱이” 색칠은 예수님을 죽인 가장 치명적인 죄다. 원래의 맥락을 상실하고 선전도구가 된 “정-교 분리”의 원칙과, 그 뒤에 숨어서 저지르는 위선적인 짓들이 다들 죄다. 이런 것들을 모른체 하는 것은 죄다. 그걸 모른다면 배워 깨달아야 한다. 이에 대한 무지를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일은 죄다.

우리의 희망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죄를 언급하는데서 끝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것들을 끝장내는 예수님의 길에 동참하는 행동에 용서의 은총이 있다. 그 은총의 삶이 제자도다.

이 비통함과 참담함을 어떻게 다스릴까? 내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성직자단을 위해서 기도한다.

편지는 쓰다 말고…

Saturday, October 13th, 2007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들”의 운명을 바꿔버린 시인 선생님이 있었다. “우리들”은 그 시인의 말처럼 우물 밑으로 손을 뻗어 가난한 우물끼리 연대하며 살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다시 그 시인처럼 “우리들” 가운데 여럿은 삶의 그늘들과 씨름하다 쓰러지거나, 몸을 상하거나, 사람들의 황홀한 기대와 불편해 하며 살았다.

모두들 시인이고자 했다. 시인 선생님이 알려준 시인들과 거기에 덧붙여 읽게 된 다른 시인들은 우리를 겉자라게 했는지 모른다. 왜 그때 읽은 황지우, 김정환, 최승자 등이 더 깊이 남아 있을까? 한참 뒤에도 왜 나는 “K를 위하여”의 최승자처럼 철없이 설익은 도끼날을 허공에 찍어대는 것일까?

한편 여럿 시편들 말고, 시집으로 마지막 읽은 걸로 기억하는 건 김중식의 [황금빛 모서리]였던 것 같다. 그 시집들은 바다 건너에 데려오지 않았다! 그동안 삶이 푸석해져버린 것이다.

느지막이 결혼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려는게 되지는 않고, 자꾸 딴 생각이 든다. 자취집에 모여 점심 먹고 둘러 누워 돌려가며 시를 읽었던 그 친구들을 회상하여 한마디 축하 인사해주려는 참이었던데, 자꾸 생각이 이그러진다. 못쓰고 만다.

회상은 지금의 처지때문에 오히려 쓴 맛을 남긴다. 그래서 더욱 짠하게 그리운 친구들이다.

결혼 축하해, **야! 신부에게도!
너를 한번도 내 기도에서 잊은 적이 없어!

다른 녀석들도 다들 모이겠구나.
나도 곧 볼 수 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