콱 죽는 일!
Sunday, February 11th, 2007밤 늦게 한국에 계신 한 신부님과 교회에 대한 걱정을 나누다 얻은 맺음말 한토막…
탁류의 한편으로 나름대로 건강한 기운들도 혼란 속에서 못내 용트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그런 흐름의 거름이 되기로 작심하고 한 세상 애쓰다 콱 죽어버립시다. ^^
예, 신부님.
밤 늦게 한국에 계신 한 신부님과 교회에 대한 걱정을 나누다 얻은 맺음말 한토막…
탁류의 한편으로 나름대로 건강한 기운들도 혼란 속에서 못내 용트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그런 흐름의 거름이 되기로 작심하고 한 세상 애쓰다 콱 죽어버립시다. ^^
예, 신부님.
때 이른 죽음은 그 경위야 어떻든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연이어 보도되는 연예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화면 밖의 시청자들을 위해 “연기”하는 삶과 이에 따른 사회적 명성을 통해 부수적으로 얻게 된 또다른 삶이 서로 부대껴 만들어 낸 그림자들이 얼마나 무거운가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이들의 선택과 운명이 어떠한 것이든 바깥에서 이를 한껏 소비한 이들의 시선은 이 죽음들 앞에서 어떤 것이어야 할까?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일간지에도 소개되었던 안나 니콜 스미스의 죽음. 이에 한 신앙인의 글은 이러한 죽음들에 대해 가장 인간적인 시선, 아니 인간으로서 깊은 존중의 시선을 갖출 것을 부탁한다.
글을 쓴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Diana Butler Bass: 성공회 신자로 미국근현대 교회사 연구로 학위를 얻어 여러 학교에 가르치고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이 사람에 대해서는 대해서는 한달 쯤 후 그를 여러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있으니, 그때 자세히 소개하기로 하고)는, 39살의 나이에 20살 난 아들을 먼저 보낸 뒤, 다시 6개월 된 아이를 세상에 남기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 안나 니콜 스미스에 대한 추모문을 블로그에 실었다.
Diana Butler Bass: Paying Respects to Anna Nicole Smith
그는 수년 전 자기 딸의 세례식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성공회 세례 언약의 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다.
“당신은 모든 사람들 안에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힘쓰며,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겠습니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미국성공회 기도서 305쪽, 참조 한국성공회 기도서 313쪽)
“그리스도교 전통은 정의와 평화를 모든 사람들이 지닌 존엄성에 대한 존중의 행동으로 연결시킨다. 모든 창조물들이 존엄하며, 하느님과 관계맺고 있으며, 사랑으로 조성되었다고 믿으며,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이 생각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윤리의 핵심을 이룬다. 창조의 그물망에 놓여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존중은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인간 존엄에 대한 깊은 영성이 없이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행동은 권력의 정치로 미끄러지고 만다. 세례 성사가 던져주는 강력한 의미는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없이는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분투하는 어떤 동기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나 니콜 스미스는 섹시스타로서, 그리고 갑부와 결혼한 후 일어난 재산 상속을 둘러싼 법정 싸움을 통해서 세상의 농담거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존엄을 어떤 식으로든 상품으로 내다 팔았고, 또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적절히 소비했다. 그가 최근 인터뷰에서 언급한대로 모든 사람들이 실은 “그녀의 한 부분씩을 훔쳐갔다.”
이러한 처지에 그의 죽음은 또다시 하나의 이야기거리로 미디어에 넘쳐난다. 그에 대한 복잡다단했던 그의 삶은 선정적인 일대기로 재구성된다. 이제 그의 죽음마저도 나와는 관계없는 텔레비전 너머의 불행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로 소외되고, 그래서 내가 그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라고 자신의 삶을 다독인다. 이러한 처지에 한 사람에 대한 존엄의 문제는 잊혀지고 만다. (보다 근본적인 성찰을 위해서는 수잔 손탁의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를 보라!.)
배스의 안타까움은 이제 살아있는 이들을 향해 있다.
“지금 나는 오로지 세례 언약만을 생각한다. 한 여성이 죽었다. 한 어머니가 아기를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농담의 대상이 아니다. 그녀는 우리 인간 가족의 상처받은 한 자매였다. 그런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데도, 사람들은 그 안에 깃든 인간의 존엄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가난한 이들의 여인,
니카라구아의 어머니,
당신의 마음은 우리를 향하여
우의 꿈과 우리의 탄식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의 자궁 안에서 새로운 인간을 만들었고,
당신은 아버지의 아들에게 육신을 주었으니,
우리에게 그 자비와 연대의 마음을 주소서.
희망에 넘친 가슴과, 아버지의 사랑으로 불타는 마음을 주소서.
어머니,
우리는 전쟁의 그림자가 내린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우리의 니카라구아를 보호하소서.
갈보리 언덕에서부터
당신은 역사의 깊이를 응시합니다.
그것은 피의 강처럼,
부활하신 분의 영광스러운 바다로 흘러듭니다.
그분은 우리의 슬픔을 희망으로 바꿉니다.
그분 안에서 두려움에 가득한 우리의 삶은 평화를 얻으며,
전쟁 가운데에도 그분 안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어머니,
당신의 자비로운 손으로
공격과 증오의 어둠을 몰아 내소서.
산에서 솟아나는 빛나는 태양처럼 당신이 일어서는 모습을 바라나니,
그 빛으로 우리의 땅을 감싸소서.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
평화와 생명의 선물을 주소서.
(註: 존 케이터 신부님(the Rev.Dr. John Kater)과 LA에 다녀온 뒤, 당신 집에 들러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에 라틴 아메리카의 산디니스타 이야기로 옮겨 갔고, 과달루페의 성모 마리아 그림 위에 쓰여진 스페인어로 쓰인 시를 읽었다. 그 밤으로 영어로 옮겨달라고 한 뒤에, 영어에서 다시 우리말로 옮겨 본 것이다. “마니피캇”(Magnificat)은 “성모의 노래”를 일컫는 것. 산디니스타 판 성모의 노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