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전례' Category

번역 유감, 그리고 “성공회 현대 영성”

Wednesday, August 3rd, 2005

번역이 힘들다는 건 그 일을 해 본 사람이면 더욱 잘 안다. 그래서 좋은 책의 좋은 우리말 번역을 대할 때면 옮긴이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곤 한다. 그러나 좋지 않은 번역, 아니 이보다는 전혀 우리 말이 아닌 번역에다가 오역까지 겹쳐 있으면 언짢은 마음이 오래간다.

성공회에 관련된 내용은 여러 신학 번역서들에서 오역을 피해가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성공회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 탓이 크리라. 하지만 번역자는 최소한 용어 확인 쯤은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욱 큰 문제는 전혀 읽어내려 가기 어려운 번역이다. 이미 오랫동안 영어권에서 영성 신학 공부의 입문 교재로 널리 쓰이던 “The Study of Spirituality”의 번역서 “기독교 영성학”(은성)은 낱장을 넘기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 날 밤으로 성공회 관련 내용을 다시 번역하고, 그 책을 아예 치워버렸다. 옛 자료를 정리하다 다시 발견한 3년 전 어느 날 밤의 번역을 여기서 나누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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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기도 I – EOW 1

Tuesday, April 12th, 2005

지난 월요일 신학교 매일 성찬례의 집전 차례를 맡은 김에 성찬기도(Eucharistic Prayer)만 번역해서 사용해 보았다. 집전자인 나만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이미 신학생들은 성찬기도를 모두 알고 있는 참이니, 한국어로 챈트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그날 오르간 연주자 크리스토퍼의 제안도 있었다.

미국성공회는 1979년 기도서를 공식발행한 이후 1998년에 새로운 아침기도-저녁기도, 그리고 성찬례를 펴냈다. 20여년 전에 별로 드러나지 않았고 고려하지 않았던 이른바 “포용적 언어”(inclusive language) 사용을 반영하고 새로운 사목 상황에 따른 변화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것이었다.

교회 혹은 신학 내의 성차별적 언어들을 극복하려고 제기된 이른바 “포용적 언어”의 사용은 예전 안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1979년 기도서가 평등주의적 공동체 신학이라고 풀이할 만한 “세례 교회론” (Baptismal Ecclesiology)에 강력하게 기반하고 있던 터라, 이런 새로운 언어적 적용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막상 번역은 녹록한 작업이 아니다. 우리말 운율에 맞추기도 어렵고, 새로운 성찬기도의 핵심인 이른바 영어의 “포용적 언어”라는 것이 우리 언어와는 사뭇 다른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번역은 늘 반역이지만, 다시 새로운 창작이기도 해서 어의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어떤 친근한 이미지들과 어투를 사용해보려고 시도했다.

성찬기도 이해의 한 자료가 되었으면 하고, 무엇보다 하루를 위한 중요한 기도의 내용이 될 수 있을까 해서 함께 나누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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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말씀이 아니다”

Friday, March 25th, 2005

“시”의 대체말 : 종교 – 신앙 – 신학 – 예전

시는 말씀이 아니다. 말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장르는 운명이다.
나는 시라는 장르적 특성 안에 편안히 안주한 시들은 싫다.
자기만의 형식이 없고 목소리만 있는 시들도 싫다.
나는 시라는 운명을 벗어나려는,
그러나 한사코 시 안에 있으려는,
그런 시를 쓸 때가 좋았다.
그 팽팽한 형식적 긴장이 나를 시쓰게 했다.
양수막 속에서 튀어나오려는 태아처럼.
자루에 갇힌 고양이처럼.

김혜순 [불쌍한 사랑 기계] 문학과 지성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