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불찰

November 24th, 2007

어떤 권위에 대해서 자신들이 하면 진정한 “도전”이요, 정당한 “비판”이고, 자신들이 도전받거나 비판받으면, 금세 그걸 “교만”이요, “건방떠는 일”이며, 젊은 녀석이 “가르치려 든다”고 뒷담화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비판적/진보적 학자라 자처하거나 교수라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라면 더욱 서글퍼진다. 그러나 이들을 나름의 학자적 기준에 맞추어 대하고, 대화한답시고 덤벼들었던 불찰이 크다.

의견은 다르더라도 어떤 정서적 유대감 안에서 말을 하면, 쓴소리도 달게 느껴지고, 선배된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내뱉는 사람이 가히 귀엽게 느껴지고, 자랑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유대감이 없거나,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은 비판의 발설자에 대해서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을 갖는다. 비판의 대상이 어른들이면, 젊은이들은 그걸 들으며 통쾌해 하며, 동시에 “저 자식, 어른들한테 되게 막하는 건방진 놈”이라는 느낌을 보탠다. 물론 여기에는 젊은이 특유의 질시가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서적 유대감이 전혀 다른 집단이 섞여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이를 면밀히 분별하지 않고, “재롱떠느라 대들었던” 불찰이 크다.

근거와 논리보다는 정서와 감정의 작용이 의사소통에서 더욱 직접적이고 더 큰 영향력이 있다는게 통설이다. 그래서 감정을 건드리는 감각적 “말”보다는, 같은 내용이라도 “글”로 쓰면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감각적 총화인 “말”의 감정 자극적 요소를 미리 세심히 살피지 않고, “요이~ 땡”하고, “이번 시간만은 근거와 논리를 갖고 이야기하는 게임입니다” 하고만 선언하고, 청중도 그렇게 듣고 대화하리라, 믿었던 불찰이 크다.

어떤 사람이 흘리는 “아우라”(aura)는 “도통함”이 아니면, “의뭉함”이다. 겉모양은 비슷해도 속은 전혀 다르다. 그 속에 따라 전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 또 그렇게 다룰 줄 알면, 도통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 저마다 얽혀 있는 복잡한 우월감과 열등감을 상향 평준화하여, 일괄 평등 처리하는 것이 깜냥에 평등주의 원칙의 적용이라고 판단했던 불찰이 크다.

이런 모든 일에서 보듯이, 내 안에 이런 미욱한 것들이 널려 있음을 알면서도, 이게 용기겠거니 하고 무시했던 불찰이 더더욱 크다.

그런데, 이런 불찰들을 피하려면 아내에게 검열받고 귀 기울이는게 좋다. 😉

마지막 주일에 즈음한 편지

November 24th, 2007

전례력에 따라 한 해를 마감하는 즈음에, 한국의 신부님들께 매 주 보내드리는 자료와 함께 한 해의 소회를 간단히 적어 보냈더니, 단 한 장의 짧은 답장이 왔다. 말 없이 마음 속 깊이 후원해주시는 신부님들이 많다는 걸 잘 알지만, 답장을 받고 보면 그 기쁨이 배가된다. 게다가 이렇게 짧고 훈훈한 답장이라면, 더욱.

주 신부님, 참 대단합니다. 그 열심과 사랑이 한없이 가라앉으려는 나를 머뭇거리게 하네요. 따뜻함을 보냅니다.

** (이름 가림)

이 분은 삶과 말씀에서 내가 큰 배움을 얻는 분이요, 내게 참 좋은 도반이다. 그 고마움을 이 참에 널리 알리고자, 내 자신이 소인배인게 드러나는 걸 무릅쓰고 너절하게 한 쪽지 올려본다.

* 신부님, 저는 신부님이 대단해요. 신부님때문에 저는 한없이 거칠게 올라가려고만 하는 제 자신을 붙잡아 둡니다. 이렇게 해서 서로 머뭇거리는 일도 참 좋은 일이겠다 싶군요. 신부님의 따뜻함을 깊이 느껴지도록 받습니다.

한국 방문 후 사례

November 12th, 2007

우선 짧게나마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짧은 한국 방문 기간 동안, 특별히 성직자 계속 교육 기간 동안 함께 참여하고 좋은 대화로 훌륭한 일정을 마련해 주신 여러 신부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곧 정신을 가다듬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만, 이 자리를 빌어서 마음 깊이 사례합니다. 참여하지 못해 서운해 하고 미안해 하며 바쁜 일정을 따로 쪼개 기쁜 만남을 마련해 준 여러 신부님들께도 큰 마음의 빚을 졌습니다. 신부님들 고맙습니다. 강의 시간에만 만난 신학생들, 그리고 머물며 깊은 환대를 보여준 성가수도회 수녀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또한 오랜 헤어짐을 간단히 뛰어넘을 만한 짧았지만 깊은 만남, 그리고 전화 너머의 짧은 통화로 반갑고도 아쉬운 인사를 대신했던 친구들, 바쁜 일정을 쪼개어 술 한잔 나눠준 지인들에게도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시 볼 수 있을 거에요. 다시 그리움을 확인하는 기쁜 시간들이었어요.

그 짧은 기간 안에 홍콩에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매우 큰 배움이었습니다. 초대해주시고 모든 편의를 제공해주신 존 케이터 신부님 (Fr. John Kater)과, 밍화(明華) 신학교의 신학생들과 여러 신부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기회 닿는대로 홍콩 성공회의 경험도 글로 올리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참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