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6th, 2006
미국 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례(예전) 관련 저널이라면 단연 “워십”(Worship)을 꼽겠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전례 운동이 미국에 와서 버질 미셸 신부(Fr. Virgil Michel:1890-1938)를 통해서 사회 정의와 전례의 삶을 결합시키게 되었다, 그가 창간한 저널(Orate Fratres)이 이름을 바꾸어 아직까지 “워십”으로 이어진다. 현재 편집장이자 미국 내의 주도적인 전례학자 가운데 한 분인 네이선 미첼(Nathan Mitchell)의 글 한 토막을 옮겨본다. 전례(예전)의 개혁이든 쇄신이든, 혹은 어떤 변형을 추구하든 간에 명심할 단순한 원칙이다.
전례(예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이지,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님을 올바르고 아름답게 예배할 것인지를 보여 주신다. 전례(예전)는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드리는 어떤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 안에서 하시는 아름다운 어떤 것이다. 함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요, 우리가 주도하는 것도 아니다. 성 베네딕도 규칙서가 되새겨 주듯이, 전례는 오푸스 데이( Opus Dei), 곧 하느님의 일이다. 우리의 일이란 굶주리는 사람을 먹이는 일이요, 목마른 이를 채워주는 일이요, 헐벗은 이를 옷입혀 주는 일이요, 병든 이들을 보살피는 일이요, 집 없는 이들에게 피난처를 마련하는 일이요, 감옥에 갇힌 자를 찾아보는 일이요,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일이요, 금새 상처받는 작은 이들과 궁핍한 이들에게 우리의 손과 마음을 여는 일이다. 이런 일을 우리가 잘 감당할 때, 전례(예전)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제대로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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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5th, 2006
조만간 데스몬드 투투 주교의 새로운 전기가 출간될 모양이다. 투투 주교는 남아프리카 성공회 케이프타운의 대주교였으며, 그동안 악명 높았던 인종분리정책 (아파라트헤이트) 철폐 운동의 핵심에 섰던 인물로, 1984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이 전기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언급된 모양인데, 모두 캔터베리 대주교와 관련이 되어 있다.
우선 그는 102대 캔터베리 대주교를 지냈던, 로버트 런시 대주교(1980-1991)의 후임으로 거론되었던 모양이다. 당시 그는 케이프타운의 대주교로 재직 중이었고, 남아공 성공회의 관구장이었다. 영국성공회는 국교회인지라, 캔터베리 대주교의 지명은 후보자 가운데 총리가 선택하여 국왕에서 올려서 재가를 받는 형태인데, 당시 보수당 총수였던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는 온건하고 카리스마가 없는 조오지 캐리를 대주교로 지명했다는 것이다. 기사는 또 조오지 캐리 대주교의 재임 10년 동안 영국 성공회 신자의 급격한 감소를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가 진행했던 세계 성공회의 “복음화 10년” 프로그램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어쨌든 당시로서는 투투 주교가 후보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성공회 사상 하나의 혁명이 되었을 법한 이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지만, 로버트 런시 대주교의 신학적 성향과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생각은 투투 주교와도 잇닿는 면이 많았다.
둘째, 투투 주교는 최근 로완 윌리암스 현직 캔터베리 대주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을 비치고 있는 듯하다. 보도에 따르면, 전기에서 동성애 문제를 두고 세계성공회가 극심한 논쟁을 진행하고 있는 방향에 대해서 실망감을 느끼고 있으며, 특히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가 보수파에 대해서 미온적으로 대응하며 그쪽에 기울고 있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만약 어느 교회가 공개적인 동성애 사제를 서품하기를 거절한다면, 자신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아울러 보수파들이 이에 불만을 느낀다면, “그들에게는 떠나갈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남아프리카 성공회는 투투 대주교가 재임하는 동안 동성애자 성직자가 독신을 지키는 조건으로 성직 서품을 하고 있으며, 동성애 커플 간의 시민적 결합은 “결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축복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렇듯이 남아공 성공회는 아프리카의 다른 성공회들과는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사우스” 관구장 주교들의 성명에 대해서, 현직 남아공 성공회의 관구장인 은종글루 은둔가네 대주교는 이들이 허락없이 자기 관구의 이름을 넣은 것뿐만 아니라, 교회의 분열을 촉진하고 그 수순을 밟고 있는 행동에 대해서 명백하게 반대했다. 자,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지역에 교회를 “심어준” 선교회의 성격이 달라서일까? 아니면 오랜동안 사회의 문제를 교회가 해결해야 할 선교 사명의 문제로 보며 분투해왔던 경험의 유무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와 더불어 실제로 “글로벌 사우스”가 어떤 세력에게서 지원을 받고 있는지, 특히 미국의 기독교 우파 혹은 기독교 근본주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까지 이어진다.
http://www.wcax.com/Global/story.asp?S=5443468&nav=4QcS
http://www.timesonline.co.uk/article/0,,2088-2372148,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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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1st, 2006
몇달 전에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관할하는 캘리포니아 교구의 교구장 주교의 선출을 소개했다. 마크 앤드러스 주교의 교구장 주교 취임식이 내일 (7월 22일) 그레이스 대성당에서 열린다. 통상 주교 축성식 (consecration)과 착좌식(enthronment)으로 열릴 것이나, 이미 주교인 분이 오시는 터에다, 승좌식과 같은 권위적인 용어를 피하자는 것인지, 단순히 취임식(investiture)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례에 관한 경험에서 보자면, 미국에서는 이번이 첫번째 주교 관련 전례의 경험이 될 것이거니와, 축성식을 함께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있다. 이웃인 북캘리포니아 교구나 엘 카미노 레알 교구에서 올해나 내년 안에 살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내내 짐작이 안가는 “주교 취임식”도 새로운 경험이 되겠다. 취임식이 열리는 그레이스 대성당의 공간 제한때문에, 철저히 사전에 신청 배포된 입장권에 의해서만 참석할 수 있게 되어서,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인터넷 방송(웹캐스팅)을 한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을 인터넷 상에서나마 살펴 볼 수 있다. 참석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특기할 만한 내용이 있다면 후에 나누도록 해야겠다. (혹시 웹캐스트 상에 제 모습이 잡히거든 반가운 댓글을 던져 주시지요. ^^;)
주교직에 대한 이해를 이 취임식은 어떻게 표현할까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이다. 원래 주교를 뜻하는 “폰티프”가 “다리놓는 사람”을 말한다면, 이 원 뜻에 비추어 우리가 경험하는 주교직도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그대가 이어받은 유산은 신앙의 선조들과, 예언자들과,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신앙이며, 또한 희망 속에서 하느님을 바라보았던 모든 세대들의 신앙입니다.
그대가 누리는 기쁨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셨으며, 많은 이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신 분을 따르는 일이어야 합니다.
(미국 성공회 기도서, 주교 성품 예식 “시험” 부분 중에서)
주[님]께서는 일찍이 사도들에게 내리셨던 은혜와 권능을 이 종에게 베푸시어 성서의 진리와 믿음을 지키며, 하느님의 교회와 백성들을 섬기도록 사도 직분을 주셨나이다.
비오니, 이제 새 주교의 사목 아래 하느님의 교회가 새로워지며, 모든 신자들이 진리와 사랑으로 하나되는 기쁨을 내려 주소서.
또한 새 주교를 참된 목자로 세우시어, 이 세상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넘어진 사람들을 일으키며, 모든 죄악을 물리치고 정의와 진리를 세우며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그 책임을 다하게 하소서.
(한국 성공히 주교 서품 예식, “안수” 기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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