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암 템플 대주교, 교회의 존재 이유

April 3rd, 2006

지난 세기 최고의 그리스도교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이었던 윌리암 템플 (William Temple, 1881-1944) 캔터베리 대주교는 교회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

교회는 자기 내부의 일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지상의 유일한 사회이다. (the Church is the only society that exists for the benefit of those who are not its members.)

교회가 커피숍보다 많은 한국의 처지에, 매 주일 미사 참석 인원 평균이 8천명에도 못미치는 성공회가 한국에 존재해야 할 까닭이 무엇일까? 템플 대주교의 교회에 대한 정의는 그 존재 이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자기 내부 사람만이 아닌 “타자들,” 특히 주변으로 내쫓긴 사람들을 끌어 안으려 노력해 왔던 까닭에 한국 성공회는 존재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이 노력과 이상이 꺽이지 않도록 스스로 채근질할 때다.

로데릭 신부의 파드캐스팅

March 31st, 2006

몇 개 안 되는 내 파드캐스트 구독 목록 가운데는 네덜란드의 한 로마 가톨릭 신부가 운영하는 “데일리 블랙퍼스트” Daily Breakfast 라는 것이 있다. 로데릭 본회겐 신부 Fr. Roderick Vonhögen 는 처음에 가톨릭 인사이더라는 이름의 사이트를 개설하여 작년에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 및 새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선출과 교황의 독일 쾰른 방문 등을 현장감있게 소개하고, 갖가지 신앙적 이슈와 관련된 영화 이야기 및 파드캐스팅 전반에 관련한 에피소드를 만들다가, 몇 개월 전부터는 세계 사람들에게 “매일 아침식사”를 선사하고 나섰다.

아무리 네덜란드 사람들이 영국인을 뺀 유럽에서 영어를 가장 잘한다곤 하더라도,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는 영어 방송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또한 바티칸에 신앙 교육과 홍보를 위한 미디어 학교가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실제로 파드캐스팅이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들과의 교감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의사 통로요 미디어라는 점에서 큰 자극을 얻었다. 게다가 신앙의 문제를 젊은 세대들이 쉽게 접하는 영화, TV 드라마 등을 소재로 하여 컴퓨터 매니아로서, 교구 사제로서의 일상과 함께 풀어나가는 것에 찬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용기를 내어 이런 걸 한번 시도해봐야지 하는 부러움에 넘쳐 한껏 자극을 받아 매일 아침 이어폰을 꽂고 있다. 물론 영어 듣기 훈련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어제는 평소와 달리 1시간이 넘는 긴 방송을 내보냈다. 쉬는 참에 후반부까지 다 들어보니, 아주 실망스러운 소식에 로데릭 신부 자신이 어리벙벙해 하고 있었다. 교구에서 그에게 맡긴 프로젝트는 이런 방송이 아니니, 불필요한 곳에 시간을 쏟지 말라고 하면서 파드캐스팅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문제는 이 교구 관계자들이 파드캐스트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니와, 최근에야 몇번 로데릭 신부의 방송을 듣고 자기들끼리 폐쇄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주교와의 면담을 요청하고, 세계 곳곳의 청취자들과 네덜란드의 교인들에게 자신의 파드캐스팅을 후원하는 이메일과 코멘트를 보내달라고 했다. 오는 토요일 2시에 주교와 면담할 때, 그 내용을 전달하겠다는 것. 다만 그 주교님이 전혀 컴퓨터를 모르는 분이서 걱정이 된단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개인 메일을 로데릭 신부에게 보냈고, 웹페이지만도 90개가 넘는 코멘트가 줄이어 그를 응원하고 있다. 물론 나도 한 줄 거들었는데, 다른 교단 신부가 응원한다고 흠이나 잡히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잘 해결되리라 생각하지만, 결국 중단되고 만다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 교구와 주교라는 오명을 얻을 것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말은 사실 로마 가톨릭이나 성공회, 정교회에서 중시하는 성사신학의 핵심이 될 만한 말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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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와 성공회의 일치

March 31st, 2006

한국 성공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몇몇 세계성공회 소식을 접하고서 쓴 마음이 들어 긴 댓글을 달았다 (댓글이라야 소개된 기사에 대한 정정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그 댓글의 일부를 여기 밑에도 옮겨 놓는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관구 홈페이지를 제작해서 운영하던 바였고, 한동안 한국성공회 신문에 세계성공회 관련 기사를 제공했었기에, 다른 분들이 올리는 소식에 귀가 가는 것은 당연하다. 예감했던 대로 작금 세계성공회의 기사는 모두 동성애 관련된 세계성공회의 일치 문제이다.

벌써 지난 이야기지만, 현재 진행형이기도 한 이야기이므로 배경을 되살려 보자면 이렇다. 2003년 미국성공회 관구 의회는 동부의 작은 교구인 뉴햄프셔에서 주교로 선출된 진 로빈슨 신부의 주교 인준을 통과시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까닭은 그가 처음으로 스스로를 동성애자로 공개한 주교 후보자였고,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었던 탓이었다. 공교롭게 그 자리에 방문객으로 참석한 차였고, 그 여파가 커서 연일 진행 과정을 취재하듯이 했고, 그 내용을 개인적인 성찰을 곁들어 서울 교구장 주교님께 긴 편지를 드리기도 했다.

물론 한국의 일반 언론이나 교계 언론에서도 이를 빠지지 않고 다루었다. 당시 기사로만 보면 특별히 문제 삼을 것 없는 것이었지만, 그 여파는 한국성공회 관구 홈페이지를 온갖 저주와 욕설과 정죄로 물들게 했다. 정통적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근본주의자들의 욕지거리였다. 몇몇 중요하고 심도 있는 댓글들이 이어지긴 했지만, 성공회는 자체로 동성애 종교, 혹은 게이 종교로 낙인 찍히는 중이었다. 그 참에 이곳 학교에서 가르치시는 교수 신부님의 글을 번역해서 한국의 신부님들께 돌리기도 했고, 또 다른 신부님의 글과 자료로 이 문제를 신중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급박한 우리네 관심사가 아니었거나, 신부님들이 속으로만 깊이 삭이시느라 그랬는지 특별한 반응을 접한 적이 없었다.

한국 성공회 신문의 세계성공회 기사를 내내 쓰고 있던 차여서, 이와 관련한 소식을 몇 차례 올렸다. 그리고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람베스 특별 위원회를 조직해서 동성애와 관련된 논란 속에서 “세계성공회의 공동체의 일치”를 어떻게 지켜내며 강화할 것인지를 연구하게 했다. 그 결과 이른바 [윈저 보고서]가 나왔다. [윈저 보고서]에 대한 기사를 끝으로 세계성공회 기사 송고를 그만 두었다. [윈저 보고서]와 캔터베리 대주교의 말씀대로, 이것을 어떤 대화와 숙고의 시작으로 보아야 하겠기에 다른 기사를 제공하는 것이 자칫 빈 논란을 증폭시킬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만 지금은 닫아버린 질문과 답변란에서 몇차례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후 이와 관련된 캔터베리 대주교님의 대림절 사목 서신을 성공회 신문에 소개했다. 다행히 [윈저 보고서]는 우리 말로 번역되어 이미 우리 신부님들이 모두 읽으셨으리라 생각한다.

그 전후에 많은 일들이 계속 진행되었다. 세계성공회 관구장 회의를 비롯하여, 미국성공회 내의 분열 조짐과 몇몇 교회들의 성공회 탈퇴, 나이지리아 아키놀라 대주교의 미국성공회를 향한 맹렬한 비난, 성공회 내 보수파들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사우스”의 결성, 영국 의회의 동성애자의 시민적 결합 인정에 따른 영국 성공회의 미온적 반응, 그리고 이에 대한 나이지리아 대주교의 영국 성공회 비판과 캔터베리 대주교와의 관련을 나이지라 성공회 교회 헌장에서 삭제한 일 등… 그리고 가까이는 이러한 격렬한 논쟁 가운데 내가 머물고 있는 캘리포니아 교구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주교 선출 위원회는 7명의 주교 후보자를 발표했다. 그 가운데 3명이 동성애자여서 또 다른 동성애자 주교의 선출 가능성을 맞고 있다.

쉽지 않은 논란이요, 신학적, 신앙적 문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곳 신학교의 성직 후보자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동성애자이거나 동성애 관계에 살고 있고, 우리 가족도 신학교 아파트에서 이들과 이웃하며 살고 있다. 신학적 대화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과 신앙적 고민과, 또한 사목자로서의 비전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여전히 그러고 있다. 최소한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이들과 대화를 중지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삶과 더불어 식별하고자 한다. 그들의 깊은 신앙과 성실한 삶, 하느님을 향한 깊은 사랑과 교회 공동체에 대한 소명과 헌신을 옆에서 목격하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정황과 대화의 진행, 그리고 삶의 경험들을 고려하는 가운데 이 문제들이 언급되었으면 좋겠다. 몇몇 선정적인 어투가 우리의 관심을 낚을 수도 있겠고, 해석 상의 아전인수가 우리를 명백해 보이는 결론으로 인도할 것 처럼 보이지만, 말 그대로 낚이거나 “의도된 오해”에 놀아나는 일이기 쉽다.

아래의 글은 한국 성공회 게시판에 이미 붙여놓았으나, 이전에 실었던 소식들과의 연관 속에서 이 사태를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런 상황 설명과 다시 싣는다. 최근 영국성공회 더럼 교구 톰 라이트 주교님의 신문 기고글과 역시 영국 엑스터 교구의 마이클 랭그리쉬 주교님이 미국성공회 주교회의에서 행한 연설에 대해서 한국 성공회 관구 홈페이지에 소개 기사가 나와서 몇 가지를 바로 잡으려고 붙인 댓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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